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모로코 인상
새벽 네 시가 넘어가면, 인야가 머무는 호텔 앞의 모스크에서 뭔가 주문 외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으스스하거나 다소 음침하면서도, 또 방송으로 나오는 소리라... 인야는 거부감이 느껴졌다.
'여기는 도처에 위험이 존재하고 있으니, 가급적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필요해서 누군가에게 다가가 도움을 요청하는 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그와 반대로 나는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거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하룻밤을 자고 나서도 인야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1 년 중 비오는 날이 며칠 되지 않는다는 이곳에, 그저께 인야가 도착하면서 구름이 심상찮게 몰려 오더니... 그 날은 이미 비를 조금 뿌리기도 했고, 지금도 아주 기분 나쁜 모양새로... 후텁지근한 것도 모자라 도심이 눅눅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인야는 이 모로코(Morocco)라는 낯설고도 오기 싫었던 나라에 대한 인상을 나름대로 정리해보고 있었다.
아무리 본인의 목숨까지 연관된 안 좋은 나라라고는 해도, 사람이 사는 곳이긴 했고(물론 인야가 그마저 부정했던 건 아니었지만)...
좋은 점이라면, 우선 동양인이라고 해서 천대하거나 무시하는 기색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호의 뒤에는 늘 자신이 가늠할 수 없던 뭔가의 대가가 따라붙었지만, 적어도 인종을 두고 차별하는 눈초리는 느끼지 못했다. 스페인에서는 흔하게 겪었던 그 쓸쓸한 시선이 여기엔 없다는 게, 뜻밖의 위안이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의외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빼앗아갈 뻔했던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그 사람들로부터 받게 된 뜻밖의 편안함?
그리고 과일값이 싼 것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체리와 살구, 자두, 아보카도, 수박, 멜론 — 과일을 좋아하는 인야로서는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다소 비위생적이란 게, 걸리긴 했지만.
그리고 개발이 많이 되지 않은 탓에,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인야의 눈에 들어왔다.
마라케시에서 차를 타고 아가디르로 오며 본 것과 해안 몇 군데를 둘러본 것이 전부였지만, 건조한 사막의 드넓은 풍토와 끝없이 이어지는 깨끗한 백사장은 너무나 부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기후도, 생각보다는 훨씬 좋은 것 같았다.
마라케시 같은 내륙 도시에서도 한낮엔 강한 볕을 피해 실내나 그늘에 숨어들어야 했지만, 밤이 되면 선선한 바람에... 홑이불을 덮고 자는 게 좋았다.
그날은 웬일인지 비가 조금 내렸지만, 아가디르 쪽도 1년 내내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기후가 유지된다고 하던데... 낮의 더위만 지나면 아침저녁은 시원하고, 밤에도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니, 사람 살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곳 같아 보였다.
그런데 나쁜 점은, 그보다 많았다.
무엇보다 지저분해서, 인야는 이맛살을 찌푸리곤 했다.
집을 보러 다니며 느낀 거지만, 부엌이며 냉장고며 설거지도 안 된 채로...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집주인들을 보면서는,
'이렇게 해놓고 어떻게 사는 걸까? 그리고 남들에게(하물며 외국인에게) 이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다. 물론 화장실 시설도 조악하기 짝이 없다 못해 불결하기까지 해서,
'아, 이런 곳에서는 못 살 것 같아......' 하고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인야가 호텔급의 화려한 화장실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기본적인 청결함만 있어도 견뎌낼 것이었지만, 들어가고 싶지도 않을 정도의 환경에 질려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환경치고 집세는 결코 싸지 않았다.
인야가 이곳에 오기 바로 전에 스페인 까스띨랴(Castilla) 지방에서 살 때도 한 달 250유로면 됐는데, 여기는 그보다 더 비싸면서도 환경은 더 열악했던 것이다. 그러니,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 돈을 다 받아 처먹으려 한다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그들의 사고방식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가장 기분 나쁜 건, 거리에선 늘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동양인이라 그들의 눈에는 바로 띄게 마련이겠지만, 인종차별이 없는 건 좋았지만... 겉으로 베푸는 친절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랐고, 그 대가에 응하지 못하면 화를 내거나 위협을 가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니 인야로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일단 경계해야만 했다.
더구나 스페인에서 모로코인들과 안 좋은 전력이 있는 인야에게는, 그 경계심이 유난히 셀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런 현상에 인야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였는데,
'여기라고 모든 사람들이 강도일 수는 없겠지만, 그냥 겉으로 그리고 초면에... 내가 어찌 이 사람들을 바로 신뢰할 수 있겠냐고?' 하는 심정이었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다.
마요네즈를 잔뜩 끼얹은 샐러드, 맹맹한 토마토 살사, 스페인과는 다른 올리브 절임......
더구나 돼지고기를 즐기는 인야에게(인야는 육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 중 돼지고기를 제일 좋아했다), 이슬람 국가이기에 돼지고기 구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쉬움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거리의 무질서도 사람을 당황케 했다. 신호등은 거의 없고, 차와 오토바이와 자전거와 사람이 뒤엉켜 다니니,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거리에서도 이리 치고 저리 쳐, 꼭 이방인 신세가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비해 무질서하게만 보였던 스페인마저도 여기에 비하면 '선진국'처럼 느껴졌다.
시민들의 준법정신도 없고, 정직성도 없고, 비위생적인 이 나라에, 정이 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며칠 사이에 받은 인상이 그랬다.
그리고 당장 인야 앞에는, 집을 구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세 달은 지내다 돌아가야 하니까.
정도 가지 않는 나라에서 막막하긴 했지만, 여기 올 때도 그랬듯이...
'그래, 어쩔 수 없어. 나에게 주어지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해 보자.' 하고 있었다.
인야 자신이 이 곳에 머물 운명이라면, 그에 맞는 공간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고... 아니라면, 또 다른 곳으로 가면 될 일이었다.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