미륵이 도성 진격을 명했다. 그들은 도성행을 육로를 택했다. 해로는 부상자들을 후송하면서 경기수영(水領)의 눈치를 살피기로 했다. 장단에서 난리를 치른 일이 이미 각 군영이나 관에 통기가 가고 있을 터였다. 반정 소식을 아직 듣지 못한 각 군영은 황단을 막아설 가능성이 농후했다.
장단에서 도성은 지척의 거리였다. 파발이 한나절에 도착하는 거리였다.
"속행!"
막장대의 지시에 종도들이 두 줄의 대오를 갖추어 도성으로 길을 잡았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30명이나 되었다. 단의 전력의 3할의 피해였다. 용호대를 70명이나 주살한 것은 자랑이 아니었다. 무도한 군왕을 노린 거사가 어찌보면 무고한 조선의 백성이자 군력인 병사들을 죽인 셈이었다.
"도성은 어찌 되었을까요?"
당래가 천둥이 치듯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거대한 등판에는 청룡도와 부월이 함께 매달려 있었다. 용호대의 갑사들 수명을 죽인 그였다.
"아마 큰 사단이 났을게야... 제발 잘 되어야 할텐데... "
미륵도 조바심이 났다. 철석같이 약조하고 행한 일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과연 지금 도성 안은 어찌 일이 돌아가는 것인가.
"속행하라. 속행!"
미륵이 속보를 지시했다. 그렇잖아도 빠른 걸음으로 걷던 부대가 나는 듯 앞으로 나아갔다.
족히 한나절을 걸었을까. 길위에는 칠흑의 어둠이 내려 더이상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었다. 눈발까지 거칠게 내렸다.
그들은 재령의 턱밑에 도착해 있었다. 고개를 넘으면 바로 도성의 북릉이었다.
"저곳에서 요기를 하고 간다."
미륵이 재령의 주막을 가르키며 말했다. 재령은 개성에서 도성으로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원(院)이어서 큰 주막이 몇개 있었다. 단원들은 대오를 나누어 각 주막으로 들어갔다. 90여 명의 인원들의 식고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국밥이라도 빨리 끓여 내시오?"
용호가 주막 주인들을 깨워 주문을 했다. 그들이 눈을 크게 뜨고 잔뜩 겁을 집어 먹고 몸을 놀려 장국밥을 말아 내놓았다.
"먹자!"
미륵이 장국밥을 받아 들고 종도들에게 식사를 권하고 자신도 수저를 들었다. 가희가 떠올랐다. 비록 사랑하는 마음은 없었던 여자였으나 그 죽음이 안쓰럽지 않을 수 없었다. 간웅 오소비에게도 사랑은 있었다. 그리고 미륵 자신의 가식적 사랑이 미안했다. 순간 흔들리던 여심이 절대적 상황 앞에서 진실을 찾은 것이었다.
"너무 많은 원한을 남기는구나!"
미륵은 밥맛이 씁쓸했다. 자신이 오소비를 증오하고 미워는 했지만 자신 또한 그 못지 않게 원한의 바다를 끌어안고 살고 있지 않은가.
ㅡ장강세도(長江洗刀)
미륵은 원한의 피를 내어 장강을 물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오늘 하루만해도 백여명의 목숨이 불귀의 객이 되지 않았던가.
"주모와 사내들을 불러와라."
미륵이 국밥을 다 비우고 주막안의 사람들을 불러오게 했다. 재령 근방에 있는 경기 병마사 분초에 쓸데 없는 고변을 넣지 못하게 단속을 하기 위해서였다. 재령은 경기 병마사와 5군영의 최전방 분초가 나와 있는 곳이었다.
주막 두곳의 주인과 식솔들이 불려오자 미륵이 말했다.
"그대들은 지금 우리를 보지 못한 것이요. 알겠소?"
"그럼요. 무조건 저희들은 아무것도 본 것이 없습니다요."
주모 하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는 미륵 일행을 구월산이나 전방산의 산적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산적 수적들은 조선 8도 어디에나 발호하여 민가와 관청을 가리지 않고 약탈을 하던 때였다.
"자 이건 밥값이오. 나눠 받으시오."
"안 주셔도..."
주모는 미륵이 주는 은자 몇잎을 받고 황송한 표정을 지었다. 신사적인 산적들을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밥값은 고사하고 재물을 빼앗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던 중 아닌가.
"자, 탁주 한 사발씩만 돌리시오. 빨리."
미륵이 종도들에게 탁주 한 사발씩을 돌릴 것을 말하자 당래가 코를 벌름거리며 손을 들었다. 그때 한 방문이 열리며 스님이 나왔다.
미륵이 사태 파악을 못하고 이죽거리는 두타를 노려 보며 입맛을 다셨다. 청소하는 날 굴뚝도 손을 본다는 말이 떠올랐다.
15. 장강에 칼을 씻다 (長江洗刀)
"아니 니놈이 여기서 또 뭔 사기를 치고 있는 게냐 ?"
미륵이 두타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소리를 쳤다.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태세였다. 기왕에 피를 보기로 작정을 한 일진 아니던가. 이러한 때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인사를 우연히 만난 것도 하늘의 뜻이리라.
"두령, 이거 왜 이러시유? 그런데 어디 화적질이라도 다녀오는 게유? 행색들이 장난이 아니외다."
두타가 마루 위에 엉거주춤 앉으며 미륵을 바라보며 물었다. 겁이 없는 인사였다.
"지금 화적질이라 했나?"
"하하, 강도단이 작업을 나왔다면 화적질이지 다른 뭐가 있소? 그래 재미는 좀 본게요?"
"이런 놈이?"
미륵이 환도를 뽑아들었다. 그러나 그 칼을 막장대가 제지를 했다.
"두령, 참으십시요. 저 땡초가 말버릇은 똥수간이라 해도 목숨을 앗을 이유는... "
"끄응!"
미륵은 뽑아들었던 칼을 도로 칼집에 넣을 수 없어 엉거주춤하고 서 있었다. 백호가 그런 미륵의 마음을 알고 칼을 받아 들었다.
"하하, 인명은 재천이고 내가 생불이니 그대의 칼을 무서워 할 일이야 없지. 미륵 두령, 불법에 의지한 자가 너무 살생이 심한 듯 하오이다. 강도짓도 좋지만 이리 피 비린내를 풍겨서야 나무관세...!"
두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두타가 미륵을 자처하고 용신의 재림을 내세워 혹세무민하는 이교도일망정 그 또한 불법을 입에 달고 사는 신통(神通)임은 분명했다.
"오늘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나 내 생불을 자처하는 입장에서 염불 한줄 없어서는 안되겠구료.
그대들의 등뒤에 원귀들이 군행을 하듯 줄을 서 있구료."
두타가 방안에서 목탁을 꺼내 와 두드리며 염불을 독송했다. 술 한동이가 내어져 왔고 미륵과 종도들이 한 잔씩 술을 마시는 동안 두타의 독송이 계속되었다.
살아서는 나생문을 떠돌았으나
죽어서는 수미산 정토를 꿈꾸나이다.
연꽃이 불 가운데 피고 간음도 보살도라지만
오늘 죽어간 원혼들은 극랑 왕생하시라.
"에혀!"
미륵은 들고 있던 사발을 땅바닥에 내 던지고 주막을 나섰다. 이유 없이 미운 땡초였지만 사실은 그리 미워할 이유도 없는 인간이기도 했다.
"미륵 두령, 자신만이 정도다 생각을 마시구료. 정도가 어디 정해진 것인가요. 길을 내고 지나가면
그것이 길이고 도이거늘... 나무 관세음..."
"속행하라. 속행!"
미륵이 두타의 넋두리를 떨쳐 내고 길을 나섰다. 종도들의 발걸음이 나는 듯 했다.
"형님, 스승님이 생각나네요."
당래가 부상당한 한쪽 팔을 만지며 말했다. 두타를 보더니 일도 스님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ㅡ나생문은 인간들이 터를 대고 사는 바로 이곳이니라. 구원을 다른 곳에서 구하지 마라. 나생문도 극락도 바로 이곳이니라.
일도 스님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나생문을 헤쳐온 방금전의 살겁이 떠올랐다. 피와 살점이 눈처럼 난분분 하던 전쟁터 그곳에 도와 불법이 있던가.
아비를 잃고 울고불고 하는 여인네와 어린것들이 떠올랐다. 아들을 잃고 까무러치는 조선의 착한 노부모들의 모습이 생생했다. 갑사도 검계의 종도들도 풀린 길은 각자였으나 오늘 장단의 벌판 위에서 한날의 제사날을 받은 그들은 누구였던가.
그들의 통한과 비극적 가정사를 딛고 미륵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던가.
"두령, 저 땡초를 잘 이용하면 써먹을 곳이 있을 듯 합니다."
막장대가 미륵의 옆으로 다가와 말을 했다. 늙은 몸으로 먼길을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오며 참모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그가 미륵은 고맙고 미더웠다.
"써먹다니? 그건 무슨 소리인가?"
"내가 궁리를 좀 해 보죠. 미운놈 곶감 하나 더 주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미륵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잠시전의 심각함이 사라지는 듯 했다. 두타를 이용할 방법을 찾는다는 막장대의 의견이 궁금했다. 좋은 참모는 적도 아군으로 만들고 원수도 은인으로 만든다던가.
"끄응."
미륵은 식은땀이 이마위를 흐르는 것을 느꼈다. 도성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되었다. 칠흑의 어둠속에 도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저 어둠 속에 가로 누운 도성 안에는 분명 어떤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을 터였다. 미륵은 가슴이 답답했다. 밤기운은 뚝 떨어졌고 땅위에는 얼음이 얼어 있는 지 미끈거렸다.
"빨리 가자. 지금 뭣들 하는 게야?"
미륵은 길게 숨을 내 쉬고는 소리를 쳤다. 그 소리는 종도들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는
미륵 자신을 향해 채찍질을 하는 독려였다.
ㅡ나아가자. 숨이 멈추는 그날까지.
16. 이사당(二祀堂)
산은 나를 주목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산을 말할 뿐이다.
노파의 사인은 동사(凍死)였다. 정신 이상으로 산중을 떠돌다 일성암 법당 앞에서 체온이 떨어져 죽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 시신은 검찰의 지휘를 받아 언양서에서 영안실로 옮겨 갔고 노경위는 집주인인 다래의 보호자로 참조인 진술을 해 주었다.
별다른 일은 없었다. 한 노파의 죽음은 아무런 파장도 없이 일회성 행사로 끝이 났다.
"하필 법당 앞에서 돌아가실 게 뭐야?"
노경위는 법당 주변을 물을 퍼다 물 청소를 하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처음 일성암에 왔을 때부터 사람을 놀라게 하던 노파였다. 바람을 타고 다니며 순간순간 나타 났다가 사라지던 산신(山神)이 아니였던가. 노경위는 죽은 노파를 생각하며 부지런히 청소를 했다.
그러나 다래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일성암에 도착하고부터였다. 감기라도 든 것인가.
"다래야 감기가 든 모양이다. 방안에 눕자."
노경위는 다래를 방안에 눕히고 아궁이에 장작을 메우고 불을 지폈다. 어느새 운문산의 겨울은 견인해 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계곡 속으로 처박혀 있었다. 겨울은 뒤돌릴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져 다가올 새봄을 기다리고 있는가.
" 물좀 먹고..."
"... ..."
노경위는 다래에게 물을 먹이고 찬물을 적신 수건으로 다래의 얼굴과 목덜미를 닦아주고 잠이 드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열흘 만에 온 암자였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운문산은 육중했고 밤은 깊고 거대했다.
"휴!"
노경위는 담배를 꺼내려다 말았다. 이 맑은 산중에 담배연기를 내어 오염시킬 이유가 있던가. 노경위는 법당으로 가 방문을 열였다. 오자마자 다래가 향불을 피워 놓아 향내가 진동했다.
다래가 크면 일성암은 분명 큰 사찰이 될 것이다. 지금은 작은 손으로 향불을 피우겠지만 다래의 작은 손이 자라면 일성암에 법종을 달고 대웅전을 세워 운문산의 전등(傳燈)의 향촉을 밝힐 것이다.
노경위는 어서 다래가 성장하여 그리 되기를 바랐다.
"응?"
노경위는 암자 뒤의 습지를 걷다가 깜짝 놀랐다. 거대한 가물치가 습가로 나와 허연 배를 드러내놓고 죽어 있었다. 달빛을 반사한 가물치가 더욱 크고 무서워 보였다.
"이런... 어쩌다가...?"
노경위는 죽은 가물치를 꺼내 한쪽으로 치워 놓았다. 크기가 작은 상어 정도의 엄청난 놈이었다.
푸드득!
"아이쿠!"
노경위는 등 뒤에서 날아오른 산새의 날개 소리에 기겁을 했다. 노파의 죽음과 가물치의 죽음에 기가 떨어진 탓인지 밤새의 비상에도 놀라고 있었다.
"다래가 이걸 보면 안 되겠지."
노경위는 다래의 눈을 의식해 가물치를 습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 놓았다. 산짐승의 먹이가 된다면 다행이리라.
노경위는 손을 습지의 물에 씻고 산길을 따라 노파가 치성을 드리던 바위까지 걸었다. 촛대와 꺼져 나뒹구는 굵은 초와 여기저기 쌀 한줌이 흝어져 있었다. 결국 이것이던가? 산중의 고독한 신령으로 그리도 종종 거리던 노파의 마지막 유훈이 너무도 낡고 초라했다.
"그리도 무섭더니..."
노경위는 죽은 노파를 생각하며 이제껏 꾹 참고 있던 담배를 꺼내 물었다. 삶과 죽음이 새삼스러웠다.
"휴!"
담배 연기가 뱃속 깊이 들어갔다. 호흡기를 타고 역류하여 나온 하얀 연기가 어둠이 되었다. 노파는 진정 산신이 되었을까. 이 산의 주인으로 행세하며 그리도 돌아다니던 노파의 마음을 산은 알기는 하는 것일까.
산중을 안방처럼 누비던 노파는 과연 죽은 것일까. 노파가 운문산 산신이라면 결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별 생각을 다 하는군."
노경위는 자신의 잠시전의 생각을 비웃으며 다시 암자로 내려왔다. 암자에는 뜻밖의 일이 벌어져 있었다. 법당 안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한 여인이 합장을 하고 염불 독송을 하고 있었다. 그림자의 모습으로 다래는 아니었다. 불 한점 없는 삼천 냉골의 법당 안이었다. 그러나 여인은 촛불에 의지해 끝없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 ...?"
여인의 모습이 허공에 붕 뜬 듯했다. 촛불에 반사되어 보이는 여인의 상체가 법당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듯했다. 마치 다리가 없는 몸뚱이 가 서 있는 듯했다. 노경위는 정신을 바짝 차리려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16. 이사당(二祀堂)
꿈은 아니었다. 노경위는 윤명을 보고 나서부터 가끔 꾸던 이상한 꿈을 꾸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선몽처럼 윤명을 닮은 조선 여자는 더이상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촛불의 그림자가 꿈속의 여자와 비슷했다. 윤명이 서울에서 내려와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인가.
마하다라 다라 다라 수바야라...
여인의 독경은 계속되었다. 법당문을 열고 여인의 신원을 확인해 볼 일이 아니었다. 법당이 있기에 사람이 찾아오고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별다른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다래는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이마의 열도 많이 내려 있었다. 벽시계는 열시를 조금 넘고 있었다.
"... ...?"
여인은 독경을 마치고 오체투지를 계속하고 있었다. 백팔 배를 넘어 천 배를 하는 것인가. 여인의 그림자가 촛불에 흔들거렸다.
"윤명이 분명한 듯한데 저 여자가 이 늦은 시간에 기도를 하러 내려오다니..."
노경위는 섬돌 위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끊지는 못하더라도 줄이기는 하자던 결심도 이쯤에서 접어야 할 듯하다.
"기도가 다 끝나면 무슨 말이 있겠지."
노경위는 담배를 급하게 한 대 피우고 방으로 들어가 다래의 옆에 누워 천장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아빠?"
"... ...?"
노경위는 자리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건 분명 소영이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였다.
"이런 ...?"
환청인가. 방안에는 잠든 다래 외엔 누가 있을 리가 없었다. 방안에 냉기가 감돌았다. 저녁에 아궁이에 장작을 시원찮게 지핀 탓인가.
노경위는 밖으로 나가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헌 책장을 찢어 불을 살렸다. 불기운이 따뜻했고 아궁이 주변이 환했다.
눈이 한두 점씩 내리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밤공기는 차고 시원했다.
파르르.
파르르.
장작불이 공기를 태우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노경위는 아궁이 위의 솥안의 물을 확인했다. 솥안에는 물이 반쯤 채워져 있었다. 솥안에 물이 없으면 솥을 태우기 십상이다. 아궁이를 보고 자란 세대는 다 아는 일이다.
"이사당을 아세요?"
"아니...?"
오체투지를 하던 여인이 부엌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그녀는 역시 윤명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복장도 가벼운 개량 한복차림 그대로였다. 화실에서 곧장 내려온 모양이었다.
"오, 따뜻..."
윤명이 노경위의 옆자리에 앉아 두 손을 아궁이에 대고 불을 쪼였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손과 얼굴이 꽁꽁 얼어 있었다.
"이사당이라 하셨나요?"
노경위가 윤명에게 앉으라고 나무 토막을 하나 내어 주며 물었다. 장작불이 타닥타닥 하며 불씨를 날리며 탔다. 그 불씨를 바라보는 윤명의 얼굴이 서늘하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미인이었다.
"네, 이사당이라고 두명의 장군의 넋을 모신 사당이죠."
"그런 사당이 있습니까?"
"네, 아랫 마을에 있었지요. 박장군과 미륵이란 두 장군을 모신 사당이죠."
"박장군과 미륵이라고요?"
"네, 조선 중종 임금 때 이곳에 왜군들이 가득 들어와 난리가 난 적이 있었지요. 그때 이곳에 들어와 있던 왜군을 물리친 두 장군이 그들이죠. 그 장군들이 이 근방의 여러 마을을 구했지요. 그러다 두 장군이 반역죄로 체포되어 육시를 당하는 거열형으로 죽자 이 마을 사람들이 조정 몰래 두 장군의 넋을 모신 사당을 지은거죠."
윤명이 장작을 하나 아궁이에 집어 넣으며 말했다.
"이사당과 일성암이 어떤 관계가 있나요?"
노경위가 윤명에게 물었다. 윤명은 신기가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예인이기도 했으나 불자로서나 인간적으로 이미 어느 기준을 넘어 선 여자였다. 그녀는 자유인이었다.
"수십 년 전에 없어진 이 마을의 이사당을 대신해 남거사와 제가 이 암자를 세운거예요. 오늘이 두 장군의 제사날이고요."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중단했나요?"
"오래되었지요. 이사당 자리에 양옥집이 지어졌으니까요."
윤명이 무슨 비밀을 털어놓듯 슬금슬금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 모습과 행동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그럼, 남일수와 당신이 그 두 장군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요?"
"관계요?"
"네, 어떤 관계가 있으니 암자를 짓고 그들의 넋을 위로 하는 것 아닙니까?"
"호호, 관계라... 인연의 바다에서 관계를 궁금해 한다..."
윤명이 알 듯 모를 듯한 소리를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순간 그녀의 얼굴 위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 이 여인은 진정 누구란 말인가.
노경위는 타오르는 장작 불빛에 아름답게 투영되는 여인을 생각했다. 그리고 의문을 가졌다.
三國史記로 읽는 타이젬 2
1. 수미산 너머 신라
당서 후당서 위서 북사 일본서기는 일제히 신라를 이렇게 기록한다.
ㅡ나라는 온통 절과 탑이다. 백성은 순하고 배우는 것을 즐겨하여 능히 문과 기예가 있다.
일찍이 전 붓다 후 붓다 시기에 세상에 신라와 같은 불국(佛國)은 없었다. 신라의 서울 경주에만 10만 개의 절과 10만 개의 탑이 있을 정도로 신라는 왕부터 저 아래 미천한 시정잡배에 이르기까지 불법의 지대한 영향 아래서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1천년 사직을 이어온 불교 국가였다.
고려시대 학자 김부식은 삼국의 역사를 집대성하여 삼국사기를 엮었고 그 말미에 사론(史論)을 달아 신라를 이렇게 평했다.
ㅡ위에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검소하고 아래 사람에 관대했으며 관직은 복잡하지 않았고 제도는 간소했다. 정성으로 상국(중국)을 섬겨 사신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고 언제나 배우기를 그치지 않았다.
신라는 험준한 산악과 바다를 경계로 고립되어 있던 외로운 오랑케였으나 육로로 백제와 고구려를 해로로는 일본과 중국은 물론 멀리 인도와 페르샤까지 외교를 넓히며 끊임없이 문물을 받아들였던 문과 예를 덕목으로 알던 나라였다.
신라는 율종과 화엄종을 받아들여 자기화하는 한편 구산선문으로 대표되는 선종을 발전, 정착화시키는 불교의 개화를 보았고 한편으로 금속 세공분야의 독보적 돌출로 찬란한 문화를 일으킨 고대의 문명 국가였다.
그들은 향가를 지어 문학의 융성을 도모했고 바둑을 키워 여가를 즐겁게 했다.
신라 32대 성덕왕은 참으로 인자하고 덕이 있던 왕이었다. 그의 시대에는 여러번 천재지변으로 나라가 놀란다.
十五年春正月流星犯月月無光三月有사입 운운...
왕 15년에 유성이 달위로 지나가 달이 빛을 잃었다. 큰 바람이 불어 숭례전이 무너졌고 가뭄이 계속되어 거사(巨士)를 불러 기우제를 지내고 죄인을 사면했다.
성덕왕이 국사에 분주할 때 강릉부사로 부임하던 순정공의 부인 수로는 남편을 따라가다가 한 낭떠러지에 핀 꽃을 보고 일행에게 꺾어다 주기를 청한다. 그러나 아무도 응하는 자가 없더니 한 노인이 와 이렇게 노래를 한다.
2. 獻花歌. 그 자유 분방의 노래.
자주빛 바위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이 늙은 몸 부끄러워 하지 않으신다면
저 꽃 꺾어 바치오리다.
이에 감동한 수로부인은 꽃을 꺾어온 노인을 자신의 유막안으로 불러들여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삼국유사는 이때의 기록을 부인이 잠시 용궁을 다녀왔는데 그 몸에서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닌 향기가 났다는 은유로 표현했다.
그랬다. 신라는 이런 나라였다. 어진 국왕은 백성의 삶과 정사에 골몰했고 순박한 백성들은 바위 위에 핀 꽃 한송이에도 의미를 두고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서로에게 열려 있었다.
성덕왕이 죽자 그 아들 효성왕이 즉위한다. 효성왕은 바둑을 좋아했고 또한 고수여서 궁안에 당대의 고수 신중을 모셔 놓고 바둑에 천착한다.
그가 바둑을 좋아 하는 것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당 현종(양귀비의 부군)은 신라에 사신을 보낼 때 양계응이란 고수를 딸려 보내 효성왕과 신라의 고수들과 대국을 하게 한다.
國高奕碁出碁下.
나라의 고수들이 모두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신라의 고수들이 모두 양계응에게 지고 만다. 삼국사기의 이 대목은 여러 해석을 낳는다.
학자들은... 1) 이후 나라의 고수들이 모두 양계응으로부터 나왔다. 2) 나라 안의 고수들이 모두 그에게 졌다.
바둑은 한사군을 거쳐 마한 백제에서 꽃을 피워 통일 신라시대에 번창을 하여 국제 대항전을 치룰 정도로 융성한다.
당나라의 최고수급 기객이 당 황제의 명을 받아 신라에 파견 될 정도라면 달리 무엇을 더 말햐랴.
당시의 바둑은 지금의 우리식 대로 두어진 듯하다. 흑백을 미리 배치하고 두는 순장은 조금 더 훗날에 나왔던 듯하다. 이때의 바둑 기보가 중국에서 여러 편 나온 걸 보면 그렇다. 당시 중국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던 시대이고 보면 당시의 바둑의 규칙도 가늠되는 것이다.
10만 개의 탑과 10만 개의 절이 있던 나라 신라, 남자들이 금 귀걸이를 하고 여자들은 머리에 꽃을 장식하고 노래하고 사랑하며 바둑을 즐겨하던 나라 신라는 오늘도 이렇게 바둑의 반면교사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지금 타이젬에 접속하여 상대를 선택하고 첫수를 놓는 기우들이여! 그대가 두는 한 수가 바로 백제 신라인의 한 수였음을 기억하시라. 우리 역사에 가장 오래된 전통, 술먹고 노래하고 기도하는 것 중에 바둑 그것이 이렇게 똑 부러지게 자리하고 있었음을...
* 순장, 그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삼국사기로 읽는 타이젬 3편으로 기회를 보아 올려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연재가 끝나는 날이 되겠군요.
16. 이사당( 二祀堂)
이사당은 삼포왜란 당시 조선군의 장군이었던 두 사람의 혼백을 모신 사당으로 일성암이 자리한 아랫 동리에 있던 사당이었으나 80년대 초 땅 주인이 사당을 헐어내고 집을 짓고부터 마을에서 없어졌으나 동리 사람들은 기억은 하고 있었다.
"이 자리가 사당 자리였나요?"
"네. 옛날에는 마을의 성지인데 세상이 바뀌다 보니 이리 되었군요. 후손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마을 이장이 이사당이 있던 자리를 안내하며 말했다. 그는 표준말을 쓰고 있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시골 곳곳에 있었던 성황당이나 당골 신당 등이 사라지고 이제는 수백년 전통을 이어 오던 작은 사당마저 하나씩 없어지는 실정이었다.
"박장군과 미륵 장군이란 두 분이죠. 당시 두분의 역적으로 몰려 있어 이름도 쓰지 못하고 그리 한거죠."
"두 장군에 대해 좀더 아시는 거 있습니까?"
노경위는 사당이 있었다는 양옥집 근방의 대숲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다래가 대나무 숲을 요리저리 빠져 다니며 놀고 있었다. 대나무는 오죽이었다. 오죽은 강릉 오죽헌에만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왜군을 토벌하러 온 두 장군이 당시 마을에 들어온 왜군에 어쩔수 없이 부역을 한 마을사람들을 구해 주었다는 것밖에는 모릅니다. 얼마 후 두 장군이 나라에 반역죄로 능지처사를 당한 것을 알고 마을사람들이 나라 몰래 작은 사당을 지어 제사를 모신거죠."
"네 그렇군요."
노경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장과 악수를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참으로 덕이 있고 생각이 아름다운 조선사람들이었다. 나라의 반역자도 은혜가 있으니 갚는다는 이사당의 의미가 새삼 경건했다. 밤에 불쑥 내려왔던 윤명은 새벽에 서울로 올라갔다. 신기가 있는 여자라 행동이 돌출적이고 예측 불가능했다.
"다래 집에서 놀고 있어. 조금 있다 올께."
"으브."
노경위가 다래를 아파트에 내려놓고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박태보에게서 전화가 와 있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것인가. 노경위는 그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출두 요구서를 보냈습디다?"
박태보가 불만을 표출했다. 역시 경찰의 내사를 느끼고 일본으로 출국했던 것은 아닌 듯했다.
"출두요구서가 아니고 참조인으로 부른겁니다. 지금 시간이 계신지요?"
"내가 금방 가죠. 거기 성동서가 아니던데...?"
박태보가 약도를 받아들고 뚝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역시 건달 출신이던 과거의 가닥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경찰을 누구보다 두려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구보다도 경시하는 측면이 있었다.
노경위는 박태보를 심문할 여러 자료를 준비하고 그를 기다렸다. 사건 전개상 그가 범인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무엇인가 의심이 가는 여러 정황은 있었으나 결정적 단서나 여건이 아니었다.
노경위가 박태보를 통해 겨냥하고 있는 자는 백문이었다. 조명인 박태보 윤명 남일수 등이 한 고리로 연결된 부분이 바로 백문이었다.
"박태보를 치면 백문이 움직일거야."
노경위는 혼자말을 중얼거리며 책상위를 정리했다. 그때 옆자리의 형사 하나가 다가와 노경위의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며 말했다.
"노부장, 세월 좋으십니다. 도대체 혼자서 무슨 사건을 하고 있는 거유?"
"... ...?"
형사가 말하는 부장이란 칭호는 형사들 세계에서 보직을 받지 못한 반장급 고참 형사를 대우해서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물음은 보직 없이 무위도식하는 듯한 노경위를 비꼬는 말이었다.
"노부장은 과장님과 어떤 관계시우?"
덩치가 산만한 형사가 시비조로 나왔다. 기수대 안에서 덩치가 가장 큰 형사였으나 행동이 굼뜨고 사고가 단순한 사람이었다.
"무슨 사이라니? 이봐? 박형사, 자네 일이나 신경 쓰라고."
"호, 그러니까 누구는 좃빠지고 누구는 매일 유유자적 이래도 되는 겁니까?"
박형사의 말투는 노골적이었다. 한마디로 텃세를 하는 것이다. 어떤 조직 안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전우애 비슷한 것으로 뭉친 형사들의 세계에서는 더한 면이 있었다.
"박형사, 이따 얘기하지. 지금은 내가 사건 관계인을 기다리고 있어서 말야."
"뭐라고라? 도둑놈을 하나 불렀다고라?"
"왜? 형사가 피의자를 부른 것이 잘못되었나?"
노경위가 박형사를 쏘아보며 고개를 가우뚱했다. 다른 형사들이 모두 노경위와 박형사를 모르는 척 했다. 신고식을 시키려는 것이다. 노경위는 어이가 없었다. 지난 20년을 한길에서 형사 생활을 한 대접이 이 모양이었다. 그것이 세상의 냉정함이었다.
"노경위 자리가 어딥니까?"
그때 박태보가 사무실로 들어오며 노경위를 찾았다. 노경위의 자리는 기수대 안에서도 가장 외진 곳이었다. 노경위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었다.
16. 이사당(二祀堂)
박태보에 대한 1차 조사는 기수대에 설치된 조사실에서 진행되었다. 조사실은 방음 녹음 시설은 물론 녹화 시설까지 되어 있어 조사 대상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한편 심문자의 집중도를 강화한 시설로 전국의 검 경찰내에 설치되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시설이었다.
"박태보씨, 당신은 지난 9월 28일 홍익동 한국기원 근방에서 발생했던 남일수의 살인 사건의 참조인으로 소환을 한 것입니다. "
노경위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박태보를 바라보며 참조인 신분으로 소환을 한 이유를 얘기해 주었다. 형사 소송법은 검 경찰이 사람을 구인해 무엇인가를 질문할 때는 무슨 이유로 무엇을 묻기 위해 불렀다는 고지를 해 주게 되어 있었다.
박태보는 승복 대신 생활한복에 실로 뜬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경찰에 불려 올 때 단단히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그럼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묵비권도 행사할 수 있겠구료?"
박태보가 형사 소송법상 진술거부권과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 할 수 있다는 미란다 고지를
거론했다. 그러나 미란다 고지는 피의자에게나 적용되는 조항이었다.
"참조인 진술을 받고자 하는 겁니다. 선생은 피의자로 부른 것이 아닙니다."
"흐흐. 그게 그거 아니요? 그래 형사 양반, 묻고 싶은 게 뭐요?"
박태보가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표현했다. 경찰에 출두한 자체가 불쾌한 것인가.
"사찰을 내 놓으셨더군요?"
"하숙업이 부가 없어 임대를 내 놓았습니다. 그게 문제가 됩니까?"
"생업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선생은 애초부터 남일수와 가까운 사이더군요? 하숙생 차원이 아닌... 그런데 왜 처음 진술을 그런식으로 하셨을까요?"
"괜히 오해를 사 피곤할거 같아서 그랬습니다. 묻는 것만 답하자 그리 생각했죠."
"하하, 편리하군요. 좋습니다. 남일수와 백문은 어떤 사이입니까?"
"백회장요? 아니 여기서 백회장을 왜 거론합니까?"
"백회장은 당신의 옛날 오야봉 아닙니까?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오야봉...? 이보쇼 형사 양반? 남의 과거지사를 지금 거론하는 이유가 뭐요? 한번 깡패는 영원한 깡패다 그겁니까? 나는 승려입니다."
박태보가 강력하게 나왔다. 그는 경험자였다. 형사들은 이런 유형의 법죄 용의자들의 심문에 가장 애를 먹는다. 인권이 강조되고 옛날식의 수사 관행이 사라진 후 형법을 밥먹듯이 어기는 사람들의 숨통이 트인 측면도 있었다.
형사들은 공통적으로 전국의 수사 검거망이 느슨해졌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의 요구이자 정답이었다. 해답은 수사기관에 있었다. 보다 과학적이고 지능적인 수사기법의 개발과 적용 말이다.
"이 백지에다 지난 9월 28일의 행적을 한번 적어 보시죠? 자 이것이 그 달의 달력입니다."
노경위가 백지와 작은 달력 한권을 그에게 주며 말했다.
"허? 벌써 6개월이 지난 날의 기억을 어떻게 기억합니까? 그게 가능한가요?"
"나도 정확치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생각 나는 대로 적어보세요. 그날 만난 사람이라던지 장안동엘 갔다던지?"
"장안동엘 왜 갑니까? "
"백회장 만나러 장안동에 안가셨습니까?"
"지금 백회장을 의심하는 거요? 이봐요? 노형사님?"
박태보가 노경위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는 조금도 조사에 위축됨이 없었다.
"나는 누구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저 수사상 묻고 캐는 거죠. 역시 박선생은 의리파군요. 백회장을 필요 이상으로 감싸는 걸 보니."
박태보의 손이 웬지 불안해 보였다. 아니 불안이라기보다는 부자유한 것이 맞았다. 오랜 시간 들고 있던 염주나 목탁이 없는 탓이리라.
"감싸는 게 아니라 우리 형님, 아니 백회장은 왕년의 주먹일뿐 입니다. 그래 그날의 행적을 적으면 되는 겁니까?"
"네, 잘 한번 생각해 보세요."
노경위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사실을 나왔다. 밖에서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 마신 후 안으로 들어 가자 박태보가 백지를 내 밀었다. 백지가 빼곡했다.
"오, 기억력이 비상하시군요?"
"다시 불려오기 싫어 잘 생각한거요. 그리고 나는 어려서부터 기억력 하나는 탁월한 편이었죠."
"네... 그렇군요."
노경위는 박태보가 내민 백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내용이 가관이었다.
가. 그날 오전 신도 5명이 와 법어를 하고
나. 오후 2시경 행당동 정다방에서 신도 임천식과 차 한잔 마시고
다. 임천식과 정다방 옆 팔팔 보신탕 집에서 전골과 곡차 한잔 마신 후
라. 왕십리 비익조에서 술 한잔 마신 다음
마. 택시를 타고 절로 돌아옴.
노경위는 박태보의 행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박태보는 남일수 사건의 직접 용의자는 아닌 듯했다. 그러나 그는 남일수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16. 이사당 (二祀堂).
박태보에게 참조인 진술서와 기타 보강 진술을 받은 노경위는 백문을 찾았다. 그는 영동 호텔 1층 커피숍 옆에 있는 작은 미니바에서 노경위를 기다렸다. 바안에는 손님이 한명도 없었다. 백문이 아예 가게를 통으로 한 나절 세를 얻은듯 했다.
"백문이요."
백문은 잿빛 양복에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바안에는 그의 수행원인 건장한 사내 둘이 한쪽에 앉아
백문의 뒷 수발에 대비하고 있었다.
" 노경위입니다. 처음 뵙는 군요."
노경위가 백문이 권한 자리에 앉으며 물컵을 들어 생수를 한모금 마셧다.
" 날이 점점 추워집니다. "
백문이 상의를 벗어 놓자 사내 하나가 다가와 그것을 받아 갔다. 아직도 백문은 건달이었다.
" 해를 넘긴지 오래니 이제 봄이 오겠지요."
" 하하, 그렇구료. 그래 어쩐 일이오?"
백문이 주스를 바의 주인에게 시키고는 용건을 물었다. 경찰이 자신을 찾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이미 박태보에게서 모든 사항을 보고 받고 있을 터였다.
" 직접적으로 묻죠? 남일수의 죽음에 대해 몇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나에게 말이요?"
" 남일수를 모른다고는 하지 않으시겠죠?"
" 압니다. 그 친구의 죽음은 유감이요."
백문이 주스로 목을 축인 후 노경위를 정면으로 쏘아 보았다. 고희를 맞은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단단하고 묵직했다.
"남일수가 죽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는 왜 홍익동 골목에서 칼을 맞고 살해 되었을까요?"
노경위가 백문에게 물었다. 주객이 전도된 물음이었다.
" 누가 누구한테 묻는 거요? 이봐요? 형사 양반, 지금 유도 질문을 하는 게요?"
"피차 시간을 절약 하자는 겁니다. 먼저 남일수와의 관계를 말씀 해 주시죠?"
"거부하면 어쩌겠소?"
" 임의동행을 요구 할 겁니다. 동행을 거부 하면 정식 출두 요구서를 보내야죠."
노경위가 형사 수첩을 탁자 위에 올려 놓고 말했다. 백문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60을 넘긴 나이에 형사의 방문을 받은 것도 난처한 일인데 소환장 운운하는 소리를 듣자 밥맛이 떨어지는 표정이었다.
" 남일수는 윤화백과 먼저 안 사이요. 윤화백도 조사 했으니 알거 아니오. 솔직하게 나는 그 친구 마음에 들지 않았소. 바둑 포카 화투 등에 빠져 세월을 보내는 것이나 여타 행동 거지가 ..."
" 결국은 남일수를 후원한거 아닙니까?"
" 도박판에 선수로 넣어준 것이 후원이라면 ... "
백문은 남일수를 선수로 하여 여러 유기장에 투입하고 수입을 반분 하는등의 일을 도와준 일이있었다. 이미 박태보에게서 얻은 정보였다. 그는 그것을 슬쩍 말하는 것이다.
" 그것도 있지만 남일수는 윤화백의 도움으로 암자도 짓고 함께 전라도 지방을 여행도 다니기도 했습니다. 알고 계셨지요?"
" 그렇소. 그곳이 아기... 아니 윤화백의 고향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댁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요."
"그런 관계라니요?"
"지금 남일수와 윤화백이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 그말 아니요?"
백문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이 돌보고 지켜온 여자가 남의 입에 오르 내린다는 것이 좋을턱이 없을 터였다.
" 그런 관계가 아니였나요? 그래서 회장께서 용서를 못한 거고요?"
"이런 ?"
" 회장님, 이 칼 기억 하십니까? "
" 뭔 칼 말이요?"
노경위가 현장에서 수습한 칼의 사진을 수첩속에서 꺼내 보여 주었다.
" 정보에 의하면 회장님께서 칼 수집이 취미라던데 이 칼 혹시 회장님 것 아닌가 해서요?"
노경위는 사진을 그에게 주고는 유심히 눈치를 살폈다. 백문의 양 미간이 꿈틀거렸다.
" 이게 어떻다는 거요?"
" 이 칼로 남일수가 살해 되었습니다. 등뒤에 칼이 꽂혀 있었지요."
" 오, 그것참..."
백문이 입맛을 다셨다. 칼에 대해서 분명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실 말씀 있습니까?"
" 에혀 ! 첫 인상이 좋지 않더라니... 여기 냉수좀 갖고 와라."
백문이 바의 여주인에게 소리를 쳤다. 여주인이 황급히 생수 한병을 가져왔다.
" 분명 이 칼로 남일수가 죽었소?"
" 그렇습니다. "
" 이 칼 내가 남일수에게 준거요. 나의 집에 이런 종류의 칼이 여러 개 있는데 손잡이의 미륵이란 글자는 윤화백이 나의 상징으로 새겨 놓은 것이고... "
" 남일수에게 이 칼을 주었다고요?"
" 그렇소. 한번 집에 온날 이 칼을 보고 하도 욕심을 내길레 선물로 한 자루 주었지요.'
"... ...?"
노경위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랬다. 길고 긴 추적의 종착지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백문의 답변이 전혀 뜻밖의 것이었지만 문제의 칼이 백문 그의 소유였다는 확인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16. 이사당 (二祀堂)
백문(백학)의 취미중 하나가 칼 모으기였다. 그의 집안 거실 한쪽에 놓여 있는 진열장에는 여러 종류의 단검이 수십 자루 진열되어 있었다. 칼은 아주 오래된 것부터 최근의 미국의 레인저 부대에서 사용 하는 것까지 있었다.
그것들 중에는 남일수의 등에 맞은 칼과 비슷한 것도 하나 더 있었다. 칼 자루에는 미륵이란 글자가 양각되어 있었다. 윤명의 작품이라 했다.
노경위는 백문의 집에 가 그것들을 확인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칼을 남일수에게 자신이 선물했다는 백문의 진술이 유일한 소득이었다. 과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소걸음 수사군."
"그렇게 밖에는 안되는군요."
"하하. 왜 아니겠나. 그런데 백문을 잡아오지 그랬어?"
"아직..."
"이 정도면 긴급체포해 와도 되는 사안 아닌가?"
과장이 노경위를 바라 보며 작은 미니 냉장고 안에서 음료수를 한병 꺼내 주었다.
"백문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남일수에게 주었다는 칼 말인가? 일단 변명으로 보고 밀어부쳐 보지? 자네 그 말을 믿는 건 아니지?"
"본인의 진술입니다. 일단은 믿어줘야죠. 그리고 그 진술을 깨 보겠습니다. 체포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겁니다."
"도주하면?"
"출국 금지만 내려 놓겠습니다. 백문 이 자, 수갑을 면전에서 받을망정 도피를 할 인사는 아닌 듯합니다."
"좋아, 하하,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보았어. 지금 노경위 자네가 하는 수사가 우리의 미래일쎄. 얼마전까지 우리 내부에 횡행하던 우격다짐들은 사라져야지. 능률과 실적을 앞세운 수사를 하다보니 억울한 사람들 많았지. 나가봐. 참, 그러나 한시라도 빨리 월척을 보여주게."
노경위는 과장실을 나와 다래가 있는 바둑 교실로 향했다. 아이만 보내 놓고 한번도 찾아가 상담을 한 적이 없었다. 시간이 어정쩡 하니 바둑교실을 찾는 자신이 멋적었다.
"과장은 아예 백문을 지목하는군. 그럴까...?"
노경위는 차를 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문이 범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의 진술이 문제였다. 선물을 한 칼이었다는 진술은 법정에서도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많았다. 이런 때 과거의 수사나 법정 태도는 검 경찰의 기소를 무조건 믿어주는 자세였다.
그러나 인권과 민주가 강조되는 21세기는 어림도 없는 상황이었다. 애써 잡아 놓은 진범도 증거 불충분으로 놓아 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우선 두 개의 방향에서 해 보는거야"
노경위는 사건의 진로를 두 개의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머리를 저었다.
1. 백문의 진술을 믿고 칼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여 제3의 용의자를 도출시킨다.
2. 수사의 촉각이 점점 다가오자 알리바이를 빙자하여 내놓은 진술로 보고 그 진술을 깨는 데 주안점을 둔다.
"호, 두번째라면 금방이겠지만 첫번째라면 이건...부지하세월이겠군."
노경위는 어금니를 깨물며 바둑교실이 있는 아파트 단지 내에 차를 주차하고 바둑교실로 들어갔다.
다래가 퇴원 준비를 하다 노경위를 보고 활짝 웃었다.
"다래 아빠 오셨군요?"
"수고 많으십니다."
노경위는 자신을 다래의 아빠로 알고 있는 원장과 악수를 했다. 원생들이 10여 명 정도였다.
"금방 아마 강자인 제 친구가 오는데 다래와 한판 대국을 시켜 보려고요. 전국 대회에서도 두번이나 우승한 친구입니다."
"아, 그래요. 다래가 큰 공부가 되겠군요. 식사는...?"
"저는 아이들을 다 귀가시켜야 되니 다래와 함께 하고 오시죠. 조금 있으면 친구가 올 겁니다."
원장이 아이들을 봉고차에 태우고 아파트 단지를 나갔다. 멀리 아파트 밖에서도 아이들이 오는 모양이었다.
"다래야 중국집 갈까?"
"으브."
다래가 신바람이 난다는 듯 학원 밑에 있는 중국집으로 먼저 들어갔다. 어린 날의 소영이를 다시 만난 듯했다.
아쉽고 슬픈 날이었지만 소영이와 함께 하던 날들은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웠었다. 소영이는 노경위 자신의 전부였고 전무였다.
"찬찬히 먹어."
노경위는 간짜장을 먹는 다래의 입가를 네프킨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본인은 생각이 없었다. 뱃속이 웬지 더부룩 했다.
노경위는 간짜장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다래를 데리고 학원으로 왔다. 학원에 원장 또래의 한 사내가 와 앉아 있었다. 덩치가 엄청난 사내였다. 원장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저 아이가 다래란 아이입니까? 저는 장두석입니다."
"네 저는 노준호라고 합니다. 이 아이 아빠죠."
노경위는 사내와 인사를 나누고 다래를 인사시켰다. 다래가 순간 화사한 표정을 지었다. 딸로 소개를 한 노경위가 더욱 좋은 모양인가.
"다래야 이리 온. 우리 한판 둬보자."
장두석은 시원시원했다. 상의를 벗어 버리고 바둑판 앞에 앉아 다래를 부르는 모양이 코끼리를 연상시켜 웃음이 나왔다. 다래가 그의 앞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선으로 하자."
"으브?"
장두석이 흰통을 끌어가자 다래가 거부를 했다. 선은 마땅치 않다는 것인가. 대국을 하려면 호선으로 하자는 뜻인가.
"호?"
장두석이 맹랑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래는 코끼리 코에 붙은 비스켓이었다. 그러나 다래의 기백은 엄청난 것이었다. 자신에게서 허락도 없이 흰통을 가져간다는 것은 용납을 못한다는 결의가 다래의 얼굴에 가득했다.
16. 이사당 (二祀堂)
돌을 가려 다래의 흑번으로 한판 대국이 시작되었다. 다래는 반상을 내려다보며 1분 이상을 지체 하다가 첫수를 우상 화점에 놓았다.
"으음...!"
장두석이 낮은 신음을 토하더니 대각선 화점에 돌이 깨져라 착점을 했다. 첫수에 시간을 쓴 다래가 못마땅한 듯했다. 그는 속기파인 모양이었다. 이어 다래의 두 번째 장고가 시작된다.
그때 원장이 들어와 판을 살피며 장두석에게 말했다. 누가 보아도 다래의 반면 운영이 돋보이는 한판이었다.
"얘가 실리를 너무 밝히네. 임사범 기풍은 이렇지 않은데..."
장두석이 자신의 백 세력을 의식해 좌변 화점에서 한칸 더 간 곳을 점거한다. 이제 천원 정도만 점거하면 엄청난 백집이 생길 참이었다. 그러나 다래의 다음 수가 장두석의 의도를 정면으로 비웃는 다. 장두석의 마지막 점에 모자를 씌운 것이다.
"흐흐, 겨울에 빵모자라 ..."
원장의 말을 들으며 노경위는 아 하고 작은 비명을 질렀다. 그자리는 노경위가 보아도 명당이었다.
실리에서 앞선 흑이 백세력을 견제하며 중앙에서 근거를 마련하려는 일석이조의 수였고 한편으로는 장두석의 힘을 시험하려는 수인 듯도 했다.
"끄응!"
장두석이 더이상 못참겠다는 듯 다래의 모자를 차단하고 나선다. 도피로를 막고 전면전을 벌이자는 수였다. 그러나 다래의 다음 수가 기민하다. 장두석의 변의 화점, 그러니까 모자의 모자를 불러온 처음 화점 밑에 붙여 놓고 위 아래를 살핀다. 위를 공격하면 변에서 살 것이고 변을 공격하면 그것을 이용해 중앙에서 삶을 도모하겠다는 고등 전술인 셈이다.
이래 저래 백이 죽을 맛이었다. 3개의 귀를 빼앗기고 한 귀는 무주공산인 상태에서 백의 유일한 세력이 유린당할 처지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백이 포석에서 밀린 것이다. 장두석은 낮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다.
"오늘 새 된다. 새..."
무엇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장두석은 변의 흑을 최대한 작게 살려주고 노골적으로 중앙을 잡으러 간다.
한칸 뜀으로 포위망을 벗어나려는 흑말을 장두석이 얼기설기 포위를 하자 다래는 귀로를 찾기보다 오히려 한 발 더 백진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등뼈에 조금씩 붙어 있던 백집을 지워 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다래의 무리였다. 두집이 없이 백진을 유린하던 흑말이 거대한 백진 안에 철저하게 포위되어 있었다. 백진의 흑말은 겨우 선수 한집 정도인 상황으로 보였다. 자청해서 위험을 감수한 셈이었다.
살면 백집은 열집도 않되는 상황이었고 잡히면 그것으로 끝인 판이었다.
"아이고?"
노경위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고를 찾았다. 다래의 무리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래는 사활을 자청해 놓고 반면을 응시했다. 5분여를 장고를 했을까. 다래는 다음 수를 착수하지 못하고 양 볼안에 공기를 가득 불어넣고 뱉는 행동을 몇번 반복하더니 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위망의 한쪽에 돌을 붙여놓고 반쪽만 살아 나가자고 하던 다래의 말을 어림 없다고 차단하고 나오던 백말과의 격돌에서 한집이 생기며 다래의 선수가 유지되었다.
그것은 부엌으로 잘못 들어온 검은 쥐가 이리저리 도주를 하다 작은 쥐구멍으로 쏘옥 나가버린 꼴이었다.
"오!"
노경위는 갑자기 전등불이 더욱 밝아짐을 느꼈다. 감동스러웠다. 그러나 다래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다래는 그저 한판의 바둑을 둔 것뿐이라는 표정이었다. 상대에 대한 경외심은 없는 듯했다.
노경위는 다래의 손을 잡고 학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며 왠지 모를 불안이 자신의 가슴 속에 가득 함을 느꼈다.
다래는 아마 강자군의 실력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고수들은 지천인 것이 한국의 실정 아닌가.
다래 또래의 아이들만 해도 수십명은 될 것이다. 그러나 다래에게는 그들이 꿈도 꾸지 못할 역정의 삶이 있다.
방랑 기객 부친의 혈통을 이은 용기와 산중 법당을 지켜내는 인내와 침착함이 승부의 세계에서 분명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노경위는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