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국 문학인생 강의-
2025년 4월 29일‧30일 양일간, 서울대 교육행정 연수반 101기 모임이 아름다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춘천에서 열려 참 힐링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전상국’ 소설가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문학과 관련이 없더라도 교사로서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전상국 문학 인생 강의 – 음성 녹음 채록 요약>
2025년 4월 30일 수요일
1. 문학관 설립 배경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램 속에서 작가가 되는데, 행복한 만년을 살려면 책을 읽어야 하고 독서 습관이 있어야 한다.
사건은 인격이다. 우리가 오늘 어느 장소에 가서 책 읽는 모습을 본다면 책 읽는 모습이 아름답고 좋아서 직원들이 그런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서 내게 보내준다(내가 그런 모습을 좋아해서)
2. 작가의 어린 시절 –독서광으로 살아온 시절-
어릴 때는 책을 살 수가 없는 형편이고 시골에 살다가 홍천에 이사를 나갔는데 중학교 올라오면서 서점을 발견하고 꿈을 발견하고 기쁨에 취해서 맨날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어요. 나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애들이 몇 명 있더라고요. 한 서너 명이 가서 서점 주인이 맨날 쫓아내죠. 그래도 계속 가니까, 사든지, 읽은 책은 제자리에 꽂아야 된다했지요.
중학교 때 탐정 소설이라고 에코나 거인 같은 추리소설을 많이 읽고 책 읽은 리스트를 만들었어요. 중학교 때 한 백권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충격 사건 1-고등학교 2 년 올라가는데 문예반 담임선생님이 칠판에다가. 특활 활동반 할 사람 지망하라고 하더라고요. 문예반은 책을 많이 읽거나 작가가 될 사람이라해서 지원했는데, 공부시간 중에도 읽었거든요. 그러니까 체육 시간이 비어 자습시간이니까, 내 마음대로 책을 겠다싶어 책을 읽는데 선생님이 와서 딱 때리면서 ‘벌레 먹은 장미’라는 책을 아이들이 읽을 수 없는 걸 읽는다고 때리면서 뺏아 가니까 아이들이 ‘걔 문학가가 될 건데요.’ 하면서 거드니까 “뭐 문학가? 이 새끼가 문학가가 되면 내 손가락에 장을 찌진다.” 했어요. 그때는 ‘아 문학가는 되게 어렵구나. 선생님 손가락에 장을 지질 정도이면 이건 되게 어렵구나.’ 생각했는데,
문양 고등학교 문양한 선생님이 책을 많이 읽었더라고요. 인천에서 백일장에 가서 열심히 썼는데, 친구들은 다 입선을 하고 나만 떨어졌어요, 문영환 선생님이 백일장에 나왔던 애들한테 물려받은 책 작품을 하나씩 써라고 해서 열심히 썼죠. 아이들을 하나하나 불러서 지도하시는 거예요. 어떤 애는 갔다 와가지고, 좋아서 막 자기가 세상을 얻은 것 같았어요. “너 오래.”해서 나도 교무실에 내려갔더니 “너가 전상국이냐. 너는 글 쓰지 말아라.”하며 내 글을 확 던지더라고요. 그거 내가 주워서 멍청하게 서 있으니까
“문장력이 잼병이야. 이걸 어휘력과 문장력이 있다고 생각하냐? 뭐 황혼의 긴 그림자를 끌고 가고 있었다고 했는데, 춘천에 무슨 가로등이 있어서 그림자를 끌고 간다고 썼냐. 해가 넘어가며 불빛이 나올 때 황혼이라고 하는데, 황혼에 무슨 가로등이 있다고 그림자가 어떻게 생겼냐 이거죠? 그게 그때 확 당기잖아. 낱말을 잘 찾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문장력이 없는 걸 터득 하면서 선생님이 글 쓰지 말라 그랬는데 그런 어떤 열패감을 극복하기가 어려워 서서히 속에서 막 분노가 치밀더라고요. 그래서 낱말을 막 고르고 문장을 이렇게 뒤틀어 들어보고 해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낱말 몇 개를 쫙 써놓고 하나를 고르고 ‘뭐 죽었다, 되졌다. 뒤졌다 그럴까? 뻗었다 그럴까? 소천했다 그럴까? 이런 식으로 몇 개를 그냥 써놓고 문장을 고르니까 너무 즐겁더라고요. 그 다음에 잘 쓴 글들을 읽자고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아 읽으면 내용도 좋고, 표현도 마음에 들었어요.
충격 사건2-
그러다가 제 일생 최초로 산 책이 홍길동전이라는 정비석 선생의 책이었는데 학원이라는 책에 홍길동 전 작품이 연재 되었어요. 학원이라는 잡지가 오면 서점에서는 절대 손도 못 대게 해서 그걸 사고 싶어서 우리 어머니 아버지한테 이야기해도 어려운 살림에 어림없고, 할머니한테 맨날 ’할머니 나 돈 줘. ‘했어요. 중학교 2 학년 말, 3 학년 올라갈 무렵에 그 책을 샀어요. 내 인생 최초로 산 홍길동전 책을 추운 겨울날인가 2월인가 담벼락 옆 골목에 서서 읽기 시작하는데 누가 뒤통수를 딱 치는 거에요. 그 서점 집 여자 동생이 날 막 때리더니 책을 뺏어 가져가더라고요. ’오빠 도둑 잡았어요. 제대로 잡았어요.‘ 하는데 사장님이 자기가 판 책인줄 알고, 아무 소리 안 하고 골방으로 쑥 들어가버리더라고요. 그 여자 동생도 머쓱한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물 뿌리고만 있어서, 내 인생 최초로 산 책인데 도둑에 몰렸으니 너무 서럽고 분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이 세상 기성세대에 어른들은 자기 잘못을 용서 빌지 않더군요. 어른들은 나쁘다. 사과하지 않는 어른들! 내가 교단에 있을 때, 뭐 칠판에 한자를 잘못 쓰면은 ’선생님, 그것 잘못 썼어요.‘ 하면 나는 사과하는 습관을 들였죠.
3. 책 곳간을 짓기까지의 여정
고등학교 와서 황순원 선생을 만나 본격 소설을 찾은 거죠? 이분이 경희대학교에 있어서 제가 그 대학에 들어가려고 노력해서 들어갔고, 자취 생활하면서 술 먹고, 점심 같은 건 안 먹고 청계천을 돌며 그 당시 책이 비싸니까 새 책이 헌책방에 나왔는데, 그 대학 가서 오후가 되면 혼자 가서 그때 산 책들이 저기 들어 있는 ‘님의 침묵’같은 책들을 샀어요. 작가가 되면서 작가는 그 작품을 써서 발표할 때가 있어야 해서 문예지가 나왔다하면 소문 듣고 막 달려갔어요. 창간호 잡지를 만든 사람의 어떤 초심이 담겨 있는가 그 정신을 읽어보고, 제일 먼저 ‘현대문학’이라고 55년에 나온 책을 샀는데 맨날 친구들하고 그거 뒤져보고 문학사 이야기했어요. 작가들이 보내오는 서명된 책은 귀해서 보관하기 어려워서, 이사를 8번 다니는 동안, 책들이 자꾸 쌓여, 제가 대학에 있을 때 연구실에 갖다 뒀다가 애들이 달라고 하면 그때 많이 줬어요. 그렇게 나눠주고 이제 여기 들어와서 지금 살면서 이렇게 책장을 좀 크게 지었거든요.
지금 여기도 1만 2000권 정도 되요. 여기 문학 서적만 해도 저 밑에 지하실에 있는 서적까지 합하면 책이 많은데 교수 퇴직하면서 내 코너를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너무 많아서 안 된다하고, 시립도서관에도 가서 이야기했더니 예산이 책정돼 있어서 신간 위주로 놓고 옛날 책은 전부 수장고에 내리거나 전산화시키거나 전부 집어넣는다는 거예요. 가치가 있는 책인데 버려야 하다니 어떻게 누굴 줄까? 고민하다가, 몇 년 전에 제가 좀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죽기 전에 아내와 의논해서 책방을 하나 만들자 해서 문학 책만 정리하다가 시집, 소설책, 문학 평론책들을 정리해 놓고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홈페이지에 들여놓고, 이렇게 여기서 빼서 만들어 놓은 게 있고, 없어진 게 있어 좀 서운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게 참 많아 그 책을 모아서 읽을 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더라고요. 그냥 보고 ‘참많아.’해요. 어떤 사람은 서울에서 와서 뭐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와서 몇 시간 읽고 가는 사람도 있고, 근데 그럴 때는 굉장히 보람을 느껴요. 와, 내가 책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책 곳간을 만들어서 책 보관실을 만들어 가지고 있으니.
요 밑에는 제가 2005년에 남북 작가대회로 평양에 일찍 들어간 일이 있었거든요. 그때 특례가 있을 때 나 혼자 평양 서점에 나갔어요. 거기 가서 보니까 1900, 2005년에 나온 책들 ‘낙동강의 흐름’ ‘북한의 소설’들 시집이 있어서 그걸 사서 그걸 몰래 가방 속 밑바닥에 놓아주고 가져 나왔어요. (이제 굉장히. 개인사적인 면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아프칸서 간에도 다른 투수들이 이천 5년에 나왔다라는 걸 보여줬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요즘 나오는 신간들, 요새는 독서를 많이 못 하지만은. 배우는 분한테 제가 독서를 강조하면, 눈이 나빠 가지고 못 본다는 얘기를 해요.
전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 공간을 만들고 문학 프로그램을 하면서 마을 사람 한 20명에게 점심을 사 먹이고 구경을 시키고 설명을 했더니 저더러 촌장님이라 그러더라고요. 그러다가 내가 글을 쓰는 줄 알고 ‘아니 촌장님도 취미로 소설 좀 쓰세요?“ 묻더라고요. 그때 무보수로 일했죠.
최미정이 1930원 천재 작가로 35년에 조선일보에 소설로 등단했어요. 그때 25살이었죠. 우리 집 사람이 버리라고 한 농짝을 가지고 있어 그 중에서 찾아보니 하나가 내가 데뷔한 기사가 있더라고요.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는데 제가 23살 때거든요. 강원도에서는 제가 두 번째 등단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