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의 옥중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마태복음 11:2-6(눅 7:18-23)
마태복음 11장 2-6절/ 2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께서 나인성에서 어떤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리신 소문은 온 유대 땅과 사방에 두루 퍼져나갔으며(눅 7:17), 그 소문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귀에게까지 들어갔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그 소문을 듣고 자기들이 들은 모든 이야기를 세례 요한에게 가서 들려주었습니다. 당시 세례 요한은 옥에 갇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가 옥에 갇혀 있게 된 것은 갈릴리 일대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디바스를 그의 처 헤로디아의 문제를 가지고 책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헤로디아는 헤롯 안디바스의 동생인 헤롯 빌립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헤롯 안비바스가 동생 헤롯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헤롯 안디바스는 그밖에도 옳지 못한 일을 많이 하였는데, 이런 헤롯의 잘못을 세례 요한이 문제 삼고 비판하자 그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눅 3:19-20)
제자들로부터 나인성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 - 어떤 역본에서는 ‘그리스도의 행위들(the deeds of Christ)보다 ’그리스도가 행하고 있었던 일‘(what christ was doing)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 번역이 본문의 의미를 보다 더 잘 전달하고 있다. 그것은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 요한에게 고한 것이 단순히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만 아니라 그의 설교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을 들은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가 행한 사역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마태가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라고 기록한 것은 요한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범상히 보지 않고 그리스도가 하신 일로 알고서 큰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질문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행한 일을 들은 세례 요한은 제자 중 두 사람을 불러 그들을 주께 보내어 다음과 같이 자기의 질문을 하게 하였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여기서 ‘오실 그이’는 선지자가 예언하였고, 요한이 선포한 메시야(마 3:11)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예수께 한 이 질문과 관련하여서 혹자는 말하기를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의심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들이 세례 요한이 메시야가 오시면 그분이 하실 일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던 바와 달리 여겨졌으므로 그에게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헤르만 리델보스(Herman.N.Ridderbos)는 그의 마태복음 주석에서 말하기를, “그의 질문은 예수께서 행하시고 계신 것이 그가 대망하였던 것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가 선포하였던 것에 비추어볼 때 여간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메시야가 오시면 그가 선포한대로 즉시 심판을 행하실 줄로 생각했다. 요한은 예언의 특성에 따라 미래를 전체로 보았고, 예언 성취가 이루어질 단계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래서 설사 요한의 예언적 설교가 분명히 성령의 사역이며(눅 3:2) 모든 부분에서 예수님께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요한에 예수님의 사역이 수행되는 과정에 대하여 들었을 때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고 해서 전혀 뜻밖이라고 놀랄 필요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견해와 같은 생각을 갖는 분들이 있어서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이 심판을 행하시고 천국을 실현시켜 나가실 것으로 보았는데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니까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 예수님의 메시야성을 의심하게 되어 과연 예수님이 오실 그 메시야인지 궁금하여 제자 둘을 보내어 물어보게 하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윤선은 그의 복음서 주석에서 여러 사람의 견해를 소개하는 중에 볼덴스펠겔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있는데 예수님의 메시야임을 믿지 않는 질문을 하는 것과 같은 질문을 한 것을 놓고 이는 세례 요한의 종교운동이 예수님의 그것과는 관계없는 것는 것이라고 한 것에 대해 그 의미를 달리 해석하는 것으로 설명해 나가는 것으로서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낸 것은, 그의 옥중에 갇히어 궁금한 중에 있어서 예수님에게 대한 지식 추구의 동기로 그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요한의 말을 바로 전하지 못하고, 우리 본문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의혹스러운 말로 전하였을 수 있다. 그것은 후에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는 갈대와 같은 인격이 아니라고 하신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설혹 우리 본문대로 제자들의 전하는 바가, 세례 요한 자신의 질문이라고 가정하여도 그것은 세례 요한이 옥고를 당하던 중에서 일시적인 의심이 일어나는 시험에 빠진 것으로 보여지는 것뿐이고, 결코 그의 인격의 변질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박윤선은 크리소스톰과 칼빈과 같은 이는 세례 요한의 옥중 질문을 자기에게 무슨 의심이 있어서 그리 질문한 것이 아니고 그 제자들이 신앙을 굳게 하려 한 것이라고 하였다고 소개하였습니다. 반면에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어 질문을 하게 한 것을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 요한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를 못하고 의심하고 있는 까닭에 예수님께로 보내 직접 예수님이 주이심을 듣게 하여 믿음을 갖게 해 주기 위해서라고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의 옥중 질문의 정확한 의미의 이해는 무엇인지를 봅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을 보면 그는 예수님에 대한 여러 중거를 하였는데 거기에서 그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도 보는바와 같이 그는 예수님의 행하신 소식을 듣고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서 하신 것임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질문, 곧 그의 예수님에 대한 메시야성을 의심하는 질문을 하는 것처럼 비치는 질문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은 왜일까요? 이것은 세례 요한이나 그의 제자가 예수님이 주이심을 의심해서가 아니고, 본문과 관련한 전후 문맥과 세례 요한이 질문하고 있는 말의 어법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지 않아서입니다.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서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습니다. 나인성에서 어떤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리신 것을, 또 그 이전에 행하신 한 백부장의 종이 병들어 죽게 된 것을 고쳐 주신 것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행하신 놀라운 이적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신 복음도 같이 들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들은 세례 요한은 자기가 알고 있는 메시야관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죄를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을 성령 세례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얻게 하시며, 또한 심판하시는 일을 하시어서 죄인들을 영원히 멸망케 하시는 것인데, 병든 자를 고쳐주고 죽은 자를 살려주는 이적을 행하신다고 하니까 도대체 이것이 메시야 사역과 어떤 관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인지를 알고자 해서 제자들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질문한 것입니다. “주님,주님은 성경에 오실 메시야라고 예언된 바로 그분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다른 분을 메시야로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 곧 메시야(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인데 주님이 그 모든 일을 행하신 것에서 사람들 앞에 자신의 그리스도되심을 나타내 보이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병을 고쳐주고 죽은 자를 살려주고 하는 것은 메시야 사역과 어떤 관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까? 주께서 메시야로서 앞으로 하실 일은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이 제자 둘을 보내어 예수님께 보내어 자기의 질문을 하게 한 때는 마침 예수님께서 질병과 고통과 악귀 들린 자, 눈먼 자들 등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고 계셨었습니다. 그러다가 세례 요한이 보낸 제자들을 통해서 그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여 주셨습니다.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얼핏 보면 세례 요한이 제자들에게서 이미 들은 내용을 말해 준 것같이 보여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대답에는 세례 요한이 알고자 하는 답이 말해지고 있습니다. 온갖 병든 자와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 일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거룩한 능력이 임하여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하는 것이며, 이는 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참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한 표적으로서 이런 일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언급하신 ‘가난한 자’는 앉은뱅이, 문둥병자, 눈 먼 자, 귀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대로 몸의 약함과 병듦에 있는 자요, 나인성 과부의 죽은 외아들에게서 볼 수 있는 대로 죽은 자의 상태에 놓여있는 모든 사람을 총칭하고 있는 용어인데, 죄에 포로 되어 있고 억눌림을 받는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만을 겸손히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눅 4:18-19).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고 하는 이 모든 일은 죄로 말미암아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임하여서 죄의 세력, 곧 죄와 마귀를 쫓아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으로서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으로 있는 일이라고 세례 요한에게 말해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다음의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나 그의 제자들이 의심하고 있으니까 의심하여 실족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었겠는지요. 세례 요한이나 그 어떤 사람이라도 주 예수님 때문에 산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됐든지 간에 예수님이 행하신 일에 잘못 인식하여 넘어지는 일이 없이 -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한 이적의 신비한 능력에 이끌려서 예수님을 좇았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이적이 걸림돌이 되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올바르게 인식하여 믿는데 방해가 되었다 -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산 사람, 곧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산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있는 옥 중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큰 위로가 되어 소망 중에 있게 했을 것이며 그의 믿음을 더욱 견고히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요한이 비록 몸이 옥중에 매여 있으며 그의 앞날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태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인내하기만 한다면 그의 구원을 약속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