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예장통합교단의 목회자들도 정부에서 인정한 대학출신이 거의 없고, 대부분 비인가학력신학교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예장통합 교단 목회자들의 2/3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거나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낮에는 일하면서 야간에 공부를 해야하기 때문에 무인가 신학원을 졸업했다. 특히 예장통합교단에서 서울 장신대 출신들이 가장 많다. 어려운 신학생들이 낮에 일하면서 밤에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다른 교단은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이 학력에 있어서 무자격목사이다. 개신교는 90%이상 대학을 나오지 못한 목사들로 구성되어있다. 대학을 나왔다고 하더라도 경쟁력있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지방에서는 중학교만 나온 성경학교출신들이 대거 예장통합교단에서 목회하고 있다. 비단 예장통합뿐만이 아니다. 총회장, 대부분 비인가 학력 신학교출신최근 예장통합 총회장들의 학력을 비교하면 거의 비인가학력 신학교 출신이다. 안영로, 이광선, 김삼환, 지용수, 김정서, 박위근, 손달익, 김동엽, 정영택 등은 거의 비인가학력 신학교 출신이다. 박위근, 정영택목사는 학위가 수여되지 않고 학력만 인정되는 각종학교출신 이다. 김정서목사와 김동엽목사만 대학을 나왔지만 당시의 장신대는 대학으로서의 경쟁력이 없었다. 학교의 수준이 예비고사가 서울커트라인에도 못미치거나 미달이 태반이었고, 기독교교육학과만 인가가 났고, 명지대는 심수봉과 박지성이 나온 야간대학에 불과했다. 신학교 교수들도 성경학교, 한남대학출신들이 많은데 한남대학은 알려지지도 않은 대학이었다. 서울의 경쟁력있는 대학을 나온 목사들이 거의 없다. 목사는 소위 배고프고 힘들기때문에 당시로서는 회피하는 직종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거의 신학교를 가지 않았다. 장신대도 30여년전만 하더라도 경쟁력이 없었고, 신학대학원은 문교부(교육부)의 인가를 받은 것도 얼마되지 않는다. 대부분 목회자들은 교단에서만 인정하는 교역학 석사이다. 즉 비인가학력신학대학원 석사이다. 이렇다 보니 최근 예장통합 총회장들의 경영능력은 지극히 저열한 것을 알 수있다. 리더십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명예보다는 망신만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총회장이 명예를 얻는 시대가 아니라 망신만 당하는 시대가 되어 총회장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가방끈이 긴 사람들은 총회장 출마를 해도 안되는 시대이다. 모든 끈이 합력하여 악을 감싸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 총회장이나 목회자들이 무인가 신학교나 비인가학력 대학원 출신들이 많다보니 경영능력이 거의 없음이 드러났다. 목사들이 일반 대학을 나왔더라도 비인가학력신학원(목연)을 나온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물론 목사에게 학력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학력이 있는 사람들은 황형택처럼 양심을 기만했고, 이상인은 안수과정을 조작했고, 방수성목사도 이력을 과장했다. 이들은 모두 배운 사람들이지만 양심의 끈이 짧았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목회자들은 가방끈이 짧거나 양심의 끈이 짧거나 법리의 끈이 짧은 셋 중의 하나가 대부분이다. 모든 끈이 합력하여 악을 이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가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이다. 오래 전만 하더라도 소명을 받으면 가마니 깔아놓고 교회를 개척하거나 물만 마시면서 어렵게 학교를 다닌 시절이었다. 김인중목사는 먹을 것이 업어 술찌끼를 먹고가 학교에서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거렸다고 했다. 일찍 은혜받은 사람들은 일반 대학교 무인가 신학교를 따지지않고 목회자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바로 지원한 것이다. 당시는 신학교가 오히려 자랑스럽고 성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이 중에는 실력이 출중한 사람들도 있었다. 무인가 신학교출신으로서 늦게서야 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대학을 다시 들어간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 부산장신대 이사이면서 오산고등학교 교목 김용관목사는 비인가학력 부산장신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다시 들어가 홍익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원성현목사는 40의 늦은 나이에 연세대를 들어가 연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연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전재홍목사는 비인가학력 영남신학교를 나오고 대구카톨릭대학교 법대에 들어가서 숭실대학원을 졸업하고 법학박사를 취득했다. 유영직목사도 비인가학력 신학교를 나오고 안동대학법대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고, 이길원목사는 비인가학력 서울장신을 나오고 방통대학, 숭실대를 졸업하고 강원대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영철목사도 비인가학력 서울장신을 나오고 장신대학원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강원대학교 역사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목회자들이 늦게서라도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학위만이 장땡은 아니다. 지용수목사같은 이는 학위는 없지만 현재도 영어로 설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영어로 설교집을 펴내기도 했다. 김삼환목사도 학위는 없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나온 사람들 이상으로 경영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아프리카에 의대까지 세운 사람이다. 김동엽목사 역시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와 힘겨운 일을 하면서 야간대학을 나웠다. 육사에 합격을 했어도 연좌제로 입학조차 못한 문원순목사같은 이도 낮에는 일하면서 밤에 야간대학을 나온 사람이다. 당시 육사는 연고대이상 들어갈 실력이 있어야 했다. 이정환목사같은 이는 서울장신을 나왔지만 꾸준히 공부하고 글쓰는 훈련을 하여 박사학위소지자 이상 글을 잘 쓰고, 언변도 총대들중에서 가장 논리정연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그의 증언이 없었더라면 김창영목사는 최삼경고소건으로부터 무죄를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판사까지 설득시킬 수 있는 논리적인 능력이 있었던 사람이다. 이들은 대학에 갈 기회만 주어지면 충분히 가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배고픔의 시대가 대학을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교단전체가 당시에는 은혜와 소명만 갖고서 신학교로 들어갔지만 시대가 고도의 자본주의화가 되고, 법치주의가 되다보니 프로페셔날한 경영력과 법정신, 학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신도들의 학력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목사들은 학력이 약하다 보니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식의 목회를 하기 어렵게되었다. 단지 은혜만 받고 신학교에 가다보니 이성과 지적인 판단의 훈련, 논리의 훈련, 경영마인드, 법치주의, 민주주의, 상식에 대한 훈련을 거의 받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상식의 문제이다. 상식의 부재 기독교기독교가 주변부로 계속 밀려나는 것은 상식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한국의 보수 기독교세력들은 부산에서 WCC 금지 대 집회를 했다. 공산주의를 수용하는 WCC는 물러가라는 것이다. 외국 사람들 대부분은 공산주의는 이미 1991년에 무너졌고 자신들은 공산주의를 수용한 적이 없는데 공산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성애라고 비난하는 것도 WCC는 한번도 동성애에 대해 채택하거나 결의한 적도 없는데 동성애라고 비난하는 것도 문제라는 시각이다. 종교다원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종교간의 대화를 하자는 것 갖고 종교다원주의로 매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WCC를 긍정하는 측도 WCC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홍보도 하지도 않았다. 자신들끼리 자화자찬하는 것이다. 상식과 지성의 부족이다. 기독교 대부분 목사들은 목회학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에 아카데막한 저서를 내거나 학술진흥재단에서 인정한 저널에 글을 낸 사람은 거의 없다. 학력은 있는데 연구업적이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 2주일 공부하고 받는 학위는 외국학위라고 볼 수 없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거나 한국에 머물러서 받아야 한다. 이처럼 학위콤플렉스가 있다보니 질적 학력이 아니라 양적 학위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대상에서는 양보다는 질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설교를 한다. 재판을 하노라면 법학개론을 3학점도 하지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정치적으로 권위적으로 세상법정의 판사를 흉내내면서 마녀사냥재판을 한다. 평양노회, 총회에서 가장 심했다. 재판국원들은 대부분이 대학을 나오지않거나 법학개론을 3학점도 하지도 않은 거룩한 무학력자 목사장로들이다. 정신보다는 교육과 기능이 필요한 시대 한때는 은혜와 양심으로 목회하였지만 이제는 은혜와 양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페셔날한 기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최근 노회장이나 총회장들을 보면 거의 대학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물론 6.25를 지나면서 대학공부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시대가 따라주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과 교육이라는 것은 폼잡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상식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수단이다. 이러한 대학에서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목회를 하다보니 논문을 표절하고 학력을 위조하고 마녀사냥재판을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마녀사냥재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무학력자들이다. 질의 부족이 양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안되면 안되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안되고 없는 것을 억지로 갖다가 부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용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마녀사냥재판을 할 수가 없다. 무능하고 무식하기 때문에 마녀사냥재판을 하는 것이다. 목사들은 표절을 한다고 해서 내용이 채워지지 않고 학위를 위조한다고 해서 실력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핀란드 같은 경우는 어려서 부터 표절을 막기위해서 에세이는 수기로 써야 한다. 표절과 복사, 위조, 학위만들기는 한국병이며 내용이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무리수이다. 미국에서는 반드시 대학을 정식으로 졸업한 사람들만이 신학대학원이나 법과대학원, 의과대학원을 들어갈 수 있다. 학위를 사거나 표절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지도자층에 있는 사람들은 상식적이어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목회자들은 3/4이상 무인가 신학교를 나왔고 정식 논리나 상식, 합리적인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지적으로 열등한 집단이 되어버려 대형교회가 되어도 비상식적인 일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이 사회에서 격리되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노무현정부가 실패한 것도 지적인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설픈 민주화독재투쟁으로는 정권을 유지시키는데 한계인 것이다. 기독교의 부패원인 기독교의 부패의 원인은 대부분 상식이하의 행동을 하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 이다. 민주화운동이나 독재투쟁에 앞장섰던 목사들이나 인물들은 대부분 지적으로 훈련된 사람들이다. 지적으로 훈련되지 않으면 상식이하의 행동을하게 되고 창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눈치나 보고, 권위에 의존하고, 형식과 정치에 익숙하게 된다. 부분사회를 전체사회로 착각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부분사회이지 전체사회나 일반사회가 아니다. 전체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이나 수준에 머물지 못하면 부분사회는 유대인들만 모여 살아서 격리되는 하나의 게토화가 되는 것이다. 토인비는 지구상에 27개 문명이 있었는데 문명이 거의 사라진 이유는 창조적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계를 점령했던 몽고나 마케도냐가 주변부로 밀려난 것은 창조적인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을 선진국으로 이끌수 있었던 것은 지적인 지도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으면 70%가 미국에 남고 한국사람들은 70%가 귀국한다. 이들이 한국의 근대화 및 현대화, 선진화의 역군이 된 것이다. 일본은 거의 유학을 가지 않고 자국에서 공부를 한다. 그러다 보니 점점 주변부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외국의 전자시장에 가면 대부분 한국제품으로 가득찼다. 지방신학교들 통폐합해야 이처럼 문명이나 국가, 특정단체는 지적으로 무능하면 망하는 법이다. 기독교가 점점 망해가는 것도 지적으로 무능한 집단이기 때문이고 창조적인 리더자가 없기 때문이다. 무능한 그룹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타이타닉호처럼 기독교가 가라앉는 것이다. 기독교가 살기위해서는 아놀드 토인비의 말대로 창조적인 지도자들이 육성되어야 한다. 이제 경쟁력이 떨어진 지방신학교들은 과감하게 통폐합을 해야한다. 교수들의 배를 위해서 신학교가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학위가 없는 목사들은 학위를 사려고 하지말고 학점은행이나 방통대학 등을 통하여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한다. 법학개론을 3학점도 하지 않은 목사장로들이 재판을 하는 것은 철부지 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기독교가 살기위해서는 상식적이어야 하고, 상식적인 인간이 되기위해서는 날카로운 지성의 도구가 필요하다. 지적으로 저급하거나 무능한 종교는 망하기 마련이다. 서구의 기독교몰락은 급작스런 세속화가 큰 원인이지만 한국의 기독교몰락의 원인은 목회자들의 지적 무능과 몰상식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위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학위적 내용을 추구해야 한다. 대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단련해서 창조적 지성을 만들어야 하고, 신학교 교수들은 사회에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형이상학적 신학으로 인한 기득권에 안착하지 말고 창조적 신학을 만들고, 교계를 이끌고 갈 창조적 지도자를 많이 양성해야 한다. 신학의 부재때문에 교계가 망하는 것이다. 결국 창조적 지적 리더가 없으면 신학교와 교회, 기독교는 공멸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을 회피하는 별세의 신학, 피안의 신학, 종말의 신학, 희망의 신학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