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결승전 텔레비전 방송을 보는데 우리가 질까 봐서 두렵다.
이기려는 데에 묶이니 그런 것이다.
어! 그래? 이기는데 묶이면 안 되나? 묶이면 안 된다는 마음이 있네!
묶이면 안 된다는 마음에 두근거리는데도 일기를 쓰면서 점수가 궁금하여 일기를 쓰다가 텔레비전에 달려가 점수를 읽어본다.
이렇게 마음이 하라는 데로 두근거리면서도 하고 있는 나를 보니 정말이지 묘하다.
우리가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안 되나? 그런데 두근거리는 마음까지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이 지배를 하려고 한다.
지금 내가 난리다 난리. 두근거려서 안절부절못한다.
지금 내 마음은 야단이다. 벅차다고 한다. 내 마음의 상황이 이렇다.
그러다가 상대를 보니 가슴이 아파 온다. 상대가 얼마나 불안할까? 하는 마음을 보니 안쓰럽다. 우리 편 즉 나만 보니 우리가 질까 봐서 두렵더니 상대의 입장으로 돌아가니 또 마음이 괴롭다. 이렇게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며 야단이다.
야단인 이것이 내 마음의 세계가 그렇구나. 그래서 남의 입장을 헤아리라고 하셨구나 싶다. 그리고 잡히면 이렇게 끌리는구나. 이것이 바로 잡힌 것이구나 싶다.
잡히면 이렇게 힘들구나. 힘들다는 것은 묶여서 그렇다. 묶임에서 헤어나려는데 안 되니 힘이 든다. 그 묶임에서 벗어나 이기려니 이렇게 힘들다. 그래서 꺼 버린다. 즉 안 보면 될텐데 굳이 보면서 이렇게 힘들구나 싶어서이다. 그래? 괴로우면 안 되나? 그래, 양궁을 볼 때 해설자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는 말을 할 때 수양을 잘하면 땀을 쥐지 않는다는 마음이 있었다. 즉 수양을 안 해서 그렇다는 뜻이다.
땀을 쥐기도 해야 땀을 쥐는 입장을 알지. 그런데 나는 땀을 쥐지 않으려고 하네!
괴로우니 피해나가려고 하네! 이것이 피경 하려 하는구나.
마음에서 피경을 해야지. 그래야 현실도 피경이 되는 것이지.
텔레비전을 끄는 것이 바로 피경이었구나. 그럼 끈다고 마음이 편한가?
궁금하기는 매 한가지인데? 그래도 실지 보는 것보다 낫다.
순간 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것 봐 피하려는 마음이 있구나.
그래, 괴로우니 피하고 싶지. 그러면서 다시 텔레비전을 켠다. 궁금해서다. 그런데 우리가 금메달인 것이다. 그 때 다시 이긴 장면을 보여준다. 이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본다. 그런데 중국 선수의 눈이 카메라에 잡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다.
즉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할까 싶어서이다. 그리고 이미 졌으니 더 안쓰럽다.
그 때야 비로소 우리 선수의 마음과 중국 선수의 마음을 다 헤아리니 정말 괜찮아진다. 이 때 '그래서 묶이지 말라는 것이구나' 싶다. 이것이 바로 묶이지 않는 것이고 자유이구나. 그래서 모든 마음을 다 보라는 것이구나 싶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 묶인 마음만 보고 있었으니 그것 또한 묶였었구나 싶다.
즉 묶인 마음을 지켜보는 것에 묶인 것이다.
즉 지켜보고 있는 줄 알아야 참으로 묶이지 않음이다.
이런 마음을 모두 헤아려 볼까? 중국선수의 마음, 우리 선수의 마음, 그리고 이겨야 함에 끌리고 있는 내 마음, 끌리는 마음을 바라보는 그 마음, 끌리는 마음만 바라보느라 거기에 묶인 마음 등이 보인다.
즉 내가 '지금 끌리는 마음을 바라보느라 묶였구나' 라고 알았다면 그 불안함에서 풀리는데 말이다. 이것이 곧 자유인데 말이다.
즉 이 마음 저 마음을 보면서 얼마든지 그 장면을 다 볼 수 있는데 싶다.
그리고 이것이 그 때의 모든 관중들의 마음이었구나 싶다.
이러니 광대무량이다. 그리고 이런 저런 마음을 다 헤아리는 것을 아량이 넓다 혹은 도량이 넓다 라고 한다. 참으로 무량세계구나.
첫댓글 마음의 무량세계를 보았네요... 나중에는 이것 저것에 대한 분별심이 녹아 나면 있느느 그대로이면서 그냥 그대로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게 자리하지요 .. 그것이 바로 같은 편 응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