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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처음 본 자리에서 최대한 빨리 어떤 남편감인지 어떤 유형인지 판별하는 법
(최대한 빨리 더러운 꼴 보기 전에, 최소한의 정보로 최대한의 사실을 유추해 내는 것-목소리 자세 태도 등)
임성근: 매력은 눈빛이라고 했다. 임성근 매력의 포인트는 눈빛이다. 카메라에 고정된 시선은 카메라를 넘어 시청자들의 눈깔마저 뚫어 버릴 것 같다. 촬영 내내 시선이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눈빛도 자세도 태도도 완전한 상위 포식자의 전형이다. 목소리도 전형적이다. 폭발하듯 포효하듯 우렁차다. 기본적으로 엄청난 성량인데 이게 굉장히 자연스럽게, 거침없이 터져 나온다. 이런 점에 여자들이 매력을 느낀다. 상남자라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남자가 사냥을 잘 하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고기를 배불리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시소 게임. 사냥 잘 하는 상남자의 전형 뒷면엔 또 다른 전형이 있다. 마누라 패고 바람을 피운다는 것. 안타까운 현실을 말하자면 임성근의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이미 전형적인 나쁜 남편감이다.
그렇다. 남자 구분법에서 남자의 말도 목소리도, 생긴 꼬라지도 보지 말고 무조건 행동을 봐야 한다고 백 만번을 강조했지만, 우리는 임성근 같은 표본을 보면 생각을 달리 하게 된다. 굳이 행동을 저지를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남자가 행동을 이미 저질러 버리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그때가 되면 이미 남자와 관계가 깊이 진행됐거나, 남자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남자가 행동을 하기 전에 알아 봐야 한다. 이 남자가 좋은 남편감인지 나쁜 남편감인지.
좋은 남편감은 좋은 남편감끼리 어울리고, 나쁜 남편감은 나쁜 남편감끼리 어울린다는 예외없는 법칙이 있다. 왜냐. 남자들은 10초 만에 알아보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나랑 많이 다른데, 저 사람 좀 싫은데' 이렇게 판단 내리고 관계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단지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임성근을 처음 보는 순간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같은 직감을 갖는다. 저 남자 질이 안 좋아 보이는데. 남자들에게 직감은 그저 직감일 뿐이다. 남자들은 자아 성찰이 불가능한 동물들이고 자신들의 직감/본능을 설명하는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 구분법에 남편감 물리 법칙이 나온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물리 법칙이 있다. '좋은 남편감은 나보다 가정이 중요한 남자이고 나쁜 남편감은 가정보다 내가 중요한 남자'라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은 세상 모든 남편감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다.
남자는 아무리 매력 넘치고 사냥을 잘해도, 가정보다 내가 중요하면 결혼해서 여자 인생을 망친다.
남자는 아무리 매력 없고 사냥을 못해도, 나보다 가정이 중요하면 결혼해서 여자를 받들어 모신다.
남자는 아무리 착하고 친절하고 성격 좋아도, 가정보다 내가 중요하면 결혼해서 여자를 비참하게 만든다.
남자는 아무리 성격 X같고 불친절하고 욕을 잘 해도, 나보다 가정이 중요하면 결혼해서 여자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 기준에서 임성근의 범죄적 양아치 교양없음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건 각자 취향일 뿐이다. 중요한 건 임성근이 제 자신을 '임짱'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남자들은 저런 호칭을 스스로 갖다 쓰기 불편해 한다. 도구/소모품에 애칭을 갖다 붙이는 거 그거 아무나 하는 짓이 아니다. 여자들은 흔히 하는 짓이지만 남자들은 거의 하지 않는다. 남자는, 본질적으로, 원칙적으로, 제 자신이 사용되는 것에 소모되는 것에 쓸모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지 자신의 이름이 돋보이는 것에 보람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것에 보람을 느끼는 남자가 나쁜 남편감이다. 가정보다 내가 더 중요한 남자다.
'나야 나 임짱이야~ 그런 거죠. 그래야 기선 제압을 할 수 있으니까.' 자아 도취 나르시시즘 중독자일 수도 있지만 그건 개인적 문제다. 중요한 건 이걸 남들 앞에서 드러내고 강요한다는 점이다. 개인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사이 관계의 문제인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돋보여야 하는 것이다. 렌즈 없는 장식용 안경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시력 보정 기능이 없는 장식용 패션 안경 쓰는 남자 중에 정상인 놈 없다. 나를 돋보이게 하는 짓에 몰입할수록 나쁜 남편감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특히 이렇게 실용성 기능성 필요성을 무시하고 보여주기 꾸미기 장식성에 치중하는 남자는 당연히 가정보다 내가 더 중요한 남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자 구분법에서 왜 연예인과 정치인이 물리적으로 나쁜 남편감일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는지 이제 깨닫는다. 가정이 아닌 내가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가정이 중요하면 연예인 정치인 못 하기 때문이다. SNS에 미친 남자, 성형 하는 남자, 패션 및 헤어스타일에 미친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너무 중요한 까닭에 그런 취미에 빠지는 것이다. 나를 돋보이게 하는 짓거리를 하면서 생의 보람을 찾는 것이다.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가정을 내팽개치고 나를 돌볼 확률이 높은 것이다.
카메라 돌자마자 안녕하세여 !허허허 이렇게 급발진 하듯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사람이 에너지와 자신감이 넘친다. 굉장히 외향적이거나 혹은 외향적인 척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남자가 에너지와 자신감이 넘칠수록
1) 하고 싶은 일도 많고
2) 사귀고 싶은 여자도 많은 법
3) 게을러서 망할 가능성은 없지만
4) 무모한/성급한 행동으로 망할 가능성이 상존하며
5) 집 안의 남자가 아닌
6) 집 밖의 남자로 살게 된다
이런 에너지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것이 이런 유형의 현실인 것이다. 이런 현실을 알고 관계하는 것과 모르고 관계하는 것은 정신 건강과 삶의 질에 아주 큰 차이를 남긴다.
목소리가 처음에만 이렇게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꺼질 때까지 (심지어 꺼진 뒤에도) 계속 파워풀하게 유지된다. 지어낸 에너지가 아닌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휴지기도 높낮이도 에누리도 없는 목소리와 화법은 또 다른 물리 법칙을 낳는다.
1) 자기중심적 사고방식과 행동패턴
2) 대화와 타협을 모르는 폭주기관차
3) 말리거나 방해하거나 조언하면 폭발함
관상 판별법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목소리가 더 중요하다. 남자의 목소리와 화법은 남자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남자의 호르몬 수치, 체질, 사고방식, 삶의 방식까지 거의 대부분의 사실을 이 목소리와 화법으로 10초 만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임성근의 시선은 대단히 공격적이다. 머리가 상체가 습관처럼 앞으로 기울어진다. 눈이 카메라, 상대를 향해 최대한 가까이 와 붙는다. 전방을 향해 기울어진, 공격적인 시선. 이는 다음 물리 법칙으로 이어진다.
1) 생각하기 전에 움직이는 행동패턴
2) 일단 저지르고 보는 행동패턴
3) 저지르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 사고방식
임성근은 완벽한 전형이다. 성찰하지 않는, 어디서 뭘 하든 항상 사고를 칠 수밖에 없는 충동성이 일상인 전형. 충동적 삶은 곧 자기중심적 삶을 의미한다.
조세호: 나쁜 남편감의 전형이다. 왜냐하면 얼굴에 손을 댔으니까. 얼굴에 손대는 남자는 굳이 판단이나 저울질 같은 걸 해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냥 본능적으로 쟤 좋은 남편감은 아니겠구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되는 것이다. 성형 하는 남자는 가정에 충실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내가 더 중요하다에 대한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증명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조세호는 임성근과 유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1) 온 몸에 기운이 넘쳐 흐름
2) 말할 때마다 움직일 때마다 활기가 튀어 오르는 느낌
3) 목소리가 매번 폭발하듯 터져 나옴
4) 목소리가 언제나 급하게 쏟아져 나옴
5) 자세와 시선이 대부분 앞으로 기울어져 있음
6)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 관상에 부리부리 이글이글 한 시선
이런 목소리와 말투와 시선은 사람이 '욕심으로 불타는 용광로'라는 표식인 셈이다. 자기 욕심이 과하기에 가정이 아닌 내게 저울추가 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임성근은 요리 방송 열기가 식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냄비 매력의 소유자지만 조세호는 그렇제 않다. 조세호는 지속 가능한,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인간이다. 이런 점에 속는 것이다. 저 남자 매력적이니까 결혼하면 행복하겠지. 이런 근거 없는 비현실적 본능에 자기도 모르게 넘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자연의 상년이 여자를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TV로 보는 광대는 그저 광대일 뿐이지만 직접 만나면 매력인이라는 게 제일 무섭다. 저 새끼 양아치 최악의 남편감인 거 뻔히 알면서도 정이 간다. 그냥 웃기다 매력있다 재미있다 이러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생각나고 보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고 그런 것이다. 그래서 위험하다는 것이다. 가정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는 종족의 특징이 현실에선 마약 같은 함정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김준호: 김준호는 입장하자마자 촬영장 분위기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 제일 키 작은 김준호가 가장 돋보인다. 10명에 달하는 베테랑 방송인들이 나왔는데 김준호의 독무대다. 김준호보다 더 목소리 큰 놈도, 김준호보다 더 재치 넘치는 놈도, 김준호보다 더 매력적인 놈도 없다.
1) 아무 맥락/근거 없는 회장님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2) 목소리가 과도하게 크거나 거슬리는 남자
3) 화법이 거침없이 호쾌한 남자
4) 눈빛 자세 태도가 공격적/도전적인 남자
5) 자기도 모르게 분위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남자
물리 법칙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저런 습성이 드러나는 법이다. 내가 마치 세상의 중심인 것 같은 태도. 억지로 나오는 태도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나오는 것. 그래서 마치 타고난 듯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돼 버리는. 김준호가 키도 작고 인물도 별로인데 개콘에서 매번 회장님 장군님 역할을 맡았던 이유를 깨닫는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본인이 그런 분위기를 풍기니까. 인간이 너무 자기 중심적이니까. 남들도 자연스럽게 인정했던 것이다. 그게 '사회적 분위기'로 전염돼 버린 것이다. 이 부분 중요하다. 자기 중심적인 분위기가 자기 혼자 '객기'로 머물지 않는다는 거. 사회적으로 인용된다는 거.
임성근과 조세호 역시 자기중심적인데 절대 개인주의적이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호응해준다. 함께 장단 맞춰 주고 함께 즐거워 박수 치고 웃고 난리가 난다. 임성근의 구독자 Q&A 장면은 중요하다. 임성근에게 저런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인정, 존경, 떠받듦, 이런 게 없으면 존재 의미를 잃는 것이다. 이제 '내가 가정보다 중요한 남자'의 특징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다. 자기 만족이 아닌 것이다. 사회적 인정인 것이다. 남자가 자.기.가 나.서.서 모임을 주도하고, 서열 관계를 정리하고, 윗사람을 챙겨주는 행동을 할 경우, 1) 이 남자는 사회성이 극도로 높은 유형이며 2) 결혼 후 사회 관계를 위해 가정을 희생할 것이란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에 매몰된 개눈박이들은 김준호 같은 사회적 동물을 이타적인, 성격 좋은, 유능한 남편감으로 여긴다. 김준호가 저런 행동을 하는 까닭은 여지없이 제 자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사회적 액션은 제 자신을 드높이기 위함이지 절대 타인에게 베풀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남자의 이타주의, 선행, 자선의 진짜 의미를 다시 깨달아야 한다. 남을 위한 게 아닌 것이다. 사회적 인정을 받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제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이런 남자들은 대부분 결혼해서 자기 가정을 희생해서 이타주의적 선행을 실천한다. 자선활동에 열심인 남자들, 기부와 선행에 목숨 건 남자들, 이 남자들 결혼해서 가정에 충실할 수 없다. 부양이 아닌 자기 만족이 우선인 것이다. 내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본능적 욕구의 발현인 것이다.
김동현: 등장하자마자 김동현은 주인공이 된다. 자기가 되고 싶어서 우격다짐 애써서 된 게 아니라 그냥 가만 있었는데 된 것이다. 조금 다른 점은 김동현의 목소리가 크거나 튀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동현의 목소리는 평범하다. 말투도 좀 양아치스러워서 그렇지 그렇게 튀거나 거슬리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처음에만 뭐 평범한데? 싶었지 금방 김동현 혼자 주인공이 돼서 모든 관심을 독차지 한다는 점이 동일하다.
1) 화법이 거침없이 호쾌함
2) 눈빛 자세 태도가 공격적/도전적
3) 자기도 모르게 분위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림
옆에 초대 손님이 2명이나 나왔는데 둘 다 존재감이 없다. 제일 웃기는 점은 초대 손님 중 제일 네임 밸류가 높은, 나이도 많고 돈도 많고 업적도 출중한 추신수를 가운데 박아 넣었는데 하나도 안 보인다는 점이다. 존재감이 전혀 없다. 이 부분은 다분히 상대적이다.
1) 추신수가 너무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 김동현이 너무 존재감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말인 즉,
1) 추신수는 임성근 김준호 김동현과 정반대의 인간이고
2) 김동현이 임성근 김준호와 동일 유형의 인간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추신수는 시종일관 수줍은 소녀처럼 뒤로 확 빠져 있다. '저 사람 예능 방송에 나오면 안될 것 같 은데' 이런 느낌이 가장 먼저 든다. 십년 동안 메이저리그를 씹어 먹던 스포츠 스타가 어떻게 저 자리에선 저렇게 요조숙녀처럼 새초롬 말 없이 수줍은 듯 앉아있는 거지? 왜냐하면 추신수는 김동현과 다른 유형의 남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간. 나서서 관심 받고 스포트라이트 받는 게 어색한 인간. 추신수가 좋은 남편감이라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최소한 김동현보다는 추신수가 가정에 충실할 확률이 물리적으로 더 높다는 점이다.
괜히 물리 법칙이라는 표현을 쓴 게 아니다. 내가 중요할수록, 내가 더 돋보이는 행동을 할수록 가정에 충실할 시간과 여유와 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오천만 분의 1의 확률로 나도 잘 나가고 가정도 잘 챙기는 초능력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확률이 당신에게 떨어질 확률은 없다. 그런 남자 없다고 단정 지어야 한다는 거다. 문제는 대부분 여자들이 추신수랑 김동현이 저렇게 나란히 있으면 김동현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왜. 김동현이 더 눈에 띄니까. 더 재미 있으니까. 더 매력적이니까. 존재감이 더 강하다는 거, 눈에 잘 띈다는 거, 매력이 있다는 거 취업 시장에서만 위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다. 결혼 시장에서 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날짐승도, 들짐승도, 인간도 일단 눈에 띄어야, 존재감이 강해야 선택 받는다. 그리고 남보다 더 빨리 번식한다.
좋은 남편감일수록 눈에 띄지 않는다. 눈이 띄는 걸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왜. 나보다 가정이 중요하니까.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부양의 대상이며, 나는 가정을 위해 소모되기 위한 존재니까.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좋은 남편감의 물리 법칙을 다시 정리한다.
1) 좋은 남편감이란 부양을 위해 조용히 소모돼 사라지는 존재를 말한다.
2) 좋은 남편감일수록 자기가 부각되는 것에 거부감/부담감을 느낀다.
3) 좋은 남편감일수록 자기 존재를 숨기려는 본능을 보인다.
4) 그래서 대부분의 좋은 남편감들은 어떤 상황이든 자기도 모르게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김동현은 그에게 맞짱 뜨자는 메시지가 백만 건씩 오길래 하루 날 잡아서 30명마리를 뽑아 그래 한번 붙자 체육관으로 와라 이렇게 친히 답장을 보냈다. 웃기는 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인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김동현이 무시했어야 할 짐승만도 못한 개돼지들에게 굳이 답장을 써 보냈다는 점이다. 남편감의 관점에서는 이 놈 제정신 아니네 정상 아니네 라고 판단해야 한다. 사회 관계가 우선인 것이다. 그 땨위 모기 바퀴벌레만도 못한 사회 관계 무시하고 소홀히 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자기 가정에 백배 이득이라는 것이다. 굳이 매번 그렇게 쓸데 없는 사회 관계 신경 쓰고 매달리고 시간과 정력을 탕진하고 있으니 가정에 충실한 시간이 대체 언제 나느냐는 것이다. 인간이 몸뚱이가 2개가 되고 시간이 2배로 늘어나지 않는 한 이 물리 법칙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다. 김동현은 술 친구 운동 친구로 삼기엔 더없이 좋은 남자일 수 있다. 하지만 결혼해서 같이 산다고 하면 얘기가 180도 달라진다. 결혼해서 같이 사는 문제는 저렇게 방송에 나와서 주둥이 터는 문제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목숨 걸고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김동현 같은 남자와 결혼해서, 자아 실현 하느라, 자기 이름 알리느라, 사회 평판 쌓느라, 사회 관계 넓히고 유지하느라, 가정은 완전히 뒷전인 채 모든 걸 여자 혼자 해야 하는 독박 부양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쁜 남편감의 존재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존재감과 다른 개념이라고 했다. 나 혼자 특출나서, 나 혼자 어디 꽂혀서 낭중지추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얘기라고 했다. 무리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혼자 뛰어난 게 아니라 무리의 관심을 모으고 무리의 환심을 사고 무리와 함께 공감하고 무리와 함께 협동하는 것이다. 나쁜 남편감의 존재감은 절대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개인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 자기가 그냥 자연스럽게 관심의 중심이 된다.
백종원: 백종원의 머리 속에는 온통 나 자신밖에 없다. 무슨 말을 해도 내가 먼저 돋보여야 한다. 내가 어뜨케 하나 봐요 내가 내가 내가... 김구라가 '그럼 이연복 선생님 칼은...'이러니까 갑자기 비뚤어진다. '그럼 이연복한테 가던가!' 이게 대체 무슨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아무도 이해 못한다. 내가 내 얘기 하는데 다른 놈 얘기 꺼내지 말란 것이다. 이쯤 되면 병이다. 이건 자기 중심적인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강박증에 가까운 사고방식 행동패턴인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이 주제와 관련이 없다. 거울 보며 정신 딸딸이 치는 개인 성격의 문제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것은 개인 성격도 아니고 사적인 정신 세계도 아닌,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 관계다. 중요한 이야기다. 단지 저 남자의 성격만 보고 저 새끼 나르시시즘 환자네, 성격이 이상하네, 병신이네, 싸가지가 없네 단정 내리면 당신은 세상 어떤 남자와도 결혼할 수 없다. 성격 좀 이상한 놈 다 거르고 나면 정말 극소수의 무능력 장애인만 남는다. 남자는 어느 정도 성깔도 있고 자기중심적인 면도 있어야 돈도 벌고 가정도 순탄하게 부양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강조한다. 그런 와중에 (사업을 하든 정치를 하든 예능을 하든) 가정보다 내가 중요한지, 나보다 가정이 중요한지 판단해야 하는 거라고. 개개인의 성격/개성/캐릭터를 따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를 따지는 거라고. 백종원이 싸가지 없는 것은 그의 비즈니스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내가 우선이어야 경쟁에서 이긴다. 내가 우선이 아니고 사회적 관계가 우선이면 비즈니스는 망한다. 그래서 사업가들 중에 좋은 남편감이 드물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을수록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또 아니다. 경쟁은 경쟁이고 가정은 가정인 남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사업이 중요한 것이고, 내 사업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 뿐이고, 마찬가지로 가정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백종원의 저런 성깔은 그저 성깔일 뿐이다. 하지만 저런 '회장님 임금님 상감마마 애티튜드'는 사업과 관련 없으며 단지 인간 관계에 심각한 장애를 낳을 뿐이다. 집에 아내가 있고 애가 있는데 저 지랄을 떨면 가정은 온전히 유지되기 어렵다. 물론 어떻게 하면 온전히 유지될 수도 있다. 하지만 평화나 행복 같은 정서적 만족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백종원의 첫 인상을 기억해야 한다. 임성근 조세호 김준호 김동현 최민수와 비슷한 분위기. 왜인지 모르게, 어딘가 모르게, 자연스럽게 '회장님 임금님 상감마마 분위기'가 느껴지는, 등장하자마자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구는, 혹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런 첫 인상일 경우 십중팔구 '가정보다 내가 중요한 사람'인 것이다.
남편감 관상 보기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이유다. 단순히 사람이 튄다, 개성이 강하다, 고집이 세보인다고 '가정보다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캐릭터와 부양의 문제는 서로 완전히 다른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단순멍청한 기준으로 따지면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는 무조건 첫눈에 나쁜 남편감인 셈이다. 자아가 강해 보이니까 저 새끼 보나마나 나쁜 남편감이라고 단정 짓고 위컴 같은 범죄자와 결혼해 인생 쫄딱 망해 버리는 것이다. 다아시의 싸가지 없음은 그저 개인의 캐릭터일 뿐이라는 생각을 항상 가져야 한다. 다아시가 만약 '나보다 가정이 중요한 사람'일 경우 그의 싸가지 없음과 미친개 같은 성격은 가정을 보호하는 방패가 될 것이고, 반대의 경우 가정을 파괴하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위컴처럼 다정하고 겸손하고 자아의 존재감이 없는 캐릭터일 경우 '나보다 가정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분골쇄신 가정을 위해 희생할 것이고, 반대의 경우 오만과 편견의 결말처럼 되는 것이다. 도저히 가정을 유지할 수 없는 최악의 지경으로 몰고 가 버리는 것이다. 다아시는 키가 크고 잘생겼음에도 구석 자리를 고집하며 좀처럼 사람들 관심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거부하며 함께 춤을 추자는 제안도 수차례 거절하다 'ㅅㅂ 졸라 재미없네' 이러고 그냥 집으로 가 버렸다. 이게 얼마나 정확하고 예리한 묘사인지 다시 깨닫는다. 실제로 작가 제인 오스틴이 관찰한 좋은 남편감들의 종특이기 때문에 이런 묘사가 등장한 것이다. 좋은 남편감과 나쁜 남편감의 첫 인상이 이렇게 다른 것이다.
1) 세상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와
2) 세상의 관심과 사랑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남자
이 이진법, 흑백 논리를 기억해야 한다.
최강록: 우리는 지금껏 실력있는 요리사일수록 나쁜 남편감이라는 논리를 당연하게 받아 들였다. 엉뚱한 논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요리도 예술의 한 갈래이기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지배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실력 있는 예술가가 결혼 시 가정 파괴범이 될 확률이 높은 것처럼, 실력 있는 요리사가 나쁜 남편감일 가능성은 다분하다. 하지만 최강록은 거의 충격적일 정도로 예외적인 반례다. 최강록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행위는 거의 고문에 가까워 보인다. 저런 거 시키면 안 되는 반인륜적 가학 행위처럼 보인다. 저 사람 어디 모자른 거 아님? 아니다. 최강록 유형 남자들의 전형이다. 저 유형 남자들이 대부분 저런다. 다른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관심을 받을 경우, 그 와중에 자기 소개까지 해야 하는 경우 저렇게 힘들어 한다. 망가져 버리는 것이다. 내가 중심이 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가 어쩔 수 없이 저렇게 중심이 돼 버리면 마냥 기뻐하지 못하고 저렇게 불편해 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남자들은 좋아서, 끌려서, 꼴려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경우, 목적을 정해 놓고 움직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같은 출연자 후덕죽도 마찬가지다. 나는 저런 데 죽어도 안 나간다고 생각했지만 제작진에 한달 내내 제발 나와 달라고 설득을 하는 바람에 후배들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은 의무감에 나왔다고. 그러니까 이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유명해지기 위해 나온 게 아니라 순수하게 '할 일을 해야겠다'는 기계적 의무감에서 나온 사람들. 정말 기계처럼 처음에 세운 목적대로 움직이고, 딱 그 지점까지만 작동하고 그대로 퇴역하는 사람들. 유명세가 싫은 것이다. 유명세를 이용해 노 젓고 파티하고 그런 게 너무 싫고 무서워서 그런 것 뿐이다. 이런 유형의 인간들이 많지는 않지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냉부해의 최강록은 전형적인 에겐 찐따남의 프로필을 보여준다. 수그린 상체, 내리 깔은 시선, 쫄아드는 목소리. 앞서 본 나쁜 남편감 샘플들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내가 주인공이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관심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럴 만한 가능성은 모두 미리 완전히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까지는 저 새끼 에겐남이네, 찐따네 이렇게 판단했겠지만 앞으로는 보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내가 중요하지 않은 남자. 나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한 남자.
최강록은 나보다 요리가 중요했던 것이다. 최강록은 12년 만에 뵙는다는 사부님과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인사를 하는데 땅바닥을 보면서 인사를 한다.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할 건
1) 최강록이 이 사부님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점
2) 이 사부님이란 사람은 최강록이 원해서 나온 게 아니라 방송 제작진이 우겨서 데려 온 것이라는 점
3) 이 사부님은 최강록을 좋아하고 있으며, 그를 잘 알고 있다는 점
4) 이 사부님에 따르면 최강록은 12년 전에도 지금처럼 에겐 찐따였다는 점
이쯤 되면 최강록은 사부님과 12년 전에도 친하지 않았고 지금도 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때 김성주가 나쁜 남편감들이 자주 하는 짓을 한다. 오랜만에 뵙는데 최강록 씨가 사부님 한번 안아 드리시라고. 모두를 당혹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강제적 사회 예외, 비상식적 가족주의 온정주의. 아무튼 이 지랄을 시키니까 최강록이 거의 죽음에 가까운 거부 반응을 보인다. 정말로 이 사람의 몸 전체가 '나 죽는다'고 부들부들 떨며 노골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인다. 하도 노골적이라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한다. 이거는 그냥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오장육부의 거부 반응이다. 인간의 DNA가 이거 안하겠다 못하겠다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최강록 유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보여주기식 허례허식 자기연출을 못하는 것이다. 최강록 같은 사람들이 김성주 이수근 같은 사람들을 극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여주기 허례허식 자기연출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걸 마치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자기가 보기엔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쓸데 없는 짓을 억지로 시키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최강록은 나 그런 거 못하는 사람이다 포지션을 정해 놓고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옆에서 시키면 억지로 간신히 조금 하는 척 흉내라도 내준다. 그러니까 시키면 다 한다. 잘 못해서 그렇지 절대로 안 하진 않는다. 중요한 부분이다. 나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기에 저렇게 바람에 낙엽 날리듯 이리저리 날라 다니며 고통 받는 것이다. 나 자신이 없기에 포지션을 정하지도 못하고 거부권을 행사하지도 못하고 NO라고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일을 할 때, 돈을 벌 때는 (사냥할 떄는) 누구보다 나 자신이 확고해진다는 점이다. 그냥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바보 맹추 찐따였으면 애당초 이런 데 나오지 못했다. 자기 분야에선 누구보다 유능한 사냥꾼이었기에 이 자리까지 와서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다.
이번 분석의 핵이다.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나 자신을 소모할 수 있다. 나 자신을 소모해 요리를 할 수 있고, 예술을 할 수 있고, 창작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고,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내가 없어야 나 자신을 더 효과적으로 소모할 수 있다. 내가 없어야 나를 희생해 가정을 부양할 수 있다. 이게 남자의 인생 한줄 요약이다. 요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 - 같은 패턴이 가정에도, 결혼 생활에도 반복될 것인가? 앞서 본 임성근 유형들에 비하면 그럴 가능성이 최소 2배 이상 높은 것이다.
나 자신이 지나치게 의기양양한 임성근 류 남자들도 제 자신을 불태운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분야, 내가 돋보일 수 있는 곳에서만 자기 자신을 불태운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분야에서는 1) 처음부터 몸을 뒤로 빼거나 2) 하다가 금방 그만 두거나 3) 불성실해진다.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최강록 류 남자들은 굳이 자기 자신을 증명할 필요도 없고 나 자신이 돋보일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런 분야일수록 1) 처음부터 몸을 뒤로 빼거나 2) 하다가 금방 그만 두고 도망가 버릴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나 자신이 돋보이지 않는, 증명될 필요가 없는 분야일수록 1) 더 적극적으로 몸은 던지고 2) 더 오래 끈질기게 자기 자신을 소모/희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좋은 남편감에 시키면 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전제 조건도 없다고 했다. 최강록은 시키면 하는 남자다. 비록 엉거주춤 하기 싫은 티를 내긴 하지만 어쨌든 한다. 왜. 내가 없으니까. 내가 없으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나랑 설사 맞지 않는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하기 시작하면 그냥 평생 내가 없어질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왜. 내가 없으니까.
최강록은 낯 가리고 수줍어 하고 슈퍼 내성적인 에겐 찐따남이 아니라
1) 나 자신이 없는 남자
2) 시키면 하는 (혹은 할 것 같은) 남자
3) 그 일에 나 자신을 소모/희생할 수 있는 남자인 것이다.
나 자신이 없는 남자, 시키면 하는 남자, 시킨 일에 나 자신을 열렬히 소모할 수 있는 남자, 그래서 나보다 가정을 더 중시할 가능성이 높은 남자를 최강록 종족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박지성: 박지성은 진짜 좋은 남편으로 판명된 남자다. 특이한 점은 박지성은 칭찬을 받을 때마다 얼굴이 급격히 똥씹은 표정으로 변하는 부분이다. 남들이 자기 칭찬해주는 걸 싫어하는 것이다. 정신병자 아닌가요? 아니다.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데 나를 칭찬해주는 게 좋을 리 있습니까?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 그렇게 때문에 나를 칭찬하고 띄워주고 칭송하고 그러는 게 전혀 아무 감흥이 없건, 부적절하게 여겨지거나,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아까 예전 사장님이 왔을 때도 반갑게 맞아주고 조크도 해준 것처럼, 환영식도 하라니까 의무감에 한 것이다. 오히려 박지성은 나 자신이 너무 없어서 이런 데 나오는 게 긴장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것이다. 액체 같은 인간. 어디에 담아도 그냥 담기는 인간.
아까 '시키면 한다' 이게 최강록 종족, 나보다 가정이 중요한 남자의 중요 특징이라고 했다. 박지성은 그러니까 군대를 갔어도, 배를 탔어도, 탄광에 갔어도 다 잘 했을 인간인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축구를 했고, 축구를 하기로 했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세계 정상까지 올랐던 것이다. 그렇기에 결혼해서 애 보라고 시켜도 여전히 똑같이 하는 것이다. 왜. 내가 없으니까. 나는 그저 주어진 일에, 시킨 일에, 내 자신을 끝까지 불사를 뿐이니까. 나 자신에 대한 어떠한 긍지도 만족감도 자랑스러움도 없는 담백한 모습. 자기는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고, 지금도 할 일을 하는 것 뿐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란 모습. 이게 바로 내가 없는 남자의 진면목이다. 내가 없기에 더 좋은 스포츠인, 더 좋은 창작자, 더 좋은 엔터테이너, 더 좋은 남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나 자신이 없는 남자의 진짜 강점이 하나 더 있다. 시키면 한다, 일단 하면 죽을 때까지 잘 한다(자신을 불태운다), 이것 말고 숨겨진, 가장 희귀하고 소중한, 믿을 수 없을 만큼 경이적인 장점이 있다. 바로 어떤 인간과 붙여 놓아도 된다는 점이다.
내가 너무 강할수록, 내가 너무 단단할수록 결혼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전현무와 성시경이 결혼을 못하는 거라고 했다. 박지성은 그 반대인 것이다. 내가 아예 존재하지 않으니까 누구와도 쉽게 결혼하고, 세상 어떤 인간과 결혼했더라도 아무 문제 없이 그냥마냥 아무 문제 없이 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아주 조금이라도 존재하면 그럴 수 없다. 조금만 이상한 인간과 결혼해도 트러블이 생긴다. 내가 아주 조금이라도 존재하면 아까 교토 축구 경기장 같은 곳에서 긴장되고 떨리고 무서운 것처럼, 아주 조금 핀트가 맞지 않는 인간과 살아도 반드시 탈이 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데 박지성은 그럴 염려가 없는 것이다. 결혼도 동거도 합숙도 그냥 전혀 아무 문제 없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게 아니라 단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맞춰주진 않아도 그냥 다 받아주고 넘어가고 적응해 버리는 것이다. 박지성은 그냥 좋은 남편감이 아니라 신이 내린 남편감이다.
중요한 건 여자와 맞지 않더라도 결혼을 유지하는 것이다. 부양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게 중요한 것이다. 최강록 같은 인간은 아주 그렇게 드물지 않지만 박지성 같은 인간은 정말 드물다. 박지성의 교훈은 하나 뿐이다. 나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남자를 만나라는 것.
1) 나 자신의 중요성은 물리적 공간이다
2) 나 자신의 중요성이 클수록 다른 사람을 포용할 공간은 줄어든다
3) 나 자신의 중요성이 적을수록 다른 사람을 포용할 공간은 늘어난다
4) 나 자신의 중요성이 적은 남자일수록 어떤 여자와 결혼해도 그 여자를 수용할 공간이 넉넉한 법이다
5) 나 자신의 중요성이 큰 남자일수록 여자에 대한 수용 범위가 좁은 법이다
6) 나 자신의 중요성이 큰 남자일수록 여자가 어떤 행동을 해도 쉽게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페이커: 좋은 남편감일수록 인간이 아닌 기게에 가까워진다고 했다. 페이커의 일거수일투족은 인간이 아닌 기계에 더 가깝다. 원래 그렇게 태어난 남자들이 있다. 그런 점이 페이커를 최고의 남편감으로 만든다. 최강록 종족은 어떤 사람과 있어도 저렇다. 고장난 로봇처럼 삐걱댄다. 아예 작동을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이 새끼 병신이네, 재미 더럽게 없네, 인간적인 면이 없네 이렇게 느끼는 것이다. 나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없기에 취향도, 캐릭터도, 여유도, 일탈도 없는 것이다. 나 자신이 없기에 기계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최강록 유형일수록 목적에서 벗어난, 예측 불허의 삶을 멀리 한다. 그래서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첫인상이 그렇게 딱딱하고 비인간적인 것이다. 최강록과 임성근 둘다 목적지향적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목적지향적이지 않은 남자는 남자가 아니다. 이건 아무 짝에 쓸모 없는 고기덩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냥 당연한 거다. 남자의 기본 소양, 패시브 스킬인 것이다. 임성근 종족이 다른 건 목적지향적이면서 딴 짓을 한다는 거다. 목적이 아닌 것들도 한다는 거다. 예상할 수 없는, 뜻밖에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인간적인 것이다. 같이 있으면 웃기고 재미있고 매력이 느껴지는 것이다. 목적이 아닌 것들도 한다는 것, 이것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결혼해서 외도를 하는 것이다. 시간과 정력을 가정이 아닌 내게 투자하는 것이다. 애당초 가정보다 내가 더 중요한 남자였으니 가정이라는 목적에서 아주 쉽게, 자주 벗어나는 것이다.
다른 보통 남자들은 목적 따위 없어도 여자와 접점을 만든다. 아무 맥락 없이 그냥 어떻게든 여자와 기회를 만들기 위해 사생결단한다. 최강록 유형은 목적이 없으면 1) 움직이지도 않고 2) 접근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남자가 기계에 가깝다는 거, 자기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이것이 결혼 생활에 얼마나 소중한 형질인지 당신들은 결혼 전에 깨달아야 한다. 여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건 인간적이어야 하는 쪽은, 나 자신이 존재해야 하는 쪽은 여자이지 남자가 아니란 점이다. 만약 남자가 그럴 경우, 그런 남자와 결혼할 경우 여자는 기계로 살아야 한다. 나 자신이 존재할 수 없는 비인간적 삶을 살아야 한다. 아주 간단한 이진법이다. 남자가 존재하느냐, 내가 존재하느냐. 내가 죽고 남자가 사느냐, 내가 살고 남자가 죽느냐.
팬들이 페이커에게 지어준 애칭이 많은데 그 중 마이혁이라는 애칭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한다. 그런데 페이커로부터 마이혁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제일 마음에 들면 자기도 쓰던가, 아니면 언급이라도 해주든가 그래야 하는데 그런 거 없다. 평생 입에 담지 않는다. 보면 볼수록 임성근 종족과 기가 막힐 정도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다른다. 임성근은 SNS에 대문짝만하게 박아 넣는다. 하지만 최강록 종족은 저 애칭 숨긴다. 자기 애칭이 아니고 다른 사람 부르는 별명으로 여긴다.
길 가다 보면 자기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인쇄해서 간판으로 달아 놓은 식당들이 있다. 이건 장사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자기 이름과 상판대기를 걸고 음식에 책임을 지겠다는 게 아니다. 나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다. 나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다. 나 자신이 너무나 미친 듯이 중요해서 다른 건 안중에 없는 것이다. 이런 짓을 하는 남자 중에 좋은 남편감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짓을 하는 남자라면 100%의 확률로 나쁜 남편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 가정보다 내가 더 훨씬 중요한 남자니까.
SNS에서도 마찬가지다. SNS든 채팅방이든 제 자신을 마이혁 이 따위로 표기하는 남자가 있으면 이 남자는 대단히 높은 확률로 가정보다 자기가 더 중요한 남자이며 100% 확률로 나쁜 남편감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소중히 하는 남자는
1) 남자가 아니거나
2) 가정보다 내가 더 중요한 남자
3) 다시 말해 결혼 결격 사유자다
정상적인 남자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제일 극혐하는 흔한 문구들이 있다 나는 소중하니까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해요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말 들을 때마다 분노를 넘어 살인 본능 같은 거 치솟으며 정상 남자고, 이런 말에 공감하는 남자는 비정상 남자, 가정보다 내가 더 중요한 결격 사유자다. 이런 말은 여자들에게나 통하는 말이다. 이런 말을 (정상) 남자한테 쓰면 남자의 폭력성을 자극하게 된다. 왜. 남자는 제 자신을 소모해 목적을 달성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자연의 섭리에 따르면 남자는 부양이라는 목적을 위해 소모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
다시 페이커의 경우로 돌아간다. 페이커는 분명 사람을 가린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태도가 천차만별 달라진다. 이건 자아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박지성처럼 액체 같은 인간은 아니란 얘기다. 자신과 맞지 않는 여자와 맺어지기도 어렵고, 그렇다 하더라도 마냥 순탄한 결혼 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같은 최강록 종족이라도 자세히 보면 깨알같이 다르다. 사귀는 방법도 결혼 생활의 스타일도 대처법도 조금씩 다르다.
유해진: 당시 배우라는 직업은 잘 생기고 목소리도 좋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강했기에 부모는 물론 친구들도 반대하고 비웃고 만류했지만 초지일관 '난 배우가 될 거요'라고 고집해서 오늘날 이 자리까지 온 것이라고 말한다.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음의 또 다른 긍정 효과다. 넌 거울도 안 보냐? 이런 비아냥에 신경이 쓰이고 목표가 달라지면 그건 그 사람의 자의식이 과잉이라는 증거다. 나 자신이 비대하다는 얘기다. 나 자신 생겨먹은 꼬라지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는 거울 보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목적을 위해 나 자신을 소모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유해진은 자기가 무명 시절이 때 동료와 선배들의 조언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때 그들의 조언이 배우로 성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누구에게나 그런 건 아니다. 예술하는 입장에선 어떤 조언이든 큰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유해진이 똑똑한 사람이라 도움이 되는 조언만 악착 같이 받아들이고 도움 안 되는 무시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남의 조언 이것저것 다 받아주다가 인생 망한다.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인생은 시소 게임. 나 자신이 너무 강해도 문제지만, 나 자신이 너무 없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장점만 얘기해서 그렇지 사실은 나 자신이 정말 아예 없으면 인생 망할 가능성도 높다. 아내의 말에만 휘둘리는 게 아니라 엉뚱한 사람의 말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유해진은 절대로 촬영 중에 애드립 하지 않는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예측 불허의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최강록 종족은 목적에서 벗어난, 예측 불허의 삶을 멀리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재미가 없는 거라고, 그래서 첫 인상이 그렇게 딱딱하고 비인간적이라고 했다. 이게 직장에서도 그런 것이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는 걸 죄악시 하는 것이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면 머리 속 회로가 타 버리는 것이다. 고장나는 것이다. 모든 게 정해져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예측 가능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진짜로 영화 찍을 때마다 기가 막힌 애드립을 치는 건 송강호다. 너 밥은 먹었냐.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문학적 대사를 창조한 송강호는 그러고 보면 최강록과 완전 다른 유형이었던 셈이다. 송강호는 분명 예측 불허의 삶을 즐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나 자신이 더 중요한 남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물리 법칙에 가까운 기준이라고는 했지만 변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임성근 종족 중에도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만나 좋은 남편으로 살다 죽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전형적인 최강록 종족임에도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 이혼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게 인생의 묘미이며, 그 또한 대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누구도 정확한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우리는 51:49의 확률 싸움에서 49를 버리고 51에 몰빵하는 것 뿐이다. 그래야 인생이 잘 풀리기 때문이다. 그래야 인생 망할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게 당신이 취해야 할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인생은 시소 게임이며 시소가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우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시소가 어중간하게 기울어지거나 대충 평평하게 유지된다. 이렇게 어중간한 경우 어떻게 구분을 해야 하는지 다음에 설명한다. '가정보다 내가 중요한 남자 vs 나보다 가정이 더 중요한 남자' 기준이 언제나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