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색소폰 연주는 하지 말아야
학교 다닐 때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의 훈시는 새겨들을 말은 거의 없는 것으로 기억됩니다. 목사들의 설교시간에는 교인들이 졸기마련입니다. TV 시사 논평이나 보수언론 신문들의 사설, 정치인들의 연설을 하면 채널을 돌려 버립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천편일률적인 뻔한 소리를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너무 뻔 한 것에 대해 식상해져 있습니다, 미식가들은 동네식당의 뻔한 맛에 지겨워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다니는 여행을 합니다. 글도 역시 그런 것 같습니다. 뻔 한 소리를 늘어놓아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심오한 철학적 소리를 늘어놓아서도 안 되기에 상식적으로 알아들을 만큼 쉽게 접근해야 합니다.
색소폰 연주 역시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뻔한 연주를 너무나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색소폰 연주를 뻔한 연주로 기억되고 있기에 외면하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을 연주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교장선생님의 훈화와 같은 대동소이한 연주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들만 위한 저급한 연주회가 되기에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2% 정도 색다른 연주를 할 수는 없을 까? 고민은 하지만 실제적인 도움은 탐색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금 열의가 있는 분들은 2% 의 색다른 연주의 재미는 무엇일까? 여기에 딱 떨어지는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동부서주하고 있습니다.
이제 색소폰 연주도 양적인 확장에서 질적인 확장으로 영역을 넓혀야 할 것 같습니다. 색소폰 연주회에 단일 악기인 색소폰만 구성되어 뻔한 연주를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악기와 협연하고, 출연하여 청중들의 다양한 음악과 음악다운 음악들을 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뻔한 연주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배우는 노력이 필요 합니다. 무엇 보다 다른 동호회와 교류하고 연합해야 합니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시도를 하시는 동호회가 울산 도레미 색소폰 동호회 김성봉 원장이 계십니다. 분열하고, 시기하고, 제 갈 길로 가는 색소폰 동호회 문화가 통합으로, 소통하고 나눔과 공유하는 색소폰문화로 바뀌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