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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는 소리
김 향 숙
우짜믄, 그래 야속할 수가·…… 사별한 지 삼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꿈에 나타나 단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그저 보일락 말락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만 보여주고는 소리 없이 사라져간 남편을 붙잡으려고 허위적대다 잠에서 깨어난 웅촌댁은 꿈속에서 뇌었던 말을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꿈속의 남편이 사라져 갔다는 것이 못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리에서 빠져나와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좁고 긴 시멘트 복도에는 어둠만이 짙고 검푸레한 구름처럼 괴어 있을 뿐 사람의 왕래는 없었다. 그러리라 짐작은 했으면서도 방문을 닫는 웅촌댁의 마음은 몹시 허전하였다. 웅촌댁은 한숨을 내쉬며 웅크린 자세로 요 위에 누웠다. 그동안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한 적이라곤 없었던 웅촌댁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기 몇 달 전의 남편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서늘해지곤 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꿈속에서의 자신은 와 암 말도 안 하고 그냥 가능교 하면서 몸부림을 쳤던지. 그리고 지금도 온몸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한 심사를 가눌 길이 없는지 웅촌댁은 그 점이 기이하게 여겨졌다. 죽기 전이면 사람부터 변한다는 옛말 그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작정이나 한 듯 어느 날 한순간부터 급격하게 달라져갔던 남편이었다. 그리고 그 달라진 이후의 남편 작태가 너무 끔찍했던 탓으로 남편은 지금껏 웅촌댁 가슴에 뽑힐 수 없는 못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었다. 사는 동안 몇 개의 못이 더 웅촌댁 가슴에 박혔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못도 가슴도 허들허들해져서 그만 어느샌가 그 아픔을 잊게 되었던 것과는 달리 남편이 박았던 그 못은 그다지 쉽게 허들해지지 않았었다. 다른 몇 개의 못이 남편이 박았던 못보다 결코 가늘고 짧아서 그리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 터였다. 사실 그 몇 개의 못들이 처음 가슴을 파고들었을 때의 아픔은 남편의 못이 가슴을 찔렀던 동안의 아픔이나 다를 바 없질 않았던가. 남편이 지서 앞 공터 거적때기* 아래 누웠던 날 밤, 까무러칠 듯 울어대었던 정자 옆에서 얼굴도 알 수 없던 장정 몇으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했던 순간의 못을 어찌 남편의 못보다 작다 할 수 있으리. 그리고 스무 해 전 대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재정권 물러가라 외쳤던 어느 날, 딸 정자가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던 돌멩이에 머리를 맞아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난 상태로 몇 달을 보내다가 마침내 그 미미한 숨을 그만 내쉬게 되었던 날 가슴에 박혔던 그 크고 검은 왕못은 어쩌면 남편의 못보다 크면 컸지 작지 않았을 터였다.
어디 그뿐이랴. 남편도 딸도 잃어버린 홀몸이 되어 잡초처럼 살면서 모은 돈을 가게 잔금으로 치르기 위해 은행에서 찾아 나와 몇 걸음도 내디디지 않아 날치기를 당했던 순간은 또 어떠했던가. 그리고 그 외에 기억도 나지 않는 자잘한 못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그 못들이 가슴에서 뽑힐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거였다. 그련데 놀랍게도 못 박혔던 자리만 남겨두고는 스러져갔었다. 얼마 전부터는 못 박혔던 자리를 얼쩡거렸어도 못이 박혀들던 순간의 그 절절했던 아픔, 통한은 되살아나주지를 않았다. 얼마나 고맙게 여겨졌던지 이즈음의 웅촌댁은 혼자 있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고맙습니더를 응얼대었다. 그리고 그 못들은 자신에게 생살이 찢기는 아픔보다 더 참혹했던 아픔만을 맛보게 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비로소 떠올릴 수 있질 않았던가. 그 못들이 가슴을 찔렀던 아픔을 겪었기에 다시는 아픔을 자초하게 될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조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읔 하게도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못들은 아픔을 거듭해서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무언의 이정표 구실을 했던 것 같았다. 확실히 그동안의 웅촌댁은 누군가에게 정을 붙이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돈을 모으려고도 하지 않으며 살아온 터였다. 그날 번 것은 그날로 다 써버리곤 했다. 저축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되살아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는 그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자 산다는 일이 한결 편안하게 여겨지면서 마음은 파도가 일지 않는 호수처럼 늘 고요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호수의 밑바닥에는 삭지 않은 남편의 못 하나만은 남겨져 있었던 터였다. 그 못을 본다 하여 새삼스레 울분이 치밀어 오르거나 몸이 떨리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의 나날들을 편하게는 여기면서도 오늘의 내가 남편 때문에 있게 되었다 하는 원망을 떨쳐버릴 수는 없던 거였다. 그랬는데 꿈속의 웅촌댁은 남편으로부터 무슨 말인가를 간절히 듣고 싶어 하질 않았던가. 꿈 속의 남편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어 했던 자신의 마음을 응촌댁은 지금도 뚜렷이 느끼고 있었다.
참 밸일도 다 있다카이. 웅촌댁은 그런 자신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다시 한 번 꿈속의 남편 얼굴을 눈앞에 떠올려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뚜렷하게 잡혀 들지를 않았다. 이상하게도 지금 눈앞에 떠오른 남편 모습은 젊은 날의 친정아버지를 닮은 듯도 했고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눈길이 스쳐 닿았던 극장 간판 위의 얼굴인 것도 같았고 또 어쩌면 해방되던 해 헤어져 다시는 못 만난 친정오라비와 엇비슷한 데가 있는 것도 같았다. 웅촌댁은 고개를 저었다. 죽을 날이 멀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늙었어. 참말로 늙었어. 꿈속에서 그리도 생생한 모습을 보았으면서 눈앞에 당장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없다니. 서러움과 안도의 감정이 웅촌댁의 가슴으로 자욱한 연기처럼 스며들었다. 언젠가는 죽는다 하는 생각을 떠올릴 적이면 영락없이 그 두 감정을 함께 맛보았던 웅촌댁은 그러나 다시금 컴컴한 휘장이 너울대는 것 같은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혹시나 남편의 선명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여.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뚜렷한 형상은 떠올라 주지를 않았다. 하지만 소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꿈속의 남편이 그 끔찍했던 완장을 차지 않았던 것이 불현 듯 상기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꿈속에서 정자 애비가 내 앞에 불쑥 나타났을 때 나는 맨 먼저 정자 애비 팔뚝을 쳐다보았던 거로. 그런데 완장을 안 차고 있었던 기라. 그거를 본 순간 얼매나 반가웠던지 나도 모르게 정자 애비 손을 덥석 잡고 말았는데 정자 애비는·…… 그래 인자 생각해보이까네 그 기색이 몹시 미안해하는 거 같앴는데 와 내한테 한 마디도 안하고 그냥 사라졌을꼬. 완장을 차지 않은 꿈속의 남편 얼굴이 너무 좋아 보였던가. 웅촌댁의 허전함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내가 좀 더 악착같이 매달렀더라믄 정자 애비를 안 놓칠 수도 있었을 낀데. 후회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회의 감정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깊어져 어느덧 삼십여 년 전 자신의 태도까지 반성하기에 이르렀다. 그 시절에 나는 너무 철이 없었던 기라. 소갈머리는 빈대 속 같았는데 겁은 또 와 그래 많았던지. 내가 정자 애비를 죽으라꼬 밉다 카면서 겁내지 않았더 라믄, 정자 애비도 원래는 나쁜 사람이 아이었던 거를 생각해가면서 그 심기를 바로잡을라꼬 죽을 동 살 동 애를 썼더라믄. 정자 애비가 그 지경으로꺼지는 안 갔을지 몰랐을 꺼로. 그런데 나는 그래 애쓰기는커녕. 웅촌댁의 입술 사이로 또 한 번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길 쪽에서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고 서! 넌 인제 독 안에 든 쥐라구 하는 소리에 이어 급하게 달음질치는 어지러운 발짝 소리가 이어졌다. 그 소리들은 귀에 익은 터였다. 거의 매일 밤마다 듣게 될 때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웅촌댁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는 호루라기 소리에 흠첫 마음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머리가 차갑게 맑아지면서 대체 내가 지금까지 무신 얼빠진 생각을 했던고 하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니는 어느새 잊어뿌렀단 말이가. 정자 애비가 사람 탈을 쓴 사람백정이나 마찬가지였던 거를. 시상에 니년도 참. 그 사람백정 이나 마찬가지였던 작자가 꿈속에 나타나 얄랑* 궂게 웃었다꼬 당장에 마음이 급변해가지고. 그 시절에 그 작자는 도저히 사람이라 할 수도 없었던 거로. 그라이 그때에 내는 그래 처신할 수밖에 없었던 기라. 안 그랬더라믄 정자 애비 거적때기 덮였던 그날 몰매 맞아 죽었을 꺼로. 그라모. 그때에 내 처신은 잘못이 없었다꼬. 웅촌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곧 눈앞에서 어른대었던 꿈속의 남편은 사라지고 죽기 몇
달 전의 남편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완장을 차고 다니면서 성분*조사니 뭐니로 마을 사람들을 지서 앞마당에 꿇어앉히고는 온갖 잔혹한 태형*을 가하곤 했던 남편이 천장에서 웅촌댁을 내려다보는 듯 하였다. 웅촌댁은 어깨를 떨면서 눈을 감았다. 머 할라꼬 꿈에는 나타나가지고 사람 마음 헷갈리게 하는공. 웅촌택은 혀를 찼다. 그런데 더욱 마음이 헷갈렸던 것은 죽기 몇 달 전의 남편 모습 옆에 꿈속의 남편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얼굴의 형태는 불분명하지만 뭔가 많은 뜻을 담은 것 같은 그 보일락 말락 한 웃음이 자꾸만 웅촌댁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웅촌댁은 원하지 않으면서도 또다시 삼십여 년 전의 남편 주위를 맴돌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보일락 말락한 웃음에 마음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웅촌댁은 주문을 외듯 웅얼웅얼대었다.
아이고, 그때는 정자 애비가 삽짝문을 열고 들어오는 거를 보기만해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꼬,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알기가 어렵다 카는 말을 그때겉이 뼈저리게 느꼈던 적이 달리 또 없었지러. 정자 애비가 시상에 시국이 어수선하이 어지럽던 그 시절에 난데없이 불쑥 완장을 차게 될 줄이야. 살 섞고 산 내도 어렴풋이라도 눈치를 못 챘으이, 배운 거 없어도 사람 똑똑하고 인정시럽고. 그라모. 완장 차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얼마나 잔정이 많았다꼬. 넘들 안 볼 때는 빨래도 밟아주고 군불*도 옇어*주고 장에 갔다 올 때믄 똑 빈손으로 안 오고 빗이란동 실패란동 군음식*거리도 잊지 않고 사 들고 오곤 했는데. 넘들은 나를 보고 입댈 기 없는 참한 색시라 했지만도 정자 애비 인정에 비하믄야 마음이 냉랭했지러. 그때는 그런 거를 잘 몰랐지러. 젊었을 때는 그저 지가 늘 옳은 줄 알기 마련이니까데. 더군다나 정자 애비는 잔정이 많은 대신에 성이 났다 하믄 물불을 못가리고 욕도 하고 손찌검을 해대는 바람에 나는 내가 훨씬 낫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꼬. 지금 생각해보믄 손찌검을 할 때에 정자 애비 마음에는 이래 죽을 날까지 흙만 파다가 하는 울분이 차올랐던 모양이었는데. 그런 말은 완장 차기 전에도 가끔씩 했던 기라. 누구 조상 잘 둔 사람은 그걸로 한평생 호의호식하고 떵떵거리면서 살고 우리 겉이 땅 파는 재주밖에 없는 조상 둔 종자들은 우째 달리 이 신세를 면해볼 길이 없다이. 이거는 너무 불공평한 기라. 안 그렇나. 그런 말을 들을 때믄 나는 왠지 참 기분이 안 좋았다꼬. 와 일이나 열심히 할 생각은 안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능교. 그거는 우리가 마땅찮아 한다꼬 될 일이 아니라요. 그래 말해주었는데 그라믄 정자 애비는 맞다, 니 말이 맞다 하고는 입을 다물었는데 머릿속으로는 그기 아이었던 모양이라. 그런 거를 보믄 남자라는 종자는 확실히 다른 기라. 허황하고·…… 그래 말할 수 없이 허황하지러. 사람이라는 기지 마음 하나 제대로 간수하기도 어려봐서 둘이 살믄서도 산다 몬 산다 허구한 날 싸우고 난린데, 우째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살이가 그래 생각대로 간단하이 새 세상이 될 끼라꼬. 새 세상만 되믄 곧 잘사는 거는 문제없다꼬 기고만장해서 날뛰던 꼴을 보자믄 참 자기 마음 돌아가는 꼴만 열심히 본다 캐도 그런 말은 몬할 낀데 꼭 귀신에 홀린디끼 날뛰던 꼴이라이 허황하다꼬 말할 수밖에 없지러. 허황하고 말고. 정자 애비가 아이들맨치로 얼매나 허황한가는 처음 완장을 팔뚝에 걸고 삽짝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내한테서 칭찬하는 무슨 말을 듣고 싶어 안달인 낯색을 숨기지 못했던 거를 보더라도 알 수 있었지러. 가슴속에서 무엇이 철렁하고 떨어져서 우째야 좋을지를 모르던 내 마음도 모르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는 완장을 자꾸만 만지던 모습을 쳐다보자니 몸이 떨리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꼬. 그런데 정자 애비가 끝내 완장 찬 모습이 어떤지 말해보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입을 열 수밖에 없었지러. 그…… 그거를 꼭 차고 댕기야 됩니꺼. 나는 정자 애비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몬하고 그래 말할 수밖에 없었다꼬. 그 말을 들은 정자 애비 얼굴이 한순간에 굳어지더니마는 니는 여편
네가 되어가지고 남편이 버젓하게 출세라는 것을 했는데 조금도 반갑지 않나. 그기 대체 무신 심보고. 나를 무섭게 몰아세우는데 우째 그리 무섭고 낯설게 여겨지던지. 그라면서 그 버젓하게 출세라는 것을 했는데라는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리서 얼매나 참기 어려볐던지. 몬사는 사람 제대로 살게 해주는 세상이 와야 한다꼬 말하기 좋아하던 사람이 출세라는 말은 와 입에 올리능교 말하고 싶었지만도 차마 그렇게는 몬하고 그 완장이 출세했다는 거를 나타내는 표징이라믄 완장 몬 차는 사람이 그거 볼 때마다 속 편치 몬하겠네요. 그래 말하고 말았지러. 그러자 정자 애비가 내를 잡아묵을 디끼 무서분 도끼눈을 해가지고 쳐다보는데, 아이고 한마디 더 했다가는 맞아 죽을 거 겉더라꼬. 그래서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는데, 출세라는 말을 입에 담았던 정자 애비가 우째 그리 천덕스러버 보이던지. 정이 싸악 달아나더라꼬. 그때는 내 마음을 내가 단속을 몬하던 때라 도저히 정자 애비한테 웃는 낯을 보일 수가 없었지러. 케케묵고 악질적인 지주* 정신을 개혁해야 한다면서 땅마지기나 지니고 큰기침해 가며 살던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들볶고, 그 집 곡간에서 곡식을 펴내오고 하는 짓거리들을 볼 때마다 내사 늘 살얼음판 위에서 장난치는 아아들을 볼 때처럼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거로. 마음이 닫히믄 말문이 통 열리지 않는 내 성미를 우째할 수가 없어 정자 애비하고 내하고는 차츰 말을 안 하게 되었지러. 울타리 너머 동네 사람들 보기가 낯 뜨거바서 마실도 몬 댕기고 집에서만 배앵뱅 도는 나를 정자 애비는 잘난 남정네를 알아볼 줄 모르는 못난 것, 간 작고 세상 물정 모르는 무지렁이라꼬 후지박았지만도 나는 정자 애비가 한정없이 싫더라꼬. 내가 알았던 정자 애비는 이런 사람이 아이었는데. 남보다 잘나고 싶어했던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도 와 남자라는 종자들은 잘난 거를 똑 사람들 앞에 앞장설 수 있는 그런 거로 생각는지 참 싫었다꼬. 내 생각이 틀렸는지는 몰라도 우쨌기나 남에 곡간을 함부로 여는 정자 애비가 도적으로만 여기지더라꼬. 그라다 보이 밤에 옆에만 다가오믄 소름꺼지 돋아났던 거로. 매 맞을 끼 겁나서 죽은 디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도 정자 애비도 목석은 아이었으니까 네. 내 심정을 빠안히 들이다보고는 미친 짐승겉이 날뛰었지 머꼬. 이것이 부부는 일심동체, 부창부수*라 했는데 남편을 우습게 알고 내 니한테 속으로는 복종 안 한다 하는 거를 자랑이나 하드끼. 이 찬물단지 매몰찬 것,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식 놓고 사는 니가 내한테 이래 할 수 있나. 시국이 우째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산골무지렁이 예핀네가 고집만 이래. 오냐 니가 이래 나오는데 내라꼬 일편단심 일 수 있나. 니는 니 서방이 얼매나 높아졌는지 모르는 모양인데 여자들이 줄을 섰다꼬. 알겠나 그라고는 방문을 탕 닫고 휑하이 나가더마는 얼마 안 있다가 집 안으로 여자 하나를 끌어들있던 기라. 그거를 보는 순간 마음이 돌덩이처럼 굳는데 욕도 할 수 없고 몸부림도 칠 수 없더라꼬. 니는 인간도 아이다. 니는 인자 정자 애비도 아이다 이 마음 뿐이더라꼬. 사람이라는 기 변하기 시작하믄 걷잡을 수 없어지는지 그 다음 날부터 밤마다 어데서 여자들을 끌어들이는데, 그 지옥 속에서 내가 안 죽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는 니 죽는 꼴을 꼭 보고야 말겠다 하는 앙심 때문이었을 끼라꼬. 어서 저 작자가 죽어뿌렀으믄, 밤마다 그 생각뿐이었지러. 죽어뿌렀으믄.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으이 꼭 죽게 될 끼라꼬. 죽어야 되고말고. 마음이 눈에 나타나는지 정자 애비는 벙어리맨치로 입을 꼭 다물고 사는 내를 볼 때마다 이 징그럽게 독한 년 내는 니 마음속을 휜하이 들이다보고 있다고, 아무리 서방이 개구신겉이 논다꼬 그래 죽기를 바라 죽기를 바랄 수가 있나 하면서 나를 때리고 밟고. 나는 그래도 아이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꼬, 오히려 내 마음을 알아주이 다행이다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지러. 그때 이 소리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라냐 하는 칼칼한 목소리가 옆방에서 불쑥 들려왔다. 웅촌댁은 그제야 웅얼대기를 딱 멈추었다.
“아까부터 귀신 나락 까먹는 소리가* 들려왔는디. 제기랄 이제는 뚝 그쳤어. 빈털터리 되어 일셋방으로까지 굴러 떨어지니 새벽잠도 제 마음대로 잘 수 없나 벼.”
그리고 따악 성냥 긋는 소리, 푸우 현기 내어뿜는 소리가 한방에서 인 듯 선명하게 잡혀들었다. 벽이라기엔 너무 얇은 베니어 탓으로 좌우 옆방의 기척들이 낮이나 밤이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해져 오고 간다는 것을 익히 아는 옹촌댁은 옆방 남자의 새벽잠을 깨워놓고 만 자신이 민망해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살그머니 끌어 올렸다. 늙었어, 참말로 늙었어. 그저 지 생각에만 사로잡혀 가지고는. 젊었을 때는 넘들 생각을 할 수가 없어 지 생각에만 붙들리게 되더마는 나이를 묵어서는 넘 생각도 해야 한다는 거를 모르지는 않지만도 깜빡깜빡 까먹게 되어 또 지 생각만 앞세우게 된다카이. 웅촌댁은 무언으로 뇌었다.
“그래두 방값을 일세로 받는다니 오죽 좋소. 삭월세 낼 때는 한 달 뒤 일이니 에라 모르겠다 내일은 삼수갑산*에 가더라도 하고 오늘은 기분 내기 일쑤였는데, 여기서야 일세 내지 않으면 방에 넣어주지 않는다 하니 당신이나 나 겉은 사람헌테는 안성 맞춤*이지 머겄소?”
낄낄대는 여자의 웃음소리는 어제까지 듣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또 방주인이 바뀌었나 보았다.
“안성맞춤이라, 하여튼 이 여자 배포 한번 크게 늘어난 것은 알아줘야 혀. 그런디 대체 몇 시나 되었다냐? 머언 방이 계기랄 개구멍겉이 작고 캄캄하고. 그런데 제기, 귀신 나락 까먹는 소리가 그치니 이젠 또 다른 옆방에서 이게 머언 소리다냐. 제기, 어느 놈은 신새벽부터 기운 뻗쳐서……”
웅촌댁의 입가로 벙긋 소리 없는 웃음이 떠올랐다. 자기 목소리는 크게 울려 퍼져도 상관이 없는 모양이제. 조심하여 낮게 혼잣말하였다.
“증말 못 참겄어, 아니 저것들은 옆방 사람들 생각은 쪼금치도 안 한다냐? 없어서 이런 개구멍 겉은 디서 산다고 사람 체면이란 것도 다 내팽개친 모냥인데 저런 작자들은 가르쳐야 헌다고. 암 가르쳐야 하고말고.”
성마르고* 칼칼한 옆방 남자의 목소리가 웅촌댁 머릿속에 울분이 가득 찬 작은 두 눈, 흙빛에 가까운 안색, 뾰족하게 날카로운 턱 등을 떠올리게 했다. 그라고 체수*는 또 삐쩍 말랐을 끼라.
“당신도 참 넘에 일에 와 공연히 성질내고 그라요. 즈이들 한창 열오르는데 공연시리 재 뿌리지 말고 제발 잠자코 있소. 이런 개구멍 겉은 디서 살면서 저 낙이라도 없으믄 그 인생이 사막겉이 쓸쓸할 터인디.”
“이 여자가 보자보자 하니 못허는 말이 없어. 당신은 저런 짐승 겉은 몰염치를 참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이 장용칠이는 못 참는다 이거여. 이런 몰염치를 그냥 못 본 척 넘어가 준다는 것은 도리를 아는 어른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닌 겨.”
“아니 남자 여자 뜻 맞추어 재미 보는 일이 무신 끔찍한 불의라고 당신이 나서서 도리 운운하요? 참으로 나는 당신이라 하는 사람을 이해하기가 어렵다꼬요. 성미가 우째 그리 누그러들 줄을 모른다요. 이때꺼정 그저 언제 어디서나 자기 성질대로만 하고 살라니 그렇코름 되는 일이 없질 않소. 그 파르르한 성미가 다 된 일에 재 뿌린 격이 오죽 많았었소? 안 그러요?”
“파르르한 성미라니? 입 닥치지 못혀. 아니 이 시대 인간들은 어떻게 바른말만 입에 올렸다 하면 성미를 부린다고 이죽대길 이죽대.”
옆방 남자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러고는 바로 연이어서
“제기, 소리 죽여 잉. 어떻게 인간이 되여가지고 사람 이목을 생각혀가면서 살아야지, 이다지도 뻔뻔하게 나온다냐.”,
훈계조의 말과 함께 베니어 벽을 쿵쿵 쳤다. 그러자 불끈 화가 치밀어 오른 걸걸한 목소리의 응답이 웅촌댁의 방에까지 뚜렷하게 들려왔다.
“야. 어느 새낀지 조금만 기다려. 내 쳐들어가서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구통에 걸레 쑤셔 넣어줄 테니.”
그 응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방 남자가 불현듯 몸을 일으켜 세우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 새끼가 얻다 대고 아구통이라냐. 이 새끼는 어른 충고도 받아들일 줄 모르는 막된 종잔 것 같은디 당장에 나와. 내가 손을 좀 봐줄 테니.”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에 이어 급하게 방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시작이지 머꼬, 한 메칠 빠안한가 했더마는. 이불자락을 내리고 일어나 오두마니 웅크리고 앉은 웅촌댁은 베개맡에 놓아 두었던 담배를 찾아 한 대 피워 물었다. 방 안은 여전히 굴속처럼 캄캄했다. 해가 쨍쨍한 한낮에나 잠시 손수건만 한 창으로 희부연 햇살이 몇 오라기 들어왔을 뿐 방 안은 종일 어두웠다. 칠 층짜리 벽돌건물 양옆으로 또 칠 층짜리 건물들이 한 뻠의 여유도 없이 바싹 잇대어 늘어서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웅촌댁의 방은 일 층의 가운데쯤
이어서 더욱 어두웠다. 그러나 낮에는 거의 언제나 길바닥에서 구운 감자나 번데기를 파는 웅촌댁에게 그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어데까지 생각했더라. 담배연기를 쁨어내며 웅촌댁은 머리를 갸웃하였다. 그런데 회상의 끈을 어디쯤에 놓아버렸는지 가물가물할 뿐이었다. 쿵쿵쿵쿵 발로 문을 걷어차는 소리만이 머릿속을 어지러이 휘젓고 있었다. 저런 기운도 얼마 안 있으믄 저절로 다 꺼져들고 말 낀데 기운이 속에서 뻗질러 오를 때는 우째 자신도 이길 수가 없는지. 쯧쯧쯧 웅촌댁은 혀를 찼다. 이윽고 쿵쿵 소리가 그쳤다.
“내 참을라 했다만 도무지 참을 수 없어 나왔는데, 어디서 나타난 개뼉다귀 같은 것이 남에 사생활을 참견하고 나서는 기야.”
“개뼉다귀라니. 야 이 인간 같지도 않은 쌍놈에 새끼가.”
“나와, 너 오늘 뼈도 못 추릴 줄 알어. 니놈만 피곤한 것이 아녀, 알았어? 여기 모여 사는 사람 모두가 살기에 고단해서 나자빠지기 일보 전이여. 그런데 왜 성질 돋구는 기야. 이런 새끼는 손을 안 봐줄 수가 없다구. 나와. 여기서 다른 사람들 잠 깨게 할 것 없이 바깥으로 나가자구.”
누를 길 없는 격정이 담긴 사납고 거친 목소리들은 길 쪽으로 멀어져 갔다. 그리고 여자들끼 리 주고받는 말소리들이 이어졌다.
“제발 관두셔. 대단치도 않은 일을 가지고 없는 기운마저 진하게 할 까닭이 어디 있소:”
“왜 아니래요. 정말로 남정네들 하는 짓을 보면 우습지도 않다꼬요. 그런데 말려야 하지 않겠소? 우리 남정네는 아직 나이가 있어 주먹이 아플 텐디. 아짐씨네 아저씨는 강단은 있어 보이지만도 이제 힘쓸 연배는 지난 것 같은디.”
“한 번이라도 내 말을 들어주어야 말려볼 엄두를 내어보지. 이미 불은 붙었는디, 소용없다고. 어떻제 생각하면 한 판 붙고 나면 며칠은 잠잠헐 터이니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겨. 엊저녁부터 일셋방 신세로까지 굴러 떨어졌다꼬 그 울분을 터뜨릴 꼬투리만 찾던 눈치던디. 하이고 이놈에 팔자. 어떻게 걸려드는 서방마다 성미가 꼭 멋 같다냐.”
심상한 어조의 그 말에 이어 탁 방문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다. 담배 한 대를 다 태운 웅촌댁은 그라이까네 아까 내가 어데까지 생각을 펼첬던공, 웅얼대었다. 옆방 남자가 귀신 나락 까묵는 소리가 들리온다 캐서 입을 꾹 다물고 말았는데. 웅촌댁은 궁리하였다. 완장을 차고 양어깨를 잔뜩 치켜든 모양새로 삽짝문을 열고 들어서던 남편, 빨래를 밟아주던 남편 모습만이 엉기어 떠올랐을 뿐. 응촌댁은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로 인자는 죽을 때가 멀지 않은 모양이라. 이래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카이. 우쨌기나 정자 애비가 꿈에 나타난 거만은 분명한데. 그란데 와 느닷없이 나타났을꼬. 머 할라꼬. 내가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 이거를 갈차줄라꼬 나타난 긴지, 아이믄 저승에서 만났을 때 덜 미안해할라꼬 미리 나타난 긴지 참 알 수 없는 일인 기라. 웅촌댁은 다시금 소리 내어 웅얼대었다. 얼마 전서부터 응촌댁은 홀로˙ 있을 때면 이렇게 응얼대기를 잘하였다. 그러면 머릿속의 어지러운 상념들이 좀 더 뚜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이 곰팡이만 슨, 텅 빈 서랍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옆방으로부터 드르릉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장을 지나가는 쥐 떼들의 움직임 소리도 요란하였다. 길 쪽의 옆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밤늦도록 흐느껴 울더니 지금은 깊은 잠에 빠졌나 보았다. 옆방 여자아이는 스무 살 남짓해 보였다. 가끔씩 웅촌댁한테 와서 번데기를 사 먹곤 했는데 응촌댁은 이즈음의 습관대로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두서너 해 전까지만 해도 좌우 양쪽 방에 사는 이들과 오가며 살아온 내력도 듣곤 했으나 지금은 그럴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자주 오가다 보면 정들기 일쑤였고 또 그러다보면 그들이 어디론가 떠난 뒤엔 혼자라는 것이 형벌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정이 들면 상대방에 대해 어느 땐가는 섭섭함도 느끼기 마련이어서 미리 정들지 않는 것이 가슴이 복잡해지지 않는 첩경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공연시리 친해가지고 낭중에 그리 될 필요가 없다꼬. 그렇고말고. 요새겉이 심사가 핀할 때가 또 언제 있었다꼬, 누가 속 썩이는 식구가 있기를 하나, 눕고 싶으믄 눕고 자고 싶으믄 자고, 길바닥에 나가 감자만 구워 팔믄 하루 지내기 걱정 없지러. 가진 기 없으이 도둑 들 끼 겁 안 나지러. 정말로 내 팔자가 늘어졌다꼬. 그런데 정자 애비는 와 나타났던공. 손이 담뱃갑을 더듬고 있었다.
“일 나가능교?”
잠이 덜 깬 목소리가 복도 맞은편 방에서 들려왔다.
“그래, 자거라. 장사 재미가 이래 쏠쏠한 줄 내 진작에 알았더라믄 그 좋은 시절 엉뚱한 짓 하고 안 돌아댕갔을 낀데.”
방문 열리고 닫히는 소리, 그리고 복도를 울리는 발짝 소리가 들려왔다. 네 시가 조금 지났으리라고 웅촌댁은 짐작하였다. 와 나타났던 공. 그 물음은 머릿속에 여전히 진드기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아이고 사람 정신 헷갈리구로. 삼십 년 세월 동안이나 안 나타났으믄 그양 가만있던지 깨깡시리(난데없이) 나타났으믄 무슨 말을 할 끼지 그 요상시러분 웃음만 보이고는 사람 마음만 어지럽게 하다이. 공연시리 잔잔하던 마음에 돌을 던지다이. 웅촌댁은 혀를 차고 또 찼다. 이런 찜찜한 상태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남편이 자신의 가슴에 박았던 못이 흔들리려는 기미가 느껴졌기 때문에 더욱 개운치 못한 심정 인지도 몰랐다. 다른 거는 다 잊어뿌리도 사람백정 소행은 잊어뿌리서는 안 된다꼬 생각해왔는데. 응촌댁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잊어뿌리다이. 정자 애비가 망친 인생이 대체 및 인생이 었겉래. 내 인생이 이래 동굴 안에 쥐 한 마리겉이 되고 만 거는 정자 애비를 서방으로 맞은 내 팔자 탓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야 무신. 그란데 내 마음이 구 요상한 웃음에 풀어질라 카다이. 응촌댁은 재빠른 동작으로 몸을 일으켜 세워 알전구의 스위치를 비틀었다. 환한 전깃불 아래서는 필경 지조 없는 마음이 부끄럼을 타리라고 굳게 믿으며. 그리고 그 믿음은 과히 어긋나지 않았다. 알전구가 방을 환하게 비추자 웅촌댁은 자신의 마음이 어딘가 꿋꿋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웅촌댁은 새삼스런 눈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마치 자신의 현재를 확인이나 하듯이. 방구석에 놓인 비닐의 트렁크, 사과궤짝(그 안에는 식기 몇 개, 세숫대야, 냄비가 있었다), 그리고 석유곤로 하나, 벽에 걸린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익었던 그것들이 오늘 이 순간따라 몹시 궁상맞게 보였다. 마음만 달리 묵었더라믄 이보다는 낫게 해놓고도 살 수 있었겠지만 살림살이 모울라꼬 또 애땅지땅 장사하다 보믄 돈 모울라는 욕심이 고개를 들까 바서 이래 살아왔는데. 이런 생각이 들게끔 만든 기 다 누군데, 정자 애비 그 작자였는데. 꿈에 나타났으믄 나타난 기지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거겉이 일어났다 앉았다. 더 생각할 것도 없다꼬, 그란데 내 하는 꼴을 보믄 한심해서. 이라이 늙으믄 죽어야 된다는 말이 생기난 기지. 웅촌댁은 담배를 비벼 꼈다. 지체하지 않고 일어나 알전구의 스위치를 힘주어 비틀었다. 출구의 층계 쪽에서 일 나가는 발짝 소리들이 끊임 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옆으로 누운 ㅅ자 모양으로 뚫린 골목길은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상가였고 어른들의 사랑 그리고 빨래터였고 간이부엌, 간이변소이기도 했고, 그리고 간혹 대단히 지친 이에게는 잠들 수 있는 방 구실도 했다. 겉으로는 멀쩡한 칠 층의 벽돌집 단칸방에는 부엌이 딸려 있지 않았다. 식구가 없는 사람은 방 안에서 간단하게 끓여 먹거나 밥집에서 사 먹었다. 그러나 식구가 여럿인 집에서는 별수 없었다. 골목길에서 김치를 담그고 빨래도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머리를 감았다. 그래서 골목길은 늘 질펀하게 젖어 있을 때가 많았다. 연탄 냄새, 지린내, 반찬 냄새도 항상 괴어 있었다. 그리고 파리 떼가 들끓었다. 뚜껑도 없는 커다란 쓰레기통들이 벽돌집 출구마다에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옆으로는 절여진 배추들이 담긴 함지들이 잇대어 놓여있었다. 빨래들은 골목길을 치장하는 오색의 깃발처럼 펄럭였다. 그래서 골목길은 늘 시끄럽고, 말할 수 없이 남루해 보였다. 힘차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없었다면 골목길은 무슨 음험한 미궁처럼 보였을지도 몰랐다. 지금도 아이들이란 아이들은 죄다 골목길로 쏟아져 나와 고무쥴뛰기를 하거나 사방치기*를 학고 있었다. 사내아이들은 이 푹 꺼진 남루한 골목길 동네를 풍치 좋은 대로변과 격리시키기 위한 벽처럼 높다랗게 쌓여 있는 석축 위로 날쌘 다람쥐처럼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누구도 아이들에게 그 위험한 짓을 관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일 나가지 않는 남자들은 예외 없이 술에 젖은 부숭한 얼굴을 하고 구멍가게 앞에 모여 앉아 술 취하지 않은 맨 정신으로는 도무지 버티어나갈 수 없는 이 세상은 도둑놈들 천지다. 제기랄 대체 밤낮으로 뼈빠지게 일해봤자 입에 풀칠하면 남는 것이 없다. 술을 끊고 어떻게 잘 해보려고 발버둥을 쳐본 적도 있었지만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를 깬다는 말처럼 뭔가 일이 터졌다. 결국 애써 보았자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라고 소리쳐대었다. 그들의 표정들은 거의가 엇비슷해 보였다. 몸과 마음의 깊은 피곤함이 얼굴에 진득하게 배어 있었다. 구멍가게 앞에 모여 앉기를 좋아하는 패거리들일수록 그 점이 뚜렷하였다. 일 나가는 날보다 나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그런 남자들을 몰아세우는 여자들도 드물었다. 지금도 웅촌댁이 자리 잡은 석축 건너편 구멍가게 앞에 모여 앉은 여자들은 태평인 기색들이었다.
“닦달질을 한다 해서 이 동네를 뜰 만큼 목돈을 쥘 수도 없는 처지라는 거를 빠안히 알게 되었는데 무작정 몰아세울 수도 없는 겨.”
“어제 명자네 집에 왔던 먼 친척 된다 카는 학생이 명자네한테 설교하는 말 들었더나. 기가 차고 코가 멕히서. 명자네보고 머라 캤노 하면 빈곤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부족해서 이런 생활을 못 벗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되는 대로 살지 말고 계획을 세우세요. 이래 딱딱거리데.”
여자들이 왁자하게 소리 높여 웃었다.
“그년들이 머를 안다꼬. 팔자 좋은 년들은 팔자 나쁜 우리 처지를 절대로 이해 몬한다꼬.”
“그밖에도 무신 어려운 말을 잔뜩 늘어놓는데 내가 그년 목을 비틀어줄라 카다가 명자네 얼굴 보고 참았다 아이가, 그년들은 저거가 그런 팔자로 타고난 기이 지년들이 애쓴 탓으로 된 줄로 착각을 하고 있는갑데. 좋은 부모 만나 책상에서 펜대 굴려 월급 타묵을 수 있는 머리 타고 난 것이 어데 저거 노력이라는 거는 눈곱만치도 들어간 것이 없는데 그년들은 그거를 까마득히 모르더 라꼬.”
여자는 침을 튕겨가며 허공을 향해 삿대질을 하였다. 여자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은 나무 걸상에서 몇 걸음 떨어진 길바닥에는 파란 비닐봉지를 가슴에 꼭 껴안은 여자가 웅크리고 누운 채 자고 있었다. 얼굴은 검댕투성이였고 신을 신지 않은 맨발은 투박해 보였다. 아이들이 몇 둘러서서 잠든 여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 비닐봉지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들을 빛내며. 그들 중에서 가장 키 큰 아이가 마침내 아이들의 대변자처럼 저 비닐봉지를 열어보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아이들이 좋아라고 펄쩍펄쩍 뛰거나 박수를 쳤다. 그러자 키 큰 아이가 살금살금 다가가 잠든 여자가 꼭 끌어안고 있던 비닐봉지를 빼내어 왔다. 잠든 여자는 그러나 아무것도 몰랐다. 키 큰 아이가 비닐봉지 안의 것들을 하나씩 꺼내었다. 유리조각, 머리핀, 먹다 만 빵조각, 헝겊 자투리, 그리고 백동전 몇 닢이 나왔다. 아이들이 서로 그 백동전을 쥐려고 아우성을 쳤다. 키 큰 아이가 썅 거지 같은 것들이. 얼굴을 찡그린 채 닥치는 대로 아이들의 무릎을 걷어찼다. 아이들이 잠잠해졌다. 백동전 몇 닢을 키 큰 아이가 거두어들였다. 따라와. 키 큰 아이가 아이들을 이끌고 구멍가게로 가서 얼음과자 두 개를 샀다. 하나를 아이들에게 나눠 먹으라고 주었다. 그리고 하나는 온전한 제 몫으로 챙겨 들고는 졸개들을 끌고 웅촌댁에게로 갔다.
“아이고, 저 웬수녀르 것들.”
“저것들만 없다 해도 살기가 덜 고단할 터인디.”
“와 아이라, 우리 겉은 거를 부모로 하고 이 세상에 나온 저거들도 안됐고, 우리는 또 저 입들을 굶기게 안 할라꼬 고삐*에 매인 소겉이 꾸벅꾸벅 일해야 하이.”
“자식 다 소용없어. 잘들 생각해봐. 우리도 자식이지만 부모 생각할 때가 어딨어? 그러니 그저 살아 있을 때 제 몸 제가 위해야지. 안 그래들?”
“옳은 말이여. 우리가 부모한테 받은 기 머가 있었길래,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인물뿐이었지.”
여자들은 가게 주인을 향해 음료수 몇 병을 더 가져오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웅촌댁을 둘러싸고 앉아 번데기를 삼백 원어치 달라며 마구 주워 먹고 있었다. 웅촌댁의 금고인 깡통을 흘깃흘깃 쳐다보는 아이도 있었다. 웅촌댁은 못 본 척하고 번데기를 싸 주었다. 아직 방값이 모인 것 같지 않았으므로 금고인 깡통을 자신의 무릎 사이로 슬몃 끌어당겼다. 번데기를 마구 집어먹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아이들은 얼마 동안을 더 기회를 엿보다가 마침내 일어서서 떠났다. 길바닥에 웅크리고 누운 채 잠든 여자의 내팽개쳐진 비닐봉지가 불어온 바람에 두둥실 떠올랐다 살포시 길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더러운 낙화*처럼 분분히 깔린 얼음과자 속으로 섞였다. 웅촌댁은 고개를 수그린 채 감자를 깎고 있었다. 그런데 한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여자아이가 웅촌댁의 좌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웅촌댁과 구운 감자를 골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배가 고픈 모양이라고 옹촌댁은 척 하니 알아보았다. 여자아이의 초롱한 눈에는 감자를 집어먹고 싶다는 욕구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망설임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그 망설임이 귀여워 웅촌댁은 서슴없이
“묵어라.”
하고 구운 감자 한 알을 여자아이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여자아이의 얼굴은 붉게 물들여졌다. 마음속을 들켰다는 것을 깊이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배가 몹시 고팠던지 사양은 못하고 감자 한 알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웅촌댁은 “배가 고팠던 모양이제”라고 말하며 감자 한 알을 더 주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응촌댁은 계속해서 여섯 알인가 일곱 알의 감자를 주었다. 묵는 데까지 묵어바라 하고 말하면서. 그러자 “더는 못 먹 겠어예”라고 여자아이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웅촌댁은 머리를 주억거렸다.⁕ 옷차림이나 생김새로 보아 배를 곯고 다닐 만큼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웅촌댁은 너 집을 몬 찾아서 헤매고 댕기는 길이가 하고 물었다. 여자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만일에 집을 몬 찾게 되믄 파출소 아저씨한테 집 찾아줄라 해야지 안 그랬다가는 큰일 날 끼다. 웅촌댁이 당부하듯 말했다. 여자아이는 아인데예 하면서 일어섰다. 그래 아이믄 된 기라. 웅촌댁은 감자를 깎기 시작했다. 여자아이가 구운 감자를 다 먹어치워서 새로 구워야만 했던 것이다. 여자아이는 감자를 잘 먹었다는 감사함을 입에 올려 말하지는 못하고 그 뜻이 담긴 눈으로 웅촌댁을 바라보더니 꾸벅 고개 숙여 절하고는 응촌댁 앞을 떠났다. 웅촌댁은 곧 그 여자아이를 잊었다.
웅촌댁이 세 들어 있는 건물 주인인 윤 사장이 (몸이 부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집주인은 사장으로 불리길 좋아했다) 웅촌댁 옆으로 다가와 성요, 내 말 좀 들어보소 하더니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마음속 울분을 마구 쏟아내었기 때문이었다. 자식들이 살고 있는 영동의 아파트에 다녀온 날이면 (윤 사장은 이 건물의 오 층에서 혼자 살았다) 늘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지 못하고 거친 숨결로 토해냈다. 자식들이 아주 노골적으로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이 그 울분의 골자였다. 마치 저거들은 다른 구멍에서 나온 거겉이 알겠능교, 성요.(같은 고향 출신이라고 윤 사장은 웅촌댁을 꼭 성이라고 불렀다) 아이고 성은 자식한테서 이런 대접을 안 받아보이 이 분하고 허무한 심정 모를 끼라꼬요. 오늘은요, 저거가 무신 집주인맨쿠로 이 집을 팔아라꼬 명령조로 말하더라꼬요. 그 동네에 집이 있다는 말도 입에 올리기 싫다꼬요. 오늘에 저거가 있게 된 것도 이 집에서 나온 세 때문이었는데. 그라고 내가 이 집을 사기까지 얼매나 피땀을 흘렀는데. 우습데요, 성요. 어릴 때는 저거도 이 동네서 컸는데 그거는 싹 잊어뿌렀는지. 오늘요, 내 자식들이 그래 멀게 느끼질 수가 없더라꼬요. 아이들은 속으로는 저거 에미까지 죽어 없어지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꼬요. 구멍가게 앞에 모여 앉았던 여자들이 모두들 웅촌댁 쪽으로 우르르 몰려와 있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질세라 자식의 소용 없음에 대해 한마디씩을 했다. 윤 사장은 계속해서 자신의 시건방진 아들딸들에게 욕설을 펴부었다. 앞으로는 생활비 지급을 단호하게 끊겠다고 언명했다. 여자들이 잘하는 처사라고 입을 모았다. 부모 잘 만나 고생이 뭔지 모르는 자식들도 고생맛을 봐야 한다는 말도 들려왔다.
“그러고 보면 돈 많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도 아녀. 공연시리 집 땜시 부모 자식 간에 감정 상하고 말여.”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가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윤 사장이
“맹초 같은 것. 그래도 돈이 있으믄 결국은 자식이 빌러 들어오게 되어 있지만도 돈까지 없어보라지, 그 눈치 설움을 어떻게 감당할라꼬. 모르면 입이나 다물고 있을 것이지.”
사납게 눈을 부릅뜨고 퉁을 주었다. 그러나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는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윤 사장의 퉁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윤 사장 말대로 하자면 자식들이 돈 때문에 빌러 들어오게 되는 모양인디 그러면 부모가 부모 노릇을 제대로 혀서 부모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고 돈이 부모 대접받게 해주는 것 아니겠소. 그거는 좀 우습네요, 잉. 안 그렇소?”
벙글벙글 웃으며 이죽대었다. 그러자 윤 사장이
“이 나쁜 년,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용심* 많은 년, 그러니까 그 나이가 되도록 밑바닥 신세를 못 면하는 기라꼬. 머 공연시리 몬 사는 줄 아나. 다 심지*를 바로 쓰지를 않으이까네 하는 일마다 되는 기 없는 기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꽃무늬 블라우스 여자를 노려보았다. 꽃무늬 블라우스 여자도 지지 않고
“돈 좀 있다 하면 바른말도 못 삭여내게 되는 모양이네요, 잉. 그라고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밑바닥 신세를 못 면한 거는 누구들겉이 젊었을 적 치마를 말아 올리지 못했응게.”
악을 썼다. 윤 사장이 꽃무늬 블라우스 여자의 뺨을 철썩 갈겼다. 웅촌댁이 감자 깎던 칼을 놓고 윤 사장의 팔을 잡았다. 그 순간 윤사장의 눈썹과 눈꼬리가 위로 바싹 치켜 들리면서 얼굴이 귀면(鬼面)처럼 보였다. 꽃무늬 블라우스 여자가 윤 사장의 머리칼을 바싹 위로 잡아당겼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은 세상에 왜 그래요, 참으라꾜요 하면서도 눈들을 빛내며 윤 사장과 꽃무늬 블라우스 여자가 엉겨 서로를 할퀴고 때리는 광경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입 밖에 내어 말들은 안 했지만 윤 사장이 흠씬 두들겨 맞았으면 하는 기색들이 역력하였다.
“참으소. 제발 참으소. 이게 무슨 꼴들인교.”
응촌댁이 몇 번 외쳤다. 그러나 육탄전은 중단되지 않았다. 웅촌댁도 더 이상 입을 벌리지는 않았다.
“이년, 안 그래도 자식한테 무시당한 뒤끝이라 속에서 열불이 치솟아 올라 미칠 것만 같았는데 잘 걸려들었다. 이 버르장머리라꼬는 없는 년.”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짝이 난 모양인디, 나는 분명히 한강이 아닌 겨. 돈 좀 있다고 언제 어디서나 독불장군 행세를 하려 드니 자식도 마땅찮아하는 겨, 공연시리 자식들이 부모 홀대하지는 않는다 이거여.”
둘은 식식대며 헉헉대며 서로의 머리칼을 쥐어뜯고 발로 차고 물었다. 길바닥에서 잠들었던 여자가 그제야 부스스한 눈으로 잠에서 깨어나 육탄전의 주인공을 보더니
“미친 것들.”
한 마디 뱉고는 휘적휘적 맨발로 걸어갔다. 구멍가게 나무 걸상으로 돌아간 여자들이 큰 소리 내어 웃었다. 웅촌댁은 사각사각 감자를 깎았다. 육탄전이 끝난 것은 구멍가게 건물의 어느 방에선가 쏟아져 내린 물 때문이었다. 육탄전의 주인공들은 화들짝 떨어져서 고개를 젖히고는
“내 이 악질 종자들을 잡기만 해봐라. 당장에 요절을 내버릴 테니.”
“어느 싸가지 없는 것들이 이런 무지막지한 짓을 헌다냐?”
한꺼번에 외쳤다. 그러고는 달리기 경주라도 하는 양 다투어 벽돌집 컴컴한 층계를 뛰어올라 갔다. 여자들은 다시 깔깔깔 소리 높여 웃었다. 아이 하나가 여자들 곁으로 다가서며 배고프다고 칭얼대었다.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나. 와 종일 배고프다고 쥐어짜노. 꼴 보기 싫으이 썩 꺼지거라.”
그러자 아이는 길바닥에 드러누워 온몸을 버둥대며 악악 울어 대었다. 아이의 어미가 마침 내 백동전 두 닢을 아이에게 내던졌다.
“아이고 꼴 보기 싫어라. 아이고 소름 돋아라. 저 성질 부리는 것이 우짜믄 그래, 지 애비를 그대로 빼다 박았는지. 이가 갈린다꼬.”
그러면서 슬리퍼 꿴 발로 아이의 무릎을 걷어찼다. 백동전을 주워든 아이는 쪼르르 웅촌댁 앞으로 달려와, 고둥 백 원어치와 번데기 백 원어치를 달래서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대로변과 통하는 층계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아이의 뒤를 이어 잘린 양 허벅지에 고무를 대어 끌고 다니는 정 군이 기름 냄새를 풍기며 감자를 먹으러 왔다. 리어카나 자전거, 오토바이 수리를 하는 정 군은 일이 밀릴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웅촌댁을 찾았다. 한창 나이에 저 속이 우떨꼬, 웅촌댁은 정 군을 볼 적이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도 그런 마음을 입에 올려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감자만 넉넉히 주었을 뿐이었다. 정 군 역시도 충실한 고객치고는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은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듯해 보였다. 감자를 먹고 물을 마시고도 선뜻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좌판의 한끝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할 이야기가 있으믄.”
그런데 그 순간 웅촌댁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은 어떤 시선을 느꼈다. 눈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상네. 웅촌댁의 눈은 이윽고 정 군에게로 향하였다. 정 군은 얼마를 더 며뭇대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미선이·…… 말인 데요.”
“미선이라니?”
웅촌댁이 고개를 가웃하자 정 군의 눈에는 실망의 빛이 어렸다. 그래서 웅촌댁은 미안함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 옆방 색시 말예요.”
그렇게 말하고는 정 군은 더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아, 그래 그 색시.”
웅촌댁은 짐짓 크게 머리를 주억거렸다.
“할머니한테 와서 가끔씩 번데기도 사 먹고 하던데요.”
“그래.”
응촌댁은 정 군이 미선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해줄 이야기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거듭 미안하였다. 그 색시가 밤에 자주 큰 소리로 흐느껴 운다는 것, 그리고 남자를 받아들인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인데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전 할머니가 미선이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래서 중신 *을 부탁드리려고.”
정 군은 길바닥에 눈을 떨구고서 말했다. 중신을 입에 올린 자신을 몹시 부끄러워하는 듯하였다. 그리고 니가 미선이한테 장가를 들겠단 말이냐는 반문을 듣게 될까 봐 겁을 내고 있는 것도 같았다. 웅촌댁은 그래서 고개만 끄덕였다.
“미선이가 할머니를 보는 눈이, 할머니를 참 믿는 것 같았어요. 언젠가 동네 아주머니들한테 할머니를 보면 돌아가신 자기 할머니 생각이 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었어요. 할머니는 가진 것 하나 없으면서 인정이 많아서 아이들한테 감자도 번데기도 그냥 곧잘 주신다면서·…… 생김새도 너무 욕심이 없고 깨끗해서 쳐다만 보아도·…….”
“아, 아이다. 정 군아.”
응촌댁은 자신도 모르게 팔을 내저었다. 얼굴이 달아올라 더욱 민망한 기분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 그거는 옆방 색시 아이, 미선이가 잘못 본 기라. 나는 인정 많은 노인네가 아이라·…… 욕심이 없고 깨끗한 노인네가 아이고 겁이 많고·……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서·…… 그래서 이래 사는 기라……”
가슴속에서는 할 말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으나 정작 할 말은 잘 생각이 나지 않아 웅촌댁은 초조하고 부끄러웠다. 왠지 자신은 사기꾼이라는 생각마저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웅촌댁은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어 나는 욕심이 없고 깨끗한 노인네가 아이라꼬만을 뇔* 뿐이었다.
“아니에요. 할머니·…… 저도 그동안 주욱 그렇게 생각해왔는데요. 미선이 말이 옳아요. 미선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저는·…… 미선이의 마음이 참 깨끗하다고 느꼈어요.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를 좋아라 할 수 없을 거예요전·…… 몸이 이렇긴 하지만 미선이를·…….”
정 군은 마르고 뜨거운 숨을 훅 들이켰다. 지금 정 군 가슴에는 누구도 꺼뜨릴 수 없는 불덩어리 하나가 타오르고 있을 것이라고 웅촌댁은 생각했다. 저 불덩어리에 얼마나 많은 세월을 부대낄지 웅촌댁은 정 군이 가엾게 여겨졌다.
“그래, 내 정 군 마음은 알았는데·…….”
웅촌댁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불현듯 고개를 쳐들었다. 자신을 지켜보고 투명한 빛살 같은 시선이 또다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둘러보면 잡혀들지를 않았다. 왠지 심장이 두근대었다. 그 연유를 웅촌댁은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꿈속에서 보았던 남편이 어른대었고 귓전으로는 새벽녘에 들었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무신·…… 당찮은 그 소리를 떨쳐버리려는 듯 웅촌댁은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던 거로. 그라모. 하도 오랜만에 나타났길래 손을 잡았다 뿐이었지. 그것도 완장을 안 차고 있었기에 잡았지. 완장을 찼더라믄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로. 그렇고 말고.
“할머니……”
정 군이 입술을 달싹이며* 웅얼대는 웅촌댁을 조심스런 어조로 불렀다.
“응·…… 와?”
웅촌댁은 당황한 눈으로 정 군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응얼대었던 소리를 정 군이 알아들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할머니한테 저의 이런 부탁이 부담스럽게 여겨졌다면 안 들은 걸로 하셔도 좋아요.”
“부담스럽다꼬··…… 응 그기 아이고·…… 있제.”
웅촌댁은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허둥대었다.
“있제·…… 늙으믄 있제. 정 군아.”
웅촌댁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해요. 할머니·…… 그럼 가겠어요.”
정 군은 썰매를 타는 것처럼 몸을 육직여 샛골목의 일터로 돌아갔다. 웅촌댁은 칼을 놓으며 거듭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어수선해서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부끄럽고 민망하고 불안하였다. 그리고 또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그래 어려분 이야기를 학는 젊은 아 앞에서 지 생각만 붙들리가꼬. 우짜믄 좋을꼬. 나이를 이래 묵고도 하는 짓이 분별 없기가 젊은 아들보다 몬한다이. 정 군은 지 부탁을 들은 내 마음이 내키지 않는 걸로 생각하고는 안 들은 걸로 하라고 말할 줄도 아는 어른인데 이 늙은 것은. 그라이 그저 한시바삐 죽어야 하는 긴데, 우째 사는 기 이래 어지러불꼬. 그런데 중신은 해줘야 되나·…… 마음이 영 심란하네. 정 군이나 옆방 색시 아니 미선이라 하는 색시는 착해는 보이지만도 그 안을 우째 깊이 안단 말이고. 정자 애비가 그래 변할 줄을 아무도 몰랐는데. 정자 애비가 내한테 그것 하나는 똑똑히 가르친 기지. 사람을 쉽게 안 믿는 거. 사람한테 정 안 주게 한 거. 그래 살믄 심장은 덜 상하는 거는 분명하지러. 그런데 젊은 아들이 어데 그런 거를 아나. 허한 마음을 자꾸 사람한테서 메꿀라 하지러. 그것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도 몰라·…… 사람이라는 기 얼매나 변하기 쉬운 거를 생각하면 정 군하고 미선이도 살다가 아나 맨들어놓고 미선이가 도망이라도 간다 카믄 정 군 신세는 더 불쌍케 될 끼 뻔한데, 아 이 동네서 그런 여자들을 내가 어데 한둘이 보았더나. 그런 몸을 해가지고, 수도승겉이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텐데. 웅촌댁은 웅얼대기를 멈추었다.
니겉이 말이가, 밥이나 묵고 목숨만 부지해서 사는 니곁이 말이가 하는 물음이 얼음처럼 가슴을 차갑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지금 내겉이 살믄 와 어때서. 사람 때문에 속 안 상하고 핀한 기지. 응촌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순간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이 몸서리 쳐지도록 싫다 하는 느낌이 치밀어 올랐다. 니는 죽기 직전에 목숨이니까네 이래 살아도 되지만도 인자 한창 살아야 할 젊은 아들은 니겉이 살아서는 안 뇐다꼬. 그거는 너무 끔찍한 주문인 기라. 머가 끔찍하다 말고 머가 끔찍하다 말고 나는 아직도·…… 웅촌댁은 벌떡 일어
섰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생생한 시선이 또다시 감지되었던 것이다. 틀림없다꼬. 누군가가 내를 엿보고 있다꼬. 웅촌댁은 금고인 깡통을 들고 벽돌집 사이에 도무지 집이라고는 할 수 없는 움막들이 모여 있는 샛골목 쪽으로 걸어갔다.
병나발*을 불고 있는 게슴츠레한* 눈을 한 노인이 길바닥에 내놓은 연탄화덕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낮손님을 받는 것 같은 여자가 사내를 이끌고 걸어오고 있었다. 정 군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로변으로 통하는 길 쪽으로 가보았다. 누구도 자신을 유념해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석축 맞은편 모퉁이 집인 밥집 언저리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러나 그 시선의 주인공 같은 인물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상도 하제. 분명히 눈가가 내를 쳐다보고 있는 기 느끼지는데. 웅촌댁은 고개를 가웃하며 자신의 좌판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이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없는 것이 다 꿈에 나타난 남편 때문인 것만 같아 (이 얼매나 터무니 없는 생각고. 웅촌댁은 자책하였다. 그런데도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질 않았던가) 투덜대지 않을 수 없었다. 재수 없는 인물은 꿈에서라도 마주칠 끼 아이라꼬. 정 군한테 섭섭한 마음 들게 한 것도 정자 애비가 내 머릿속에서 얼쩡댔기 때문이었지러. 지금 내 마음이 이래 찜찜한 것도 다 정자 애비 때묵이지 뭐꼬, 대체 머 할라꼬 깨깡시리* 나타나가지고.
웅촌댁은 계속해서 느낌으로 와 닿는 어떤 시선을 모르는 척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줄곧 머릿속에 들러붙어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 응촌댁은 장사고 뭐고 걷어치우고 방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어쩐지 시선의 정체를 확인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박만 알려주어서는 안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의 정체를 알 때까지 좌판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꼬. 웅촌댁은 입을 앙다물었다.*
해질 무렵, 드디어 웅촌댁은 오후 내내 자신의 심기를 어지럽게 했던 시선의 정체를 깨달았다. 어느 순간 너무나 생생하게 와 닿는 시선이 느껴져 이번에는 하고 재빨리 고개를 쳐들었을 때 밥집 모퉁이로 어떤 얼굴이 황망하게 사라져간 것을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그 얼굴은 다름 아닌 응촌댁한테서 감자를 얻어먹었던 여자아이이질 않았던가. 웅촌댁은 뒤쫓아 가서 니였더나. 니가 내내 내를 살피보고 있었더나. 와 와 무신 이유 때문에 하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가슴이 쿵쿵 뛰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아가 내를 지키볼 이유가 없을 낀데 머 한다꼬. 그렇고말고. 내가 오늘 여러 가지로 정신이 헷갈리다 보이 백줴* 아무것도 아인 일에. 그 아는 집을 잊어뿌리지도 않았다 캤고 생기기도 눈매가 초롱한 기 입도 야무지게 생겄던데. 그라이 씰데없는 생각은 그만 하고 정 군 중신이나 궁리하는 기 좋을 꺼로. 웅촌댁은 빠르게 웅얼대었다. 구멍가게 앞에 모여 앉았던 여자들로 이제는 하나둘씩 흩어져 갔다.
어둠이 깔린 골목길 좌우로는 흐릿한 알전구들이 켜져 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골목길을 떠돌아다니며 놀고 있었다. 일을 끝낸 남자들이 빈 리어카를 끌고 혹은 자전거에 올라탄 채 돌아들 오고 있었다. 그중의 어떤 이들은 빈손으로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 패잔병 같은 걸음으로 돌아왔다. 일 나갔던 여자들까지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느라 골목 안은 장터처럼 북적대었다. 빨래를 하는 이, 푸성귀를 다듬는 이, 몸을 씻는 이들이 쏟아낸 물로 길바닥은 질펀하게 젖어 있었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 노래도 타령도 아닌 곡조를 흥얼대며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아슬아슬하게 걷는 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고함 소리도 드높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웅촌댁은 돈을 챙겨 속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화덕*과 좌판, 냄비들, 금고 대용의 깡통은 늘 그랬듯 밥집에 맡겼다. 밥집에서는 밥을 대어 먹는다고 그것들을 맡아주었다. 웅촌댁은 뭘 먹겠느냐고 묻는 밥집 여자에게 좀 뒤에 먹겠다고 말하고는 밥집을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막연하였다. 그러나 어딘가로 가고 싶었다. 웅츤댁은 그 점을 의식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확실히 웅촌댁의 가슴안에는 여자아이가 자신을 따라오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웅촌댁은 짐짓 이 밤의 나들이(나들이라면 거창했지만 아무튼 웅촌댁이 일을 끝낸 뒤 바로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날은 드물었던 터였다)가 별스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며 걸음을 떼어놓았다. 신경은 어쩔 수 없이 등 뒤로 쏠려 있었다. 웅촌댁은 재건대* 앞으로 해서 약국을 지나 공중변소 있는 곳으로 갔다. 여자아이는 분명 웅촌댁 뒤를 따르고 있었다. 웅촌댁이 공중변소 있는 곳으로 온 것도 어찌 보면 이곳이 그래도 이 동네에서는 외곽인 셈이어서 등 뒤를 쉽게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웅촌댁은 물론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고만 여겼다. 그런데 여자아이가 자신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웅촌댁의 심장은 큰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것처럼 쿵쿵쿵 뛰기 시작했다.
대체 머 할라꼬 내 뒤를 졸졸 뒤따른다 말고. 여자아이에게로 가서 혼을 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연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응촌댁의 두 발을 묶었다. 하지만 웅촌댁은 그 연유를 알 수없는 두려움을 연유가 없다는 것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참 우습다카이. 멋 때문에 저 쪼고만 생면부지*의 아한테 신경을 쓴다 말고. 웅촌댁은 어느 쪽으로도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서 있었다. 공중변소 앞에는 흰 종이를 움켜쥔 청년이 엎드려 누워 땅을 치며 엉엉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무신 일로 저래 심장을 상했을꼬, 쯧쯧 혀를 차면서 울고 있는 청년 앞을 얼른 지나쳤을 웅촌댁이 지금은 우두망찰* 가만히 서 있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심장의 동계*는 여전히 불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이래 멍청하이 서 있을 끼 아이고. 생각을 해야지 생각을. 저 아가 무신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도 내 뒤를 따르는 것은 분명하니. 그렇지. 더는 몬 따라오도록 복잡한 시가지 쪽으로 가야겠다. 웅촌댁은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기름집 *을 지나 문방구점, 대본집*을 지났다. 찻집을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지하도도 육교도 나올 터였다. 이 동네의 로터리 구실을 하는 찻집 앞은 여느 때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지만 지금은 큰 난리라도 벌어진 듯 겹겹의 사람들이 찻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나오란 말이야. 나와서 내 이 손가락들이 잘려 나간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당신 두 눈으로 똑똑히 보란 말이오. 당신 겉은 여자를 엄마로 두었던 탓으로 나는 어릴 때부터 고아처럼 바람처럼 떠돌아다녀야만 했는데 당신은 늘 새 남자 구해서 따라다니기 바빠 자식 같은 것은 휴지 버리듯 내팽개쳤는데 그 뒤끝이 그래 다 쓰러져가는 집 한 구석에 방 한 간 빌려 찻집 간판 내달고…… 뭣 팔아야만 살아가게 되었고 고아처럼 떠돌아다니던 자식은 기술 배우려고 애쓰다 손가락만 날리게 되었으니 당신 겉은 여자는 두 눈으로 이 흉칙한 손을 똑똑히 봐야 한다고. 그런데 철면피한 당신은 왜…… 왜…… 왜.”
사람들이 우르르 뒷걸음을 쳤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청년이 붕대를 감지 않은 읜손으로 속이 비어져 나온 비닐의자며 커피잔, 칠이 다 벗겨진 탁자들을 내던졌다. 그리고
“세상에…… 그것은 안 돼……”
자지러지는 듯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청년이 텔레비전을 내던지려 했기 때문이었다. 짙은 화장 탓인지 청년과 모자지간으로는 보이지 않는 찻집 여자가 청년을 뒤에서 꽉 부둥켜안았다.
“제발…… 응, 제발…… 효식아…… 날 차라리 한 대 때려어. 응, 하지만 테레비는 그 칼라테레비는·……응, 그것 없으면·…… 응, 그것 사느라고.”
찻집 여자가 흐느껴 울었다. 청년이 으흥으흥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더니 텔레비전을 내려놓았다. 웅촉댁은 찻집 앞을 떠났다. 장사를 끝내고 방으로 곧바로 들어갔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안 볼 수 있었을 낀데. 웅촌댁은 화가 나서 불현듯 걸음을 멈추어 섰다. 그리고 홱 돌아섰다. 여자아이는 찻집 앞의 소동을 보는 척하고 있었다. 웅촌댁은 여자아이한테로 다가가려다 흠칫 멈추었다. 여자아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겁이 났던 것이다. 겁날 끼 머가 있다꼬. 거듭 뇌었어도 헛일이었다. 웅촌댁은 다시 몸을 돌려세워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기 무신 짓꼬 한탄하듯 웅얼대며. 참으로 자신을 이해할 수없는 응촌댁 이었다. 아무리 궁리해보아도 여자아이가 자신을 뒤따라올 까닭은 없었고 더욱이 여자아이를 자신이 겁내어야 할 연유는 더더욱 없을 터였다: 그런데 마음은 그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내가 멋에 홀렀는지. 홀리지 않았으믄. 자신을 답답하게 여기면서 웅촌댁은 지하도로 내려갔다. 보퉁이를 머리에 인 촌로, 반들대는 사각 가죽가방을 든 매끈해 보이는 남자들, 처녀인지 부인인지 구분할 수도 없는 젊은 여자들, 그리고 비닐가방을 가슴에 안은 처녀아이들로 지하도 안은 만원이었다. 아이고 어지러바라. 웬 사람들이 이래 많을꼬. 웅촌댁은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나아갔다. 지하도를 빠져나오기까지 백줴 이기 무신 미친 짓인지를 몇 번이나 투덜대었다. 바깥으로 나오자 기운이 진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야 말 것 같았다. 그리고 토할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웅촌댁은 주위를 두릿두릿 살폈다. 여자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안도가 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 하였다. 웅촌댁은 사람들을 밀치구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여자아이는 없었다. 웅촌댁은 자신도 모르게 길바닥 위에 주르르 주저앉았다. 기름내 섞인 바람이 불어와 이맛전*의 땀을 식혀주었다. 백줴 암것도 아인 일을 가지고. 허탈한 웃음이 나오려고도 했다. 웅촌댁은 지금의 자신 모습이 참으로 꼴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홀리도 단단히 홀린 기지. 우습고도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이기 다 바른 정신이 사라져간 때문이지 머꼬. 늙음에다 탓을 돌렸다. 그래서인가 자신의 몸이 텅 빈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색색의 불이 아릉아롱 빛나는 높다란 건물들, 서두르며 바삐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만이 한 점 먼지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새삼스레 남편으로 향한 원망감이 불끈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그 원망감은 곧 스러졌다. 우쨌기나 돌아가 누울 방도 있고 주머니에 내일 하루는 장사 안 해도 낼 수 있는 방값 들어 있지러, 이만하믄 된 기지. 그렇게 응얼대었다. 그런데도 텅 빈 껍데기라는 느낌은 물러가지 않았다. 쓸쓸하고 허전하였다. 이상한 일이제. 와 느닷없이 쓸쓸하고 허전할꼬. 너무 오랜만에 바깥세상 구경을 하다 보이 정신이 헷갈려서 그런가. 웅촌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믿고 싶었으므로 자꾸만 끄덕였다. 그러나 웅촌댁은 모르지 않았다. 자신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가는 바깥세상에 나올 때마다 살아온 날이 살날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곤 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웅촌댁은 자신 안의 쓸쓸함을 전적으로 바깥세상에 몰아붙였다. 다시는 그래 이쪽으로 나오지 말아야지. 웅촌댁은 버걱대는 무릎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지하도의 인파 속으로 빨려 들었다.
얼마 후 응촌댁은 낯익고 편안하게 여겨지는 자신의 동네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찻집의 소동은 가라앉아 있었으나 또 다른 싸움이 찻집 맞은편 약국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웅촌댁은 너무 피곤했으므로 싸움 구경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밥집에도 들르지 않았다. 흙강아지 같은 아이들은 여전히 골목 안을 뛰어다니고 있었고 길바닥에 상을 펴놓고 밥을 먹는 일가들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일수계*를 새로 하나 들기로 철석 같이 약속해놓고 첫날부터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오다니. 이러면 정말 못 산다고 정말 못 살아.”
명자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 그리고 사기그릇 부서지는 소리가 골목길을 뒤흔들었다.
“명자네도 며칠 저래 발작을 하다가 주저앉겠지. 가만 잘 살고 있는데 그 먼 친척 된다는 대학생이 나타나면서 갑자기 아등바등 얼굴꼴이 다 달라졌다카이. 이 나이에 멀 그리 잘살아 보겠다꼬. 하루 세 끼 밥 묵고 살믄 됐지. 와 저래 쌓는지.”
길바닥에 상을 펴기 시작하던 여자가 혀를 찼다. 그러고는 웅촌댁을 향해
“할매요, 밥 안 묵었으믄 함께 묵읍시더.”
큰 소리로 말했다. 웅촌댁은 고맙소. 들릴 듯 말 듯 낮게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견딜 수 없이 고단하였다. 방바닥에 쓰러져 누웠다. 방이 저 땅속으로 꺼져드는 듯 느껴졌다. 지하도를 건너왔다해서 이토록 고단할 리는 없을 터였다. 그런데도 웅촌댁은 자신한테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남겨져 있지 않다고 느꼈다. 마음 또한 끝없이 텅 빈 들판처럼 여겨졌다. 인자 정말로 죽을 날이 가까워진 모양이라. 웅촌댁은 자신에게 말을 할 기운이 조금은 있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소리는 웅촌댁의 귓전에까지 와 닿지 못했다. 그래서 웅촌댁은 더욱 서글펐다. 머가 이래 기분이 안 좋을 건덕지가 있다꼬. 얄랑 궂제. 웅촌댁은 끙 하고 돌아누웠다. 그때였다.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소리는 매우 낮았다. 응촌댁은 그래서 자신이 잘못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심장은 마구 뛰었다. 누가 내 방을 뚜드릴 끼라꼬. 웅촌댁은 자신을 향해 뇌었다. 그런데 똑똑똑 소리는 다시금 이어졌다. 웅촌댁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누군고. 누군고·…… 불을 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다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웅촌댁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진정해라. 무신 큰일 났다꼬. 똑똑똑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웅촌댁은 마침내 알전구 스위치를 비틀었다. 그리고
“누군교?”
방문 앞으로 살금살금 걸어가며 자신도 모르게 짐짓 사나운 목소리로 물었다. 방문 너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웅촌댁의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누, 누군교.”
한 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또 한 손으로는 문의 손잡이를 잡은 웅촌댁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더욱 날카로웠다. 이번에도 역시 침묵이 응답이었다.
“귀신이라서 말을 몬하나, 강도라서 말을 몬하나.”
웅촌댁은 그러나 자신의 말을 믿고 있지 않았다. 귀신도 강도도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대체 머라 말이고. 머길래 문만 뚜드리고 말은 몬한다 말이고. 눈앞에 어떤 상이 떠오르려고 하여 웅촌댁은 미친 듯 머리를 흔들었다. 돌았는갑다. 와 난데없이. 웅촌댁은 그러나 더는 참지 못하고 마침내 문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아아, 웅촌댁은 두 다리가 후들거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니가 니가…… 우째.”
여자아이의 두 뺨은 잘 익은 토마토 빛깔이었다. 그리고 두 눈은 시멘트 복도 바닥으로 떨구어져 있었다.
“대체 니가 우째 여게를 알았단 말이고.”
여자아이의 얼굴빛은 점점 더 빨개졌다.
“아이고, 이기 무신 조환*지 알 수가 없네·…… 니 저녁을 몬 묵어서 내한테 감자 얻어묵을라꼬 온 모양이네·…… 그렇제.”
웅촌댁은 왜 자신이 예라는 답을 강요하는 어조로 묻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구운 감자는 다 팔고 없다꼬, 알았나.”
웅촌댁움 방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여자아이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울기는 와 우노. 내가 틀린 말 했나, 그 참.”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여자아이와 웅촌댁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이가 서 있어 좁은 복도의 왕래가 더욱 힘들다. 이런 못마땅함이 담긴 눈이라고 느껴졌다. 그러자 웅촌댁은 그만
“그, 그래 서가지고 다른 사람들 불편하게 하지 말고 들어온나.”
거친 어조로 말하고 말았다. 말해놓고 나자 곧 후회의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드세게 휘몰아쳐왔다. 그러나 신발을 벗어 들고 방 안으로 들어서는 여자아이를 당장에 내쫓을 수도 없는 일이질 않은가. 감당도 몬할 일을. 웅촌댁은 사과궤짝 앞에 쪼그려 앉은 여자아이가 큰 짐덩어리처럼 여겨졌다. 그, 그래 어렵게 생각할 끼 머 있노. 밥을 굶었다 카믄 밥값이나 줘가지고 돌리보내믄 되는데. 그렇고말고. 이 방 주인은 어데까지나 바로 낸데. 내 마음대로 하믄 된다꼬. 웅촌댁은 스스로를 타일렀다.
“니 바른 대로 말해야 된다. 거짓말하믄 순경 아저씨한테 잡아가라꼬 할 끼라꼬, 알았나?”
웅촌댁은 여자아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취조하듯 엄중한 어조로 말하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여자아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니, 집 나왔제, 그렇제?”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자아이는 격 렬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아이라예, 아이라예 꺽꺽 쉰 목소리로 외쳤다. 웅촌댁의 입술 사이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엄마가 동생을 데꼬 얼마 전에 집을 나갔는데예 ·……아버지가 오늘 새벽에 역 앞에로 와서는·…… 쪼매만 서 있으라 하고는 안 나타났어예·……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예·…… 배가 너무 고파서 묵을 거만 눈에 뜨이믄 오래오래 쳐다보았어도 아무도 묵을 거를 안 나눠주었어예. 그런데 할매는예, 그래서·…… 나도·……잘 모르겠어예.”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웅촌댁의 가슴을 찢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인자 겨우 마음 핀하게 살게 되었는가 했더마는 난데없이 이 애물단지가. 웅촌댁은 귀를 막고 싶었다. 그런데 길 쪽 옆방에서도 또 흐느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까맣게 잊었던 정 군의 중신 부탁이 불현듯 상기되면서 웅촌댁은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짜다가 내가 와 이래 귀찮은 일에 말려든단 말고. 나는 나는 이때꺼지 살아온 대로 살고 싶은데. 와 와 와 내를 귀찮게 한단 말고. 나는 누구두 귀찮게 하지를 않았는데. 웅촌댁은 울음소리들이 굵다란 밧줄이 되어 자신을 얽어맨다고 느꼈다. 한번 묶이면 여간해서 풀기 어려운 밧줄이. 눈앞으로 찻집의 소동이 떠올랐고 딸 정자가 숨을 거두던 순간 울부짖던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다. 아아 나는 싫다 말이다 싫다 말이다. 웅촌댁은 몸을 비틀며 소리쳤다. 그리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얽어맨 밧줄이 무겁고 또 무거워서 울 수밖에 없었다. 여자아이가 몸을 떨며 일어셨다. 동시에 웅촌댁의 눈과 여자아이의 눈이 맞닿았다. 배가 너무 고파서·…… 묵을 거만 눈에 뜨이믄·…… 오래오래 쳐다보았어도 아무도 묵을 거를 안 나눠주었어예. 그런데 할매는예. 웅촌댁의 머릿속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맑은 종소리처럼 울려대었다. 웅촌댁은 울기를 그쳤다. 그러자 여자아이가 보일락 말락 한 웃음을 머금고 살포시 주저앉았다. 어찌하여 그 순간 꿈속의 남편 모습이 또다시 웅촌댁의 눈 앞에 떠올랐던지 .
웅촌댁은 자신의 위가 텅 비었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14인 신작소설집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창비 1984); 『겨울위 빛』 (창비 1996)
김향숙(金香淑)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기구야 어디로 가니』 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에
분단현실과 개인적 삶의 관계, 동시대의 보편적 삶과 사회적 갈등에 대한 세밀하고 정치한 소설적 탐구를 지속해왔다.
소설집 『겨울의 빛』 『수레바퀴 속에서』 『문 없는 나라』 『그림자 도시』 『스무 살이 되기 전의 날들』 『물의 여자들』, 장편소설 『떠나가는 노래』 『서서 잠드는 아이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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