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을 게시한 이유?
아사꾸사 부근의 거리풍경
* 일본은 문화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타인을 배려하며 교통 질서를 지킨다. 가깝고 먼 일본은 우리가 과거사문제로 반감을 품고 있을 때 동경의 중심 신주꾸에 한국거리를 만들고 한국음식점과 면세점을 두어 한국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었다. 위 사진은 아사꾸사 부근 교차로인데 지나는 차가 없고 불법주정차량이 눈에 뜨지 않았다. 도로에는 담배꽁초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고 상가의 옥외 물건적치선이 있는데 물건을 그 선에 맞추어 정열하고 가지런히 쌓아 통행을 불편하게 하거나 미관을 해치지 않는다. 도심 뿐만 아니라 한적한 산간농촌 외딴 집에도 주차장을 만들어 주차를 하고 있다.
하꼬네호수 유람선에서 바라본 후지산
* 하코네 호수는 동경 서남쪽으로 약 130km 거리 아시가라 지역 조운산과 하꼬네산 사이 해발 약 700고지에 있는 호수로서 주변에 많은 온천과 대통곡 소통곡를 끼고 있고 동경이 가까워 관광객이 많이 찾은 곳이다. 후지산이 보이는 원하꼬네선착장에서 신선착장으로 가기 위해 금빛 화려한 범선을 탔는데 승객 대부분이 한국인들이었다.
동경순환고속도로에서 바라본 후지산
치바의 아파호텔에서 바라본 후지산
* 치바(千葉) 아파호텔에서 하꼬네까지는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 동경중심을 지나게 된다. 일요일 외각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는 교외로 나가는 차들이 꼬리를 물고 서행하는데 다른 쪽 차선이 비어도 무리하게 끼어들거나 함부로 차선을 넘나드는 차가 없었다. 일본은 도심이건 교외건 차들이 함부로 차선변경을 하지 않으며 고속도로 3차선으로 오토바이가 다녔다. 일반차량은 버스에게 양보를 하고 버스는 택시에게 양보를 하며 양보해야 할 차 앞으로 끼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화산증기 피어오른 대통곡(大通谷)
* 대통곡(大通谷)과 소통곡: 호수를 건너 신하꼬네 항에서 내려 대기하고 있는 전세버스를 타고 대통곡으로 가는 계곡길로 들어섰다.( 대통곡이나 하꼬네호수는 동경에서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여 조운산역에서 내리면 주변에 온천탕이 많이 있고 등산기차 케이블카 자가용을 이용하여 해발 약1000m 고지까지 올라갈 수 있다.)
대통곡으로 가는 차량이 많아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고개를 오르는데 앞쪽 산 중턱에서는 화산증기 무럭무럭 솟아오르며 유황냄새가 진동하고 뒤를 돌아보니 아름다운 호수와 호수 넘어 산위로 신비스런 후지산이 가까이 닦아서있는 이곳은 예사스런 곳은 아니었다.
산 아래는 삼목에 쌓인 호수는 그림 보다 더 아름답고 호수 건너 산위에 동경에서부터 이곳까지 오면서 보아도 같은 모습의 눈에 덮인 후지산은 신비스러운데 발 딛고 서있는 산 곳곳에서 활화산증기가 유황냄새 물씬 풍기며 구름으로 솟아오르고 부글부글 끓고 있는 유황온천수에 계란을 삶아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었다.
이곳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곳이다. 일본은 태양의 여신 아미테라를 비롯하여 8백만의 신을 믿고 있다. 한쪽은 신령스런 산이 우뚝 서있고 딛고 선 발아래는 언제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증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이러니 일본사람들이 신을 섬기지 않을 수 없다. 평온한 땅에서 문화는 발달되지 않는다. 일본사람들은 신을 믿고 섬기며 악한 환경을 순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있다.
대통곡에서 바라본 후지산
해발 1600고지에서 바라본 후지산
* 후지산은 일본의 영산이다. 만년설로 덮힌 후지산은 해발 3776m 로서 해발 1600이상 접근할 수 없으며 입산통제하고 있다.
산리시 주택가 하수구
* 일본의 내륙 산리시 도심거리의 하수구는 복개를 하지 않았는데 물이 깊은 산 계곡물처럼 맑고 바닥에 깔린 모래가 금모래빛으로 반짝 거렸고 큰 하천에는 잉어와 붕어가 떼를 지어 살고 있었다.
산리시 거리풍경
* 산리시 외각 신광호텔 부근의 거리 모습. 교차로에서 사방 어느 곳이든 시야가 닿은 곳에 불법주정차량 한대 없고 대로나 주택가 그 어디를 막론하고 쓰레기 하나 버려져 있지 않았다. 일본은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일본의 정원
* 일본의 정원: 일본은 주택마다 정원을 두고 정원을 둘 수 없는 경우에는 분재를 둔다. 분재와 정원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가 일본이다.
집 안에 있는 묘지
* 일본의 장례문화: 일본은 화장을 윈칙으로 하여 공동묘지나 가족묘지에 납골하는데 우리 나라처럼 주택과 떨어진 산속이나 공원이 아니라 아래 사진과 같이 도심의 주택가의 공동묘지에 납골하고 모형과 크기가 다른 묘비를 세우거나 엷은 대리석이나 목판에 비문을 새겨 공동묘지 한쪽에 세워두기도 한다. 가족묘지나 공동묘지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위 사진과 같이 자신의 주택 벽과 담 사이에 묘지를 만들기도 한다.
주택가에 있는 공동묘지
* 일본의 관광산업:
관광자원이 풍부한 일본은 경제규모에 걸맞게 관광지를 전략적으로 개발하고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동경의 중심에 미국의 자유여신상을 세우고 그 시선이 향한 곳에 금문교를 닮은 레인보우다리를 건설하였으며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의 하우스텐보이를 비롯해서 일광 국립공원과 중선사호수, 키누온천지역을 묶어 관광벨트로 조성하는 등 전략적으로 지방자치단체와 국가가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닛꼬 공원 입구에 있는 왕윤사(輪王寺)
동희궁 출입문 안쪽
동희궁 출입문
일본제일의 사적관광지 닛꼬는 輪王寺와 東照宮과 二荒神社가 다른 독특한 색체와 조각과 양식으로 건축된 수많은 부속건물의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우리나라에 비하여 색상이 다양하고 규모가 큰 것이 특색이며 주변에 해묵은 삼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102개의 유적을 UNESCO 등록하였으며 닛꼬 전용고속도로와 철로를 개설하였으며 주변에 있는 中禪寺湖水(중선사호수)와 온천지역(키누온천)을 테마관광벨트로 묶어서 관광지로 개발하였다.
키누온천지역에는 미국의 서부개척마을 만들고 세계의 유명한 신전과 유적.성, 초고층빌딩을 정교하게 축소하여 세워 테마공원을 만들었으며 애도시대의 민속마을 만들어 관광지로 개발하고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은 자국의 역사와 문화 전통, 일본의 소중하게 여기며 가장 일본적인 것으로 잘 보호하고 보전하며 그것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른 나라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그 관광지주변에 그대로 재현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동경의 야경과 금문교를 본뜬 레인보우다리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의 하우스텐보이의 풍차(네델란드마을)
우도궁현 키누온천지역 테마공원 내의 템즈강 브릿지
우도궁현 키누온천지역테마공원내의 피라밋
* 일본의 종교(宗敎) 신도(神道)
동경 야스쿠니 신사
일본에는 야스쿠니 이외 수많은 신사가 일본 각처에 있고 수많은 일본사람들이 신사참배를 하고 있다. 신사에서 숭배하는 신은 하나의 신이 아니라 그 수가 무려 800 만에 달한다고 한다. 일본신화에 의하면 이자나끼(いざゃなき)라는 신이 자신의 왼쪽 눈을 씻어서 여신인 아마테라스(あまてらす)라는 태양의 신을 낳게 하였다. 7세기경에 황실에서 나라를 통일하고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를 天照大神으로 삼고, 차츰 천황을 아마테라스의 후손으로 여기고, 천황은 신이며 일본사람들은 천황의 자식이라고 믿게 하는 尊皇崇拜운동을 펴게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3세기 경에 몽고가 일본을 정복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3000 여 척의 전함을 건조하여 일본정벌에 나서 규수 지방을 두 차례나 대대적인 공격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 마다 태풍이 불어서 몽고군대가 바다에서 침몰되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믿는 가미까제(がみかぜ=바람 신)이 몽고군대를 바다에 침몰시킨 것으로 믿고, 일본은 가미까제(風神) 같은 신들이 보호는 하는 축복 받은 땅이며, 현상계의 모든 중심은 일본 마카도(天皇)의 땅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천황으로 비롯된 일본에서 위대한 정신을 세계로 확장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위대한 일본의 신민사상을 전 세계로 확장하고 온 세상은 신의 땅으로 높이는 것이 시급한 당면의 과제이며, 영원불변의 목표라고 삼고 신사(神社)를 짖고 참배(參拜)를 하게 했다.
1869년 메이지 천황은 도쿄 치요나(治帶田)구단사카우에(九段坂上)에 일본최대의 야스쿠니진자(靖國神社)를 짖고 이곳에 일본을 위해 전쟁을 하다 죽은 군인 약 246,600명의 위패를 보관하고 일본의 수호신과 함께 받들어 참배하게 했다.
1882년 메이지 천황은 군인칙유(軍人勅諭)를 만들어 발표한다. 일본사람들은 천황이 내린 칙유(c勅諭)라고 해서 이것을 경전으로 삼고 군인들이 매일 하는 명상의 근거로 삼았으며 1890년 천황은 교육칙어(敎育勅語)를 발표하여 이것이 학교교육의 근본으로 삼았다. 두 개의 칙어(勅語)가 신도의 경전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국민은 매일 아침이면 아미테라스 여신의 상징인 태양을 향하여 손뼉을 치고 나서 다음에 황궁(皇宮) 쪽을 바라보며 신민(神民)으로서 천황(天皇)을 숭배할 것을 다짐한다. 이와 같이 일본을 신도(神道)를 종교 이상으로 받들며 다른 종교를 배척하게 되었다고 한다.
1 910년 朝日强制合邦후에 우리나라를 발판으로 삼아 대동아시아건국(大東亞世亞建國)이라는 야욕을 품고 중국과 동남아시아 일부 나라를 차례로 정복해 나가다 미국이 주축이 된 유엔(UN)이 1941년 일본이 강점한 나라의 해방전쟁에 개입하자. 일본은 신도의 기치 아래 천황에게 자신을 바친다는 명목으로 제2차 세계전쟁을 위하여 전 국민이 동원했다. 일본이 유엔군에게 패망하기 직전에 일본군인들이 자살폭격을 하게 되는데 이것도 가미까제(風神:신이 보호하기 때문에 백전백승한다)특공대라고 하며 이것도 神道에서 비롯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하고 유엔(미군주도)군사재판(軍事裁判)를 받고 처형된 A급 전범자 14명의 위패(位牌)를 역시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보관하고 일본수상은 매년 8월 13일이나 14일 참배를 해오다 1985년 일본수상 나카소네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을 문제삼아 우리나라와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항의를 하며 반대를 하자 그 뒤로 수상의 참배를 중지해오다가 2001년 8월 14일 현재의 수상, 하시모토는 일본우익의 끈질긴 요구에 못 이겨 야스쿠니신사에 참배를 하게 된다.
일본의 신도에 의한 신민사상(紳民思想)과 이웃나라 정복(征服)에 대한 야욕(野慾) 때문에, 일반 시민이 아닌 수상(首相)이 전범자의 위패가 보관되어 있는 야스쿠니진샤(やすくに じんしゃ)에 참배(參拜)를 하는 것은 일본이 군국주의(軍國主義)를 부활(復活)하려는 의도 이외에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정당화하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일본에게 과거에 피해를 본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일본수상의 신사참배를 반대를 한 것이다.
첫댓글 친구야 반갑구나.
일본 아름다운 곳이구나
일본 여행 생각해 봐야겠구나
유학생 상대로 식당을 해본 적이 있었단다.
그때 일본학생들의 정직함과 공동질서에 감동했고
우리 한국 학생들에게는 너무 큰 실망감으로 상심이 컸었다.
그중에 정직하고 좋은 학생들도 있었지만도....
친구야 더운 날씨에 건강 잘 지키려므나.
학력수준이 높아지고 문화생활에 익숙해지면
나아질 것으로 여겼는데 여전히 무질서하고
이기적이며 무관심한 이나라 ***ㅡ
무엇이 문제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여행 다녀왔구나.
정말로 많은 관광자원과 정갈함에
일단은 많이 부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의 다음세대들의 모습은
결국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가 변해야 자녀들이 변할 텐데
우리의 가치관이 과연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돌아봐야겠네요.
자세한 설명과 사진으로
일본여행 눈요기도 고맙고.
좋은 사람들과 두루 여행하며
행복한 시간들 보내시길!!
우리의 가치관?
내 관점에서는 돈이라고 본다.
나라 환경이 유별나게 돈에 의존하게 하고 돈에 의존할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귀와 권세를 동시에 누리려고 한다
대통령이 퇴임후 살 돈을 챙기다 구속되고
지명고위공직자후보인사청문회를 봐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지나치게 돈에 의존하고 있다.
당장 미국에 살고 있는 미카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 한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