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떨기에 둘러싸인 반가사유상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사바세계의 유혹을 애써 누르시며 둥근 화엄 세상을 꿈꾸시는지, 무한 천공을 이고 꽃밭에 앉아 계십니다. 지그시 눈을 감고 미소를 머금은 채 선정에 드시었습니다.
사방이 꽃 천지입니다. 가장 뜨거운 날에 서늘하면서 신비한 음영의 색깔들을 터뜨린 수국, 소담한 꽃 숭어리 들이 법당의 염불 소리보다 더 마음에 닿는 절 뜨락입니다. 이때쯤이면 수국 축제가 열린다는 ‘태종사’를 찾은 건, 칠월의 기진할 것 같은 더위를 태종대 바닷바람과 꽃구경으로 식혀 볼 요량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남방 불교의 계통을 잇는 수행 도량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자리한 작은 사찰의 이름보다는 국내 최대 수국 군락지로 더 알려진 곳이랍니다. 며칠 전 잔치가 끝난 직후여서 고요한 가운데 수국들이 한창입니다. 때마침 운무까지 내려와 황상적인 한 폭의 수채화를 완성해 놓았습니다.
작은 꽃잎들이 하나하나 열려 송이를 이룬 꽃 떨기의 풍성함이라니. 어쩌다 한두 송이만 만나도 기꺼운 터인데 눈길 닿는 곳마다 만개한 수국꽃 무리에 눈의 호사가 이만하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철부지처럼 꽃구경에 여념이 없는 나를 아랑곳없이 하늘하늘 한 꽃잎엔 하늘빛이 잠잠히 머물고 흐릅니다. 들여다볼수록 신비감이 깊어지는 꽃입니다. 청초한 꽃송이가 막 우주를 열고 나온 듯, 오묘한 신의 섭리에 누군들 마음속 경탄을 아니 할 수 있을는지요.
꽃빛이 아련합니다. 수국은 초파일 밤에 연등을 켠 것처럼 꽃 색깔이 은은히 펴져 나간다고 소설가 김훈은 말했습니다. 조심스러운 꽃 빛은 극한으로 치닫지 않고 색의 초기 단계에서 더 이상 색깔이기를 멈춘다고, 그래서 색의 추억 같다고 했던가요. 꿈꾸듯 번져가는 연보라, 연연한 그리움 같은 하늘색, 물빛처럼 깨끗한 파랑, 수줍은 분홍과 화사하게 붉은색, 같은 꽃나무에서 무한 꽃차례로 다양하게 피워 올린 색감이 청량하면서도 독창적입니다. 간간이 섞여 있는 산 수국은 여러 색깔의 꽃망울로 한 송이를 이룬 모양새가 무지갯빛 꽃 구슬 같습니다. 요염하게 사람을 홀리는 자태도 아닌 것이, 한사코 발길을 잡아끄는 향기도 없다, 소복소복 뭉클합니다. 찬란하지만 한없이 적요한 꽃길을 걸으며 한여름 폭염 조차 까무룩 잠기도록 나는 온통 꽃물이 드는 중입니다.
복작대던 마음속이 환해집니다. 절그럭거리던 소리 들이 숨을 죽입니다. 꽃잎에 가만히 마음을 주고 있으면 이 세상 아픔들도 꽃으로 피어나는 성싶습니다. 낙원이 따로 있겠습니까. 낡고 강마른 세월을 거슬러 선하고 여릿한 본바탕을 찾아드는 길입니다. 언제였던가, 꽃과 별이 총총하던 내 눈동자와 오래전, 내 얼굴을 떠난 상큼함이 가슴속에 아롱집니다. 연하고 여리어 고운 것, 혼탁하고 시끄러운 세상일수록 눈물 나게 그리운 것들 아닌가요. ‘꽃은 어둠 속에서 별이 떨어뜨린 빛’이라고 읊은 시도 있습니다. 가만가만 한 마디 일행(一行) 시처럼 그러나 사력을 다했을 저 조용한 절정의 삶을, 거룩함이라 이르면 될는지요. 잡다한 세상사에 얕추 묻힌 뿌리처럼 흔들리며 제 빛깔 하나 띠지 못한 내가, 갑자기 울컥하여 나도 몰래 글썽입니다.
아득한 것들이 공중에서 일렁이고 있습니다. 운무 속에 퍼져 있는 꽃 빛인지 울어지지 않는 꽃들의 언어인지 혹여 말하여지지 않는 내 속의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성급히 져 버린 것들의 환영일 것도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 속에서 생생해지는 기억이 있습니다. 지난 가을날 단풍색이 꽃처럼 곱던 배냇골 계곡에서였지요. 빨갛게 익은 단풍잎이 뚝 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화폭 위의 그림 같은 풍경 앞에서, 사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속마음을 중얼거렸지요. 그때 동행한 c시인이 말했답니다. “나는 삶에 대한 애착이 너무 많아 오래 살고 싶어요!” 그녀가 올봄, 느닷없이 달려든 병마에 쓰러져 먼 길을 떠났다는 소식이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유기견들을 돌보느라 집 떠나는 일이라면 1박 2일 여행도 마다했으니까요.
어느 ‘블랙홀’에 발을 헛디뎠나 싶었습니다. 그토록 끌어안았던 일상과 미래 속에 잠재된 일체의 가능성을 단번에 삼켜 버린 암흑, 습한 비극의 냄새가 진동하는 블랙홀 말입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죽음을 옆에 두고 살아가는 느낌이 와락 들었습니다. 육십 초반의 나이에도 짱짱하던 그녀의 모습과 목소리며 그날 새로 샀다던 검정색 ‘워킹화’가 자꾸 아른거립니다. 이마저도 차츰 흐릿해지다가 머지않아 잊혀 가겠지요. 목숨이란 받는다고 아프며 살아낸다고 쓰리다가 맥없이 지는 허망함 또한 피할 수 없으니, 생명 가진 것들의 애달픈 숙명인가 봅니다.
그래서인지 세상의 꽃은 세상살이의 팍팍함을 덜어 주는 날갯짓 같습니다. 고단하고 고독한 인간들을 다독여 주는 누군가의 사랑과 배려로 보입니다.
운무가 걷힌 태종사 뜰에 수국 꽃 빛이 더욱 살아납니다. 스님들이 사십여 년 일구어 온 수천 그루의 꽃 뜨락에 서 보니 꽃을 심고 가꾸는 일도 마음 수행이라 여겨집니다. 꽃을 보는 것 또한 속 맑힘일 터, 소박하고 작은 사찰 척박한 땅에 꽃씨를 뿌리고 가꾼 마음에 새삼 고개 숙입니다. 그윽한 꽃송이에 담아 올린 꽃송이에 두 손 모읍니다. 꽃의 붉은 심장엔들 어찌 피는 아픔이 없을 것이며, 꽃으로서의 생명을 다할 때 애상이 없을까만, 소멸을 앞둔 절정의 삶이 찬연하게 고와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하필이면 여름철 폭양 아래 그리움처럼 피는 수국은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꽃 부처’들인 듯합니다. 구름 같은 송이마다 아련한 색깔로 사람의 마음을 달래 줍니다.
나는 누구에게 이만한 배려를 해 볼는지요.
첫댓글 아름다운 문장들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꽃밭에서 거니는 듯 착각하게 만드네요. 어려운 단어들을 나열하지 않고도 이렇듯 아름다운 글을 쓴다는것이 진정 작가로서의 기틀이 다져진듯 합니다. 잘 읽고 마음에 새깁니다. 염 작가님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아름다운 표현들로 글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도 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