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교실에서)
여고1학년...까만교복, 하얀칼라, 단발머리 시절...이성에 막 눈이 떠지는 시기..
그런데 도통 주변에서 남학생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 시절 남학생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교회를 친구따라 다니기 시작했다.
첫날...학생회에서 피아노 치는 남학생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
사춘기 소녀의 눈에 그는 백마탄 왕자님처럼 너무나 수려했다.
큰키에 하얀얼굴로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위에서 춤을 추듯 긴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취할때면 우리 친구들은 하나같이 넋이 빠져 그를 황홀하게 쳐다보곤 했었다.
그러니까 그를 맘속에 둔건 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앙큼스럽게도 친구들 모두가 하나같이 서로 경쟁자였음에도 짐짓 모른체 시치미를
띠고 있었다.
(여고시절...교정에서)
게다가 목사님 아들로, 성주의 왕자라는 신분이 그를 더 빛나게 했으며, 나를 포함한
교회내 많은 여학생들은 그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이던 날들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누구에게 지고는 못사는 성질....
타고나게 셈수가 빠른 난 그의 동향파악에 돌입했다.
그가 보고싶어 죽겠다고 얼굴과 표정에 써붙이고는 그의 등뒤를 졸졸 쫒아다니는
어리벙벙한 친구들과는 물론 달라야 했다.
새벽기도에도 나와 피아노를 친다는 소식을 은밀히 전해들었고, 승리의 여신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순간이왔노라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웬걸...새벽 기도시간 첫날, 조심스럽게 살짝 문을 연 난 기겁을 하고 말았다.
교회당은 이미 나같이 흑심 품은 단발머리의 음흉한 눈빛의 소녀들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여느 교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런 특이한 현상에 목사님은 우리 교회가 부흥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흡족해하시며 달뜬 표정으로 열변을 토하셨다.
그러나...이미 남들도 다 알고있는 작전은 승산이 없으므로 과감히 폐기처분해야 했다
(문틈으로 살짝 엿보는...설레임)
난 다시 궁리 끝에 번쩍 섬광처럼 묘수를 짜냈다. 그는 나보다 2년 선배였지만, 대 놓고
접근하기엔 너무 속내가 드러나보이는 상황에서 정공법이 아닌 우회전법을 구사하기로
한 것이다.
목표가 정해진 이상 확실하게 잡기위해서 늦더라도 좀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의 대학생 형에게 접근하기로 했다. 그와는 천양지차의 외모를 하고 있어, 수려한
동생과는 달리 또래 소녀들의 외면에 애타하던 그는 내 접근에 감지덕지 덥썩 반겼고,
이후 날 아주 옆에 달고, 끼고 다녔다.
둘째 오빠도 옆에 항상 있어야 한다고 우겨대는 내 의뭉한 흑심대로, 형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셋이 함께 다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느새 그와도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 또한 늘 형에게서 "내 친동생과 진배없는 얘니 너도 각별히 신경써라"라는 부탁을 받은
처지이고 보면, 애초 예상대로 언젠가부터 그의 대우가 점차 나에게만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러던중 얼마후 그는 대학진학으로 타지로 떠났고, 비슷한 시기에
목사님도 타지로 떠나셨다.
그럼에도 방학때면 그는 잊지않고 이제는 아무 연고가 없음에도 교회를 찾아왔다.
때문에 난 언제나 그의 방학을 기다렸고, 그는 오면 예전과 다름없이 내겐 한결같이
친절하게 관심을 기울여주곤 해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그런데...언젠가 졸업후 다시 교회에서 아주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우연히 들렀다가 만난거였고 군대 가기전 마지막 발걸음이었다.
군대 가기전 날 만나게 돼서 다행이라는 말과 살짝 입맞춤을 하고는 떠났다.
그리고...이후 오랫동안 다시 볼 수 없었다.
(프로포즈- 여심)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날....오랫만에 찾아간 고향에서 무심코 들른, 처음 그를
만났던 그 자리에서 예기치 않게 우연히 부딪혔다.
처음 눈에 선뜻 띈 사람은 그의 형이었다.
그 옛날, 그렇게나 못생겨보여...고구마라고 놀리던 내 눈을 확 잡아 끈건 옆에 있던 그가
아니라 그의 형이었다. 어쩜 그렇게 멋있어졌는지...난 정말 내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서서, 나처럼 놀란 토끼눈을 하고 그의 형을 바라보는 바로 그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사람이 그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됐다. 그때의 놀라움이란...
그날 두 번 놀랐었는데, 처음에는 황홀한 변신에 대한 경이로움이었고, 두 번째는 그렇게나
꽃같은 아름다움이 빨리 져버렸다는것에 대한 충격이었다.
큰키에 마르고, 하얗던 얼굴은 여전히 너무나 말라 비틀거릴것처럼 허약해 보이는 데다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목사님의 빛나는 머리를 미리 닮아버렸고, 변함없이 하얀얼굴은
안쓰럽게도 남들보다 먼저 빗살무늬 여러겹의 세월을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었다.
반면, 예전에 시커멓고 우락부락....그토록 못나보이던 그의 형은 선이 굵은 이목구비에
듬직해 보이는 단단한 체구까지...이렇게 세월속에서 그 둘의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순간 난 친구에게 투덜댔다. "그동안 내가 취향이 바뀐거야, 아님 첨부터 잘못 짚은거야...ㅠ.ㅠ"
암튼 그날이후 내 기억속에 영원처럼 자리하고 있었던 첫사랑의 환상은 깨져버렸고,
내 첫사랑에 대한 동화를 더 이상 전설처럼 떠벌거리지 않게 되었다.
첫사랑의 가슴 시린 추억속에 간직해왔던 내 영원의 아리따운 왕자님이 언제부턴가 자꾸
어떤 빛나리 아저씨의 우스꽝스런 얼굴과 겹쳐 오버랩되는건 어쩐다지... 크흑!!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며칠전 신문에서 글귀를 읽는 순간 그려보고 싶어 그렸는데...
매화만큼은 한국화의 영역인걸 다시한번 절감했습니다. 머릿속에선 나이프로 휙휙 나뭇가지를 속도감있고
멋드러지게 치면서 분홍 매화꽃잎을 쓰싹~그려넣으면 지조있고 단백한 매화가 탄생될 줄알았는데... 보시다시피
엉거주춤하고 억지스런 나뭇가지에다 저 분홍색 널부러져있는게 대체 매환지 복숭아꽃인지..그런데 그때의
순백했던 내 마음과 많이 닮은 것 같아 꽃잎이라도 따오고 싶었습니다ㅡ,,ㅡ
**** 이 글을 쓰고 다시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내 전설의 첫사랑 오빠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지휘자로 맹 활약중입니다. 지난해 예술의 전당 콘서트 표가 있다고 초대받았는데
무심코 본 지휘자 이름이 그 오빠였어요. 갑자기 일이 생겨 가지 못하는 바람에 볼 기회를
놓쳤지만...우리나라 음악계의 떠오르는 기린아, 다크호스로 방송이나 신문에 그 활약상이
자주 보도되곤 합니다. 비록 그때 이후 만난적은 없지만...마음속으론 늘 내 첫사랑 오빠의
건승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아...그리고 그때 교회내 친했던 또 다른 오빠가 있는데...
현재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한 피아니스트 손열음씨 아빠예요...
그 교회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가를 탄생 시킨 곳이 되었네요 ^^
첫댓글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그림 동화책 보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