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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마귀(08)
말씀: 요8:44
현재 우리는 거의 매일 살인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살아갑니다. 신문, T.V 등의 언론매체의 보도를 보면 살인은 가장 흔히 일어나는 범죄 가운데 하나로 지면과 화면에 등장합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대검찰청 자료를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살인건수가 가장 많았던 1998년의 경우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1998년 1년 동안 모두 963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살인 880건, 존속살해 52건, 자살교사방조 13건, 영아살해 9건, 위계촉탁살인 8건, 촉탁승낙살인 1건 등으로 집계됩니다. 이는 대검찰청에서 집계한 966건에 비해 3건 작은 수치입니다.
다음으로 살인 이외의 다른 범주로 집계되는 사건을 상대적으로 건수가 많은 사건에 국한하여 살펴봅니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강도살인. 치사 109건, 강간치사 10건, 강간 등 살인 7건, 강제추행치사 7건, 현주. 현존(건조물등)방화치사 20건, 상해치사 211건, 존속상해치사 12건, 폭행치사 163건, 체포. 감금치사상 64건 등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 통계에는 형법상 살인의 죄를 말하는 것만 포함할 뿐입니다.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강도 살인, 치사죄’는 강도죄로, ‘강간 살인, 치사죄’는 강간죄로, 현조 건조물 방화 치사죄는 방화죄로, 상해치사죄는 상해죄로, 폭행치사죄는 폭행죄로, 체포구금치사죄는 체포 구금 죄로 각각 분류되어 집계되기 때문에 실제 살인 건수는 훨씬 더 많습니다.
왜 이렇게 살인이 자주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입니까? 이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원인을 찾으면 답이 없습니다. 살인은 살인자 마귀가 배후에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주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오, 살리시는 영이십니다. 반면 마귀는 살인자입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2004년 9월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3년 사망원인 통계결과'에 따르면, 2003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는 24명으로 지난 83년 사망원인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았고, 외환위기 당시인 98년 19.9명보다도 4명이상이 늘었다. 또 전년의 대비 4.9명이 늘었고, 93년에 비해서는 13.4명(2.3배) 늘어났다. 작년 자살 건수는 모두 1만1000명. 하루에 평균 30명이 자살한 셈이다. 전체 사망원인 가운데서는 자살이 다섯 번째로 많았다.”고 발표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습니다. 마귀는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친히 같은 것들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히2:14). 마귀는 죽음의 권능을 가진 무서운 살인자입니다. 살인의 이유는 충동, 우발적 감정에 의한 것도 많은데 이는 사람이 순간적으로 마귀 들린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마귀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있는 그대로 폭로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자기 안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였으며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요8:44).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입니다. 마귀는 사람을 죽이는 자입니다. 마귀가 처음부터 살인자란 사실은 충격적인 증언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을 보십시오. 우리는 여러 가지 살인 동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기심, 분노, 열등감 등 심리학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고, 종교적 이유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분석하기 전에 주님께서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기술해 놓으셨는지 보십시오.
[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 그는 저 사악한 자에게 속하여 자기 형제를 죽였는데 그가 무슨 이유로 그 형제를 죽였느냐? 자기 행위는 악하고 자기 형제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이라.](요일3:12).
가인은 사악한 자에게 속해서 동생을 죽였습니다. 그의 살인 동기는 마귀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모든 살인은 마귀의 작품입니다. 이는 전쟁에서 적을 물리치는 것과 같은 정당한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적이라고 죽이고, 연적(戀敵)이라고 죽이고, 종교적인 적이라고 죽이는 일 등은 모두 마귀에게 속한 일입니다. 왜 많은 이교도들이 유독 유대인들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까? 유대 민족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자신들은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왜 로마 캐톨릭은 기독교인들을 계속해서 죽입니까? 그들은 가인과 마찬가지로 저 사악한 자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캐톨릭 교회사에 나오는 ‘마녀 사냥’이란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1318년 교황 요한 22세가 마녀 재판을 이단 심문의 관할아래에 두는 교서를 내리고 이어서 후임 교황들이 잇달아 강화령을 내림으로써 ‘마녀사냥’의 이상 열풍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마녀로 간주되어 화형당한 사람도 적게는 30만 명 정도에서 많게는 약 900만 명까지 죽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황은 평화의 사도인 것처럼 종교적 관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당시의 교황들은 그렇지 않아서 이단자들을 “독 있는 뱀처럼 박살내라”는 교서를 공개적으로 연거푸 내렸습니다. 종교개혁이 시작된 이후 후스, 제롬 등 개혁자들은 화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개신교도들은 이단자로 낙인찍혔고, 개신교도들이 집단 거주하는 도시가 교황에게 천국을 약속받은 카톨릭교도 군대의 습격을 받아 시민 전부가 몰살당하기도 했습니다.
한 예로, 1572년 8월 14일 성 바돌로매의 대학살은 카톨릭 축제일 밤에 프랑스 파리에서 위그노(프랑스의 칼뱅파 신교도) 1만(어떤 자료에는 10만) 명을 학살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교황 그레고리 13세(1572∼1585)는 교회에 가서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중세 암흑세기 동안 이단이라는 미명으로 죽어간 사람은 5천만∼7천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의 이런 살인 행렬은 누구의 사주에 의한 것입니까? 살인자 마귀에 의한 것입니다.
보수적인 견해에 의하면 15세기 동안 로마 카톨릭의 손에 죽임을 당한 반 카톨릭파는 대략 2,500,000으로 보는데, 다울링(Dowling)은 스코트(Scott)의 교회사를 인용하여 프랑스에서 1,000,000명의 왈덴파 그리스도인들이, 네덜란드에서 36,00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또 스페인 종교 재판소에서 150,000명, 그리고 제수이트가 죽인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 900,000명을 언급한다. 이 두 견해를 더하면 A.D. 325년에서 1870년까지 순교자들은 5,000,000명에 이릅니다.
왜 캐톨릭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그들은 가인과 같이 사악한 자에게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적으로 같은 기독교라는 형제이지만 결코 형제가 아닙니다. [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 그는 저 사악한 자에게 속하여 자기 형제를 죽였는데 그가 무슨 이유로 그 형제를 죽였느냐? 자기 행위는 악하고 자기 형제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이라.](요일3:12). 이스마엘과 이삭이 형제입니까? 에서와 야곱이 형제입니까? 육신적으로는 분명히 형제요, 가족입니다. 그러나 하나는 저 사악한 자에게 속해 있고, 하나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들의 영적 아버지는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인 마귀란 점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자기 안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였으며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요8:44).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명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분명 아버지가 있습니다. 육신의 생명의 씨앗을 주신 아버지가 있고, 영적인 생명을 주신 아버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고, 처음부터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인 마귀를 아버지로 둔 마귀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이것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누구든지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며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요일3:10).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 같이 살고 있습니다. [밭은 세상이며 좋은 씨는 왕국의 자손들이지만 가라지들은 그 사악한 자의 자손들이니라.] (마13:38). 왕국의 자손들과 저 사악한 자의 자손들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같은 아버지, 같은 어머니,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들의 영적 아버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종교적인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주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분의 제자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보고 이르되, {주}여, 엘리야가 행한 것같이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저들을 태워 버리도록 우리가 명령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들의 생명을 멸하러 오지 아니하고 구원하러 왔느니라, 하시니라. 그들이 다른 마을로 가니라.](눅9:54~56).
[너희가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이는 마귀의 영에 속한 것입니다. 개역 성경을 비롯한 새 역본들에서는 이 구절이 모두 삭제되어 있는데[밑줄 친 부분이 모두 삭제되어 있다], 이는 그들이 지닌 영을 폭로하는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멸하러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설령 예수님 자신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사마리아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구원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종교의 박해는 ‘자신들이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는 고상한 대의명분을 찾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자신이 어떤 영에 속해서 하는 일인지 모를 뿐입니다.
마귀의 습성을 보십시오. [도둑이 오는 것은 다만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함이지만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요10:10). 마귀는 어떤 달콤한 유혹을 해도 결과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입니다. 이는 이전에 이미 사탄이 행한 전력을 주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세상을 광야같이 만들고, 도시들을 멸망시켰습니다.
우리는 킹 제임스 성경이 가르쳐 주는 재창조의 진리를 믿습니다. 이전 세상에 땅을 소유했던 자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마귀는 이전 세상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자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땅을 소유하였고 존귀한 자는 그 안에서 살았도다.](욥22:8). 여기서 강한 자(mighty man)는 마귀를 말합니다. 마귀는 땅을 소유했습니다. 아담이 이 땅에 살기 전에 마귀가 땅을 소유했고, 하나님은 마귀의 타락을 심판하심으로 이 땅은 물로 심판을 받았다가 주님께서 다시 창조하신 후에 아담이 거기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너는 지옥으로 곧 그 구덩이의 옆면들로 끌려 내려가리라. 너를 보는 자들이 너를 자세히 살펴보고 너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이르기를, 이자가 땅을 떨게 하고 왕국들을 흔들며 세상을 광야같이 만들고 그곳의 도시들을 멸망시키며 자기의 포로들을 둔 집을 열지 아니한 자냐? 하리라.] (사14:15~17).
마귀의 왕국은 죄의 왕국(sinful Kingdom)이 있고, 그 백성들의 반역을 징치하는 감옥이 있습니다. 사탄은 자신의 땅을 망하게 하고, 자신의 백성을 죽였습니다.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묻히는 일에 그들과 함께 합쳐지지 못하리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씨는 결코 명성을 얻지 못하리라.](사14:20). 이는 매우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이런 일들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교회에서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매우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주님은 마귀의 습성, 사고방식, 하는 일등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시며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 백성을 죽이는 살인자란 것입니다. 마귀는 진정한 살인자요, 멸망시키는 자입니다.
마귀는 살인자로서 사고, 질병, 전쟁, 자살 등 갖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의 생명을 취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너는 살인하지 말라](출20:13)는 계명을 주셨는데, 이는 살인이 살인자 마귀의 짓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명을 살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안에 살심(殺心)이 일어난 적이 없습니까?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나, 누가 죽었는데 마땅히 죽을만했다고 좋아하거나 기꺼이 그 죽음에 동의하는 것 등이 모두 살심(殺心)입니다.
현대인들은 직접 살인을 감행하지 못하지만 살인 장면을 연출하는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을 통해서 대리 욕구를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게임기를 통해서 온통 죽이는데 몰두합니다. 이는 마귀가 문화를 통해서 마음속에 그런 욕구를 자극시키고, 충족해 주는 것입니다. Action 영화라는 것을 보십시오. 죽고 죽이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지 모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대신 그런 영화, 드라마, 만화, 소설 등을 통해서 대리 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살인자 마귀의 영의 활동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 교육을 받았고, 기본적으로 구약 성경을 알고 있었지만 살인자 마귀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틈만 나면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살인자 마귀가 가장 죽이고 싶어 하는 살인 목록 1호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 했습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을 비롯한 유대인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이미 살인자 마귀의 살인 도구로 전락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언제 사람은 살인자 마귀의 살인 도구로 전락하는가?
첫째,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없을 때입니다.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씨임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너희가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요8:37). 바리새인들의 인격이 모자라서 주님을 죽이려는 마음을 먹고, 모의를 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인격 수양이나 종교심은 현대의 어떤 정규 교육이나 명문가의 교육을 받은 사람에 뒤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수련한 학문 역시 어떤 교양 있는 학자들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아무리 고상하고 예의바르고 귀족행세를 해도 그 인간은 살인자 마귀의 똘마니에 지나지 않으며,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율법을 지키지 않을 때 살인자가 됩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언제든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유대인 거주지에 다니지 않으실 정도였습니다. [이 일들 뒤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인 거주지에서 다니려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유대인들이 그분을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더라.](요7:1).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만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해도 예수님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이유는 십계명에 [너는 살인하지 말지니라]고 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율법은 행동을 결정짓는 최후의 판단이요, 방어선입니다. 이 율법이 있는 한 어떤 이유로도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너희 중 아무도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하시니](요7:19).
왜 너희들은 모세가 준 율법을 지키려 하지 않느냐? 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율법을 지키려 하지 않는 것이란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문제는 그런 자들이 한 둘이 아니라 전부였습니다. “너희 중 아무도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는도다.” 이는 언제든지 율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일 마음을 지닌 그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셋째, 복음을 듣고 마음이 상하면 그는 살인자가 됩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 했을 때 회개하는 대신 마음이 상한 자들은 모두 살인자로 돌변했습니다. [그들이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상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의논하였는데] (행5:33). 이들의 살인 행각을 막아 준 사람은 사도 바울의 스승이요(행22:3), 율법 박사요, 당대의 석학으로 명성이 있는 가말리엘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은 율법을 지키려 했기 때문에 사도들을 죽이려고 모의하는 살인 모사자들의 살인을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중재자가 없었을 때 사람들은 바로 살인하고 말았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것들을 들을 때에 마음이 상하여 그를 향해 이를 갈았으나](행7:54). “마음이 상하여”란 말을 영어의 표현을 보십시오. “they were cut to the heart,” 스데반의 설교는 양날선 성령의 검이 되어 그들의 마음을 cut 잘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 앞에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자 회개하는 대신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자기 귀를 막고 한 마음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도시 밖으로 그를 던지며 그를 돌로 쳤는데 증인들이 자기들의 옷을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더라.] (행7:57~58). 복음을 들은 후 사람들은 살인자가 되든가 의인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로 자신이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넷째, 시기심을 품을 때 살인자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요, 용장이었던 사울은 시기심으로 인해 다윗을 죽이려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여인들이 놀며 서로 화답하여 이르되, 사울은 수천 명을 죽였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도다, 하므로 사울이 심히 노하고 그 말을 기쁘게 여기지 아니하여 이르되, 그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내게는 수천 명만 돌리니 왕국 외에 그가 더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하고는] (삼상18:7~8). 이 날부터 사울의 정책 가운데 제일은 다윗을 어떻게 죽이는가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도 다윗이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그리로 군대를 보내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여러 차례 직접 군대를 끌고 다윗을 죽이러 나서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좀처럼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는 시기심입니다. 열두 사도에게 언제나 초점은 누가 더 큰 자인가? 하는 문제였듯이 사람들은 자기보다 남을 의식하는 뿌리 깊은 속성이 있습니다. 시기심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하는 대신에 내 눈을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느냐에 돌리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라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시기하지 말지니라.] (갈5:25~26).
남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할 때 이미 마음속에는 살인자로서의 자격 요건을 갖추어가는 씨가 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이 어느 누구보다 악해서 살인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왕으로 추앙받을 만큼 키 크고 잘생긴 사람이었습니다. 인물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용감해서 적을 물리치는데 앞장 선 사람이었습니다. 자랑할 거리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는 건방진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여 왕이 되는 것을 부끄러워 하여 숨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다윗에 대한 시기심이 들어왔을 때 다윗을 살인하려는 살의로 가득 찬 살인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시기심은 어떤 인격자라 할지라도 살인자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시기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신 것을 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베푸신 것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시기하여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되면 자신의 초점을 잃게 됩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 거기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느니라.](약3:16). 시기심 때문에 사람이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시기심 때문에 악담하게 됩니다. 시기심 때문에 살인하게 됩니다. 시기심으로 사람들의 삶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게 되셨는지 아십니까? 왜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시기심 때문입니다.
시기는 남을 죽이기도 하지만 나의 뼈를 썩히는 것입니다. [건전한 마음은 육체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는 것이니라.](잠14:30). 시기심이 나를 삼켜버립니다. 시기심은 암보다도 더 나쁩니다. 내가 주의하지 않으면 시기심은 나를 산 채로 삼킵니다. 혹시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극중에 살리에르라는 사람이 모짜르트를 시기하는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모차르트와 그의 능력에 대한 시기심으로 자기 자신을 거의 미치게 만듭니다. 시기심이 그런 일을 합니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실수하기를 너무나 열렬히 원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내가 인생의 실패자가 됩니다. 시기심은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시기심은 우리를 자아 파멸로 이끌어갑니다. 항상 누군가가 우리보다 하나 더 올라가게 될 때에 특별히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일 경우에 더욱 상대를 시기합니다. 시기가 우리 속사람을 잡아먹습니다.
다섯째, 욕심을 품을 때 살인자가 됩니다.
[너희 가운데서 전쟁과 싸움이 어디에서 나느냐? 너희 지체들 속에서 싸우는 너희 정욕(情欲)들로부터 나지 아니하느냐?](약4:1). 다툼은 싸움이 되고, 전쟁이 됩니다. 전쟁의 원인을 성경은 “너희 지체들 속에서 싸우는 너희의 정욕”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내가 원하기 시작하면 시기심이 생기고, 그것을 갈망하면 마음속에서 싸우는 정욕들이 생깁니다. 오늘날 현대 교육의 핵심은 비교와 경쟁입니다. 오늘날의 문화의 핵심은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핵심이기도합니다. 그것이 운동이든, 부이든, 명예이든, 업적이든 간에 어려서부터 비교하는 것을 배워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적, 옷, 학교, 부(副), 부모 등을 비교합니다. 남이 가진 것들을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일어날 때 그는 살인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아합 왕을 보십시오. 그는 모든 권세와 부를 소유한 일국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봇의 포도원을 보고 거기에 나물을 심고 싶었습니다.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집에 가까이 있으니 그것을 내게 주어 내가 그것을 채소밭으로 삼게 하라. 내가 그것 대신 그것보다 더 좋은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내가 그것의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하매] (왕상21:2).
왕은 나봇의 포도원이 탐났지만 부당하게 탈취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고 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포도원의 주인인 나봇이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그 땅이 주의 상속이었기 때문입니다.[나봇이 아합에게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의 상속 재산을 왕에게 주는 것을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하니](왕상21:3). 그러자 아합왕은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예스르엘 사람 나봇이 자기에게 한 말 즉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내 조상들의 상속 재산을 왕에게 주지 아니하리이다, 한 말로 인해 아합이 근심하고 불쾌히 여기며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빵을 먹으려 하지 아니하니라.] (왕상21:4). 구하여도 갖지 못하고, 사고 싶어도 살 수 없게 되자 그는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아합의 식을 줄 모르는 욕심은 결국 나봇과 그의 아들을 모함하여 죽게 만들었습니다. 아합은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았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살인]을 낳았습니다.
여섯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니 어떤 살인자 속에도 영원한 생명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요일3:15). 가인이 형제를 미워함으로 아벨을 죽였듯이 우리 마음에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미 그는 살인자인 것입니다.
형제를 죽인 또 하나의 유명한 예는 요셉의 형제들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죽였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언제 요셉을 죽였습니까? 그들이 요셉을 미워할 때 이미 그들은 살인자였습니다. 다만 살인을 실행할 시기만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입니다. 형법은 사람을 죽인 후에 살인자로 규정하지만 성경의 법은 살인하기 전에 미움을 가질 때 이미 살인자로 규정합니다.
마귀는 살인마를 따로 양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전한 가정에서 건전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 속에도 얼마든지 미움, 시기, 질투, 욕심의 씨앗을 뿌려 그를 살인자로 만들 수 있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자신의 일을 수행할 일꾼들을 부지런히 양성해 냅니다.
우리는 생명을 죽이는 살인자들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복음 전도자들입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때 죽은 영은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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