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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선생님 회장 취임 60주년
청년부가 하라다 회장에게 듣는다 3부
제6회 사제로 연 ‘청년육성’의 대도 ①
권력과의 투쟁 속에 탄생한 대학부!
민중 지키는 영원한 사명이
일하며 공부하는 벗에게 전 혼의 격려
‘가장 고생한 사람이 가장 성장한다’
시가 청년부장(이하 시가) -
얼마 전 개최한 세계청년부총회에는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의 멤버가 온라인으로 참석해 학회 창립 100주년을 향한 10년을 승리로 여는 후계의 서원을 새롭게 했습니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이 얼마나 불석신명의 투쟁으로 우리 청년을 육성하고 세계광포의 대도를 열어주셨는지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번 회부터는 창가(創價) 사제와 청년의 사명에 관해 여쭙고자 합니다.
하라다 회장(이하 하라다) -
저도 총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격동과 혼미한 시대에 새로운 지혜의 빛으로 ‘광포 서원의 성화’를 넓히려는 청년의 열과 힘에 진심으로 감명했습니다.
선생님은 일찍이 수필에서 “새로운 역사를 여는 존재는 반드시 청년이다.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과 나는 한마음으로 청년을 사랑하고 믿을 뿐이다” 하고 쓰셨습니다. 선생님만큼 청년에게 기대를 보내고 희망을 주시는 지도자는 없습니다.
그 신념과 행동의 근원은 모두 은사 도다 선생님에게서 계승된 서원의 혼입니다.
가바사와 男대학부장(이하 가바사와) -
우리 대학부는 도다 선생님이 오랫동안 구상하고 가까스로 결정하신 마지막 조직입니다. 다시 한번 ‘대학부의 사명’에 관해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하라다 -
대학부는 1957년 6월 30일에 결성했습니다. 도쿄 아자부공회당(당시)에서 개최한 결성대회에는 남녀 대학생 약 500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당시 청년부 실장인 이케다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홋카이도 유바리의 탄광노동조합이 부당하게 학회원을 탄압한 ‘유바리탄노사건’이 발발해 선생님은 회원을 지키고자 홋카이도에서 모든 지휘를 하고 계셨습니다.
또 선거법 위반이라는 사실무근의 혐의로 오사카부경의 출두 요청을 받은 날도 이날이었습니다. 그리고 3일 뒤인 7월 3일 부당하게도 체포되어 ‘오사카사건’이 일어납니다.
그야말로 새로운 민중세력으로 발전한 학회가 권력의 마성과 정면 대치하는 와중에 결성된 것이 대학부입니다. 이는 대학부의 사명을 나타내는 지극히 중요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시카타 남자부장(이하 니시카타) -
긴박한 상황에서도 선생님은 홋카이도에서 “새로운 세기를 짊어질 수재의 모임인 대학부 결성대회를 축하합니다! 도다 선생님 슬하에서 씩씩하게 나아가기 바랍니다” 하고 ‘지용(地涌)의 대학생들’에게 만감의 축전을 보내셨습니다.
하라다 -
선생님은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학부는 학회의 생명선이다. 대학부가 성공한다면 창가학회는 크게 광선유포의 궤도에 오른다… 만약 안 된다면 학회뿐 아니라 구박당하기만 하는 무명의 민중은 영원히 학대당할 것이다. 이른바 창가학회가 그 앞길을, 또 민중 행복의 앞길을 대학부에 의탁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성공시키고 싶다, 발전시키고 싶다고 기원하는 마음으로 전보를 쳤다.”고 말입니다.
권력의 마성에서 민중을 지키려면 힘 있는 지도자를 육성해야만 한다는 것이 도다 선생님과 이케다 선생님의 결론이자 서원입니다.
하야시 女대학부장(이하 하야시) -
결성대회에서 도다 선생님은 ‘이 중에서 반은 중역으로, 반은 박사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차대의 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하라다 -
다시 말해 도다 선생님은 대학부원에게 종교자가 되라고도, 직업적 혁명가가 되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학회정신을 마음에 새긴 ‘사회의 지도자’로서 모든 분야로 뻗어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것은 민중을 위한 리더를 육성하려는 ‘지도자혁명’의 도전이자 거기에 바로 대학부의 영원불변한 사명이 있습니다.
또 수필에서 이케다 선생님은 ‘박해 속 탄생! 탄압 속 출현! 얼마나 훌륭한 대학부의 원점인가’라며 “‘6·30’은 이른바 은사의 구상 실현을 위해 제자가 홀로 일어서는 날이다” 하고 결론지으셨습니다.
‘유바리탄노사건’ ‘오사카사건’만 하더라도 이케다 선생님이 직접 비난의 표적이 되어 벗을 지키고 부당한 권력과 싸워 승리해내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제자가 스승과 같은 일념에 선다. 그리고 스승의 지도를 깊이 사색해 자기 서원으로 삼아 새로운 사회변혁의 조류를 일으킨다.’
이것이야말로 ‘6·30’의 의의입니다.
스승의 기대를 가슴에 품고
변혁의 선구를!
하야시 -
대학부에 대한 선생님의 기대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세계를 향한 중요한 역사적 제언을 대학부총회에서 발표하셨습니다.
1967년 ‘베트남 정전’ ‘오키나와 즉시 반환’, 1968년 ‘중일국교정상화제언’ 등입니다.
하라다 -
그것은 실로 대학부가 평화건설의 주체로서 시대변혁의 선구가 되기를 누구보다도 기대하고 믿고 계셨다는 증거입니다.
‘중일국교정상화제언’ 발표에 관해서는 소설 ‘신·인간혁명’ 제13권 <금의 다리>에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1968년 당시는 동서냉전의 격화와 중국 국내에서 시작된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일본 국내에서 대중국 감정은 차가워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제언 발표 3일 뒤 미일 회의에서도 외무성의 고관이 제언에 강한 불만을 표명할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반발은 물론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마저 도사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결단하셨습니다. ‘내가 발언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불법자(佛法者)다. 사람들의 행복과 세계평화 실현은 불법자의 사회적 사명이다’ ‘내 생각이 올바른지 아닌지는 후세의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얼마나 용기 있고 선견지명이 뛰어난 제언이었는가. 실제로 중일국교정상화가 4년 뒤인 1972년에 실현된 것은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시가 -
<금의 다리>에 중일우호의 대업은 ‘세기를 초월한 먼 도정’이자 ‘자신과 똑같은 마음으로 뒤를 계승할 제자가 없으면 성취할 수 없는 일’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하라다 -
그렇기에 선생님은 후계 인재군의 제1진으로서 대학부 육성에 총력을 다 하셨습니다.
1963년, 월간지 ‘제삼문명’ 신년호에는 중일우호의 길을 연 선구자 다카사키 다쓰노스케 의원의 인터뷰가 게재됐습니다. 그때 다카사키 의원을 취재한 사람은 대학생 2명이었습니다.
거듭 중국을 방문하고 저우언라이 총리와도 회견한 다카사키 의원에게 꼭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다는 이케다 선생님의 제안에서였습니다.
13쪽에 이르는 기사는 다카사키 의원의 인물관이 잘 나타나는 충실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도 선생님은 오래전부터 대학부에 중일우호를 의탁하고자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간절히 바라는 인간주의의 인재
가바사와 -
선생님은 대학부에 “‘배움’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힘’은 고투 끝에 쟁취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학부원 중에는 공부와 아르바이트 등을 병행하면서 학회활동에 힘쓰는 멤버가 많습니다.
하라다 -
제가 대학부장이던 1975년 8월, 선생님은 야학에 다니는 2부학생을 대상으로 ‘비상회’를 결성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일하며 배우는 힘든 상황에 놓인 벗을 ‘학회 선구인 대학부 중에서도 가장 기대할 존재’로서 엄한 아버지처럼 자애를 담아 몇번이고 거듭 격려하셨습니다.
병행으로 괴로워하는 멤버가 있으면 선생님은 몸소 다이세이학원(현재 도쿄후지대학교) 야간생으로 공부하며 도다 선생님의 사업을 뒷받침한 경험을 통해, ‘전부 해내겠다’는 일념을 정해 기원하고 지혜를 샘솟게 만들어 도전하는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비상회 멤버는 스승과 같은 길을 걷는 청춘을 최대의 영예로 삼고 대학부를 견인하는 확대를 이뤄냈습니다.
‘학회활동이 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충분히 움직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쁘니까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지혜를 발휘해 시간을 만들어 광선유포의 사명을 꿋꿋이 이뤄내고자 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한 속에서 강한 의지력과 인내력이 길러집니다.
선생님은 ‘가장 고생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성장한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역경과 노고가 있어야 비로소 자신이 대성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사실 남보다 갑절 고생한 사람일수록 사회에서 활약합니다. 스승의 투쟁을 떠올리며 선생님의 지도대로 거듭 도전합시다.
가바사와 -
가을에는 대학 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축제를 취소한 곳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주제로 온라인 전시활동을 실시하는 대학부 리더나 대학, 자치단체 등과 협력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는 멤버도 있습니다.
하라다 -
훌륭한 도전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시대, 그리고 더욱 빨라지는 디지털 사회에서 영지의 대학부 여러분이 완수할 사명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혼미한 세상은 확고한 철학을 가진 인재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창가의 인간주의 철학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희망찬 여명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선생님은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헌신하기 위해 있다’고 일관되게 생각하셨습니다. 대학부 여러분이 철저히 학문과 인격을 단련해 미래를 여는 도전의 선두에 서서 리더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 지침
“청년이여, 홀로 서라!” 광포 신시대 여는 선구자로
남자부·여자부가 역사적인 대약진
스승의 구상 실현하는 제자의 ‘서원’ 증명
시가 -
창립 90주년인 ‘11·18’까지 청년부는, 용감하게 대화에 도전했습니다. 창립의 달 11월은 ‘남자부의 날’(5일), ‘여자부의 날’(12일) 등 의의가 깊습니다.
하라다 -
11월은 확실히 청년부가 용약 전진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1961년, 이케다 선생님은 그해 ‘약진의 해’를 별명 ‘청년의 해’로 하시고 청년육성에 더욱더 힘을 쏟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듬해를 ‘승리의 해’로 정하고 시작의 의미를 담아 11월에 개최한 회합이 저마다 ‘부의 날’의 연원이 된 제10회 남자부총회, 제9회 여자부총회였습니다.
각 회합 장소에는 묵흔 선명하게 크게 적힌 ‘승리’라는 글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남녀 청년부는 그 문자를 생명에 새기고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니시카타 -
그 반년 전 1961년 5월 3일, 선생님 회장 취임 1주년인 본부총회에서 남자부총회까지 ‘10만명 결집’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이 정식으로 발표되었습니다.
하라다 -
‘10만명 결집’은 1954년에 도다 선생님이 ‘대백련화’ <권두언>에 발표하신 ‘국사훈’의 지침입니다.
‘청년이여, 홀로 서라! 두 사람은 반드시 일어서리라, 세 사람은 또 그 뒤를 이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라에 10만 국사가 있으면 고뇌하는 민중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불을 보는 것보다도 분명하다.’
도다 선생님은 메이지 시대에 태어나서 ‘국사’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것은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민중의 행복과 평화를 구축하는 인재를 말합니다.
도다 선생님은 종교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불법(佛法)을 근본으로 사회의 평화와 발전에 공헌하는 청년의 사명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러한 인재가 10만명 모인다면 새로운 시대를 건설하는 견고한 초석이 마련될 것이라는 신념과 확신의 외침이었습니다.
오구시 -
도다 선생님의 이 사자후(師子吼)를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받아들인 분이 당시 청년부 실장인 이케다 선생님이었습니다.
하라다 -
‘국사훈’ 발표 당시 남자부원은 1만명을 막 넘었습니다. ‘10만’이라는 숫자를 모두 꿈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선생님만이 마음 깊이 ‘설령 누가 하지 않아도 나는 결단코 선생님의 구상을 실현하겠다!’고 서원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그를 위해 솔선수범의 행동으로 광포의 싸움터를 누벼 연전연승의 금자탑을 세우셨습니다.
가바사와 -
남자부는 1958년 9월에 부원이 10만명, 1961년 5월 3일에 25만명의 진열이 되어 확대의 소용돌이 속의 ‘정예 10만명 결집’이었습니다.
하라다 -
11월의 총회 전에는 남자부도 여자부도 각 방면의 총회를 개최해 유례없는 대결집을 완수했습니다.
예를 들어 규슈에서 개최한 남자부총회에는 부원수의 70퍼센트를 넘는 1만 7000명이 모였습니다. 선생님은 이 무렵 ‘오사카사건’ 재판이 막바지에 이르러 몇번이고 출정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모든 방면 총회에 참석하셨습니다.
니시카타 -
그리고 11월 5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제10회 남자부총회가 개최되어 정예 10만명이 모였습니다. 총회 참석 대상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대표 멤버로, 많은 멤버가 홍교를 달성하고 참석했다고 들었습니다.
하라다 -
그렇습니다. 저도 당시 행진 멤버의 일원으로 총회에 참석했습니다.
2주쯤전부터 행진을 연습했는데 당초 걸음걸이와 보폭이 전혀 맞지 않아 불안감만 더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이 총회는 청년부 실장으로서 내 마지막 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 함께 다시 분기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1년 반 전에 회장에 취임하셨는데 선생님에게 ‘10만명 결집’은 도다 선생님과 불이(不二)인 제자로서 ‘국사훈’ 구상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서원의 증거였습니다. 준엄한 사제의 혼에 몸이 굳는 기분이었습니다.
‘일본 최고의 행진으로 제자의 마음가짐을 나타내자’며 다 함께 한마음으로 아라카와의 둑과 하루미 부두 등에서 몇번이고 거듭 연습해 실전을 맞았습니다.
푸른 하늘에 떠오르는 듯한 ‘승리’라는 글자. 음악대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스탠드를 가득 메운 참석자가 지켜보는 속에 긴장하며 행진한 일은 지금도 가슴속에 선명하고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이케다 선생님과 함께, 학회와 함께 나아가자’고 깊이 결의한 일이었습니다.
신앙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일
오구시 -
여자부로서도 1961년 11월 12일에 8만 5000명이 결집한 제9회 여자부총회는 크나큰 사제공전의 역사입니다.
하라다 -
총회 장소인 요코하마 미쓰자와경기장은 도다 선생님이 ‘원수폭금지선언’을 발표하신 학회의 평화운동 원점의 땅입니다.
여자부도 당일을 맞이하기까지 1년 동안 부원이 11만명 이상이나 증가해 역사적인 대확대로 총회를 승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케다 선생님은 세가지 지침을 주셨습니다.
‘신앙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데 있다’
‘차대를 짊어질 여성 지도자로’
‘전원 교학부원이 되자’
이후 스승의 마음 그대로 여자부 여러분은 해마다 돌아오는 ‘11·12’를 기점으로 창가(創價)의 여성으로서 광포를 위해 꿋꿋이 살아가겠다고 함께 서원하고 행학(行學)의 이도(二道)에 솔선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케다화양회 어서 30편’ 완독 운동을 축으로 부녀일체로 환희 찬 걸음을 내딛는 모습은 학회의 희망입니다.
하야시 -
다시 한번 세가지 지침을 가슴에 품고 전진하겠습니다.
하라다 -
여하튼 1961년은 선생님이 사자분신으로 지휘한 덕분에 학회 전체로서도 청년을 선두로 크게 약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62년 11월, 도다 선생님이 이케다 선생님에게 유언으로 의탁하신 회원 300만 세대를 달성했습니다.
사제일체로 광선유포를 완수하겠다는 정신이 멋지게 계승되었습니다.
‘명(冥)의 조람’을 확신하고 전진!
시가 -
그 후 선생님은 청년부 인재그룹 육성에도 힘을 쏟으셨습니다.
1966년 7월에는 여자부 ‘정리반’이 ‘백련그룹’으로 출발했습니다. 1971년 2월에는 ‘아성회’가 결성되고, 1976년 11월에는 그때까지의 ‘수송반’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창가반’이 결성되었습니다.
하라다 -
세 그룹에 공통으로 깔린 점은 무엇인가. 그중 하나가 ‘명의 조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여러 차례 각 그룹에 선생님은 ‘명의 조람’을 상징하는 시를 보내셨습니다.
홋카이도에서 철저히 회관을 엄호하는 아성회 벗에게는 “오직 부탁한다/ 명의 조람/ 아성회”.
눈이 흩날리는 도쿄 다치카와문화회관 주차장에서 임무를 서는 창가반 벗에게는 “한풍에/ 홀로 서노라/ 창가반”.
그리고 백련그룹 벗에게는 “음지이지만/ 명의 조람/ 눈부시구나”. 또 어느 때는 “백련/ 여러분 있기에/ 창가인가” 하고 시를 선사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시 말고도 다양한 기회에 수없이 직접 청년을 격려하셨습니다.
가바사와 -
소설 ‘신·인간혁명’ 제24권 <엄호>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생명의 인과이법, 다시 말해 ‘명의 조람’을 확신하고 불도수행에 힘쓰는 것이야말로 불법자의 삶의 기본이다. ‘아성회’와 ‘창가반’ 그리고 ‘백련그룹’의 존귀한 모습에는 그런 정신이 가득 넘친다.”
하라다 -
어느 그룹이든 선생님이 직접 육성하셨습니다. 일례로 아성회 벗과 함께 본부 주변을 돌며 화단의 나무 밑동까지 손전등을 비춰 자세히 점검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선생님은 몸소 학회 엄호정신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백련그룹의 상쾌한행동에 ‘학회는 훌륭하다’고 말하는 우인이나 내빈이 감동한 이야기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니시카타 -
2019년에 ‘아성회’ ‘창가반’ ‘백련그룹’에 들어간 멤버는 각 그룹의 ‘신시대 1기생’으로서 출발했습니다. 이후 소설 ‘신·인간혁명’ 완결로부터의 햇수와 같은 수를 거듭합니다.
하라다 -
‘새로운 힘’이 ‘새로운 광포의 문’을 여는 것이 광포의 철칙입니다. 젊은 여러분은 광선유포의 신시대를 개척하는 선구자입니다.
“음덕(陰德)이 있으면 양보(陽報)가 있다”(어서 1180쪽) “숨은 신(信)이 있으면 나타나는 덕(德)이 있느니라”(어서 1527쪽)는 성훈을 가슴에 품고 용약 전진하기 바랍니다.
장년부, 부인부 여러분도 이케다 선생님이 청년을 믿고 계속 격려하신 것처럼 ‘새로운 사람’이 무한히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청년의 힘’으로 함께 격려를 보냅시다!
하라다-3부6회 사제로 연 ‘청년육성’의 대도 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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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