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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아홉 번째
성경 ; 창45:1-15, 롬11:1-2,29-32, 마15:10-28
제목 ; 하나님의 자비를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고난의 삶에 소망을 말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워렌 위어스비’라
는 사람이 쓴 책인데, 이분이 이 책 속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근에, 나는 몸이 아프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한 남자와 대화를 나
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가 그렇게 비참한 이유를 알 수 있었
다. 그것은, 그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당한 불쾌한 언어들을 시시콜콜 모
두 다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빛은 가끔씩 살의가 가득한
분노로 타올랐다. 나는 그를 보면서 용서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했다. 용
서는 쉽지 않지만 꼭 필요하다. 용서하지 않을 경우, 결국 다치는 사람
은 상대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한 다음, ‘위어스비’는 ‘해나 모어’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기독교인은 원한보다 용서의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용서를 하면, 분노의 비용, 증오의 대가, 심령의 낭비가 절약된다.’
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자비 덕분에 살아가고 있
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제정해놓으신, ‘죄를 지으면 망한
다.’는 원칙을 우리에게 적용하신다면, 지금 이 자리에 남아 있을 사람
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자비를 베푸시고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이처럼 살아남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 지은 죄를 회개하고 고백함으로써
용서함을 받은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지은 죄를 털어놓지 않은 채
숨기고 있는 것도 많거니와, 죄를 짓고서도 죄인 줄 모르는 것까지 다
따진다면, 아마 그 수를 다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지 않는다면, 오늘 우리가 어찌 살
아남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께서 아무리 우리에게 자비와 사랑을 많이 베푸신다
고 해도, 우리는 그 은혜와 자비의 축복을 누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잊
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지 않으셔서 우리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지은 죄로
인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아서 불행
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어스비’가 말하기를 ‘용서하지 않으면, 다치는 사람은 상
대방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허물을 내
머리와 내 가슴에다가 계속 쌓아놓고 살 경우, 그 피해와 고통은, 바로
나 자신이 입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
푸시려고 모든 불순종을 참아오셨다(11:32)’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그 자비를 깨닫게 하시려고, 우리의 불순종과 거역의 죄를 눈감아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깨닫게 하시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인
데, 그 사랑에는 반드시 용서가 먼저 선행(先行)되어야 하기 때문입니
다. 다시 말해서, 용서가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는 고로, 먼저 하나
님의 용서와 사랑을 깨닫고 배우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는 것입니다.
아주 깨끗하고 정직하게 올바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일지라
도,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지 못할 경우, 결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말씀드렸듯이, 다른 사람을 정죄함
으로써 생기는 피해의식과 억울한 감정이 정죄하는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별로 큰 잘못을 행하지 않았는데, 그런대로 깨끗하고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건만, 그 아무개 때문에 손해를 보고 어려움을 당
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될 경우, 그래서 억울하고 속상하다는 생
각을 하게 된다면, 그런 사람은 결코 행복한 인생을 살 수가 없는 것입
니다.
어느 스페인 아버지가 그 아들과 다투었는데, 그만 그 아들이 집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 ‘파코’의 잘못을 용서하
고 아들과 화해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신문에다 이렇게 광고를
냈습니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호텔’에서 만나자. 너의 모든 잘
못을 다 용서했다. 아빠가.”
그런데, ‘파코’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의 철수나 영희처럼, 스페인에서
아주 흔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약속한 그 날짜에 그 장소로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무려 800명이 넘는 젊은 남자들이 그 자리에 나
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파코’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두,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갔던 사람
인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원하고 용서를 기다리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용서
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축복은 하나님
의 용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실제로 깨닫고 경험한 사람만 타인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
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이야기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결국 그
중심내용은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사람
들에게 수없이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우리 인류가 존재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은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도, 그 은혜와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할 경우, 그런 사람은 불행한 인
생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입
니다. 그런고로, 성경을 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깨닫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충분히 깨닫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
고 있노라 하면서도, 그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거나 원망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고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는, 인류의 죄와 불행이 어떻게 해서 발생했고, 그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책입니다. 인류의 죄는, 사람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원칙을 어기고 불순종함으로써 생겨났다
고, 창세기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들이 그 욕심과 야망을 채우려고 부정과 불법을
행함으로써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은 죗값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일평생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그 마지막에는 허무하게 인생
을 마쳐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가엽고 불쌍한 것이 우리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자비를 베푸셨던 것입니
다. 사람들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참뜻을 깨닫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면, 다시 한 번 새롭게 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열어주신 것입
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아
브람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셔서 ‘내가 일러주는 대로 살면 복을 베풀겠
다.’고 일방적으로 약속하신 다음, 이런저런 축복을 선언하셨습니다. 그
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을 받게 함으로써, 동서고금 모든 인류의 새로운 모델로 삼고자 하셨
던 것입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의 증손자인 요셉 대(代)에 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를 보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이렇게
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요셉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무튼,
요셉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그
리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들을 무조건
용서함으로써,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
다.
그런데 만일, 그의 형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동생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셉이 일방적으로 형들을
용서할 수는 없었으리라 여겨집니다. 형들이 생각하기를 ‘요셉은 팔자
가 사나워서 애굽으로 팔려갔고, 그 반면에 운이 좋아서 애굽의 국무총
리가 되었다.’고 판단했다면, 그래서 요셉에게 ‘우리가 무슨 큰 잘못을
했느냐?’고 하면서 항의를 했다면, 요셉의 이야기는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입니다.
하건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말하자
면, 용서해야 할 사람은 많은데, 용서 받을 사람은 없다고 하는 사실입
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허물과 잘못은 모르고, 다른 사람의 잘
못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불행입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정
죄가 있는데, 정작 용서받아야 할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옛
날 애굽에서 요셉과 그 형들이 펼쳤던 그 아름다운 장면을, 오늘 우리
주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에, 형제와 이웃 간에,
서로 물고 뜯고 다투는 이전투구(泥田鬪狗)만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
다.
‘워렌 위어스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용서하는 마음을
기르기 시작하라.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사랑으로 채워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누군가가 당신에게 상처나 모욕을 주더라도, 당신은
마음으로 즉시 용서하라. 너그러운 태도를 갖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
도하면서, 상대방을 사랑으로 대하라. 증오는 불행과 속박을 주지만, 용
서는 자유와 기쁨을 준다는 것을,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성령님은, 날
마다 당신 안에서, 당신을 통해서 일하실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그 삶의 기류가 달라질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용서가 우리 인생을 완전히 바
꿔놓게 된다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해서 불편하고 답답했던 그 마음
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용서가 이루어지면,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바뀌
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편안해지면 잠도 잘 오고 좋은 꿈도 꿀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지금은 너희가 하나님을 거역하나, 언젠가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롬11:31)’라고 했습니
다. 이 말씀을 분석해보면, 세 단계로 나눠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거역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서로 불신하고 원망하며 미워하는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
다.
요셉이, 그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정의를 굳게 믿
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요셉은 철저하게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들이 자기를 팔
아넘긴 것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의 공의와 섭리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속여서라도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정의를 무시한 채 인간의 욕심대로만 살
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많은 이웃과 형제
들에게 아픔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그 마음이 결
코 편치 못합니다. 늘 불안하고 괴롭습니다. 허전하고 쓸쓸합니다. 이것
이 바로, 죄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잘못을 범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잘못을 잘 모
른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저 남 탓만 하면서 원망하는 것입니다. 혹시
라도 그 주변에서 충고라도 할라치면, 결코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요셉의 형들은 일찌감치 자기들의 잘못을 깨달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용서가 가능했던 것이고, 그리고 그들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질 수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형들이 자
신들의 잘못을 알고 뉘우쳤기 때문에, 요셉과 화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
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던 불안과 걱정에서 벗
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용서하고 화해하게 되는 것을 ‘하나님의 자비를 함께 나눈
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처럼 용서하고 화해한 후
에 서로 사랑하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기를 원
하셔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그 놀라운 은혜와 자비를 계속 베푸시
고 있는 것입니다.
‘존 브로크만’이라는 사람이 쓴 ‘지난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이
란 책이 있습니다. 인쇄술, 전기, 비행기, 컴퓨터, 인터넷 등을 포함해서,
인류가 발명한 121가지 위대한 발명품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발명품 중에는 지우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우개가 발명되면서, 비로
소 인류의 기록문화가 극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우개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의 여러 위대한 예술가의 데
생이나 스케치, 또는 시인과 음악가들이 만든 현존 작품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존재하는 그런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인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십자가’라는 지우개로, 우리가 지난날에 범했던 모든 실수와 허
물을 깨끗하게 지워주셨습니다. 물론, 우리 스스로 자신의 잘못과 허물
을 깨닫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때에야, 그런 역사(役
事)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많은 실수와 잘못을 범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예수의 십자가’라는 지우개로 우리의
죄와 잘못을 말끔히 지워서 없애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좀 더 훌륭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숙해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의 은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자비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
할 때, 더욱 풍족하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지금보다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누리면서 더욱
행복하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