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첫 만남/ 전 성훈
작년 10월 초순, 아내의 환갑을 맞아 6개월 된 손녀딸을 데리고 가족 모두 제주도를 찾았다. 조금씩 웅얼거리는 손녀딸을 안고 어르면서 ‘이 애가 커서 외롭지 않으려면 동생이 있어야 하는데’라고 혼잣말을 했다. 옆에서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며늘아기가 한 마디 하였다. “아버님, 죄송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예요.” 며느리의 이야기를 듣고서 괜스레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럽고 겸연쩍었다.
제주도에서 생긴 ‘우연찮은 일’로 둘째손주에 대한 꿈은 아예 꾸지도 않고 지내던 어느 날, 아내에게서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며느리가 “아버님 제가 둘째아이를 가졌어요.”하고 말하는 모습이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가 힘들어 젊은 부부들이 임신을 꺼리거나 뒤로 미루고, 아이를 하나만 낳아 키우겠다는 풍조가 만연한 오늘의 세태를 보면서 우리 며느리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의 둘째아이 임신을 축하하는 뜻으로 꽃 시장에 가서 커다란 꽃다발을 마련하여 선물하였다. 꽃다발을 받은 며늘아기는 기뻐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하길, “둘째를 임신하면 꼭 아버님한테서 꽃다발 선물을 받고 싶은 게 로망이었어요.”라고 말했다.
며느리는 둘째를 가지고도 입덧을 했지만 손녀딸 임신했을 때보다는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며느리는 ‘지금 가장 중요하고 귀중한 일은 딸을 키우며, 둘째를 잘 낳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며느리의 선택에 우리 부부는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격려하였다. 그 와중에도 대학원 과정을 잘 마무리 짓는 매우 당차고 과감한 며느리는 자신의 삶에 대한 목표가 뚜렷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며느리가 둘째아이를 출산하기로 예정한 전날 저녁에 사고를 당했다. “내일 산부인과에 입원한다”며 그동안 애써주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그리고 시고모에서 감사의 선물을 하였다. 가족 모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고, 며느리가 손녀딸을 데리고 잠깐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며느리가 손녀를 안고 걷다가 넘어지면서 아파트 입구 난간에서 굴렀다. 만삭의 몸에 손녀를 안은 며느리는 그 순간에도 지순하고 강인한 어미의 마음으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손녀를 감싸 안고 오른쪽 팔과 어깨에 온 힘을 주어 넘어졌다.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아파트 입구에 나갔다니 정말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다행히 주위 사람들이 119 구급차를 불렀고, 울고 있는 손녀딸은 어느 여자 분이 안고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날 아침, 다행히 건강한 모습으로 손자가 태어났다. 안락하고 포근한 엄마 뱃속에서 이 세상으로 소풍 나왔다고, 함성을 터뜨린 손자, 머리숱이 많고 이목구비가 비교적 또렷한 모습의 한없이 가냘프고 나약한 작은 새 생명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우리 가족과 만났다. 넘어져 어깨를 다쳤어도 만삭의 아기를 잘 낳아준 며느리, 어깨 수술을 앞둔 며느리가 겪어야 할 마음 고생과 육신의 고통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 탓 때문인지 조금 가라앉은 마음으로 손자와 첫 대면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찾아온 ‘솔’아, 할아버지가 두 손 들어 뜨거운 마음으로 환영한다‘. 손녀와 손자를 안아볼 수 있는 더없이 큰 기쁨을 맛볼 수 있다니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아들 부부를 대신하여 손녀와 손자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우리 부부, 특히 아내가 아이들 키우는데 온갖 정성을 쏟아야겠다. 훗날 우리 부부가 아이들 곁을 떠난 다음에도 그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경제적인 도움의 손길을 나누어주고 사랑을 듬뿍 쏟아 주어야겠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자손을 키우면서 몸을 헤치거나 자손들에게 정신적으로 매몰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삶은 모두 각자의 영역이 있고 역할이 있으니까. 우리 부부는 그저 내어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노년의 삶이 알차고 후회 없는 생활이 되도록 노력하면 되겠다. 열 달 동안 몸과 마음에 담고, 사랑으로 새싹을 키워 귀중한 생명이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쏟은 사랑하는 며느리, 아람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더욱 어깨가 무거워진 아들에게도 격려와 축하의 말을 전한다. 손녀 ‘전 봄’과 손자 ‘전 솔’, 진심으로 사랑해, 사랑한다. (2017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