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뒤는 불암산
바라보면 멀리도 왔다마는
나의 뒤 저 편으로
어쩌면 신명나게 바람은 불고 있다
--- 신동집, 「목숨」에서
▶ 산행일시 : 2012년 2월 22일(수), 맑음, 바람 시원한 봄날
▶ 산행인원 : 8명
▶ 산행시간 : 6시간 25분(휴식과 중식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7.6㎞
▶ 교 통 편 : 전철 이용
▶ 시간별 구간
10 : 00 - 4호선 당고개역, 산행시작
10 : 40 - 학림사(鶴林寺)
11 : 16 - 용굴암(龍窟庵)
11 : 23 - 주능선 진입, △389m봉
11 : 54 - 도솔봉(538m)을 왼쪽(북쪽) 사면으로 우회하여 안부
12 : 14 - 하강바위
12 : 47 - 620m봉, 철모바위
12 : 54 - 수락산 주봉(△640.6m)
13 : 13 ~ 14 : 28 - 608m봉, 중식
15 : 07 - 도정봉(525m) 전위봉, ┤자 능선 분기 갈림길
16 : 11 - 노강서원(鷺江書院)
16 : 25 - 7호선 장암역, 산행종료
1. 용굴암에서 바라본 불암산(509.7m)
10시 정각. 모두 당고개역에 모였다. 1번 출구로 나와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등산안내도를 일
람하고 학림사로 향한다. 전봇대에 붙여있는 학림사 방향표지판 따라 들어가다 말고 막걸리
가 부족하다고 가게를 찾는데 길 건너 GS 25 편의점이 보인다. 한 병에 1,100원 정도일 서울
장수 생막걸리는 없고 1,800원이나 하는 무슨 쌀 막걸리만 있다. 가격이 비싸니 특주로 별맛
일까? 입맛 다셨지만 용굴암 위 주능선의 △389m봉에서 시음한 바로는 달짝지근하여 금방
싫증이 났다.
학림사는 당고개 골목길을 빠져나가 고가도로 밑 굴다리를 지나고 산자락 도로로 오른다. 뻔
질나게 승용차들이 오간다. 영천선원의 예수재(預修齋) 행사도 한몫 한다. 예수재는 사후(死
後)를 위해 살아 있을 때 재를 올려 공덕을 쌓는 불교의례라고 한다. 미륵보살이 산다는 도솔
천(兜率天)이 아무래도 가까울 도솔봉(兜率峰) 아래이니 그 효험도 각별할 터.
전깃줄 위로 도솔봉 우러르며 대로를 간다. '학림(鶴林)'이라는 이름이 절이 위치한 주위의 산
세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과 비슷한 데서 유래하였다는 안내판 뒤로 학림사 절집이 보인
다. 대찰이다. 수락산 등로는 절 입구 오른쪽으로 박석을 깔아 놓았다.
예불시간인 모양이다. 확성기에서 나오는 염불소리가 온 계곡을 시끌벅적하게 울린다. 산사
(山寺)에 온 것 같지 않다.
박석 깔린 등로의 끄트머리에 있는 바위 아래 자그마한 돌탑이 차라리 공덕이다. 유리강화섬
유 플라스틱으로 위장한 송전탑 시설 지나고 지능선 합류한 주능선 아래 ┣자 갈림길. 오른쪽
이 산굽이 돌아 용굴암으로 간다. 산모롱이에 있는 장군약수 지나면 용굴암이다. 용굴암도 확
성기 염불소리가 한창이다. 귀가 따가워 얼른 지난다.
건너편에 불암산이 보이는 주능선으로 올라선다. 천근성 수종처럼 뿌리 드러낸 소나무 앞에
낡은 삼각점이 있는 △389m봉이다. 오늘이 휴일인가 착각할 만큼 오가는 등산객들이 꽤 많
다. 입산주 들이킨 기운 빌어 도솔봉 아래 탱크바위에 들렸다가 크랙 더듬은 과감한 트래버스
가 아깝게 도솔봉 자락 붙들다 만다.
남들 하듯 도솔봉 북쪽 사면으로 우회한 안부를 지나고부터 가급적 리지인 마루금을 고수한
다. 치마바위 슬랩은 예행연습이다. 예전 너럭바위 한편의 컵라면 좌판은 출근하지 않았다.
하강바위. 암벽 쪼아 여기저기 홀더를 만들어 놓은 것이 개운하지 않은 흠이다. 손맛 느끼지
못한다.
하강바위 내리는 길은 북사면으로 우회하지 않고 바로 바위틈으로 내리는 편이 나았다. 매달
린 굵은 밧줄 잡고 내렸는데 눈이 살짝 깔린 가파른 슬랩에는 끊겼다. 나무뿌리 움켜쥐고 돈
다. 대단한 험로로 변했다. 코끼리바위도 우회. 좁은 바위틈보다는 양쪽 가드레일로 쇠줄 매
인 슬랩이 지나기가 더 수월하다.
철모바위 가기 전 3단으로 이어지는 슬랩이 제법 짭짤하다. 1단은 레이백 자세를 시늉하여
슬랩을 오르고 비스듬한 테라스로 살금살금 트래버스 한 다음 2단인 크랙 비집어 오르면 노
송 그늘진 너른 암반이 나온다. 수락산의 일류 경점이다. 불암산, 석장봉, 도솔봉, 코끼리바위
가 일렬로 보인다.
3단. 암벽 등성이를 앙가슴으로 품고 개구멍을 지나듯 납작 엎드려 오른다. 숨 멈춘 채 단숨
에 올라야 한다. 이후는 평탄하다. 철모바위 앞 공터는 포장마차가 자리 잡았다. 주봉을 향한
다. 데크계단이 놓였다. 데크계단 옆 반침니 직벽. 바위틈에 아직도 살아 버티고 있는 나무.
내게는 저기가 Mary Hopkin의 ‘Those Were The Days’이다.
2. 수락산 서릉 곰봉(463m)
3. 도솔봉(538m) 남쪽 슬랩
4. 도솔봉 북쪽 사면
5. 하강바위
6. 도솔봉과 불암산(뒤)
7. 수락산 동릉 485m봉
8. 수락산 동릉 485m봉
9. 도솔봉과 불암산(뒤)
10. 맨 오른쪽이 철모바위, 620m봉
12. 오른쪽이 철모바위, 620m봉
주봉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고, 창바위 들고나고, 암봉에도 올라가 본다. 삼각
점과 그 안내판이 있다. 삼각점은 성동 301. 암봉은 내리기가 더 어렵다. 구회장님이 어깨 받
쳐주어 딛고 내린다. 주봉을 홈통바위 쪽으로 내리는 길도 데크계단을 설치하였다. 뚝 떨어져
┼자 갈림길 안부를 지난다.
우리 둘러앉아 점심 먹을 자리로 608m봉 아래 헬기장 옆의 소나무 숲이 아늑하다. 이계하 님
이 과메기를 준비했고 노광환 님은 요새 한철이라는 꼬막을 준비했다. 과메기 부수양념인 김,
미역, 마늘, 파, 봄동, 초장 등도 가져왔다. 꼬막은 까기가 쉽지 않다. 입 쪽을 손톱으로 벌리
려고 애쓰지 말고 뒤쪽을 수저 날로 비틀어야 한다. 까는 것도 재밌다. 산상파티다.
수락산을 오는 이유이기도 한 홈통바위로 간다. 오른쪽 우회로 마다한다. 스틱을 접어 배낭에
맨다. 예전에는 홈통바위 시작되는 지점으로 다가가고 밧줄잡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는데 지
금은 철책을 설치하여 짜릿한 맛을 없애버렸다. 뒤로 돌아 밧줄을 양손으로 어긋나게 잡고 엉
덩이는 뒤로 쑥 빼고 다리는 펴고 허리에 위 아래로 반동 주며 내린다. 눈은 없다. 조금도 미
끄럽지 않아 밧줄은 다만 중심축 역할이다.
홈통바위 아래 슬랩을 내리기가 오히려 더 조심스럽다. 너무 안쪽으로 내리면 바위에 머리 받
치기 쉽고 그렇다고 너무 바깥쪽으로 내리면 절벽으로 떨어지기 쉽다. 모두 익숙하게 내린다.
하긴 지난날의 추억을 되새겨 보는 것에 불과하다. ┤자 갈림길 안부. 왼쪽 길은 석림사로 내
린다. 우리는 도정봉 전위봉에 올라 왼쪽 지능선으로 간다. 방금 내린 홈통바위를 잠시 훑어
보고 숲속으로 든다.
이 지능선에도 등로가 반질반질하게 났다. 이제 암릉은 없다. 소나무 숲속 오솔길이다. 하늘
트인 너럭바위 나오면 들려 수락산 주봉 자락과 깔딱고개 넘은 곰봉을 감상한다. 지능선 비껴
사면 돌아내리니 석림사 아래 노강서원(鷺江書院)이다. 노강서원은 조선 숙종 15년(1689년)
인현왕후 폐출의 부당함을 죽음으로 간한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뜻을 기리기 위해 당
초 노량진에 건립한 서원이 6.25 때 소실되어 1969년에 이곳에다 다시 지었다고 한다.
박태보는 인현왕후 민씨의 폐위를 반대하여 진도로 유배가던 중 장독(杖毒)으로 노량진에서
죽었다. 그때 그의 나이 36세. 박태보의 아버지는 서계 박세당. 이조판서를 지낸 그는 삼전도
비문을 쓴 이경석의 신도비문을 저술했는데 그 신도비문에서 이경석을 위무하고 송시열을
맹비난하여 송시열의 일파인 노론의 배척으로 삭탈관직 되고 다음해인 1704년 8월에 죽었
다. 부자가 기구하다.
장암역 가는 길은 한산하다. 계류 옆 궤산정은 간신히 버티고 있다. 서계 박세당의 묘역 출입
문은 잠가놓았다. 장암역사 뒤 실루엣으로 보이는 도봉산 연릉 연봉이 장하다.
15. 하강바위 북쪽 사면
18. 홈통바위
19. 홈통바위와 608m봉
20. 홈통바위와 608m봉
21. 608m봉과 주봉(오른쪽)
22. 주봉과 곰봉
23. 도봉산 연릉 연봉, 왼쪽부터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맨 오른쪽 깃발 있는 곳은 포대
첫댓글 알뜰하게 타셨네요^^ 주중과 주말에 산행을 하시니,,형님은 나이를 거꾸로 드시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