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약속한 흑산도·홍도 투어를 마침내 나서기로 했다. 필자를 포함한 일행 3명은 부산 부산진구 서면 영광도서 앞에서 이른 아침(금요일)에 소형승합차로 몰고 여행길에 올랐다.
# 1일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 넘게 달려 전남 목포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다. 꽃게장과 홍어삼합이 전문인 목포 '인동주마을' 식당을 찾았다. 식당에 들어서니 벽에 걸린 '목포음식 명인인증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산에서 먹는 게장과 홍어삼합과는 '뭔가'가 다른듯했다. 목포연안여객터미널로 이동해 흑산도행 여객선(남해스타)을 타고 한 시간 반 이상 물 위를 가르니 흑산도여객터미널에 닿았다.
흑산도의 영업용 콜밴(가져간 승합차는 목포여객터미널에 주차)을 타고 먼저 '흑산도 자연 관찰로'를 따라 투어에 나섰다. 흑산도 신령을 모시는 진리당과 용왕당을 먼저 찾았다. 흑산도 마을 번영을 기원하고, 어선의 무사고와 풍어를 비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흑산도는 요즘 일주도로가 잘 조성되어 '순환 관광'이 편리하였다.
산 고갯마루에 이르니 '흑산도아가씨' 노래가 흘러나온다.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에서 아래로 내려 보니 꾸불꾸불한 도로가 마치 바닷속의 험준산령에 오른 기분이다. 다도해 국립해상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흑산도는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1004개의 섬으로 구성돼 있다 하여 '천사의 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괜히 붙여진 이름이 아닌듯하다. 산 중턱 옹벽에는 '압해도'라는 제목의 시가 새겨져 있다. '맑은 날이면 압해도는 안 보이네'로 시작하는 흑산도 여성들의 애환을 그린 노향림 시인의 시다.
강화도 마니산에 못지않은 신령스런 기운이 느껴지는 흑산도 산봉우리는 화강암 돌산으로 우뚝 솟아있다. 산 중턱을 넘어가니 자산 정약전 선생의 유배지 '유배문화공원'이다. 1801년 흑산도에 유배를 와서 생생한 수산 어류백과사전 '자산어보'를 집필하고, 서당을 열어 후학을 가르친 선생의 흔적을 ▷유배문화체험장 ▷후박나무림 ▷전통민박 ▷서당 ▷전통주막 등으로 잘 조성해 놓았다. 안내소에 들러서 신안군에서 펴낸 '상해자산어보'를 한 권 구입했다. 정약전 선생이 15년간 흑산도에 머물면서 어패류와 해산물 등 227종의 집중연구 기록한 우리나라 수산 관련 최초의 단행본 서적이다. 고래 성어 전복 홍어 꽃게 자주복 조기…. 200년 전에 이토록 많은 수산 관련 지식을 갖췄다니 새삼 놀랍다. 그뿐만 아니라 이웃 강진에 유배 온 동생 정약용과 주고받은 서신에서 드러난 높은 학문과 인품에는 아연 머리가 숙어질 뿐이다.
정약전 선생의 발자취를 뒤로하고 칠형제 바위를 돌아서오니 언덕 위에 5층으로 된 숙소인 아담한 '흑산비치호텔'이다. 인기 방송프로인 '1박2일'팀이 촬영과 숙박을 하고 간 사진들이 입구에 걸려있다. 호텔식당에서 전복과 광어, 흑산도 홍어회 등을 흑산도 진미로 내놓았다.(3인 한상에 10만원 정도다) 흑산도막걸리와 함께 흑산도의 진미를 확인하는 저녁 식사였다. 식사 후 호텔주변을 산책하는데 아담한 성당이 호텔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도 정약전 선생의 혼백이 이곳에도 서려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 2일
흑산도 전경
흑산항여객터미널로 가서 '기암괴석과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섬 흑산도'를 뒤로하고 '가고 싶은 섬 홍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홍도에 도착해보니 날씨가 흐린데도 홍도선착장에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홍도는 저녁에 해 질 무렵 섬 주변의 물색이 진홍색으로 물들어 섬 전체가 붉게 보인다고 하여 홍도가 되었다 한다.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170호로 지정되어있다. 홍도 생태전시관을 들르니 홍도의 유래 지질 식생 등을 해설사가 친절히 설명해준다. 동백꽃 군락지, 철새연구센터를 지나 전망대를 둘러보니 점심시간이다. 서해횟집에서 회 정식을 시켰는데 쟁반에 옥돌을 깔아 내왔다.
낮 12시30분에 출발하는 홍도유람선을 타기 위해 서둘러 선착장을 찾았다.(하루 두 번 오전 7시30분, 낮 12시30분 출발, 요금은 2만2000원) 두 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유람선 관광은 해설사의 구수한 입담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남문바위 물개바위 병품바위 가야금굴 시루억바위 주전자바위 독립문바위 형제바위 등 자연이 새겨놓은 걸작들이 늘어선 비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곳이 정말 선경이 아닌가 싶었다.
어느 틈엔가 조그만 배 한 척이 다가오더니 우리가 탄 배의 관광객들에게 생선회를 팔고 있다. 뱃놀이에 식도락이 빠질 수 없어 우리 일행도 생선회와 소주를 사서 처음 만난 다른 관광객과 잔을 나누었다.
홍도 유람선관광을 마치고 오후 늦게 목포행 여객선에 다시 몸을 실어 목포로 돌아오니 해 질 무렵이다. 목포 평화광장 앞 비치호텔 숙소에 여장을 풀고 인근 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했다.
산책을 나오니 숙소 앞 평화광장에는 현지 시민들도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해상분수쇼가 펼쳐졌다. 형형색색의 조명이 바다 분수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밤하늘을 수놓았다. 분수쇼에는 방문자 누구누구를 환영한다는 글자가 새겨지기도 했다.
# 3일
영암 월출산
다음 날 아침 목포도서관 앞 (옛 일본영사관 건물) 국도1·2호선 출발지를 찾았다. 동서화합과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뜻으로 목포라이온스클럽이 기념비를 세워놓았다.(국도1호선은 목포~신의주, 국도2호선은 목포~부산의 구간이다)
목포를 출발해 인근 영암군의 월출산국립공원을 찾았다. 가수 하춘화의 영암아리랑 소재인 월출산은 전문 등산인들에게는 멋진 산이라는데 기암괴석과 일출, 월출의 장관을 느끼기에는 산행준비가 부족해 금릉경포대까지 갔다가 돌아내려 왔다.
이어서 인근 강진군의 하멜기념관을 찾았다. 하멜은 1653년 대만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뜻하지 않은 태풍을 만나 조선에 내려 13년간 제주 서울 강진(7년) 여수에서 힘든 생활을 하다, 1666년 탈출해 일본 나가사키 데지마를 거쳐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하멜은 자신이 소속됐던 동인도회사에 보고서를 제출, '하멜보고서'를 간행했다. 당시 네덜란드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번역 출판돼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조선을 유럽 여러 나라에 처음 소개하는 귀중한 책자였다.
전라병영성
당시 조선은 해금정책으로 부산의 두모포 왜관에 한하여 일본 대마도와 무역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나가사키 데지마에 유일한 네덜란드 상관을 허락해 무역을 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이들의 보고에 따라 조선과 직접 교역을 추진해 1669년 1000t급의 코레아(Corea)호를 건조했으나, 대마도와 일본막부의 거센 반대로 좌절되어 코레아호는 한 번도 조선으로 항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 이들의 배가 조선에 왔다 해도 수용태세가 없었던 조선과의 무역은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지금은 네덜란드 출신 히딩크가 2002년 월드컵 대표팀 감독으로 한국축구에 선풍을 일으키고, 네덜란드 보험회사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에서 활발히 사업을 하고 있다. 많은 한국기업도 네덜란드에 진출해 있으니. 저 하늘의 하멜은 지금 미소를 지으며 한국을 보고 있으리라 싶다.
강진군 병영면에 위치하고 있는 전라병영성은 조선 태종 때 설치되어 호남과 제주를 관할하는 군의 총지휘부로 병마절도사가 주재하던 군사요충지였다.
병영면의 5일장터 내에 있는 강진의 한정식전문점 '수인관'을 찾았다. 돼지불고기 백반이 주메뉴인데 특이한 점은 2인 2만 원, 3인 2만1000원 이다. 상차림은 2인이나 3인이나 같은데 공깃밥 한 그릇과 수저만 더 준다는 뜻이란다. 4인 이상은 1인당 7000원씩 추가된다. 정갈하고 푸짐한 남도음식상에 인절미까지 차려진 별미였다. 생쌀막걸리를 반주 삼아 수인관의 남도 정식으로 점심을 마치고 부산으로 향했다.
2박 3일의 흑산도·홍도 남도 여행. 그 어떤 외국 여행지 못지않은 즐겁고 편안하며, 역사 향기까지 느낀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누구에게나 이 코스를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