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더운 여름 동안 권당 1,000쪽을 넘기는 <하버드-베커 세계사> 5권을 읽느라 세월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하는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문제는 예민하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그람시가 이야기한 기억에 대한 이해의 틀을 주도하기 위한 문화적, 정신적 헤게모니 싸움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역사를 보는 관점을 평가할 때 자연과학적인 패러다임으로서의 이론을 구성하는 것과는 또 다른 측면이 존재한다고 보는데 그것은 실제적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적 서술이 가능한가의 질문과 맞닿게 됩니다. 결국 흔히 하는 말로 극단화하면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자기의 입맛대로 재구성하고 그 재구성된 역사는 사회구성원들의 미래관을 좌우하게 된다는 식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일 수 있으며 개인적 차원의 지점과 집단적 차원의 기억이 편견없이 맞물리면서 공정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전인적인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에서 보듯 국가적, 국수적, 집단적 차원에서 인지부조화의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도 공적인 기억과 합의된 기억을 잠식하는 시도들을 통해 그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어떤 욕망들을 감지하게 됩니다. 최소한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기초로 삼고 있는 제3자적 자기 성찰과 객관화의 성실함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서울의 봄>, <행복의 나라로>와 같은 영화는 허구성과 사실성을 뒤섞고 있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기억(서사적 일관성)의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역사는 떄로 자기모순적이고 자기배반적인 선택들이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 왔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 또는 행동을 스스로에게 설명해야 하고 납득시키여 하기에 끊임없이 기억을 재구성합니다.
서가에서 딸아이 대학 신입생 때 보던 사회학 관련 교재를 일람했습니다. 사실 현대인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공간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지식적인 측면에서도 제한적인 범위 안에 위치하기가 쉽습니다. 그럴 때 다른 영역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면 교과서나 개론서 등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식은 단편적인 것들이 많아서 이를 전체적인 하나의 그림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방식의 독서가 도움이 될 터이니까요.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전달되고 습득되는 아주 짧은 지식과 정보들을 전체적인 숲의 형상으로 위치짓기 위해서도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떤 종류의 책이든 읽어서 그 읽기에 투입된 노력보다 못한 보상을 주는 일이 결코 없다는 것은 진실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