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을 잡고 거액을 요구하는 끔찍한 테러현장에 파리 한 마리가 날아든다. 초소형 카메라가 장착된 파리로봇은 테러현장을 날아다니며 동영상을 전송한다.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대테러 진압에 나서고 희생자 한 명 없이 소탕작전은 성공한다.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이 같은 광경이 최근 몇 년 내에 실제로 이뤄질 전망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는 파리의 움직임과 특성 등을 파악, 파리와 비슷한 크기의 로봇 제작에 성공했다. 현재 파리 로봇은 테러나 구조현장의 정찰 로봇으로 상용화될 수 있도록 연구단계에 있다.
통섭의 철학, 이어령 교수를 만나다
“앞으로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생체모방)* 연구가 크게 활성화될 것입니다. 아울러 지금은 시작단계지만 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지구 자체를 봅시다. 인류가 산업혁명을 일으키기 전에는 모든 것이 리사이클링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육지의 동물에서 발생하는 배설물들은 식물의 자양분이 됩니다. 강을 타고 흘러드는 노폐물들은 바다 생물의 먹이가 되거나 소금물에 융해돼 버립니다. 바닷물에서 증발한 깨끗한 수증기가 구름이 되어 육지를 적십니다. 정말 경이로운 리사이클링 시스템 아닙니까? 앞으로는 ‘하나님의 기술을 훔치는’ 산업들이 각광을 받을 것입니다”
*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 : 동물·식물 등 살아있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기능·생체구조를 모방하는 생체모방.
주) * 통섭(統攝, Consilience) : ‘지식의 통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 이론이다.
하나님의 기술을 훔치는 산업
우리나라의 유망 미래산업으로 그가 강조하며 이야기한 하나님의 기술을 훔치는 산업은 바로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였다. 동물·식물 등 살아있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기능·생체구조를 모방해 사람을 대신하거나 생체 일부를 보완·대체해 생체 기능을 향상시키는 연구개발 분야를 말한다. 하지만 무생물까지도 포함한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인간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 위한 자연모사기술이 생체모방공학보다 더 광범위한 개념이다.
스위스 발명가 조지드 메스트랄은 개와 함께 산책하던 중 개의 다리에 들러붙어 있던 엉겅퀴 씨앗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흔히 ‘찍찍이’로 불리는 벨크로(Velcro)를 개발했다. 벨크로는 운동화, 가방, 의류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며 심지어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무중력 상태에서 장비를 고정하는 데 활용할 만큼 쓰임새가 다양해졌다. 식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실생활에 편리하게 사용되는 대표적인 생체모방·자연모사의 예이다.
탄환 열차라고 불리는 일본 신칸센 기관차는 물총새의 부리 모양을 닮았다. 초기 모델이 터널을 드나들 때마다 굉음을 내자 연구진은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물총새를 생각했다. 빠른 속도로 물 속으로 뛰어드는 물총새는 잔물결만 일으킬 뿐 물 한 방울 튀기지 않았던 것이다. 연구진은 곧 기관차의 전면 디자인을 물총새의 부리 모양으로 수정했다. 예상대로 소음은 물론 공기저항이 크게 줄었고 속도를 더 내면서도 에너지 손실은 최소화할 수 있었다.
물총새·연잎·도마뱀에게 배우기
소금쟁이가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떠 있는 현상을 ‘초발수(super hydrophobic)’라고 한다. 이 현상은 연잎에서도 관찰된다. 독일 본대학교 식물연구소 빌헬름 바르틀로트는 연꽃이 항상 깨끗한 잎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고 1977년 연잎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연잎 표면에서 많은 돌기를 관찰했으며 이 돌기들이 연잎을 오염물질로부터 보호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를 ‘연잎 효과’라 불렀다.
그 곳엔 물을 싫어하는 성질의 물질이 존재하며 이것이 바로 물에 젖지 않고 물방울을 굴러가게 하는 초발수 성질의 비밀이었다. 잘 굴러가는 물방울은 표면의 먼지 등 이물질을 깨끗이 씻어 주는 세정효과도 나타낸다. 자동차의 유리, 사이드미러, 카메라렌즈 커버 유리, 욕실의 거울, 특수페인트 등에 코팅 등을 통해 이런 특성을 부가하면 물방울 맺힘이나 김 서림을 막을 수 있어 더욱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한국기계연구원 재료연구소 나종주 박사팀은 핸드폰 기판에 사용하기 위한 처리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또한 새의 모양과 날개짓을 모사해 인간이 만들어낸 자연을 모사한 걸작품 중의 하나이다. 박쥐의 초음파를 응용한 레이더는 이미 실용화됐다. 최근에는 잠자리나 파리 등 곤충의 날개짓을 모사해 자유자재로 비행할 수 있는 최첨단의 비행체를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자연에서 찾는 블루오션
벽과 천정을 기어 다니는 게코도마뱀의 발바닥에는 수억 개의 가느다란 섬모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 붙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이 섬모는 머리카락의 수천분의 일인 100~200나노미터의 크기이며, 이 접착원리를 이용해 한국인 유학생이 스티키봇이라는 유리벽을 기어오르는 인조도마뱀을 발명한 바 있다. 최근 미국 NASA에서는 우주공간에서 작업하는 로봇에 이 기술을 응용하고 있다.
최근 환경과 에너지 문제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태양전지 표면에 자연을 모사한 초발수와 반사방지 효과를 부여해 효율을 높이려는 연구와, 사막의 딱정벌레 등껍질의 수분 포집 기능을 모사해 공기 중의 수증기를 포집해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연구도 시도되고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호주 수영선수들은 전신 수영복을 입고 나와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이후 전신 수영복은 수영계의 대세로 자리했다. 이 수영복은 상어의 방패비늘 피부를 이용해 와류에 의한 속도 감소를 최소화한 것으로, 수영복을 개발했던 스피도社와 NASA는 기능을 더욱 강화한 ‘레이저 레이서’를 개발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도입했고 우리나라 박태환 선수도 입었다. 첨단 수영복이 상어 피부를 모사해 물의 저항을 최소화시킨 것이다.
2009년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소와 플로리다대학 연구팀은 토마토가 병든 것처럼 고령토 분말을 코팅해 토마토 질병을 일으키는 총채벌레(총채벌레가 일으키는 농업 피해는 연 39억 달러)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위장하는 기술도 개발했고 한다.
38억년 지구의 지혜를 배우다
생체모방기술은 산업, 군사 분야를 넘어서 보건·환경·사회 분야 등 커다란 시장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인구 고령화, 기후변화 등의 메가트렌드에 자연모방 혹은 생체모방의 대세가 기여할 여지가 크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성과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일각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비판의 핵심은 생체모방공학의 일차적인 용도가 군사적인 것에 있는 것 이 아니냐는 점에 집중된다. 이미 영화 등을 통해 일반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대로 동물처럼 날렵하게 기동하는 공격용 로봇 등은 군사적 무기로 자주 거론된다. 곤충의 지혜가 군사기술의 일환으로 먼저 악용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자연모사기술은 과학기술뿐만이 아니고 인문사회 분야, 예술 분야와의 폭넓은 접목을 통해 우리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고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인간과 자연을 묶는 통섭의 기술 분야이므로 잘 활용할 가치가 충분하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 수 십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제품들을 쏟아내 왔습니다. 연간 수천만대씩 새로 출시되는 자동차들이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앞으로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과거 패턴과 시스템, 구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각과 마인드로 무장한 ‘창조적 인재’들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지혜가 있는 사람, 슬기사람을 뜻한다. 38억년 진화해 온 지구와 자연을 배우고 닮아가고자 하는 21세기 우리들의 노력은 ‘슬기사람’의 기본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지구 자체를 봅시다. 인류가 산업혁명을 일으키기 전에는 모든 것이 리사이클링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육지의 동물에서 발생하는 배설물들은 식물의 자양분이 됩니다. 강을 타고 흘러드는 노폐물들은 바다 생물의 먹이가 되거나 소금물에 융해돼 버립니다. 바닷물에서 증발한 깨끗한 수증기가 구름이 되어 육지를 적십니다. 정말 경이로운 리사이클링 시스템 아닙니까? 앞으로는 ‘하나님의 기술을 훔치는’ 산업들이 각광을 받을 것입니다”
첫댓글 저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곤 합니다.
이어령 교수님과는 10년 전쯤 인연이 좀 있네요.
그러시군요^0^
하나님의 기술을 훔치는 산업... 맞네요.
그런데 나님의 기술을 훔치는 것에 그쳤음 좋겠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파괴나 시키지 않았음 합니다.
사실 아슬아슬 합니다. . 노여움을 타서 바벨탑이 무너졌던 것 처럼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