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진보 교육감의 약진으로 교육계가 요동을 치고 있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 참여정부가 어렵게 통과 시킨 사립학교법을 온갖 모략 선동을 해서 도로아비타불을 만든 덕분에 ‘사학비리의 영원한 기념비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상지대학교의 김문기 씨가 총장으로 복귀하려고 시도 하고 있다. 같은 사학 가문출신인 문교부 장관까지 너무 하다고 생각해서 말려도 법대로 하자는데는 별 수가 없는 모양이다.
사립학교는 개인 혹은 단체가 주인이기 까닭에 법이 여간 촘촘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임자 마음대로 하게끔 되어 있어서 때로는 공립에서는 있을 수없는 비정상적인 일도 벌어질 수 있다. 30 여 년 전 사립학교의 교목이었던 나도 바로 그런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H상고는 재력이 있는 독지가의 육영사업이 아닌 새마을 학교에서 고등공민학교와 전수학교를 거쳐 정규학교까지 발전한 학교로서 교육 보다는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장사하는 전형적인 한국형 사립학교였다. 당시 그 학교 학생들의 학력 수준은 수도권에서 최저의 상태였고 상대적으로 인문계 학교에 비해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도 많았다. 교사들의 수준도 공채로 들어온 젊은 교사들 외에는 전수학교 시절부터 터줏대감으로 내려온 교사들로 수준이 낮은 편이었다.
재단이라는 것도 형식적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학교는 완전무결하게 교장의 개인 재산이었고 교사들은 교장이 고용하는 직원에 지나지 않았다. 이 학교에는 결혼을 임신을 하면 교육상 좋지 않다고 권고해서 사직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처녀 여선생들이 유난히 많았다. 사실은 학교 운영 면에서 교사들의 호봉이 높아지면 지출이 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학교였지만 기독교 학교도 아닌데 교목이 있었다. 미션스쿨도 아닌데 교목이라니? 그것은 당시의 교장이 기독교인이었던 설립자에게서 학교를 인수 받을 때 교목 제도를 실시하기로 하는 조건이 붙어있었고 학교에 교목이 있다는 것이 무늬도 괜찮고 해서 있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마치 그 학교의 교목의 위치는 군대에 군목, 병원에 원목 같은 위치였다.
매주 방송으로 15 분 동안 예배를 드렸는데 교사 중에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예배 시간이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아서 실질적 자유 시간이었다. 그러나 부활절, 추수 감사절 예배 때는 헌금을 했다. 가난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이니 전교생 2000 명의 헌금을 모아도 얼마 되지 않아서 교목실의 경비로 쓰고 말았었다. 한 마디로 형식적이고 무성의해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행사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부활절 예배에서 걷는 헌금은 장학금으로 지출하는데 선발 기준을 성적순이 아니라 헌금을 가장 많이 한 반의 학생에게 주겠다는 의견을 냈다. 일부에서 입찰 경매식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나는 "안 해 본 방법이니 일단 한 번 해보자"고 설득을 했다. 교목이 큰 권한이 있는 학교도 아니었는데 대부분의 선생들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식의 무관심 덕분에 내 의견대로 실시를 하기로 했다. 일단 제도가 그렇게 되었으니 평소에 전혀 헌금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던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헌금을 할 것을 광고해야만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예년에 비해서 훨씬 많은 헌금이 거쳤다.
일부 열심 있는 선생들은 나에게 은밀하게 다가 와서 다른 반의 헌금 액수를 묻고 적으면 교사가 자기 돈을 더 내서 1 등을 해서 장학금을 타 가기도 했다. 일종의 내부 거래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의도는 좋았었지만 열심히 지나치다 보면 본질을 상실해서 결국 ‘돈 놓고 돈 먹기’의 게임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 물론 한 번 해 보고 그만 두기는 했지만.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짖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규제가 자유로운 사립학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사고 폐지 문제로 곤욕을 겪고 치루고 있는 조희연 교육감이 고교 동문인 것을 자사고 폐지 보도를 통해서 알았다.
강북의 명문고들은 모두 강남으로 이전을 했지만 중앙고는 재수 없게(?) 다른 어떤 곳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천혜의 명당(비원과 삼청공원을 끼고 있어서) 자리이어서 청와대와 바꾸자고 안 바꿀 만큼 좋은 터에 문화제급의 유서 깊은 건물 때문에) 탓에 강북에 홀로 남아서 독야청청 가난뱅이 학생(?)들을 받아야만 할 수 밖에 없었다.
몇 해 전에 친한 동기생이 교장이 되어서 모교를 방문을 해서 교장과 같이 교내를 돌아보는데 이상하게 교장을 보고 인사를 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너무 이상해서 내가 권 교장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요즘은 전교생이 모여서 교장의 훈화를 듣던 조회라는 것이 없고 교장이 학생을 대할 수 있는 기회가 개학식, 졸업식 이 외에는 전혀 없어서 피차간에 잘 모르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선생님들이 사정이 있어서 빠지는 시간에 들어가서 학교의 역사를 가르치고 긍지를 심어 주려고 노력을 한다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해 주었다.
한 번은 입학한지 얼마 안 되는 1 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그런 내용의 강의를 하고 나왔다고 한다. 교장이 다녀간 다음에 담임교사가 들어와서 아이들에게 "교장 선생님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물으니까 한 녀석이 볼멘소리로 하는 말이 "교장 선생님이 들입다 자기 학교 자랑만 하다 가셨어요."라고 명답을 했다고 해서 배꼽을 잡았다. 그 녀석은 아직 제가 어디 있는지도 감을 못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교장은 개천에서는 미꾸라지 밖에 날 수 없는 강북의 현실에서 그나마 중앙고는 자사고가 되어서 조금 희망을 가져본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자사고라는 밥그릇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반대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 교육 전체를 생각한다면 자사고 폐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과 대립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지만 유독 한국은 심하다. 왜냐하면 한국의 보수는 식민지, 내전, 구테타를 거치면서도 한 번도 물갈이 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의 본질은 '밥그릇'과 '이상'의 대립이다. 분명한 것은 내 밥그릇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높을수록 배고픈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최근의 자사고 논쟁이 극명하게 들어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사고 문제는 본질적으로 한국 사회 구조의 부산물이기에 서울시 교육감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벅찬 문제이다. 그러나 자사고를 한국 교육의 방안으로 내놓은 이명박 식 교육 방법 보다는 자사고 폐지 논쟁으로 국민이 교육문제를 다 같이 고민할 수밖에 없게 만든 조희연 교육감은 그것만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박정희가 평준화를 시키고 이명박이 자사고를 만들었는데 박근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 교육에 대해서 무슨 생각이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