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은 화중왕(花中王)
모란은 그 꽃이 크고 화려하며 보기에 호화스러운 분위기 등으로 해서 백화왕(百花王)·화왕(花王) 또는 만화왕(萬花王)으로 불린다. 백화왕이란 말할 것도 없이 군방(群芳)에서 뛰어난 꽃의 왕자라고 하는 의미이다. 만당(晩唐)에 취음선생(醉吟先生)이라 호를 하고 시문에 뛰어나 송시(宋詩)의 풍기(風氣)를 싹트게 했다는 피일휴(皮日休)의 시에 중국 '꽃의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란을 읊은 시〉가 있다.
봄의 잔홍(殘紅)이 지고 난 다음에 꽃을 피우니 殘紅落盡如吐芳
아름다운 그 이름은 백화왕이라 佳名喚爲百花王
천하무쌍의 아름다움을 서로 다투어서 競誇天下無雙艶
이 세상에 으뜸가는 향기를 홀로 차지하였네 獨占人間第一香
이 시는 비교적 평범한 표현으로 백화 가운데 모란의 지위를 단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일찍이 저 유명한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한겨울에 어원(御苑)의 꽃들을 향하여 "내일 아침에 모든 꽃들은 일제히 꽃을 피워서 짐을 맞이하도록 하라"고 명령한 바 백화가 모두 그 명령에 따랐는데 오직 모란만이 그녀의 무도한 명령에 굴하지 않아 낙양으로 추방되었다고 하는 전설도 화왕으로서의 긍지를 나타내고 있다.
또 모란은 화왕이 아닌 화후(花后)로 표현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송대(宋代) 구양수의 《낙양모란기(洛陽牡丹記)》에는 어느 때 나무꾼이 산중에서 발견하여 위(魏) 인부(仁溥)의 집에 매각한 모란의 자손 위화(魏花)라는 품종이 화후라고 한다. 또 송나라 구준(丘濬)의 《모란영욕지(牡丹榮辱志)》에 따르면 요황이라는 품종이 화왕이고 암자색의 위홍(魏紅)이라는 품종이 화비(花妃)라고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모란은 화왕과 화후의 지위를 가지고 거기에다 같은 모란과의 작약은 화상(花相)의 지위를 얻고 있어 가히 꽃의 영예스러운 자리는 독차지한 셈이다.
신라 설총(薛聰)의 〈화왕계(花王戒)〉에서는 모란을 꽃들의 왕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이이순(李頤淳)의 〈화왕전(花王傳)〉에서는 송대(宋代)의 〈낙양모란기(洛陽牡丹記)〉에서처럼 모란의 일종인 요황(姚黃)을 왕으로 추대하고 또 다른 종류의 위자(魏紫)를 왕후로 삼고 있다. 임제(林悌)의 〈화사(花史)〉에서는 매화·부용과 더불어 군왕으로 등장한다.
꽃노래 민요 가운데 여러 가지 꽃을 평한 가사에서 모란꽃은 다음과 같이 읊어지고 있다.
모란은 화중왕이오
섬돌 위에 모란꽃은 꽃중에도 임금일세
붉고 붉은 모란화는 삼천궁녀 거느리고······
안동지방에 내려오는 연대·작자 미상의 가사 〈화조가(花鳥歌)〉에는 "금년(今年) 춘화(春花) 다 모여서 목단화에 조회(朝會)한다"라고 읊은 것이 있다. 모란은 꽃의 왕이므로 모든 꽃이 왕에게 모여 조회를 한다고 한 것이다. 또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서는 모란의 형상을 왕의 성덕에 비유하고 있는 글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어서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
출처:(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2004. 3. 10., 이상희)
2026-05-21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