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 우리의 옛 지방 사발을 '막사발'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사발은 무언가를 담는 용도를 가진 도자기의 총체적 명칭입니다.
제기, 필세, 보시기, 바리기, 입기, 발탕기, 밥공기 등을 표현한 말입니다.
막사발이란 용어는 사전에도 없는 말입니다.
(펀주: 이 글의 필자는 막사발이란 말이 일제가 지어낸 용어이고 우리 민족을 안좋게하려는 의도가 있으니 막사발이란 용어는 쓰지 말자고 주장합니다.)
임진왜란 전 조선시대 진주 지방의 민가에서 제기용으로 사용하던 사발 하나가 현재 일본의 국보입니다.
 |
|
▲ 진주사발. |
|
ⓒ2004 미쓰이그룹 |
|
일본 사람들은 이 사발 뿐만 아니라 일본에 있는 우리 옛 지방 사발의 아름다움을 논할 때 '와비사비'란 말을 씁니다.
직역하면 '고독과 외로움'이란 뜻을 지닌 합성어 입니다.
이 '와비사비'의 뜻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하나뿐이라 외롭고, 그 외로움이 진해져 고독이 되고, 그 고독이 너무 아름답다'라는 뜻입니다.
(펀주: 이러한 사발이 우리나라에는 많지만 일본에는 없었기 때문에 '고고한 아름다움'이라 뜻으로 그렇게 부른 것으로 추정.
우리는 우리의 것을 그 아름다움을 너무 무심하게 지나쳐온 일이 많은 것 같음.
처음 본 외국인들은 경이로움을 느끼는 그 아름다움을.)
 |
 |
|
▲ 여유로운 공간처리가 돋보이는 우리의 한옥구조 |
|
ⓒ2004 신한균 |
우리의 옛 사기장(도자기 만드는 사람)들은 사회적 신분의 차별이라는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하늘이 내린 사기쟁이라는 천직을 숙명이라고 여기면서 창작의 기쁨을 위해 오직 물레만이 삶의 전부인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가슴에는 자유혼을 가지고 본능적 창조정신을 발휘하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
 |
|
▲ 자유분방하게 비상식적으로 공간처리한 우리의 민화 |
|
ⓒ2004 신한균 |
우리의 옛 사기장들이 빚은 지방 사발들은 우연히 만들고 평범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자기를 빚는 사기장의 눈으로 보면 선(禪)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발의 쓰임새를 의식한 소박미와 기능, 단순성을 표현하기 위해 흙의 선택에서 불때기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창조 행위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도자기 기술자인 필자는 정확히 말합니다.
'무위처럼 보이나 무위가 아닌 인위를 통해 무위적 아름다움 즉 자연미를 그대로 표현한 창조적 쟁이정신의 결과입니다.'
(펀주: 쟁이정신=장인정신)
 |
|
▲ 전라도 무안에서 빚은 분청필세이나 일본에서는 차사발로 사용 |
|
ⓒ2004 도쿠가와 기념관
(펀주: 우리나라에서는 필세(붓을 빠는 그릇)으로 만들었는데 일본에서는 차를 마시는 그릇으로 쓴다는 뜻.
일본에서는 아주 좋은 그릇을 차를 마시는데 사용.) |
|
 |
|
▲ 한국박물관에 드물게 소장된 진주사발 |
|
ⓒ2004 중앙박물관 |
|
일본의 장인(일본에서는 공인)들은 수출하고 팔기 위한 도자기를 대량 생산을 전제로 분업화된 공정을 통해 획일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본 장인들은 물건을 위해 일부를 담당하는 부속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옛날에는 도자기 뿐만 아니라 모든 공예품도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또 일본과 달리 만드는 자(장인)의 만드는 즐거움을 인정하고 제약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사카와 다쿠미라는 일본 사람이 지은 책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만드는 즐거움 속에서 빚은 우리의 옛 지방사발은 당연히 팔기위해 억지로 꾸민 아름다움보다 건강하고 순수한 자연미가 절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일본인이 우리 옛 지방사발의 어떤 점을 좋아했을까요? 바로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개성 있는 자연미 때문입니다.
 |
 |
|
▲ 비뚤어진 대들보의 일면. 자연미의 극치다. |
|
ⓒ2004 최준식 |
우리의 옛 건축을 유심히 보면 선조 장인들의 자연미를 추구하는 창작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조선시대에 집을 지을 때 대들보를 휘어진 나무를 사용해 비대칭의 멋을 최대한 살렸습니다. 이런 건축물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목(목수의 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휘어진 나무를 대들보로 사용하면 일이 더 많다고 합니다.
비록 일거리가 많아진다고 할지라도 자연미를 표현하기 위해 휘어진 나무를 사용하는 대목의 정신은 '쟁이정신'그 자체입니다.
이 건축기술을 흉내내 일본에서 탄생한 것 바로 그것이 일본 국보 차실인 '묘희암'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건축학자가 규명한 사실입니다.
과연 옛 우리 나라 대목들이 바보라서 삐뚤어진 나무를 대들보로 사용했을까요?
그것은 개성 있는 자연미의 표현이었습니다.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예술의 너그러움과 해학 그리고 개성 있는 자연미는 우리 한민족의 심성이었습니다. 모든 공예품에 이런 심성이 배여 있었습니다.
이런 여유 있는 심성이 일본인에게 없었기에 만드는 물건에 개성적인 자연미를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옛 지방사발을 보고 너무나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감탄한 심정을 표현한 말이 '와비사비'라는 일본말입니다.
(펀주: '와비사비' - 둘도 없을만큼 그래서 고독할 만큼 아름답다는 말.)
이것을 우리 말로 표현하면 개성적 자연미가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 한반도에서는 개성적 자연미를 추구하는 심성이 생활 속에 배여 있었기에 일본인들처럼 미학이니 철학이니 떠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
 |
|
▲ 일본 국보 '묘희암'. 조선의 사랑방을 모델로 삼았음. |
|
ⓒ2004 묘희암
|
...일본은...아주 엄청난 가격으로 우리의 옛 지방 사발들을 팔고 샀습니다.
일본이 우리의 옛 지방 사발을 아주 비싼 값으로 거래한 것은 임진왜란 20년 전부터 입니다. 이 무렵 조선과 일본은 부산포를 통해 무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우리 사발을 아주 비싸게 판 사람이 일본의 정신적 영웅이자 다도의 확립자인 센노리큐입니다.
또 우리 사발을 아주 비싸게 구입한 사람들은 그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
|
▲ 왼쪽은 몬드리안의 추상화. 오른쪽은 천조각을 이어만든 우리 보자기 |
|
ⓒ2004 최준식
일본인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일제시대에 그토록 찾아도 그들의 국보인 진주 멧사발 같은 명품은 하나도 못찾았다고 합니다. |
|
필자는 이 이유를 압니다. 일본의 국보가 된 이 진주 멧사발은 조선에서는 제기였고
제기는 조선에서 그 그릇의 생명이 다하면 조상을 위한 그릇이라 혹시 다른 사람이 쓸까봐 파손하여 따로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제기를 절대 팔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들은 우리 옛 사기장들이 조상을 제사를 위해 빚은 사발들을 신의 그릇이라 숭배하면서도 그것을 만든 사기장들의 후손인 우리의 한국사람들을 왜 우러러보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에 건너간 우리의 옛 지방 사발들은 여러 종류가 있었습니다.
밥공기도 있었고, 보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선의 밥공기가 찻사발이 된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국보와 보물이 된 것은 조선의 제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또 임진왜란 후 일본인들의 간청으로 주문을 받아 일본으로 보낸 것도 많이 있습니다.
현재도 일본 재벌들이나 돈 많은 사람들은 우리 옛지방 사발을 한 점도 소장하지 못했다면 재벌소리와 부자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사람은 독도를 '죽도' 즉, 다케시마라 부릅니다. 그러나 보통 일본인들은 이 말을 모릅니다. 우리 나라는 꼬마도 독도라는 섬을 다 압니다.
(펀주: 보통 일본인들은 독도를 잘 모른다고들 함. 즉 그들의 마음에 독도는 자신들의 영토라는 생각이 대부분 없는 듯함.
그런데 일본의 정치인들이 일본극우세력들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가끔 망언을 한다고 함.
독도는 원래 무인도라 일본이 자기네 영토라고 세계에 주장할 근거가 없음.비웃음만 당함.
국제법상 무인도는 가까운 나라의 영토.)
 |
|
▲ 일본의 보물이된 우리의 진주멧사발 |
|
ⓒ2004 일본 개인 소장품 |
|
(

*보광전 옆모습
|
.. |

*보광전 풍경

*빛바랜 보광전 목리(나뭇결)
| |
|
첫댓글 그러네요...한국의미는 개성있는 자연미...그대로 군요....감사합니다
보광전 가는길을 알려주실수는 없나요?? 아시면 부탁 함니다....기회돼면 함 가보구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