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28]
저 숲엔 몇 개의 길이 있을까
벌써 3년 전 일이다. 직장맘인 엄마를 붙잡고 초등학생 딸이 펑펑 울더란다. “코로나 언제 끝나?”라고 물으면서. 그 어린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으면 꾹꾹 눌러왔던 울음을 터뜨렸을까. 어디 그 아이뿐이겠는가. 말은 없어도 그때 우리 마음은 모두 이심전심이었다. 밤 9시에 인적이 끊기는 서울이란 도시를 경험하면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등화관제로 불을 끄던 2차 대전 때 유럽 도시들에 떠다니던 망령들이 서울 거리에 살아난 듯 싶었다.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컴퓨터에서 멀어져 보자고 털모자를 눌러쓰고 문밖을 나섰다. 생각은 아차산을 향 했는데, 춥다는 핑계로 발길을 돌려서는 돌고 돌아 도서관 앞에 서 있는 나를 보았다. 그날 서가(書架) 사이를 어슬렁이다가 장석주·반칠환 시인의 시집과 조우했다. 언제 읽어도 품은 뜻이 명쾌하고 잠든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전하는 두 시인의 시를 읽었다. 연말이란 절기 탓 때문일까. 두 편의 시가 발갛게 피어나는 숯불같이 내 시선을 잡았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과 반칠환 시인의 ‘새해 첫 기적’. 두 편의 시가 ‘손편지’의 글제로 떠올랐다. 절과 멀어져 보자고 길을 나섰던 중이 엉뚱한 데서 시주받는 느낌이었다. 벼룩이 뛰어봤자 손바닥 안인 것을, 결국 컴퓨터 자판기 반경을 겉돌았구나. 덕분에 반칠환의 시 <새해 첫 기적>을 신년맞이 첫 글제로 건지게 되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새해 새날의 기적을 맞았다. 3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와의 전쟁, 모두를 실망시키는 경제지표들, 치솟는 물가고, 핼로윈 참사, 열한 달째 이어지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등 역대 어느 해보다 고달프고 아팠던 사연 많은 2022년을 훨훨 날려 보내고, 신년 새 출발을 시작한 것만으로도 기적으로 삼아야겠다. 지난 365일, 풍랑을 헤치고 살아온 날들이 하나같이 기적의 연속이었다. 그 기적이 가져다주는 희망 탓인지 새해의 첫 여명이 유난히 푸르디 푸르게 보였다.
이룬 것이 많아서 즐거운 사람이나, 상심과 아픔이 컸던 사람이나, 다시금 같은 출발선에 선다는 것은 제야의 종소리처럼 모두에게 희망이고 기회가 아니던가. 때로는 삶에 우열이 있어 보이고 행불행이 따로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똑같은 생사봉도(生死逢道) 위의 인생이 아니던가.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는 이 시구절은 2012년 이맘때,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에 걸렸던 구절이기도 했다. 짧은 세 줄의 문장에서 42.195KM를 달려 골인한 사람들의 땀방울과 미소가 느껴졌다. 수고한 모두의 가슴에 완주 메달 대신 앙증맞은 복조리 하나씩 걸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완주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새 날 새 소망의 메시지로 들리기도 했다.
걷든, 뛰든, 기든 방법은 달라도, 겪은 희로애락의 질량은 달라도, 결국 한날한시에 도착해 새날을 바라볼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다시금 신발끈을 동여매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면 올해도 기적을 예약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마다 ‘설렘’ ‘설렘’으로 가득 채울 일이다.
2023년은 가보지 않은 미지의 푸른 숲이다. 낯설기도 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숲이다. 저 숲엔 얼마나 많은 길이 있을까? 나는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북한산을 오르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굳이 남이 낸 길을 뒤따를 필요는 없겠다. 낯설고 힘들어도 내가 밟으면 나의 길이 될 테니까. 그것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 자존감이다.
때로는 길을 잃어야 길이 보일 때가 있다. 조선시대 김정호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낯선 숲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가 밟으면 다 길이라는 신념으로 낯설고 물선 곳을 한없이 헤매고 돌아 대동여지도를 만들고 역사에 이름 석자를 올렸다. 시(詩) 중에는 절기에 어울리는 시들이 여럿 있다. 이맘때 읽으면 좋을 장석주 시인의 시 ‘명자나무’도 있다.
불행을 질투할 권리를 네게 준 적 없으니/ 불행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마라/ 불행 앞에서 비굴하지 말 것/ 허리를 곧추 세울 것/ 헤프게 울지 말 것/ 울음으로 타인의 동정을 구하지 말 것/ 꼭 울어야 한다면 흩날리는 진눈깨비 앞에서 울 것/ ...(중략)... /울어라 울음이 견딤의 한 형식인 것을/ 달의 뒤편에서 명자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잊지 마라.
시인은 내게 불행을 질투할 권리마저 없다고 신년 군기부터 잡더니, 고통 앞에 비굴하지 말고 헤프게 울지 말라고 다짐까지 받는다. 허리를 고추 세워 고통과 맞서서 참고 견뎌내면 고통 너머의 열매가 보인다고 등을 토닥여 주기도 한다. 외롭게 혼자 걸어도 쓸쓸하지 않은 습관을 지닌 사람은 기억한다. 저 언덕 너머에 붉은 꽃을 피울 명자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날 든, 뛰든, 걷든, 기든, 구르든 다 좋으니 부디 올 한 해도 멈추지는 말자.
-소설가 / daumcafe 이관순의 손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