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두 달이 꽉 차게 지나갑니다.
10월 1일 아침
세수하다가 허리를 삐끗하는 바람에 일하러 가지도 못하고
2주간 침도 맞고 정형외과에서 사진찍고 약타서 먹고 업무에 복귀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는데
갑자기 다리로 통증이 넘어가고 일이 커지더니
근전도검사에 MRI검사를 하니 추간판 두 군데에 문제가 있더군요.
3,4번은 신경가지를 많이 누르고 있고 4,5번은 협착인데다가 신경도 조금 누르는 상태라
뼈주사를 맞고 정형외과치료와 침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하던 일도 결국은 중도포기 각서 써주고 그만둬야했었지요.
11월 중순에는 잠을 단 한 숨도 못 잘 정도로 통증이 심해서
더 이상 운동치료와 약물치료 정도로는 안되겠다 싶어
바로 근육과 신경전달 체계에 문제가 있는지도 살펴보고
MRI 검사를 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시월초 이틀 정도만 운동을 쉬었고 그 후로는 3월중순부터 하던대로
매일 집근처 천변 10킬로미터를 걸으면서 거꾸리 기구로 복근도 단련하고
팔힘으로 척추 견인도 하고 나름대로 물리치료를 추가로 하는 셈인데
통증이 생각보다는 쉬이 가벼워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매일 운동을 하면서 마무리로 시장통과 먹을거리 골목을 훑으며 집으로 돌아 옵니다.
시장통을 지날 때면 3포기를 한데 묶은 배추의 가격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보게 되고
무다발이며 각종 채소들이 눈에 자주 들어 오곤 했었습니다.
한 두 포기를 하더라도 김장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고춧가루의 가격이 높아서 망설였었습니다.
1킬로그램에 2만 5천원이던가?
시골집에 있는 고춧가루를 좀 가져와서 김장을 하는 게 좋겠는데
허리하고 다리로 뻗은 통증때문에 버스를 탈 수가 없다보니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시골집 밭의 콩대도 못 꺾었는데 고춧가루는 언감생심입니다.
며칠을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결국은 중국산 고춧가루로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1킬로그램에 1만원.
뭐 그 사람들도 요즘은 좋은 걸로 잘 보내오리라 생각합니다.
배추 3포기 1망에 8천원
당파(쪽파) 한묶음에 2,500원인데 손질 안된 걸 사는 바람에 고생 좀 했습니다.
부추 무 보로콜리 양파 마늘 홍고추(고춧가루 대용 조금) 동태포 멸치젓까지 하면
모두 4만원 정도 든 것 같습니다.
통증이 있다보니 예전처럼 모든 걸 한번에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배추도 너무 오래 절여서 더 많이 헹궈내야 했고 늦은 밤까지 무리해서
김장을 하다가 자칫 허리에 부담이 더 될 수 있으니 손질한 채소들이 마르더라도
그 쯤에서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도
밤늦게까지 김칫속에 들어갈 채소들 손질한다고 허리에 무리가 갔었나 봅니다.
오늘 아침에 통증때문에 눈을 떴습니다.
11월 중순때 인내를 넘어 잠도 못 잘 정도의 통증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소염진통제가 들었는데 그 정도는 턱도 없었나 봅니다.
자기직전에 먹으라고 처방을 받은 진통제를 아침에 먹었습니다.
역시 독하더군요.
잠시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손질해놓은 김장거리는 자꾸 말라만 가는데......
누웠는데도 구토증세에 어지럼증이 찾아 왔습니다.
정신이 아득하면서 통증이 조금 잦아드나 싶더니
그 것이 전부였습니다. 곧바로 다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진통제 성분을 누리검색해보니 12시간내에 다시 먹으면 안된다고 합니다.
일요일이니 병원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운동치료밖에는 없다 싶어서 억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천변으로 나갔습니다.
속보로 걷는데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으니 정말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천변에 여러 거꾸리 기구가 있지만 다리 아래에 비를 피해서 할 수 있는 곳은
딱 한군데뿐입니다.
십오분이나 이십여분 정도 했으려나?
복근단련과 추간판 견인운동을 반복해서 했습니다.
견딜 수 없는 통증은 어느 정도 감당할 수준으로 줄어 들었습니다.
세상이 달라보이고 만물이 사랑스럽고 포근해보이기까지 했습니다. ㅎ
김장거리가 세면장이며 주방개수대며 사방에 널려 있으니
집에서 점심을 먹는 건 불가능한 일.
단골가게 강대포에서 5천원짜리 저육볶음을 시켰습니다.
금방 한 이밥이 아주 맛났습니다.
통증이 줄어 든 후에 맞이하는 점심상이 더없이 행복했었습니다.
밥 한 공기 더 시켜서 먹었습니다.
자~~이제 집으로 가서 바로 김장돌입해야겠지요?
생강을 조금 갈면서 김칫속이 시작됩니다.
당파(쪽파)며 부추를 잔뜩 썰어 넣었습니다.
무도 채칼로 썰었고 감자녹말가루로 풀을 쑤었습니다.
소금간에다가 멸치액젓으로 풍미를 더했고요.
홍고추와 마늘 브로콜리 양파는 전기맷돌(믹서)의 힘을 빌렸습니다.
고춧가루를 많이 아꼈는데 조금 더 할 걸 그랬습니다.
(마늘을 사놓고도 그 전에 쓰고 남은 것만 넣고 말았네요.
양이 너무 적게 들어갔는데 아차 싶어서 방금 나가서 확인해보니
비닐봉다리가 어지러이 널부러진 곳 어디쯤에서 멀쩡한 한봉지 마늘이
발견되었습니다. 아~ 문제네......)
보통은 배추를 덜 절여서 뻣뻣헌 걸 버무린 기억뿐인데
이번에는 아주 흐물흐룰해졌습니다.
반으로 쪼갠 배추 세 쪽을 먼저 버무려 통에 담았습니다.
이 것 보다 조금 작은 통에는 두 쪽을 담았고요.
무채 조금 썰어놓고 남긴 무는 무김치로
배추 손질하면서 떨어져나간 잎들만 따로 모아서 금방 먹는 김치로 담아 둡니다.
흰 통은 무김치
요리할 때에 넣을까 싶어서 남긴 당파(쪽파)도 김칫속이 많이 남았으니
마저 손질해서 버무립니다.
최대한 입식으로 할 수 있게 지형지물을 잘 이용했습니다.
덕분에 통증을 크게 느끼지 않고 허리에 무리도 덜 가는 선에서 김장완료.
마지막으로 동태포 녹여 둔 것을 버무립니다.
원래 동태포는
다진 마늘에 양파며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넣고 무도 얇고 작게 썰어 보탠 후에
조선간장으로 간을 하고 고춧가루를 보태면 아주 맛난 젓갈이 되는데
그냥 이렇게 했습니다.
굴도 동태젓갈(고향에서는 명태선 이라고 부릅니다) 담듯이 하면 참 맛있지요.
4만원이나 들었으니 차라리 그냥 사먹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하고보니 그 게 아닙니다.
모르긴해도 배추김치 세 포기를 사먹는다면 못해도 10만원어치는 될 것 같고
무김치도 1만원, 동태김치도 1만원, 배추 막 버무린 것의 양도 1만원으로
겸손하게 잡아도 13만원어치는 되는 것 같으니 잘 한 것 같습니다.
마구 버무린 김치하고 동태김치로 저녁을 먹는데
김칫속 간을 하면서
'야~~ 이 거 너무 싱거운데......빨리 시어터지는 거 아닌가?' 싶었을 때에
'아니다. 지금 간이 맞다 싶으면 나중에 반드시 짠 김치를 먹게 되더라'
는 생각이 동시에 일었는데 역시나 다 하고 나서 반찬으로 먹으니
약간 짭잘한 듯한 맛이 딱이었습니다.
김치를 담그면서 간이 맞다 싶으면 어김없이 열무를 넣고 무도 추가로 넣고 하면서
양이 처음의 세 배까지 늘어나는 경험을 수차례 했었는데도
도무지 발전이 없었습니다.
올해는 어쨌든 성공했습니다. ㅎ
의자에 앉아서 제법 오랫동안 글을 써도 견딜만한 통증인데다가
각종 김치를 그득하게 냉장고를 채워두었으니
작지만 큰 행복으로 12월의 첫날을 보냅니다.
첫댓글 마니 마니 아프셨군요. ㅠㅠ
매번 담그신 김치는 맛나보이나 주시는 건 사양.
올해는 덜 짜려나~~~^^;
수고해 담그신 김치 드시고 운동 등 ... 빠른 건강 회복을 기원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래도 저릿한 통증이 올라오고 그윽히 괴롭힙니다.
병원가서 물리치료받고
지금은 한의원에서 침맞고 전기치료중.계속 조금씩 나아지겠죠.
많이 아프셨군요~
경험으로 협착이 있으면 엄청 아파하더라구요..
뼈주사로는 협착은 ..
제 생각엔 더 고생하시지 말고
종합병원 강남 세브란스가 신경외과 잘하더라구요
수술이 아닌 시술로 협착부분 녹이는 주사로도 ..
오래두지 마시고 시술로 가능한 시기에 종합병원으로 가세요
근본적인 부분을 해결해야지
침등은 일시적으론 통증완화에 도움되겠지만
신경을 누르는 부분이 근본적 으론 안된다 해요
디스크부분을 해결해야 신경이 눌리질 않아 다리 통증등 저림도 해결 되더라구요~~
제 경험으론 시기를 놓치지 마시고 고생도 덜 하시고
근본적인 해결이 중요할듯..
염려 고맙습니다.
정밀사진 가지고 있으니 상태봐서요.
@바람처럼 의사가 시술을 권하진 않던가요?
@걷고 아직은요.
단계적으로 치료하는 중
그 컨디션으로 김장까지 하시다니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바람처럼님, 운동중독은 아니죠?^^ 급성 통증에 복근운동은 정말 아닌데 말입니다...
거꾸리 운동기구에 발걸고 거꾸로 비스듬히 누운 채로
5도 정도만 상체를 들고 1도 남짓 까딱거리면서 백 오십 이십오개 순으로 배에 힘 약긴주는 정도만 해요.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요.
운동 너무 빡세게 하지마시고, 환갑되면 낫습니다.
그럼 얼마 안 남은 건가요? ㅠㅠ
@바람처럼 다시 한살부터 시작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