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앞에 그러니까 피사체와의 사이에
무언가 미술적으로 처리된 유리를 놓고 그 건너 편의 풍경을 찍으니
그 뭐시냐 엑스레이의 반투명과 이미지 중첩, 오버랩, 회화적, 추상적 맛이 나던데,
그냥 창유리를 배경으로 찍기만 하여도
푸른 하늘의 여백적 공간감이 느껴집니다.
엊그제 후배 화가의 사진전을 보고 왔더니
내 눈의 수준도 약간 올라간 듯
훗날에 나도 한번쯤 시도해 보고 싶어졌어요.
우리가 일상에서 사진에 대해 기대하는 그림이라는 것이
잎사귀로 피사체 앞을 흐리기, 포커스 아웃해서 뒤를 흐리기, 안개 속에서 찍기, 역광으로 찍기
정도인데, 이것이 회화성과 작품성을 띠어서 거실 암 데라도 걸어놓으면
공간이 제법 되는 것이려면 그 정도의 공력과 예비력은 갖추어져야겠지요...
모델이 예쁘면 공간이 살아납니다.
비싼 모델은 고걸 개량한 자의 특허권에 해당하니
엔간한 정원에서는 사다 심을 엄두를 내기 힘들고
더러 공원 같은 데서 장미축제라도 벌이는 날이면 사람 눈을 그토록 현혹시켜놓고
돈을 받거나 손대지 말라거나 삽목의 비슷한 행동도 취하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꽃이 바로 장미입니다.
해남 산골에서 분홍찔레꽃이 어찌나 야생에서 붉던지 저쪽 집에 살땐
애지중지하였는데 정작 요기선 그리움만 쌓이고 장미꽃이 필 때마다
내 마음의 정원 한 구석은 항상 텅 비어 있지요.
야생의 맛은 없으나 그래도 그 찔레꽃에 가차운 이 장미가 맘에 들었습니다.
잘 자라고 아담하며 병해도 적고 꽃이 많이 핍니다.
동편의 입구 아치에서 올해도 혼자 보기 아까웠습니다.
꽃이라는 것이 아깝고 귀할수록 누군가 함께 바라보는 이가 없으면
값이 댕강 반쪽이 되고 마는 거이 맞습네다.
남자들이란 것이 여자들이란 것과 다른 것이 여실한 것이
오월입디다.
바라보기 좋아하는 것은 여자이고 보여주고 싶은 것은 남자이니
오월의 아내는 휙 둘러보고 돌아서서 당근이며
가지며 고추 호박 오이 콩들에게 달려가고
남편은 그 길로 긴 물 호스를 붙들고 정신 없이 사방팔방으로 쏘아대며
이쁜 화초들의 꽃입술에 물 퍼붓기 바쁩니다.
이 가뭄에 이른 아침 한 번 저물녘에 한 번을 뿌려대니
하루 24시간 가운데 7시간을 자고 1시간을 먹고 2시간을 쉬고
그리고 3시간을 화초에 물을 뿌려줍니다.
나머지 시간도 실은 진정한 내 시간이 아니죠.
쓸 데 없는 전화와 메시지, 스팸멜 지우기, 설거지, 소나무 전정,
잡초뽑기, 환자상담, 밀린 원고, 딸기 앵두 몇 톨 따기,
빨래널기, 강아지와 개 밥주기, 천문동 싹 올라왔는지 살피기
마누라 심부름, 밭갈기, 포트묘 싹틔우기, 양파 담기,
마늘다발 걸기, 음식 쓰레기처리, 개집 주변 청소...
셀 수 없는 자잘한 일 속에서 장미 감상하기,
장미 씨방 따주기, 엇나가는 줄기 묶어주기, 거름주기...
노랑장미를 좋아하는 어떤 뇨자에게
꽃꽂이 해주기, 이 꽃은 더 이뻐해주기...
이 꽃 시들기 전에 사진 찍기,
안 보이는 곳에서 피었다 사라지는 것 안타까워하기...
그 틈에 대문 간에서 지 홀로 피었다 지는 것들도 눈길 주기,
곧 전정해주겠다고 속으로 약속하기...
집 휀스 안의 흰 꽃 하고 집 바깥에 지천인 찔레꽃 하고
뭐가그리 다르냐고 혼자 중얼거리기...
그래도 장미는 장미!라고 인정하고 칭찬해주기,
차 타고 나갈 때 "흰 장미도 차암 이쁘지이~~!" 하고
일부러 말 꺼내고 쥐어짜기...
도곡 나가는 어떤 집 대문 켠의 그 곱고 귀티나던
오렌지색 꽃을 요기다 심고 싶었지만
이 꽃도 괜찮다고 볼때마다 안 아쉬워하기...
양쪽에서 올라가 아치의 둥근 하늘에서 만나면
오죽 좋겠냐고 볼때마다 생각 안 하기...
그나마 한 쪽에서라도 이렇게 잘 자라주니 고맙지 아니냐고 속으로 묻지 않기...
그러면서도 이것들을 찍어 올리고 싶은 마음을
회원들께 언능 들키고 싶지 않기...
"아~ 예쁘다~~"는 신음과 미소를 상상하거나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내가 말하고 내가 답하기...
첫댓글 아!
뵐 수 없음을 안타까워 안하기
윽!
그 마음 아는 척 안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