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3권 5-55 시절節序 5 비추悲秋 가을을 슬퍼하여
추풍색색동림엽秋風索索動林葉 가을바람 씽씽 불어 수풀 잎새 흔드는데
추기처처령로적秋氣凄凄零露滴 가을 기운 구슬피 이슬방울 떨어지네.
전전등상몽불성輾轉藤床夢不成 등 평상에서 뒤척이며 꿈마저 못 이루는데
기간성두광착락起看星斗光錯落 일어나 북두 남두 별빛 뒤섞인 걸 보고 있네.
이간금정벽오경已看金井碧梧驚 금정金井 우물에 벽오동 놀라는 걸 벌써 보았고
갱청초엽소우적更聽蕉葉疎雨滴 다시 또 파초 잎에 가랑비 떨어지는 걸 들었네.
인간만사역개환人間萬事亦改換 인간 만사 돌고 돌아 그도 역시 바뀌는데
환선무정물부원纨扇無情勿復怨 비단 부채 무정하다고 다시금 원망 마라.
군불견君不見 그대 보지 못했는가,
고래다소비추자古來多少悲秋者 옛부터 가을을 슬퍼하는 이들
진시평생포유한盡是平生抱幽恨 모두 다 그 평생에 깊은 한을 품은 이들임을!
기독송생부불평豈獨宋生賦不平 어찌 홀로 宋生만이 불평을 노래했으리?
계응명가이순갱季鷹命駕異蓴羹 계응季鷹도 수레 재촉 순채국[蓴羹]생각한 걸
백우관심추야장百憂關心秋夜長 백 가지 근심 마음에 걸리는데 가을밤은 길고
황부실솔오서당況復蟋蟀嗚西堂 게다가 또 귀뚜라미는 서쪽 堂에서 울어대네.
시의리소부자료試擬離騷不自聊 행여 하여 이소離騷에 부쳐 봐도 어쩔 수 없는데
정오우타성소소庭梧雨打聲蕭蕭 뜰 오동에 비 때리는 소리 하도 쓸쓸하네.
►비추悲秋 구슬프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 가을. 가을철을 쓸쓸하게 여겨 슬퍼함
비재추지위기야悲哉秋之爲氣也 슬프구나, 가을의 기운이여
소슬혜초목요락역변쇠蕭瑟兮草木搖落易變衰 소슬하니 초목이 떨어져 쇠해졌네
/송옥宋玉 〈九辯〉
悲哉, 秋之爲氣也!
‘가을이 슬프다’는 ‘비추悲秋 의식’은 이 단락에서 시작되었다.
송옥이 이를 읊고 나서 역대로 수많은 사람들의 공명을 받아왔다.
만리비추상고객萬里悲秋常做客 만리에 걸쳐 슬픈 가을 언제나 나그네 되어
/두보杜甫 <등고登高>
●비추悲秋 쓸쓸한 가을/신종호申從護(1456-1497)
월자섬섬백옥구月子纖纖白玉鉤 조각달은 백옥 갈구리 같이 가느다랗고
상풍노국만정추霜風露菊滿庭秋 서리 맞은 단풍과 이슬 머금은 국화꽃 뜰에 가득한 가을
천옹불변매수지天翁不辨埋愁地 하늘은 이내 시름 묻을 곳도 마련 못한 채로
진향한창종백두盡向寒窓種白頭 모조리 타관살이 백발 머리에만 심어 두었구려.
►색색索索 (무서워) 벌벌 떠는 모양.
사르르[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보슬보슬[눈·비가 내리는 모양]
►처처凄凄 춥다. 쌀쌀하다. 한랭하다. 썰렁하다. 슬프고 처량하다. 쓸쓸하다.
소사백운상蕭寺白雲上 쓸쓸한 절 흰 구름 위에 있고
추강명월서秋江明月西 가을 강 서쪽엔 밝은 달 떴네.
선루무몽매禪樓無夢寐 절집 다락에서 잠 못 이루는데
풍로야처처風露夜凄凄 바람 이슬이 밤 되니 차갑구나.
/홍만종洪萬宗(1643-1725) 수종사水鍾寺
►전전輾轉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거림.
►착락錯落
가지런하지 않다. 들쑥날쑥하다. 어긋버긋하다.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모양.
주기酒器. 재두루미.
►송생宋生 전국시대 초楚의 詩人 송옥宋玉.
그는 굴원屈原의 제자로 그의 〈비추부悲秋賦>가 유명하다.
초사楚辭는 초楚나라 때의 굴원屈原과 그의 작풍을 이어받은
그의 제자나 후인後人의 글을 모은 책. 또는 그 문체의 이름이다.
북방 문학인 <시경詩經>의 뒤를 이어 나온 대표적인 남방 문학이며
어구가 길고 보다 유동적인 형식 속에 신화나 전설 따위의 비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전체는 16권으로 전한前漢 때의 유향劉向이 편집했다고 하는데
후한後漢 때 왕일王逸의 <구사九思>를 더하여 모두 17권이 되었다.
한漢나라 때의 부賦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초楚나라의 민간문학의 기초는 대단히 중요할 뿐만 아니라
게다가 부분적으로 굴원의 이름 아래 속한 시편이
도대체 굴원의 작품인지 아닌지 어디까지나 아직은 쟁론이 있다.
다만 굴원에 대한 동시대의 사람의 정황은 이미 깊이 알아볼 방법이 없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굴원열전屈原列傳>의 끝부분에서
굴원 이후의 초사楚辭 작가에 대해 제기하기를
“굴원이 죽고 난 뒤에 초나라에는 제자로 송옥宋玉, 당륵唐勒, 경차景差가 있었는데
모두 사辭를 잘했고 부賦로 이름이 났다.
그러나 창시자 굴원의 사령辭令을 본뜰 뿐
끝내 감히 직간直諫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라고 했다.
►계응명가이순갱季鷹命駕異蓴羹
순갱蓴羹 순갱노회蓴羹鱸膾. 순채국과 농어회. 고향의 맛난 음식.
장한張翰(?-?) 벼슬을 그만두며 한 말/진서晉書.
서진西晉 오군吳郡 吳나라 사람. 자는 계응季鷹이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격식을 싫어하고 자유로워서 사람들이 ‘江東步兵’이라 불렀다.
진晉나라 혜제惠帝 때 사마경司馬冏이 집정하자
대사마동조연大司馬東曹掾에 임명되었다.
그 후 천하에 대란이 일어나자 사마경이 패할 것을 예측하고는
오로 돌아갔는데 과연 얼마 있지 않아 사마륜司馬倫이 피살당했다.
낙양洛陽에 있을 때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 땅의
고채菰菜와 순갱蒓羹(순채국) 노어회鱸魚膾가 생각나
인생귀득적지人生貴得適志 사람이 살아가면서 뜻대로 하는 것이 귀한데
하능기환수천리이요명작何能羈宦數千里以要名爵
어찌 벼슬살이로 수천리 떨어져 살면서 명예나 작위를 노리겠는가.
하면서 그날로 말을 타고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그 후 유유자적하며 인생을 즐기다 57살로 죽었다.
원래 문집 2권이 있었지만 이미 없어졌다.
<수구부首丘賦> 등 문장도 수십 편을 남겼지만 이 또한 없어진 것이 많다.
►소소蕭蕭
① 바람이나 빗소리가 쓸쓸함.
풍소소혜역수한風蕭蕭兮易水寒 바람은 쓸쓸히 불고 역수 차가워라,
장사일거혜불부환壯士一去兮不復還 장사도 이 물처럼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구나.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형가荊軻>
황촌고목소기연荒村古木嘯飢鳶 거친 마을 고목에서 주린 솔개가 울고
노적소소박모천蘆荻蕭蕭薄暮天 갈대 바람 쓸쓸히 해는 저문다.
/<정염鄭 등와령망관악登瓦嶺望冠岳>
② 말 울음소리.
소소마명蕭蕭馬鳴 말은 허흥 하며 울고
유유패정悠悠旆旌 깃발은 길게 나부끼도다./<시경詩經 소아小雅 거공車攻>
거린린車轔轔 마소소馬蕭蕭 수레소리 덜커덕 말울음 허흥
행인궁전각재요行人弓箭各在腰 출정하는 장정들 저마다 허리에 화살 찼네.
/<두보杜甫 병거행兵車行>
어풍루외석양사馭風樓外夕陽斜 어풍루 누각 저쪽으로 석양은 기울어지고
객마소소영로사客馬蕭蕭嶺路賖 나그네의 말은 우는데 고갯길은 멀구나.
/<최형기崔亨基 노중기춘파路中寄春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