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오규(鄭五奎)
[생졸년] 1678년(숙종 4)~1744년(영조 20) / 향년 66세
[본 관] 광주(光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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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 이재(李縡) 撰비문
처사 노학재 정공 묘표(處士老學齋鄭公墓表)
아, 이곳은 나의 벗 정오규(鄭五奎) 자문(子文) 공의 묘소이다. 공은 나보다 두 살이 많아 함께 한 세상에 태어났으나 노년이 되어서야 서로 알게 되었다. 공이 예전에 내가 을사년(乙巳年,1725, 영조 1)에 올린 봉사(封事)를 구하여 읽어보고 며칠 동안 깊이 생각하다가 탄식하기를,
“지금은 시비가 혼란스럽고 충신과 역신이 뒤섞여 있는데, 이 한마디 말이 거의 후대에게 믿을 만한 증거가 되리라.”
하였으니, 사우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내가 또 듣기로, 공은 평소에 독서를 즐겼는데, 중년에 산사(山寺)에 머물기를 좋아하여 날이 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고행을 하던 노승이 자신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으니, 매우 존경할 만하다. 만난 적은 없지만 마음으로 묵묵히 허여한 것이 이미 이와 같았으니, 만났을 때의 기쁨을 알 만하다.
공은 젊어서 수암(遂菴) 권 선생(權先生, 권상하(權尙夏))에게 배웠는데, 선생이 큰 인물로 여겨 중시하였다. 모친의 유명(遺命)으로 차마 과거공부를 그만두지는 않았으나 합격과 불합격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여러 차례 내가 있는 한천(寒泉)을 방문하였고, 나 역시 배를 타고 황산(黃山)으로 가서 공이 사는 고암(鼓巖)으로 찾아갔는데, 매번 밤늦게까지 이야기하면서 피곤한 줄도 몰랐다.
가만히 살펴보니 공은 사람됨이 돈후하고 장중하며, 마음속에 쌓인 것이 밝았다. 경전과 여러 책을 모두 익숙히 읽었는데, 주자(朱子)의 글을 더욱 좋아하여 이것을 구경법(究竟法)으로 삼았다. 문로(門路)가 이미 올바르고 실천이 매우 독실하였으니, 내가 세상을 산 지가 오래이지만 공처럼 학문의 도가 진실된 사람은 드물었다.
공이 한 번은 나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죽을 날이 머지 않아 학문에 급급하지 않을 수 없지만,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처지는 어찌할 수가 없으니, 의심이 나면 물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편지를 통하는 길이네.”
하였다.
그 후로 한두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역시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다. 내가 공의 병환이 심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으나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부고가 이르러 드디어 곡위(哭位)를 마련하여 곡을 하였다. 아, 우리가 했던 노년의 기약이 여기에 그친단 말인가.
공은 광주(光州) 사람으로, 고조 휘 보문(保門)은 현감을 역임하였고, 증조 휘 유(維)는 군수를 역임하였으며, 혼조(昏朝 광해군) 때 절개를 지켰다. 조부 휘 시형(時亨)은 목사를 역임하였고, 부친 휘 부(敷)는 문장과 행실이 있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외조부 홍위(洪葳)는 감사를 역임하였는데, 호가 청계(淸溪)이다.
공의 부인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첨정 만준(萬埈)의 따님이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으니, 아들은 구(捄)와 륜(掄)이고, 사위는 참판 이광덕(李匡德), 사인(士人) 이상중(李商重), 임취중(任取中)이다.
공은 대대로 임천(林川)에 살았는데, 갑자년(1744, 영조20) 8월 29일 독송정(獨松亭)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67세였다. 모월 모일 같은 고을의 반조원(頒詔院) 모좌(某坐)의 언덕에 장사 지냈다. 내가 그의 묘표에 ‘노학재(老學齋)’라고 썼으니, 공이 학문을 일삼으며 스스로 늙는 줄도 모르고 죽은 뒤에 그만두려고 마음먹었으니, 비록 공이 겸손한 덕을 지녔지만 역시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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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처사 …… 묘표 :
이 글은 정오규(鄭五奎, 1678~1744)의 묘표이다. 정오규의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자문(子文), 호는 노학재(老學齋)이다.
[주02] 구경법(究竟法) :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뜻하는 불가(佛家)의 용어로, 최고 경지의 원리를 뜻한다.《주자어류(朱子語類)》권8에 “세간의 온갖 일은
잠깐 사이에 변화하여 없어지는 것인 만큼 모두 가슴속에 담아 둘 가치가 없다고 할 것이다. 오직 궁리하고 수신하는 것이야말로 구경
법이라고 하겠다.[世間萬事, 須臾變滅, 皆不足置胸中. 惟有窮理修身, 爲究竟法耳.]”라고 하였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최예심 장유승 권진옥 이승용 (공역)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