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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연 문화 동호회 원문보기 글쓴이: 인디고2형
1. 그대는 호흡이 고행을 동반해야 한다고 인식하는가? 2. 그대의 호흡은 머리가 인식하는가? 혹은 몸이 인식하는가? 3. 그대의 호흡을 마음 놓고 하고 있는가? 그대여, 이 세 가지 話頭의 답은 어떠하였는가? 가라마와 라마부드라, 두 스승에게서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두 스승은 물론 주위의 동료들은 그의 수행의 빠름에 놀랐다. 그러나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 왜 苦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스승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여러 스승을 찾아 헤매었으나 모두 실망만 줄 뿐 시원한 해답을 들려주는 사람이 없어 실망하고 말았다. 그래서 생각 끝에 스스로 혼자 해결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깨닫고 홀로 고행의 수도를 시작하였다. 고행이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릴 것 없이 육체와 마음을 끝없이 괴롭히는 것이었다. 경에 의하면 단식은 물론 세찬 비바람과 참기 어려운 더위와 혹독한 추위를 견디면서 몇 분씩 숨을 쉬지 않고 그 고통을 참아야 하고, 몹시 날카로운 가시덤불 위에 눕기도 하고 해충이나 독충의 피해는 몰론, 맹수의 급습 등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고행을 체험하여야 했다. 식사란 하루에 한 끼 정도 7일이나 20일의 단식, 길게는 30일 이상의 단식도 수없이 되풀이 했다. 몸에는 남루한 누더기와 짐승가죽 등으로 겨우 살을 가리고 수염과 머리는 자라 사람의 형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뿐 아니고 몸에 기름칠을 하여 장작불에 지지고 물속에 들어가 추위를 이기는 연습, 맹수가 우글거리는 숲 속은 몰론, 썩어빠진 시체와 해골이 뒹구는 공동묘지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이들이 얼굴에 침을 뱉고 돌이나 진흙덩이나 나무막대로 귓구멍을 후벼도 성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와 같은 오랜 수행과 단식으로 몸에는 한 점의 살도 볼 수 없고 오직 앙상한 뼈와 가죽뿐으로 어깨는 낙타등과 같고 척추는 활과 같이 휘어지고 늑골은 부러졌으나 , 오직 눈동자만은 별처럼 영롱하였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과연 어떠한 사람이 이 이상의 혹독하고 처참한 고행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기 어려운 고행은 숨을 오랫동안 정지시키는 斷息이었다. 斷食은 4-5주 또는 그 이상 견딜 수 있으나 숨을 쉬지 않고 4-5분 정도를 견딘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고통이었다. 숨을 쉬지 않는 명상에서 입과 코의 호흡을 완전히 정지하면 체내에 갇힌 숨이 귀가 찢어지는 것과 같은 요란한 소리와 아픔을 주었다. 이런 현상을 의학적으로 풀면, 코와 입을 막고 호흡을 중단할 때, 기도압으로 심하게 압축된 기체가 콧구멍과 귓구멍을 거쳐 內耳에 이르면 고막의 일부가 천공이 생기게 되고 내부 기체는 큰 압력으로 귀를 통하여 체외로 분출된다고 한다. 그것은 대장간의 풀무와 같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만일 경우에 따라 귀마저 막아버린다면 격렬한 바람은 정수리에 충격을 주어 예리한 비수로 찌르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낀다고 한다. 단식을 오래하면 때로는 체내의 바람이 깨진 사기파편으로 찌르는 것 같은 두통을 일으키고, 또 어떤 때는 날카로운 칼로 사정없이 도려내는 듯 배를 찌르고 불 속에 몸을 던진 듯 심한 고열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와 같이 무모하고 무참한 단식은 뇌압을 높여 뇌출혈의 원인이 된다. 석존이 6년간의 고행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을 때 그의 육신은 완전히 죽음직전이었다. 그와 같이 혹독하고 격렬한 고행 생활을 강행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생, 노, 병, 사 네 가지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바램이었다.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고도의 정신적 경지를 얻겠다는 것이 당시의 수행방법이었지만. 아무리 육체를 괴롭게 해본들 생, 노, 병, 사의 괴로움이 해소할 수가 있었겠는가? 이와 같은 고행은 완전히 도로아미타불에 그치고 말았다. 그와 같은 고행 방법이 그릇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은 6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뒤였다. 말하자면 눈에게 소리를 듣고 귀에게 빛을 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모한 행위였음은 두 말할 나위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 보면 심한 충격을 받거나 불같이 화를 냈을 때는 역시 숨은 정지되고 머리는 몽롱해져 사리 분별을 옳게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뇌압이 갑자기 높아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와 같은 형상에서 어떻게 좋은 발상이 떠오를 수 있겠는가? 이 고행의 끝에 석존께서는 기발한 착상이 떠올랐던 것이다. 섬광과 같은 예지가 머리를 스쳐갔다. 이번에는 내쉬는 숨, 들이마시는 숨을 마음껏 해 보았다. 이것이 곧 아나파나 사티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시는 숨을 마음껏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도 마음껏 내쉬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그의 마음은 한없이 부풀고 지금까지 느끼지 못하였던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을 처음으로 맛보았던 것이다. 그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던 암흑이 햇빛처럼 밝게 보였다. <아나파나 사티>아먈로 정각을 이룬 계기가 되었노라"고 하였다. 때는 그의 나이 35세, 그 후 4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아나파나 사티를 계속하였다. 그대들이여 관념의 옷을 벗어버려라. 자유를 찾으라. <먼저 마음 놓고 편안하고 시원하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라> 왜 이렇게 똑 같은 글을 계속 올리는 것일까? 여러분들은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글을 찬찬히 주의 깊게 읽어보면 사람에게 주어진 호흡의 실체라는 것은 우리 몸의 시스템대로 호흡해야한다는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호흡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다. 태아나 갓 태어난 신생아의 호흡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강의하고자 하는 호흡의 요결은 여러분들의 진정한 호흡을 찾아 주고자하는 것에 있다. 최초의 질문을 여러분들은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머리로, 혹은 몸으로 먼저 어린 시절, 원두막에 편안히 누워 하늘의 구름을 보자, 산산한 바람이 당신의 어린 피부를 간지를 것이다. 그 때, 청명한 공기가 당신의 콧속을 당신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들락거릴 것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그토록 평화롭게, 청명하게 당신의 무의지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 무의지의 호흡을 의지와 결합시키는 것이다. 호흡으로 무협지를 쓰는 일들을 제발 그만두어라. 어리석은 이들이여 부처보다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기꾼들아, 너희는 숨어있지 말고 나와서 내게 공중부양을 보여 다오. 장풍을 날리며 축지법을 보여 다오. 나도 너희의 쓸데없는 책들을 왜 보지 않았겠느냐. 나도 너희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죽음 같은 고행을 왜 해보지 않았겠느냐. 나도 신발을 들고 날개 짓을 왜 해보지 않았겠느냐. 내가 그것들이 사기라는 것을 아는데 걸린 엄청난 시간이라니, 아! 나는 얼마나 우둔한가. 내가 내 몸에 저지른 죄는 또 얼마나 깊은가? 여러분들은 내 글을 그냥 읽어라. 읽다보면 여러분들은 점점 나에게 중독될 것이다. 호흡은 서두를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호흡은 당신의 의지와 몸, 가치관, 모든 자격지심을 벗어 버리게 할 것이다. 눈을 뜨게 할 것이다. 변화하거나 점진적인 진화가 아니라 어느 날, 당신이 변환되어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코끝에 스치는 향기가 다른 것을, 우리의 입안에 들어 온 음식의 맛을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죽었던 감각들이 살아 돌아올 것이다. 애매하던 기의 실체를 알게 될 것이다. 호흡의 모든 의문은 풀릴 것이다. 나는 이 호흡이야기를 1년간 할 생각이다. 단순한 기능상의 방법을 실천하기 전에 당신은 변환할 용기가 있는지 나는 묻고 있다. 바른 호흡은 우리 몸과 마음을 변화시킨다기보다는 변환시키기 때문에 그것을 감내할 용기가 필요하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