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일로 둔갑 된 경위
성경의 가르침(cf 출20:8,11; 신5:15)과는 전혀 다른 이와 같은 일이 왜 일어났을까?
이를 밝혀야 할 이유에 따라 성경의 기록을 주도했던 사도들도 다 사라진 옛날, 즉 신약성경의 기록이
편집될 기미가 보일 무렵인 AD 130여년 경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서기 132~135년 사이 당시 로마의 제후(諸侯)였던 ‘
’하드리안’황제는 토라(모세 5경)의 낭독금지와 할례의 시술금지, 그리고 안식일 준수 금지 등의 금령(禁令)들을 내세워 유대를 아예
지구상에서 쓸어 버리려고 작정한 칙령(勅令)들을 발표, 이를 유대를 향해 제시해 놓았는데, 이 금령들을 어기면
사형(死刑)이라는 어마무시한 칙령이었다.
그러나 아직 까지도 이스라엘이 멀쩡한 걸 봐서는 이 칙령에 굴복한 건 유대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카톨릭의 전신)들이 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할례는 유대가 아니라서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모세오경인 토라의 낭독 역시 로마의 눈을 피하기가 조금은 수월했다지만 문제는 안식일이었다. 모두가 회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관습인 안식일 준수만큼은 유대와의 차별을 꾀할 수 없는 최대의 걸림돌이 되는 게 문제로
떠올랐던 것이었다.
이윽고 유대와의 차별이 안식일로 인해 힘들어지자
목숨이 경각에 달한 위기를 모면하는 길은 안식일을 구별하는 대신에 일요일에 예배를 드림으로써 유대와의 차별을 도모하여
위기를 넘겨보자는 꼼수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었다. 바야흐로 기독교의 존재가치를 말해주는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이 되는 날로
일요일이 등극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지만 기독교회로선 오히려 큰 불행을 떠안은 셈이었다.
왜냐하면 이 제도의 기준으로 일요일로의 변경 자체도 “불법”(마7:23)이었지만
이제 위기의 사태가 진정이 되었다면 일요일로 인해 변형(變形)이 되어 버린 “7일 일주일”제도의 순환 기준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안식일로 다시 복원(復元)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번을 말하지만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은
천지창조는 물론이요, 애굽과 같은 현세, 즉 죄(罪)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신자(信者)가 된 신분임을 축하하고 이를
기념하는 차원에서 요구되고 지정되었기 때문에 일요일이 아니라 안식일이었다는 사실이다.(cf 출20:8,11; 신5:15)
- 김종성 -
첫댓글 흔히들 머리가 둔함을 가리켜 “또라이”(돌 아이)같다는 말들을 하는데, 마치 수많은 목사님들 모두가
딱 그 수준인 것 같으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의 절대적 필요와 불가피한 관습으로서의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일을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명분으로 그만큼 알아들을 수 있게 일러 주었음(cf 출20:8,11; 신5:15)에도
불구하고 갖은 토(討)를 달아가며 이에 따르기는 커녕 마치 청개구리 마냥 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날인 일요일에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주(每週)마다 그러고 있음이다. 이를 보는 주님의 심정은
어떻겠느냔 말이다.
흔히들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인 일요일을 내 세우는 목사들을 볼 수가 있는데,
무식함도 유분수지, "7일 일주일"제도와 부활 사건 간에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 모양인지 알다 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4년제 대학까지 나왔다는 목사들이라 더욱 기가 막힌다. 제발 하나님에 의한 천지창조가
명분이 되어 요구하신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 일인 안식일에 대해 다시 공부하시길 바래본다. 일요일은
카톨릭의 산물인 "사람의 계명"(마15:9)이다. 좀더 자세한 사항은 168-170편과 201-204편을 참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