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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롬3:23-24 고후5:14 살후1:8-9 히9:27-28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상처 속에, 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개전 초기, 예상을 깨고 맹렬하게 항전한 우크라이나는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는데 현재는 영토의 1/5 이상을 빼앗겼고, 최대 격전지였던 아우디이우카에서 치열한 교전 끝에 철수했다. 우크라이나의 요새로 여겨졌던 이 지역의 상실은, 전쟁의 균형이 러시아 측으로 기울었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서방의 지원에도 러시아의 전방위 공세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인 상황에, '시간은 푸틴 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전쟁이 두려운 것은 전쟁중에는 적들의 목숨을 전혀 귀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일반인들까지도 무조건 죽이는 전쟁범죄자들을 비롯하여 배후에서 이런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들 때문에 인류는 생명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고 이 세상을 서로 증오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알고 보면 전쟁을 일으키는 배후에는 바로 마귀사탄이란 어두움의 세력이 있다. 마귀는 인간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지만 오직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인간생명의 소중함을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다. 이 시간도 전쟁을 멈추지 않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이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하루빨리 평화의 노래가 우크라이나의 하늘 아래 울려 퍼지길 바랍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가인과 아벨을 낳았던 이들 가정에서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 이후 세상은 살인과 죄악의 크고 작은 악행들이 늘 우리인생들의 삶을 두렵게 하고 있습니다. 방금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가인의 후예들인 인간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인간생명의 존중함을 말살하는 한 예이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므로 너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를 보여준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십자가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행하여야 할 주된 일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중에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편리한 삶을 살았던 시대는 없었다. 생활하기 편리한 아파트와 각종 전자제품은 물론이고 웬만한 집이면 승용차가 있고 마음만 먹으면 해외여행을 갔다 오는 등 정말 과거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생활은 편리해졌으나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은 과거보다 더 침체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교회는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교회학교가 소멸되고 노인들 위주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생활의 편리함에도 영적으로는 점점 쇠퇴해 가고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며 살다가 삶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 해 자살한 사람만 하루 35명꼴이라 한다. 이 기간 동안 노인 자살률도 OECD 평균 세 배에 달했고 청소년층의 자살률도 증가했다. 자살 원인에 대해서는 자살사망자의 80%가 정신질환을 지니고 있었고 대부분이 우울증이 주된 원인인데 마음을 치료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목숨까지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인생들이 길을 갈 때는 누구나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다. 요즘이야 길을 가다가 몰라도 네비게이션으로 가는 목적지를 치면 네비게이션은 그 차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안내한다. 성경은 모든 인생들이 인생길을 가는 목적지를 알려주는 네비게이션과 같은 책이다. 사람은 왜 내가 사는가를 알고 싶다면 성경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있고 그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내딛게 되는 자들을 향해 행복한 자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각자가 자신의 인생길을 걷게 될 때 수많은 길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 길을 걷다가 지쳐 쓰러져 그곳에서 일생을 마치는 자도 있으며 또 어떤 이는 도움의 손길을 입어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이도 있다. 조금씩 다른 시작점을 따라 걷는 것 같지만 하나같이 일생의 종착점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죽음이 인생의 종착점이라는 말을 다 들 잘 알고 있지만 죽음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런 것에 대해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만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러나 모든 인생은 세상에서는 고난과 질병을 맛보았을 자라도 죽음 이후에는 영생 얻기를 사모하는 것이다. 피조물인 사람의 몸은 그 연한이 정해져 있어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후패하여져 져서 그 연한이 다하면 겉사람인 몸은 본래 있던 곳인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속사람인 영혼은 있던 곳인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일생이 마쳐진 후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전3:19-21) 19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하나님께서 만물 곧 자연의 섭리를 통해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 있는 우리 인생들로 허무한 육체에 그 마음이 이끌려 살다가 짐승처럼 그 품어진 마음을 따라 영원한 심판인 두번째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마음(복음)을 품어 새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품는 것은 각자의 선택에 따라 결정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각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자유로 육체를 따라 곧 세상으로부터 온 정욕을 품고 죄에 종노릇하다가 사단과 함께 두번째 사망에 처해지던지...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품고 영생에 이르게 되든지는 각자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셨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지금도 각 사람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그러나 그 문을 열거나 닫는 것은 각자의 선택에 있다. 생명의 말씀인 주의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 주를 영접하든지, 아니하든지는 각자의 선택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경을 통해 명확하게 계시하고 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성경 구절은 성경에서 매우 엄중한 구절로서 읽은 후에 사람으로 불쾌하게 하고 들은 후에는 기분을 상하게 한다. 첫 부분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고 둘째 부분은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심판도 피하기 어렵다.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라 모든 사람이 죽었고 모든 사람은 심판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이 진리이다. 사실 이러한 심판에 관하여 말하기 싫지만 말해야 하고 여러분도 듣기 싫겠지만 들어야 한다. 사람이 죽는 것이 확실한 사실이라면 심판도 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머지않아 죽는다면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몇 가지 사실을 말해주는데 당신이 이런 것들을 믿든 안믿든 다 참되고 사실인 것이다. 당신의 불신으로 인해 사실이 거짓으로 변하지 않는다. 사실은 영원한 사실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당신이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든 안믿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마치 하늘에 있는 해를 장님이 믿든 안믿든 해가 있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성경은 또한 죄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사람이 죄가 있다고 믿든 안믿든 죄가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성경은 하나님이 계시는 것은 물론이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피조물인 인간은 살아가면서 죄를 짓고 그 죄값으로 인하여 죽음이 온다는 것을 알려준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 죽음을 모두 거쳐 갔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성경은 또한 장래에 관한 사실을 알려주는데 이것은 장래에 대한 것이기에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래에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믿든 믿든 안믿든 심판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죄가 크든 작든 거칠은 것이든 모양이 좋은 것이든 사람의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죄이든 사회의 공격을 받는 죄이든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리고 죄를 용서받는 길도 알려주었다. 복음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속에 자신의 백성을 구원할 자 되신 예수라는 이름속에 죄를 용서받는 길을 알려 주었다. 친구여!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당신의 죄는 용서받았는가? 아마 당신이 여러번 복음을 들었어도 아직 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당신의 죽음이 확실한 것처럼 당신의 심판도 확실한 것이다. 당신이 언제 죽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 당신은 응당 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얼마나 위험하게 될지 모른다.많은 사람들은 심판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이 오늘 죄문제를 해결해 놓지 않으면 장래 심판은 당신에 대해서 무정할 것이다.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심판의 때에는 늦다. 성경은 심판이 있다고 말할 뿐 아니라 심판의 결과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장래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의 죄를 심판하실 것이다.
(살후1:8-9)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사람들에게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렇다면 이 형벌은 지옥에 내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증거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은 참된 것이다. 동시에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준 지옥의 불도 참된 것이다. 죄사함의 은혜를 얻지 못한 사람보다 더 위험한 사람은 없다. 실제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내려가는 영원한 멸망을 피할 수 없다 .
거짓의 아비 마귀의 길을 가지 말자
지난번 대선을 불과 두 달도 안 남았는데 대장동 사태가 주목을 받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사실 대장동 개발은 성남시와 민간사업자가 공모하여 관민협동으로 개발한 것으로 2015년 3월에 성남시 개발을 위하여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설립한지 얼마 되지 않고, 실적도 없고 지분 1%인 자본규모도 작은 화천대유가 참여한 하나은행컨소시엄을 민간 사업자로 선정한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1조 원의 수익을 올렸는데 쟁점 핵심은 개발이익 1조2000억 원을 원주민에게 토지비용을 지불했어야 하는데, 성남시가 토지 수용권을 발동하여 원주민에게 돌아갈 6000억원의 토지대금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1조원의 수익이 발생한 것이라며 거기 참여한 실적도 없고 지분1%인 규모도 작은 화천대유가 받은 배당금은 577억을 챙겼다는 것이 대장동 사건의 이슈가 되고 있다.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이런 사실을 처음부터 인지한 상태에서 관·민 공동사업 구조를 설계했기 때문에 명백한 배임이라는 것이다.
이재명이는 지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이 대장동 개발은 자신이 성남시장으로 있었을 때 단군이래 최대 치적이라고 자화자찬한 한 것인데 이런 어마어마한 대장동 비리가 밝혀지면서 대장동 개발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유한기(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가 2021년 12월10일 첫 번째로 자살했다. 두 번째로 유한기 자살 10일 후에는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핵심인물 중 한명인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이 숨진 채 발견되었을 때 이재명이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방송에 출연해 김문기 “얼굴도 모른다” 등으로 말했다는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세번째는 이재명 변호사비 납비 의혹을 제공했던 이병철기자도 사망하였던 이런 자살사건을 우연의 일치로 봐야 할 것인가? 그리고 네 번째 사망자는 이재명 부인 김혜경의 '법인카드 불법유용 의혹' 사건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전직 경기도 5급 공무원도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한 사람의 비리 때문에 검찰 수사를 받다가 사망한 사람들이 네명이나 나왔어도 전혀 눈도 깜짝하지 않는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대선이 지나서 이재명 대표는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하면서 "오늘의 검찰 소환이 헌정사상 최초의 야당 책임자 소환이어서가 아니라 이미 수년간 수사해서 무혐의로 처분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 없는 사건을 만드는, 없는 죄를 조작하는 사법 쿠데타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던 이 대표는 "특권을 바란 바도 없고, 잘못한 것도 없고, 피할 이유도 없으니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말했다. 정말 그의 말대로 그가 아무 혐의도 없이 검찰이 거대야당대표를 소환하였겠는가? 그가 저지른 범죄는 위에서도 잠시 말했듯이 그로 인하여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몇 명이나 나왔어도 조금도 죄의식이 없는 인간이기에 이번에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자유통일당에 입당하고 이재명이가 계양에서의 국회의원을 막고자 자신이 의원출마 선언을 했다. 유동규 전 본부장은 대장동개발을 직접 기획한 인물로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이를 누구보다 잘 알므로 그동안 이재명과 유동규는 재판정에서 9번이나 만났던 사이로 이번에는 계양에서 이재명이가 국회의원 당선을 막고자 자신이 직접 후보로 출마하게 되면서 다시한번 이재명과 이번 4.10총선에서 대립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한 사람으로 인하여 관련된 사람들 4명이 사망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자살했는지 아니면 타살되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 알 수 있는 사건이다. 사실상 수사 선상의 가장 핵심 인물들이 영구적으로 입을 열지 못하게 벌어진 것이 누구 때문이라는 것은 이재명이가 가장 잘 알 것이다. '굿바이, 이재명' 저자 장영하 변호사는 이재명과 그의 친형 故 이재선 씨와의 갈등 등을 담은 책 '굿바이, 이재명'을 출간해 세간에 파장을 일으켰던 저자이다. 그는 예리한 판관의 시선으로 꿰뚫은 양심의 고발장으로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음을 실증하는 것인데 거짓말쟁이가 영웅이 되는 세상 마침내 언더독 반격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자신의 저서가 그 거짓말을 밝히는 마지막 촛불이라고 자부한다. 저자는 판사 7년을 포함 법조인 30년 경력의 호남출신 장영하(63) 변호사로 이재명과 부적절한 관계를 에워싼 여배우 김부선의 소송대리인이다. 이재명-장영하 두 사람은 근 30년의 연을 맺은 절친이었던 저자가 인간 이재명과 결별을 다짐하는 [굿바이 이재명]은 동기가 이렇다.
- 전과4범(무고 및 검사자격 사칭, 도로교통법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공용물건 손상, 선거법위반)이 어떻게 성남시장을 연거푸 2번하고 경기도 지사를 거쳐 대선후보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이 정상인가? 일반인은 전과 하나만 있어도 공직을 갖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 더 끔찍한 것은 이재명은 친형인 이재선이가 성남시의 문제점을 공개 질의한데 대한 앙갚음으로 친형 이재선 공인회계사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고 했던 것이지 가족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굿바이 이재명은 어쩌면 인간이기를 거부한 패륜의 쌍욕 이재명의 입에서 총칼같이 튀어나온 앙칼진 음색, 오늘을 사는 수백만의 귀에 박혔을 것이다. 우리 모두 입만 열면 거짓말투성이 그를 향해 굿바이를 외칠 때가 아닌가!
장 변호사는 "이병철 제보자는 원래 열렬한 이재명 지지자였다가 2018년 지방선거 전후로 이재명이가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섰다"며 "이재명이의 숨겨진 본성이나 깊은 구석을 뒤늦게 본 것이 있는지 '저런 X이 무슨 공직을 하겠다는 것이냐, 문제가 심각하다'며 불만을 표출했다"고 전했다. 이병철 기자도 이재명 변호사비 납부의혹을 제공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이처럼 연쇄죽음으로 이어지는 공포의 미스터리 괴담드라마와 같은 실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대장동 개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의 종착점은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의 개입 여부를 가려내는 것이다. 성남시는 성남도개공의 상급기관으로서 대장동 개발사업의 인허가권과 관리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성남시장은 이재명 현 민주당 대표이었다. 그는 이 사업을 시장 시절 단군이래 최대치적으로 평가해왔는데 대장동사업과 관련되어 벌써 3명이나 죽었다니 이재명은 여기에 대해 직접적인 살인은 안했더라도 간접적인 살인을 한 것으로 밖에 달리 볼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귀한 것인데 이재명부인 법카비리를 포함하여 네명씩이나 죽게 하다니 정말 두렵지 않은가! 아무리 돈과 명예 권력이 좋더라도 거짓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얻고자 하는 자는 거짓의 아비 마귀의 하수인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예수님은 거짓말 하는 것이 이렇게 나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의 아비 마귀는 우리 인간보다 강한 자로서 우리 목숨도 빼앗을 수 있지만 영혼만은 뺏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거짓말은 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10계명 중 9번째 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입니다. 즉 이웃에게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의 거짓말 때문에 이웃이 죽기까지 한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질 수 있을까? 예수님은 우리 생명의 소중함을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영혼)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 혹은 사람이 무엇을 주어 자기 혼(목숨)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 ?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요약하면 10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그 중에서 여섯 째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도 너무 고귀하기 때문에 사람이 함부로 목숨을 살해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목숨을 살해하면 살인이라 하고 자기 목숨을 살해 하면 자살이라고 하는데 분명한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6계명을 범하여 살인 또는 자살하는 순간 그들의 영혼은 불타는 지옥으로 직행하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자살하는 자들을 추모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있듯이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위에서 죽으신 것은 지옥갈 자들을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인간이 살면서 예수님 보혈로 죄사함을 받아 구원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2. 죄 값은 사망입니다
내마음속에 하나님을 싫어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죄는 하나님을 원하지 않아요. 죄는 하나님을 미워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사랑을 하려고 해도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내속에 사탄이 심어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원수 사탄이 내 속에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탄이 우리 마음속에 심어 논 세속적인 특성을 보겠습니다.
(딤후3:1-5)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신성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본성의 애정이 없으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며 4 배신하며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5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밖에 돈 밖에 사랑할 줄 모릅니다.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아담의 후손인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태어났으며 또 살아가면서 스스로 자범죄를 짓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자기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는 숨쉬지 않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인간은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죄값에 대해 사망이라고 말씀하셨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으므로(롬3:23) 죄에 대해 치러야 할 값은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강도짓을 한 사람이 재판을 받게 될 때에 그가 재판장 앞에서 잘못했다고 회개하면 그 죄가 그냥 용서가 되겠습니까? 그가 잘못을 시인하고 돌이키겠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회개했다고 그 죄가 용서되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회개하는 것과 그 죄에 대하여 벌을 받는 것은 다릅니다. 그가 죄에서 해방되는 길은 죄 값을 치르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하여 해방을 받으려면 자기의 죄 값을 치르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회개입니까? 선행입니까? 율법을 잘 지키는 것입니까? 그렇게 할 때 죄 값이 치러집니까? 오직 죄에 대한 판결은 죄인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 사망 이외에 죄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자신의 노력을 멈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 꿇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3.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는 유일한 길이 있다
예수님이 무슨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는가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우리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고자 하였는데 대속물이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어주는 희생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으로서 죽어야 할 그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 것을 믿으면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해 죽은 것입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이같이 판단하노니 곧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었으면 모든 사람이 죽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죄의 삯은 사망인데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대신 죽으셨던 것은 우리들이 죽은 것과 똑같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네 사람이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했는데 식사 후 나올 때 그 중 한 사람이 식대를 지불하였을 때 다른 세 사람도 역시 식대를 지불한 것이나 같지 않겠어요? 그렇습니다. 다른 세 사람은 식대를 지불한 적이 없지만 그들은 낸 것과 같이 주님은 당신을 대신하여 죽으셨으므로 당신이 예수님을 속죄의 구주로 믿는다면 예수님은 이미 당신의 죄 값으로 죽은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에게서 죄 값을 다 받으셨으므로 당신 죄 값은 지불되었다고 주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큰 소리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다는 것은 "다 갚았다"는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아무 죄도 남아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그 삯은 이미 지불되었으니 이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전부는 주님이 날 위해 죽으셨던 것을 믿고 주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분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정말로 저의 죄의 삯을 대신 갚아 주신 주 예수님 참 감사드립니다"하면서 확실한 것은 죄인이었던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의롭다 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롬3:23-24)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들은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준엄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 신이 어디 있느냐 하며 마음대로 살겠지만, 죽음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주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에게 선포하시기를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느니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신 것은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한 것인데 모든 인류는 이런 죽음의 두려움 속에 빠지게 되었으나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놀라운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즉 나사로가 죽은 지 4일만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현장을 보여주시면서 하신 말씀
(요11:25-26) 25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누구든지 살아서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보여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둘째 사망을 받는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심판 받을 대상이, 둘째 사망을 받을 자들이 있다.
(계21:8)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심판받을 자들의 명단을 보면 마귀 두려워하고 하나님 믿지 않고 우상 숭배하고 각종 죄를 자기 짓는 자들은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것이다.
(계20:12-15)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백보좌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심판자 앞에는 행위들을 기록한 책들과 구원받은 자들을 기록한 생명책이 있는데 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여 멸망을 당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생명책에 기록되어 영생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로 죽음에서 최초로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생을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생명의 씨가 있다면 몸은 죽어도 영은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산자와 죽은 자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에덴동산에 아담을 보십시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을 하셨는데 아담이 먹고 난후 바로 죽었을까요? 아담은 이 후에도 90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산자와 죽은 자의 개념이 우리 인간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땅에는 생명의 말씀으로 사는 자 곧 그리스도인들이 있고 목숨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며 배를 위해서 사는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몸도 영원히 산다고 하니 이 육신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같이 먹고 마시면서 그 홀연히 부활한 몸을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은 몸이 영원히 죽지 않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산다는 말씀이 아니라 죽은 이후 부활을 통한 몸이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말씀을 하시는데 정말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장수를 하던가요? 이 말씀을 직역하면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 곧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생명이 무엇이고 목숨이 무엇입니까? 생명은 영원한 것이요, 목숨은 숨을 쉬고 있는 우리 육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부모공경하면 이 땅에서도 목숨이 길어 장수하지만 죽은 이후에는 영생을 한다는 말씀이 아닌가요?
지금 이 시대도 하나님께서는 신유의 은사를 통해서 병든 사람들이 고침을 받고 있으며 그런 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신유의 은사는 그냥 은사입니다. 그것이 나타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기도를 해서 어떤 사람의 병을 고쳤다면 그것은 단지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반드시 구원에 참예한 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병이 나은 사람도 확실하게 구원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은사입니다. 은사가 나타나는 것과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는 은사주의에 빠져 맹목적으로 쫓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병이 치유되었다고 안 죽습니까? 마치 안 죽는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암병이 걸려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를 받았다고 해도 이 육신은 반드시 사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의 모든 치유는 믿는 사람에게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아직 복음을 모르는 사람 가운데서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병도 참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아니 자기 병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순교할 수 있겠습니까? 병이 치유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그것을 이길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성도가 축복을 받은 성도입니다. 우리는 어떻든 한번은 죽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진리입니다. 그렇게 정해 놓았으면 병이 걸려서 죽든, 순교로 하든, 사고로 죽든 누구든지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는데 그 정해 놓으신 것을 성도들에게서 굳이 그것을 막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조금 더 살고 조금 일찍 죽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구원을 내가 이루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 하신다면 어차피 죽을 생명을 굳이 연장 시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온전한 사람에게 병을 주셨어도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또한 그 병으로 죽게 하십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병도 받아들이고 순교도 받아들인다는 사람이 그깟 병을 못 받아들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게 신유의 은사가 있어 그 신유은사를 통해 병을 고치고 고침을 받았어도 그 영혼은 사망가운데로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성도는 한번 죽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것이 아니라 두번째 사망을 당하지 않도록 믿음에 서 있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5. 많은 사람들이 지옥 불못을 향해 가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으리라는 말씀은 살았을 때 보다 사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후세계는 살았을 때 행한 대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천년전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으며,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신다 하셨습니다(요12:48).
주님께서 육체로 죽임 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 받아 승천하셨으며 때가 이르면 다시 오셔서 흰 보좌(계20:11-15)에 앉으실 때 지금까지 죽은 자들이 자기의 행위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고 지옥 불못에 던지우며,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둘째 사망 곧 불못에 던지운다(계21:8)는 말씀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한번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9:28).
(눅20: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을지라도 당신을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역사들이 죽음을 피할려고 하였지만 그 것만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시황은 분서갱유(焚書坑儒 서적을 불사르고 수많은 유생을 구덩이에 묻어 죽인 일)와 만리장성으로 한때 세상을 제패하며 온 세상을 점령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그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여 서복을 보내어 동해에 가서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했지만 보내심을 받은 자가 오기도 전 그와 그의 정권도 붕괴되었습니다.
스탈린 역시 죽지 않는 약을 먹고자 갈망하면서 사람들은 그의 뜻을 받아 과학적인 방법으로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의 고향에서 백살이 넘은 노인들을 불러다가 실험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각종 식물 약제를 시험하여 반응을 보았다. 안타깝게도 노인들 중에는 실험에 의해 죽는 사람도 있었으나 장수의 방법을 발명해 내기도 전에 스탈린은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죽음으로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고 난 후 우리 속에 있는 또 다른 나 곧 나의 영혼이 처할 운명을 생각하고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영혼은 본래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할 때부터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드셨기에 짐승이나 다른 피조물들처럼 죽음으로 끝나 소멸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느냐.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느냐? 그래서 우리 인간에겐 본성적으로 나를 만들어주고 낳아준 창조주를 그리워하고 찾고자 하는 '선한 양심'이란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구원과 진리의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선 지금도 그 분을 대신할 '목자'를 세워서 참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고 많은 사람이 구원으로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마11:28-30).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또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을 속여서 죄를 짓게 하고 모든 인간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자 했던 저 악한 마귀는 지금도 이 땅에 거짓 목자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참 진리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훼방하며 사람들을 미혹해서 저들이 파놓은 함정(거짓 교리와 인간의 계명, 사상)에 빠뜨려 사람들을 멸망으로 몰아가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고 양심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지금 공중권세를 잡고 인간세계를 이끌어가는 자는 어둠의 세력자요 흑암의 왕인 원수 '마귀' 입니다. 우리가 까딱하면 하나님의 음성인줄 알고 잘못 따라갔다가는 하나님으로 가장한 마귀의 음성(거짓 목자의 음성)을 듣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므로 구원을 이미 받으셨다고? 그래서 천국은 당연히 가고 미래는 이제 아무런 걱정이 없으시다구요? 구원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기만 하면 가는 천국,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는 천국. 구원의 문은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마7:13-14)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좁고 그 길이 좁아 그것을 찾는 자가 적으니라.
하나님이 주신 성경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 죄와 사망을 멸하시고 승리하신예수그리스도 즉,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요 20:31).
다시 말씀드리자면 '예수'는 십자가 지기 전 사람의 이름이며, '그리스도'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부활하신 곧 영광과 승리의 이름인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이 없는 죄사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죄가 사해졌고 그의 부활하심이 우리에게는 의가 되는 것이기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께서 어떻게 믿든 믿는 것은 본인 마음대로 믿지만 진리를 믿느냐. 거짓을 믿느냐에 따라 영생의 천국이냐. 아니면 영벌의 불못 지옥이냐가 주어지는데 결과는 극과 극으로 갈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의 길로 나갈 때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 이외는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행4:12).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요3:16).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도)를 깨닫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에게로 나가야 합니다. 그 길은 우리에게 열어 놓은 새롭고 보배로운 산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을 찢으시고 누구든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입니다(히10:20).
흙에서 난 것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니, 당연히 한번은 죽지요. 그래서 부활이 필요한 것이고, 사람이 원래부터 영원히 살게 되어 있다가, 마귀의 유혹으로 인해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몸으로 영원히 살 수 없고 우리도 영의 몸으로 즉 부활의 몸으로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그리나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나는 죽는다는 것을 얼마나 의식하며 사나 싶습니다. 죽음이 두려워 죽음에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불필요한 것들을 멀리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봅니다. 죽음을 의식하며 살 때 우리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죽음 이후에 하나님이 우리 모든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마음에 죄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으로 모셨는지 아닌지 심판하심으로 의인은 영생에 죄인은 영벌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 다니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교회를 다니는 것과 다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교인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믿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주님과 함께 죽었던 자라고 한다면 세상일에 그리 욕심을 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지옥 즉 둘째 사망을 피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계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능을 가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자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고 둘째 사망을 받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 한다고 하니 이것은 단지 구원정도가 아니라 상급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