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소개
◆참고도서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2021년 10월)
-저자 김지수 : 1971년 -
-이어령 : 1934-2022. 2. 26(향년 88세), 저서 : 흙속에 저 바람 속에, 문화체육부장관, 1988년 서울 올림픽 경기 개회식 굴렁쇠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제자 김지수가 매주 화요일 이어령 선생을 만나면서 나눈 대담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말 그대로 대화이며 적어도 수업은 아니다. 1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추측컨대 아마도 16회를 만난 게 아닌가 한다. 죽음을 앞둔 선생과 매주 약속을 잡아 대면했다.
선생이 암에 걸려 투병 중이던 2년 전 가을, 나는 선생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때 선생은 말했다.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선생은 라스트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당신의 지혜를 선물로 남겨주려 했다. 나는 그의 곁에서 재앙이 아닌 생의 수용으로서 아름답고 불가피한 죽음에 대해 배우고 싶어 했다. 그렇게 매주 화요일,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이라는 커리큘럼의 독특한 과외가 시작되었다.
“선생님 이번 책의 제목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할까 합니다.” “그래, 하지만 내가 살아 있을 때는 내지마. 저세상으로 갈 즈음에 이 책을 내게나.”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말을 나눴어. 내년 3월이면 나는 이 세상에 없을 거야. 그때 책을 내라고. 살아있을 때는 내지마. 살아 있을 때 내면 내가 멋쩍잖아”
라스트 인터뷰에서 자네가 썼잖아. 내가 사라진 극장에 엔드 마크 대신 꽃 한 송이를 올려놓겠다던 얘기를. 나는 자네의 그런 맥락을 좋아 했다네” 그렇지만 선생이 2022년 2월 26일에 돌아가셨는데 이 책은 2021년 10월에 출판되었다. 저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선생은 이 유언이 당신이 죽은 후에 전달되길 바랐지만, 귀한 지혜를 하루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 자물쇠를 푼다.”라고 말했다.
◆독후감 내용
1. 다시, 라스트 인터뷰
-2019년 가을, “이번이 내 마지막 인터뷰가 될 거예요.”라는 말이 담긴 이어령의 마지막 인터뷰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네> 기사가 나갔다. 그날 이후 내 전화통은 불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라는 이어령 선생의 메시지에 반응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가 인터뷰의 핵심이다. 죽어가는 노교수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들려주는 마지막 수업..... 흥미로워요. 우리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거예요. 이어령이 하는 말이 생사의 최전선을 달려주어 고맙다.
-풀을 뜯어 먹는 소처럼 독서하라 : 의무감으로 책을 읽지 않았네. 재미 없는 데는 뛰어 넘고 눈에 띄고 재미있는 곳만 찾아 읽지. 목장에서 소가 풀을 뜯는 걸 봐도 여기저기 드문드문 뜯어. 풀 난 순서대로 가지런히 뜯어 먹지 않는다고. 재미없으면 던져버려.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닳도록 읽고 또 읽어. 그 기나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 나는 세 번을 읽었어. 의무적으로 읽지 않는다는 말이네.
-자네가 나의 마지막 시간과 공간에 들어 왔으니, 이어령과 김지수의 틈새에서 자네의 눈으로 보며 독창적으로 쓰게나.
2. 큰 질문을 경계하라
-꿀벌 장수는 어떤 답을 듣고 갔나요? 내가 그 사람에게 물었지. 당신이 잘 아는 게 뭔가? 꿀벌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꿀벌을 잘 봐, 꿀벌처럼 하면 좋은 문학이 돼. 문인에게 문학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사람은 문학을 못 하네. 철학자에게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아인슈타인에게 과학이란 무엇입니까? 라는 추상적인 큰 질문을 하면 대답 할 수 없어.
-유언이라는 거짓말
.얘들아, 내가 밭에 금은보화를 묻어뒀다. 열심히 파면 나온단다.
.내 서재의 책갈피 군데군데 백 달러를 숨겨뒀다. 돈 필요할 때마다 책 펴서 찾아보렴.
.나에게 낙타가 몇 마리 있는데 너희들에게 물려주마. 첫째 제자, 너는 수제자이니 1/2을 가져라. 둘째는 열심히 했으니까 1/3을 가져라. 막내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으니 1/9을 가져라. 스승이 떠나고 보니 낙타가 17마리라 아무리 해도 유언대로 나눌 수가 없는 거라. 이때 지나가던 사람이 참견을 해. 여보시오 내가 낙타 한 마리를 줄 테니 거기 보태서 나눠보시오.
첫째는 1/2인 9마리, 둘째는 1/3인 6마리, 막내는 1/9인 2마리를 나눌 수 있었다네. 이렇게 17마리를 공평히 나눠가진 후 나머지 한 마리는 행인이 돌려받아 갔어. 어떤가?
4. 그래서 외로웠네
-소크라테스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간이 알 수 있는 최고의 지혜라고 받네. 자신이 무지하다는 걸아는 자가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 한 사람이었던 거야. 너 자신을 알라.
-내 강의에 영감을 받고 내 글을 사랑했지만, 스승의 날 나에게 꽃을 들고 찾아오고 싶다는 친밀감은 못 주었던 모양이야. 그건 뭐랄까.... 이화여대 강의실에서 강의하면 5-6백명 좌석이 꽉꽉 차도 스승의 날 카네이선은 다른 교수에게 주더 구만. 나한테는 안 가져와. 허허. 그래서 외로웠네.
7. 파 뿌리의 지옥, 파 뿌리의 천국
-도스토엡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파뿌리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살면서 선행을 베푼 적 없는 인색한 노파가 지옥에 갔어. 지옥 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수호천사가 그 노파를 가엾게 보고 하나님께 간청을 하지. “생전에 저 노파가 거지에게 파 한 뿌리를 준것이 있으니 선처해 달라”고.
하나님은 그 노파가 파 한 뿌리를 붙잡고 천국을 오는 것을 허락해. 평생 인색했지만 그래도 파 한 뿌리의 작은 선행이라도 했으니 그것으로 기억한다고. 노파가 파 뿌리를 붙잡고 지옥 불을 빠져 나오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살려 달라”고 그 파 뿌리에 우루루 달라붙는 거야. 노파가 달라붙는 손길을 밀쳐내며 소리쳤지. “이거 내 파뿌리야!” 그 순간 후드득 파뿌리는 끊어지고 모두 지옥 불에 떨어졌다네. 스스로 파뿌리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인간의 이기심에 뼈가 저렸다. 어쨌든 파뿌리 하나의 선행이라도 신에게 구제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네요.
-생각을 다루는 인지론, 실천을 다루는 행위론, 표현을 다루는 판단론, 인간으로 풍부하게 누리고 살아가려면 위 3가지 영역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네. 칸트는 위 3가지 영역을 질서 있게 정리했지. 진실은 순수이성비판에서 다루고, 선약의 윤리문제는 실천이성비판에서 다루고, 아름다움에 관한 것은 판단이성비판에서 다뤘지. 이게 모여서 서양의 3가지 기준인 진 선 미가 된 거라네.
11. 스승의 눈물 한 방울
-이제껏 쓴 내 글이 묘비명이고 무덤이고 기념관이니 묘비명도 쓸 거 없다. 글 쓴 게 하루하루 죽음을 쓴 거잖아. 아무리 잡문이라도 나는 늘 마지막을 썼어. 죽음이라는 건 없어지라고 있는 거야.
12. 눈부신 하루
-나의 라이프는 기프트 였어. 내가 벌어서 내 돈을 산 것이 아니었어.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욥은 신을 보았네. 그제야 자신이 죄 없다고 선언한 교만을 깨닫고 구제를 받는 거라네.
-궁극적으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 그게 자족이지. 자족에 이르는 길이 자기다움이야. 자기라는 게 뭔가요? 자기는 남에게 배울 것도 없고 남을 가르칠 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나라고 할 수 있지.
-고난 앞에서 네거티브로 가면 인간은 짐승보다 더 나빠져. 포지티브로 가면 초인이 되는 거야. 인간이 저렇게 위대해질 수도 있구나. 고난이 내 그릇의 넓이와 깊이를 재는 거울일까요? 고난은 나, 너, 우리, 인류 모두의 거울이지. 인간은 고난을 통해서만 자기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고난에 처했을 때 인간은 비참해지거나 숭고해지거나 두 부류로 갈린다면 그것을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신을 초월한 영성은 궁극적으로 몸의 바깥에서 온다네. 그것은 영(spirit)의 일이라네. 보통 때 사람은 육체(body)와 지성(mind)으로 살아가는데 극한에 처했을 때나 죽음에 임박했을 때 영적(spirit)인 면이 되살아나는 거야.
13. 지혜를 가진 죽는 자
-나는 매주 화요일 선생이 가장 귀한 것을 줄 거라 믿었고, 선생은 내가 가장 촉촉한 이어령을 써낼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스승이 진정 원했던 인터뷰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선생 앞에 앉아 있으면 나는 늘 눈이 부셨다.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었으나 그가 환자나 노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나님도 외로워서 분신이 필요했던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만든 인간이 말썽을 좀 피웠나? 다른 피조물은 다 그대로 사는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께 대들어. 신을 본 따서 만든 분신이기 때문이겠지요. 그게 바로 지혜를 가진 죽는 자라네. 지혜를 가진 죽는 자라......
지혜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슬픈가 말이야. 다른 생명체는 죽어도 자기 죽음이 갖는 의미를 몰라. 신은 안 죽지. 그런데 인간은 죽는 것의 의미를 아는 동물이야. 신과 동물이 함께 있으니 비극이지.
지혜가 있으면 죽지 말아야지. 그냥 살면 무슨 슬픔이 있고 눈물이 있겠어? 신과 생물의 중간자 인간이기에, 인간은 슬픈 존재고 교만한 존재지. 양극을 갖고 있기에 모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
16. 작별인사
-선생님, 이번 책의 제목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할까 합니다.
그래, 하지만 내가 살아 있을 때는 내지 마. 저세상으로 갈 즈음에 이 책을 내게나.
-선생님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生)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死)이라는 것을”
끝
첫댓글 고송, 노석 어른 고맙습니다.
이어령 박사님의 주옥같은 지혜의 말씀들을 오래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