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속 인물, 패션 디자이너, 디바들에 의해 꾸준히 진화된 진주 이야기.
진주 연대기
- 기원전부터 진주는 여자들의 중요한 순간에 늘 함께했다. 역사 속 인물, 패션 디자이너, 무대 위 디바들에 의해 꾸준히 진화된 진주 이야기.
B.C 48’s
클레오파트라의 진주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를 유혹하기 위해 연회를 준비했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 놓인 건 화려한 만찬 대신 식초가 든 잔 2개.
실망한 안토니우스를 위해 클레오파트라가 준비한 건? 바로 그녀의 귀에 걸려 있던 커다란 진주 귀고리다. 그녀는 식초 잔에 진주 귀고리를 넣어 녹인 뒤 단숨에 마셔버렸다. 당시 진주는 15개의 나라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귀한 보석이었다고.
이보다 더 통 큰 만찬이 어디 있으랴!
1600’s
소녀의 진주 귀고리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그림. 1666년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파란 터번을 쓴 여자의 초상화를 그렸다. 커다란 눈, 살짝 벌어진 촉촉한 입술에는 소녀의 기운이 가득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건 ‘진주 귀고리’. 이는 그림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구심점으로, 페르메이르는 진주가 지닌 ‘순결’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1. 0.65캐럿의 다이아몬드와 화이트 진주가 세팅된 드롭 이어링 1천2백만원대 드비어스.
2. 다이아몬드 십자가 모티브의 아코야 진주 드롭 이어링 가격 미정 루씨에.
1800’s
최초의 원형 양식 진주
진주가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게 된 데에는 1893년 미키모토가 선보인 양식 진주의 역할이 가장 컸다. 진주 양식은 1200년대 이전부터 중국에서 이뤄져 왔지만 불완전한 모양을 지녔었다. 하지만 미키모토는 완벽한 구형의 아코야 진주를 생산해 냈으며, 이것은 이후 고가의 천연 진주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나는 전 세계 여성들의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고 싶다.”
가히 진주 보석의 문화를 바꿔놓은 자가 꿈꿀 법한 말이다.
- 양식한 아코야 진주와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에메랄드가 어우러진 미키모토의 다기능 주얼리. 1930년대 작품.
1920’s
플래퍼가 사랑한 진주 목걸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여성들의 옷차림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정숙한 부인 대신 ‘플래퍼’라 불리는 말괄량이 여성들이 등장했는데,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H라인 드레스를 즐겨 입었으며, 팔과 목을 훤히 드러냈다.
또 보브 단발머리에 긴 진주 목걸이를 한 바퀴 휙 둘러 스타일링을 마쳤다. 플래퍼를 대표하는 수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담배와 긴 진주 목걸이, 이것이 바로 재즈 시대를 대변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 체코 글라스 진주에 24k 골드 도금이 장식된 빈티지 태슬 목걸이 13만8천원 모드곤.
1924
코코 샤넬의 인조 진주
핸드백, 블랙 미니드레스, 팬츠 등 샤넬 여사의 ‘최초’ 업적은 너무 많지만, 패션사에 한 획을 그은 아주 중요한 아이디어가 또 하나 있다. 1924년, 인조 진주와 크리스털을 사용해 최초로 ‘코스튬 주얼리’를 선보인 것. 코코 샤넬은 자랑 삼아 착용하는 진짜 보석이 감각 없는 패션이라 여겼으며, 자신이 만든 진짜와 똑같은 모양의 인조 진주를 찬양했다. 또 이는 샤넬의 심플한 컬렉션을 보완하는 최적의 액세서리로 활약했다.
1950’s
재클린의 진주 목걸이
화사한 칵테일 드레스를 즐겨 입은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 섹시 아이콘 마릴린 먼로, 우아하고 귀족적인 외모의 소피아 로렌에 이르기까지, 1950년대의 아이코닉한 여성들은 모두 목에 딱 달라붙는 진주 목걸이를 즐겨 찼다. 이는 쇄골이 드러나게 넓게 파인 네크라인의 드레스, 튜브 톱 드레스와 최고의 궁합을 자랑했다.
1981
다이애나의 진주 티아라
1981년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 스펜서에게 결혼 선물로 ‘러버즈 넛 티아라’(Lover’s Knot Tiara)를 주었는데, 이는 1913년 메리 왕비가 그녀 할머니의 티아라를 복제한 것이다. 이 티아라는 아치를 이루는 19개의 다이아몬드를 시작으로, 하트 모양의 매듭을 지나 달랑거리는 물방울 모양의 진주로 구성되었다. 이 티아라는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 커플의 이혼 후 다시 영국 왕실의 소유가 됐다.
1983
런웨이에 등장한 인조 진주
제2차 세계대전쯤 ‘미셸’이라는 쿠튀리에가 탄생시킨 샤넬의 진주 목걸이는 모더니즘을 대표하며 승승장구했는데, 그녀가 죽은 뒤 그 존재는 잊혀지고 말았다. 하지만 1983년 칼 라거펠트는 코코 샤넬이 만들었던 특별한 광택을 지닌 인조 진주를 다시 사용했고, 로프 네크리스를 만들어 캣워크에서 선보였다.
- 여러 겹이 레이어링된 샤넬의 대표적인 진주 목걸이 가격 미정 샤넬.
1984
마돈나의 펑키 진주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의 전설로 불리는 장면은 1984년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 무대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그녀의 도발은 하얀 베일을 벗어던지며 시작된다. 마돈나는 십자가와 체인이 뒤섞인 겹겹의 진주 목걸이로 고전적인 진주의 아름다움을 보기 좋게 파괴했다. ‘펑키 진주’는 마돈나로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펑키한 참이 달린 진주 팔찌 가격 미정 생로랑.
2000’s
퍼스트레이디의 진주 정치
미셸 오바마는 존재감 있는 퍼스트레이디로서 명민한 패션을 선보인다. 퍼스트레이디로선 다소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는데, 이때도 미셸 오바마의 목엔 언제나 진주 목걸이가 걸려 있다. 이는 1950년대 재클린 케네디의 진주 목걸이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정숙한 영부인의 이미지에 우아함을 더하기 위해 택했다는 점에서 같은 의미를 지닌다.
2010
디바들의 관능적인 진주
비욘세, 리한나, 레이디 가가 등 전 세계를 주름잡는 디바들은 의외로 진주를 자주 활용한다. 다만 그녀들은 한 줄의 진주 목걸이를 단순히 두르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목이 불편할 정도로 진주 목걸이를 칭칭 감거나 선글라스에 진주를 장식하고, 진주가 수놓인 보디슈트 등으로 가히 ‘진주 완결판’을 방불케 하는 룩을 선보인다. 디바들의 관능적인 패션 속에서 진주는 그 어떤 보석과 견주어도 존재감이 넘치며 섹시하다.
- 18k 골드 바 위에 남양 흑진주가 세팅된 밸런스 이클립스 링 1천8백만원대 타사키.
2013
진주의 극적인 진화
잔 랑방의 영향일까? 이번 시즌 랑방은 진주 목걸이를 다시 런웨이에 올렸는데, 그 모습은 예전과 달리 아주 캐주얼했다.
커다란 레터링 참이 달린 목걸이는 화려하지만 한편으론 장난감 같은 친근함이 엿보인다. 반면 알렉산더 맥퀸은 빅토리아 시대를 연상케 하는 과장된 실루엣과 쿠튀르에 버금가는 화려한 레이스에 진주를 장식해 페티시를 자극했다.
- 진주가 장식된 코르셋 모티브 뱅글 44만8천원 디디에두보.
EDITOR : 오주연
PHOTO : 장인범(제품), Getty Images, Wenn-Multibits, ©Chanel, Saint Laurent
참고 자료 : 『그림에서 보석을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