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의 세계사-17】
18세기 중반을 넘어가면서 인삼의 역사에는 위기라고 부를 만한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는 서구 의학계가 인삼의 의학적 가치를 폄하하기 시작하면서 약전에서 퇴출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해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분별한 채취로 야생삼이 고갈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인삼은 다른 약재들과는 달리 유효성분 추출이 매우 까다로운 식물이었다.
그 결과 근대 약학 시스템에 매우 더디게 편입되는데, 오히려 인삼의 그런 특성 때문에 서구가 주도한 화학약품 시대에 인삼이 살아남게 되었다.
한편, 자연산 인삼의 고갈에 대응해 본격적인 인공재배의 노력이 펼쳐쳐 오늘날 지구 곳곳에서 인삼이 재배되기에 이르렀다.
근대 초 영미권의 의료계에서 인삼은 오늘날의 관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친숙한 약재이자 처방이었다.
그런데 18세기 후반이 되자 여타 약재에 비해 그 위상이 축소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영미권의 약전이나 약물학서에서 인삼의 효능을 폄하하는 내용들이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인삼의 가치를 중용해온 영미권의 의학 담론이 갑자기 인삼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영국이 인삼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미국이 직접 인삼 교역에 진출하게 되면서 18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그 이전 시기에 비해 인삼 값이 폭등했을 뿐만 아니라 구하기도 힘들어졌다.
그렇다면 인삼을 대량 생산하고 수출했던 미국의 약전에서도 비슷한 발언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미국이 영국의 약전을 고스란히 갖다 씀으로써 자국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했던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 의학계는 스스로 약전을 발간할 능력이 없었고, 출판업의 발달 또한 미진했다.
따라서 의학 같은 전문적인 고급 지식은 영국이든 독일이든 이민자들의 고국에서 발행된 출판물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미국에서 인삼은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것’이라서 약재로 사용하는 데 열의를 보이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중국에서는 인삼이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지만 미국인들은 정반대를 이를 하찮게 여겼다.
숲에 가면 쉽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의료인들도 인삼을 값이 싸고 흔하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설혜심의 저서 '인삼의 세계사'에서 인용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