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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우리 가정을 주님을 위해서 내어 놓으세요 = 사도행전12;12(190414)
PW : 믿음 BIW : 내어 놓으라 AG :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TS : 믿음이란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우리의 가정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저걸 어따 써!
은행에서 칭얼대는 애기의 기저귀를 갈아준 뒤, 똥 기저귀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애기엄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내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면 냄새가 날 것 같아 밖으로 들고 나왔습니다.
밖에 있는 쓰레기통을 찾고 있는데, 어디선가 쏜살같이 오토바이가 다가와서는 손에 든 것을 쏜살같이 빼앗아 달려가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애기엄마는 달아나는 오토바이를 보면서,
“저걸 어따 써?” “저걸 어따 쓴다요!”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똥은 화장실에 버려야 합니다.
신문으로 둘둘 말았다고 해서 똥이 돈 보따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은 화장실에 버려야할 똥 같은 것들을 둘둘 만 돈 보따리처럼 생각하여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바울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알고 믿음으로 주님이라고, 구세주라고, 메시야라고 고백한 이후 자신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노라고 선언합니다.
아무 곳에도 쓸모없는 우리의 고집, 아집, 습관, 전통, 얄팍한 지식 등등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에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베풀어주시는 신령한 하나님의 것들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꽉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믿음으로 버리셔야 합니다.
대신에 하나님의 신령한 것들을 취하여야 합니다.
수수께끼~
그 전에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그 당시에는 온통 대장금밖에 없었다.
대장금 37회에 등장하는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대장금이 중종대왕의 어머니 대비에게 목숨을 건 내기를 하는 내용이다.
대비가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면 대장금이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고, 대비가 답을 알아내지 못하면 의관의 진료를 받는 조건으로 내는 수수께끼이다.
이 사람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식의로서, 중국의 황제에게 식의가 생겨난 기원이 이 사람이라고 한다.
이 사람은 본시 태어나기를 집안의 노비로 태어나 궂은일을 다 하였으나 또한 집안 모든 사람의 스승이기도 하다.
이 사람이 살았을 때는 온 천하가 태산이었으나 이 사람이 죽자 온 천하가 물로 뒤덮였다고 한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식의(食醫)는 궁중에서 쓰는 음식물에 대한 위생과 검수의 책임을 맡은 의관으로서 이 사람의 주요 직무는 식의라 한다.
식의라는 것은 행여 임금이 드셔서는 안 되는 음식은 무엇일까? 어떤 음식을 드셔야 임금의 옥체에 이로울까? 밤낮 없이 임금의 음식과 건강을 생각하는 직이다.
어머니는 자식이 혹 어디가 아플까 하여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을 살피는 식의와 같다.
또한 이 사람은 그 집안의 노비로 태어났으나, 실은 그 집안 모든 사람의 스승이라 한다.
어머니는 춥더라도 자식만은 입힐 것이며, 어머니는 굶주려도 자식만은 먹이는 사람이다.
어머니는 힘들어도 자식만은 편케 하려고 하니 어찌 보면 자식을 위해서 노비보다 더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런 어머니의 보살핌 없이 먹는 것 하나, 입는 것 하나라도 어찌 가능할 수 있을까?
그러니 어머니는 그 집안의 가장 고단한 노비이고 누구보다 훌륭한 스승이다.
이 사람이 있을 때는 천하가 산이었으나, 죽어서 사라지고 난 뒤에는 천하는 물바다로 뒤덮인다.
살아 있을 때는 자식에게 든든한 산이 되어야 하고, 죽어서 사라지고 난 뒤엔 자식이 눈물바다를 이루게 된다.
이 사람은 바로 우리의 어머니이시다.
P4.
오늘 우리는 이런 어머니와 같은 여인을 만나기를 소망한다.
오늘은 우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서 어린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종려주일이다.
그러면서 한 주간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고난주간이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고난과 죽음의 권세, 죄악의 권세, 사탄의 권세를 이기시고 당당하게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을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에 커다란 감동을 받는다.
그런가하면 일부 교회들과 교단에서 사순절이라는 이방인의 절기를 교회에서 꼭 지켜야 되는 것처럼 사순절이라는 용어를 서슴지 않고 사용한다.
사순절이라는 것은 바벨론전통종교, 바벨론 이방종교에서 세미라미스의 유복자인 담무스가 멧돼지의 공격을 받아서 죽었다가 40일이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난 것을 기념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순절이라는 것은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고난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부활절의 공식적인 명칭을 Easter라고 부르는 것도 전혀 성경적이지 않고 이방종교의 방법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날은 Easter가 아니라 the Resurrection Day이다.
Easter라는 용어는 바벨론의 Ishtar여신의 탄생 신화에서 생겨난 것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full moon)이 떠서 유프라테스 강을 비출 때, 하늘로부터 달의 형상을 한 알(egg)이 내려와서 그 알에서 세미라미스(Ishtar)가 태어났다는 탄생설화에 의해서 Easter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이다.
로마카토릭교회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부활절은 Ishtar여신의 탄생을 기념하는 절기인 ‘춘분 후 만월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정해지게 되었다.
달을 기준으로 날짜를 정하는 유대력이 무시되어지고, 태양을 기준으로 날짜를 정하던 로마의 태양력에 따라서 Ishtar의 탄생을 기념하던 절기가 부활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교회만이라도 사순절이나 부활절을 Easter라고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예수님께서 로마 군사들에게 붙잡히시고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고난주간에 하신 많은 일들 중에 최후에 만찬을 베푸시는 장면이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신 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해마다 반드시 지켜야 되는 유월절 만찬에 의해서 만들어진 장면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금요일이 되기 전, 목요일 저녁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지냈던 장소는 어디일까?
마가복음14;12-21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두 제자를 보내면서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에서는 두 제자의 이름이 기록하고 있다.
두 제자는 베드로와 요한이다.
예수님의 보냄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서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베드로와 요한은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뒤따라가서 그 집 주인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한다.
집 주인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그렇게 하시라고 허락한다.
그러면 이 집은 누구네 집일까?
복음서에서는 구체적인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다.
이 집에 대해서 사도행전12;12에서는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고, 요한은 유대인식 이름이다.
이 집은 바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다.
곧 마가네 집이다.
예수님의 고난주간과 헤롯 아그립바1세에 의해서 야고보 사도가 죽은 것은 시간적인 차이가 많이 난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AD 37에서 44년까지 통치한다.
예수님은 AD 29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헤롯 아그립바 왕이 즉위하면서 유대전통주의자들에게 환심을 받기 위해서 처음으로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인 야고보를 죽인다.
헤롯 아그립바1세가 야고보를 죽이자 유대전통주의자들이 너무 좋아하고 환호하는 것을 보면서 베드로사도 마저 죽이려고 하다가 하나님께서 이적을 베풀면서 실패하게 된다.
하나님은 곧 이어 헤롯 아그립바1세에게 충을 보내서 죽이면서 심판하여 AD 44년에 죽게 된다.
이처럼 헤롯 아그립바1세가 죽는 시점을 기준으로 베드로 사도가 감옥에서 구출되는 시기는 대략적으로 AD 40년 이후에 있었던 사건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시기에는 마가의 아버지가 살아 계셨던 시절이다.
마가는 성년식은 거행하기 이전이거나 성년식을 거행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어린 청소년시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후에 마가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마가네 집에는 실질적으로 마가의 어머니가 주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도행전에서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서 그 집 주인에게 유월절 만찬을 할 수 있는 위층 방을 내 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물론 마가의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시절이기 때문에 마가의 아버지에게 유월절 만찬을 할 수 있는 큰 방을 내어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가의 아버지에게 하시는 말씀이지만, 부부일심동체이기 때문에 마가의 어머니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신다.
하지만 마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마리아는 위층 방을 내어드릴 수 없다.
왜냐하면
① 1층에는 매일 중요한 사람들이 모여서 연회를 해야 되고, 위층에는 유월절 기간이기 때문에 이미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빈 방이 없다.
② 예수님과 제자들이 우리 집에 오시게 되면 번거롭기도 하고 신경 써야 될 부분이 너무 많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번에는 다른 집에서 유월절 만찬을 지내셨으면 좋겠다.
D4.
① 장소를 제공하라고 감동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한글성경에는 큰 다락방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성경이 우리 한글로 번역하던 시절, 우리 조상들이 살던 시절의 옛날 집들을 생각하면 다락방은 지붕 밑에 있는 아주 작은 골방에 불과하다.
다락방이라고 한다면 잡다한 물건들을 쌓아두는 아주 비좁고 작은 방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기 때문에 다락방이라고 번역하면 안 된다.
위층에 있는 큰 방이라고 번역해야 옳은 번역이 된다.
실제로 the Upper Room로서 윗방이다. 곧 large the upper room이다.
부유한 유대인 귀족들의 집에는 1층에는 넓은 마당과 더불어 연회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2층에는 게스트룸(Guest Room)으로 손님들이 지낼 수 있는 넓은 방을 갖추고 있다.
유대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3대 절기인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준비하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
3대 절기가 농사철과 연결되기 때문에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1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산해드린공회에서 예루살렘 성전 근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반드시 1년에 세 차례 성전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려야 된다고 결정하였다.
그러나 먼 거리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1년에 한 차례만 성전으로 올라가서 제사드릴 것을 결정하게 된다.
3대 절기 중에서 가능하면 유월절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라고 결정하였기 때문에 유월절 절기가 되면 전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으로 몰려든다.
기록에 의하면 170만 명 이상 되는 유대인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숙식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문화는 예루살렘 성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절기 때에 찾아오는 순례객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아무런 조건 없이 숙식비도 받지 않고 숙식을 제공해 주어야 되는 문화가 있다.
예수님도 유대인이기 때문에 해마다 적어도 한 번은 성전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면서 마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도록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마가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찾아오셔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월절 만찬을 진행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라고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감동시켜 주심에 따라서 마가의 아버지, 어머니는 믿음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월절 만찬을 진행할 수 있도록 자신의 위층방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귀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장소를 제공하라고 감동을 주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떤 장소를 제공하라고 하실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갖고 계시는 사역과 주권을 위해서 어떤 장소를 헌신하기를 원하고 계실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만히 가만히 찾아오셔서 감동을 주신다면 그 공간을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복음과 교회를 위해서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는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② 놀라운 축복의 장소로 사용하시는 하나님.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 제사를 드리는 날 저녁에 마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유월절 만찬을 보내는 것이다.
마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마리아가 내어놓은 그 윗방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 만찬을 지내고 계신다.
이 마리아의 집에서 드려지는 유월절 만찬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예수님에게는 공생애의 마지막 만찬이 된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드려지는 최후의 만찬이 된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집에서 최후의 만찬을 통해서 역사적인 거룩한 성만찬을 제정하신다.
유월절 만찬에서 반드시 먹어야 되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예수님의 몸으로 제정하신다.
유월절 만찬에서 반드시 마셔야 되는 포도주를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흘리는 예수님의 피로 제정하신다.
예수님은 성만찬을 제정하면서 세상의 종말이 될 때까지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기념할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면서 세족식을 시행하시면서 하나님 앞에서 정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더 되새김질해 주신다.
세족식은 겸손과 섬김의 의미보다는 하나님 앞에 서야 되는 신앙인들의 정결의식을 가르쳐 주고 계시는 아주 중요한 의식이다.
마리아의 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바위무덤에 장사지낸 후에 제자들과 신앙인들이 온갖 두려움과 무서움과 염려 속에 함께 모인 집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온갖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말씀해 주신 바로 그 집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도마가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할 때, 다시 찾아오셔서 도마에게 못 자국 난 자신의 손과 창에 찔렸던 허리를 보여주면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해 주신 바로 그 집이다.
마리아의 집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120여명의 신앙인들이 모여서 10일 동안 함께 기도하다가 오순절에 성령의 임재를 받은 바로 그 집이다.
마리아의 집은 예루살렘의 초대교회가 시작되는 바로 그 집이다.
마리아의 집에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는 예배드리는 처소가 된다.
마리아의 집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온갖 이적들이 일어나는 교회가 된다.
행12장에서 헤롯 아그립바1세가 유대전통주의자들의 환심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마저 죽이려고 베드로를 체포했을 때, 베드로를 구출해 달라고 기도하던 바로 그 집이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집을 거룩한 교회로 세워주신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집에서 생생하게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은혜와 축복의 장소로 만들어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처소, 우리들의 가정과 생업터전과 직장에서 거룩하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이적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채워주시는 장소로 만들어주시길 원하신다.
③ 아들 마가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스데반 집사가 순교당하는 사건으로 인해서 신앙인들이 세계 각처로 흩어지면서 수리아 안디옥으로 이사 간 신앙인들이 예수님을 전하면서 이빙인의 교회인 안디옥교회가 세우게 된다.
안디옥교회가 부흥하고 커지면서 바나바가 초대교회로 부임하게 되고, 바울이 부교역자로 부임하게 된다.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예루살렘 교회가 극심한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서 부조금을 마련하고 바나바와 바울이 마가의 집에 있는 예루살렘 교회로 가서 전달해주게 된다.
바나바와 바울은 다시 안디옥교회로 돌아오면서 마가를 데리고 온다.
예수님은 안디옥교회에 감동을 주시면서 바나바와 바울에게 안수하면서 선교사로 파송하라고 하신다.
바나바와 바울은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서 마가를 데리고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
바나바와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을 하던 중에 밤빌리아(Pamphylia)라는 성읍에서 토로스산맥(Toros Daglari)을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Antioch in Pisidia)으로 넘어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
지금이야 철도와 고속도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안전하고 아주 쉽게 토로스 산맥을 넘어갈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험난한 산지였고, 종종 산적들이 출몰해서 여행객들의 모든 재산들을 노략질했기 때문에 여행하기가 아주 어려웠던 시절이다.
젊은 마가는 산적들이 출몰하고, 여행하기가 너무 어려운 토로스 산맥을 넘어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무섭고 두렵고 끔찍해서 중간에 전도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와 버린다.
마가가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와 버린 일로 인해서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될 때,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다투어서 갈라서게 된다.
제2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아시아 지역으로 떠나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 지역으로 떠나게 된다.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 조카이다.
삼촌 바나바를 따라서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 마가는 삼촌 바나바와 함께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바나바가 지닌 주님을 향한 열정과 인격과 신앙을 따라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아주 훌륭한 전도자로 세움을 입게 된다.
마가가 제1차 전도여행 할 때에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와 버린 사건 때문에 바울은 마가를 인정할 수 없다고 거부한다.
제2차 전도여행할 때, 마가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하면서 마가를 거부했던 바울은 한참 후에 로마감옥에서 골로새교회에 쓰는 골로새서 4:10에서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고 말씀한다.
바울은 딤후 4:11에서는 로마 감옥에서 디모데에게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바울은 빌레몬서 1:24에서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베드로는 벧전 5:13에서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고 하면서 마가를 자기의 영적인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가는 베드로 사도에게서 예수님께서 살아생전에 하셨던 말씀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이적의 이야기들을 전해 들으면서 복음서를 기록하게 된다.
마가가 기록한 복음서가 처음으로 기록한 신약성경이다.
마가복음서는 네로황제가 극심하게 신앙인들을 핍박하던 시절인 AD 54에서 68년 사이에 기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가가 기록한 마가복음서에 근거해서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기록되어진다.
그런가하면 마가는 순교자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마가는 능치처참의 순교를 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가가 훌륭한 복음전도자로 살다가 AD 68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이교도들에 의해서 붙잡혀서 가축에 목줄을 매듯이 그의 목에 밧줄을 묶은 후 길거리로 끌고 다니다가 감옥에 가두게 된다.
그 감옥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순교할 것을 예언한다.
이교도들은 마가를 길거리로 끌고 다니면서 온갖 추악한 일을 저지르는데, 마가는 너무 지쳐서 쓰러져 죽게 된다.
이교도들은 마가의 시신마저 불에 태워버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쏟아지게 된다.
그러자 이때 마가를 따르던 신앙인들이 모여들어 재속에서 마가의 시신을 꺼내서 교회로 운구하여 기도를 드리면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리아 여인이 자기 집을 주님의 교회로 내어놓고 헌신하였을 때, 하나님은 마리아 여인의 아들에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신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위대한 전도자 마가의 어머니로 세워주신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최초의 복음서, 마가복음서를 기록한 마가의 어머니로 세워주신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순교자 마가의 어머니로 세워주신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복된 상급이 순교의 상급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마가를 순교자의 재물로 받으시면서 마리아 여인에게 순교자의 어머니가 되는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
부모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이 있다면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이다.
부모님에게 주시는 가장 큰 상급과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식들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면서 주님의 신실한 일꾼으로, 종으로, 사역자로 세워지는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마리아 여인의 이름보다도 아들의 이름, 마가의 이름을 더 높여주면서 어머니에게 크신 상급을 주시고 계신다.
신앙인들의 입에서 마리아의 집으로 알려져야 되는데, 어느 누구도 마리아의 다락방이라든지, 마리아의 집으로 부르는 사람이 없다.
아들 마가의 다락방으로 부르고 있다.
어머니들이란 자신의 이름, 어머니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보다 아들의 이름이 더 높여지는 것을 더 기뻐하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주신 은혜와 축복은 아들 마가의 다락방으로, 아들 마가의 집으로 더 많이 알려지는 것이다.
L4 & B4.
이처럼 마리아의 집을 은혜와 축복의 장소로 사용하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의 가정과 생업터전도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장소로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
마리아의 아들을 축복해 주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 은혜와 축복의 상급으로 채워주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들의 가정도, 우리의 생업터전도, 우리들의 가계도 주님을 위해서 내어드릴 수 있는 은혜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이것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들의 작은 헌신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님의 일꾼으로, 주님의 종으로, 주님의 사역자로 세워주신다면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서 마가를 축복해 주신 것처럼, 우리들을 통해서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은혜의 사람으로 세워진다면 세상에 어떤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가정과 생업터전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흘러내리는 처소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① 성삼위 하나님을 온전하게 주인으로 모시고 인정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언제나 우리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라는 믿음으로 우리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우리 주님이라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여기실까?
우리 주님이라면 지금 이 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우리 주님이라면 지금 무엇을 가장 기뻐하고 좋아하실까?
우리 주님이라면 이곳이 어떤 곳으로 사용되기를 원하실까?
무엇을 하거나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항상 주님을 먼저 생각하고 주님께서 임재하고 계신다는 의식을 하면서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좋아하실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야 한다.
② 세상의 타락한 문화보다는 영적인 문화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가정을 항상 찬양이 흘러나오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성화나 성구들로 분위기를 온화하고 따뜻하게 꾸밀 수 있어야 한다.
교회들 마다 카페를 만드는 것이 대세이다.
요즈음 트렌드가 되는 카페의 분위기도 신앙적인 모습으로 꾸미고, 가정과 일터에도 신앙적인 인테리어로 꾸미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의 향기가 묻어나올 수 있도록 꾸미는 것이 좋다.
어디를 앉더라도 우리 주님께서 꼭 앉아 계실 것 같은 느낌과 분위기가 살아났으면 좋겠다.
③ 거룩한 예배와 섬김의 모습이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누구든지 찾아왔을 때 안락하고 평안한 분위기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기도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성경공부를 하거나 제자훈련을 하거나 건전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다.
어떤 집을 방문해보면 평안한 안식을 주시는 가정이 있는가하면, 어떤 집은 그 집에 들어가면서부터 머리가 어지럽고 아파오는 가정이 있다.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가정이 되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샬롬, 평안, 평강의 마음을 주신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지 않고 세상의 영에 꽉 붙잡혀 있으면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하고 염려가 되고,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 현상들이 나타난다.
그러기에 우리의 가정과 생업터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처럼 흘러내리도록 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된다.
특히 우리 주님의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우리 자녀들에게 주님의 십자가와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면서 오직 주님 한 분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자녀들로 키워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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