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숭산 반룡사(美崇山 盤龍寺) /전통사찰
- 경북 고령군 쌍림면 용리
802년(애장왕 3)에 대가야 후손들이 신령스런 용의 기운이 서린 이곳에 절을 지었다. 해인사 창건과 같은 시기이다.
고려 때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612/지눌,목우자)가 중창, 공민왕 때에 나옹(懶翁)선사 중건.
『동국여지승람』에는 원나라 세조가 이 절에 내린 방문(榜文)의 전문이 있다.
방문 내용은 일본 정벌을 위해서 경상도에 왔던 원나라 군사들이 절을 짓밟고 시끄럽게 하는 것을 경계한 것으로,
절을 짓밟거나 소란을 피우는 자는 법에 따라 처벌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임진왜란 병화로 불 탄 것을 사명(四溟)대사가 중건하였다. 이후 불로 절이 훼손됨.
1764년(영조 40)에 현감 윤심협(尹心協)이 대웅전과 동·서 요사채, 만세루(萬歲樓) 등을 중건.
1930년쯤 중수, 1996년 대적광전을 건립하였다.
(인테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한민국구석구석 등 참조)
고령군엔 전통사찰이 반룡사와 관음사 두 곳이다.
고령은 대가야가 있었던 곳이다. 대가야 때 불교에 대한 기록은 없는 것 같다.
반룡사 가는 길은 읍에서 그리 멀지 않아 좋다.
반룡사 건립에 대하여 인터넷 찾아보기를 하였다. 창건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느낌이다.
중창과 중건에 대한 기록도 어디에 근거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보조국사 지눌과 나옹선사가 중창, 중건하였다면 고려시대 대단한 절이었을 것이다.
기와편이나 도자기 등 유물 출토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일주문
만세루
심검당
종무소
경북 유형문화재인 다층석탑(일명 수마노탑)과 동종, 복제품 전시, 진품은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있음.
직지사는 지금 박물관을 새로 짓고 있다. 내년 봄에 완공될까 모르겠다. 내년 가을에 직지사를 가면 볼 수 있을까?
대적광전
반룡사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경북 유형문화재
여러 나무조각을 연결하여 만든 점, 흙으로 옷주름을 사실에 가깝게 표현한 것 등이 독특하다.
곡면을 중시, 단아한 얼굴, 역동적인 옷주름 등이 특징이다.
1642년(조선 인조 20) 조각승 혜희(慧熙)가 주도, 상민(尙敏), 계학(戒學), 법균(法均), 조능(祖能), 지화(智和) 등이 참여.
삼존 모두 얼굴이 원만하고 근엄한 느낌이다.
반룡사 유래기
지장전
반룡사 목조지장보살좌상 /경북 문화재자료
목재에 도금,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제작기법으로 짐작하면 17세기 후에서18세기 초까지 활동한 금문(金文)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금문은 법령(法靈)-혜희(慧熙)·조능(祖能)-금문-청윤(淸允)으로 이어진 17∼18세기 법령파(法靈派) 조각승이다.
만든 이와 시기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다른 곳에서 보았던 지장보살 얼굴과는 다른 느낌, 미소가 보인다.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은 둥근 편인데 지장은 조금 길다.
승탑에 대한 설명문은 없다. 탁본을 하지 않으면 승탑 주인을 알 수 없다.
관음사(觀音寺) /전통사찰
-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일제강점기인 1911년 5월 해인사 고령 포교당으로 지었다. 지금은 대구 동화사 말사이다.
1980년 대 들어서 불사가 이뤄졌다. 유치원도 경영하고 있다.
관음전
범종각
천불전
산신각
칠성각
관음사 아미타여래도 /경북 문화재자료
1908년(융희/隆熙 2)에 금어(金魚) 원일(圓日)과 진규(眞珪)가 그렸다. 화면 크기는 109.8×157.3cm 다.
가운데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아래에는 유희좌 형식의 보살 4위, 상단에는 서 있는 가섭과 아난, 4위의 보살이 일렬로 배치.
불화 구도와 보살의 유희좌, 채색과 인물 표현 등에서 19세기 사불산화파 기전(琪銓), 전기(典琪)가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화기(畵記)에 제작시기와 제작자, 봉안처를 명확히 알 수 있고 19세기 범어사, 해인사, 동화사 등 경상도 지역에서
그려진 전통불화의 구도와 도상, 양식을 계승한 작품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관음사 신중도/경북 문화재자료
관음사 아미타여래도 같은 시기, 같은 승려가 그린 작품이다.
관음사 칠성도/등록문화재
화기, 1892년(고종 29) 수화승 전기(典琪)가 해인사 국일암에서 그렸다.
전기의 스승인 연호당 봉의는 옥천사 연대암과 통도사 안양암 칠성도를 그렸다. 전기는 스승의 초본을 이용하였을 것이다.
2023년 11월 15일 방문
고령 대가야은 가야연맹체의 후기 맹주였다.
대가야는 불교를 받아 들였는지는 모른다. 대가야 후손은 금관가야 세력처럼 신라에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김해엔 금관가야 고분이 거의 없지만 고령 대가야는 고분이 많이 존치하고 있다.
벅물관을 제대로 봤다면 고려 대가야 불교를 공부하였을 것인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