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바우길 6박 7일의 여섯째날인 4월 22일 토요일 아침, 바우길 토요 걷기팀은 이날 1구간인 선자령 풍차길을 걷는다. 최순각님의 ‘산티아고 가는 길’ 사람들 팀도 함께 하니, 대관령휴게소 신생에너지 전시관 앞은 오륙십 명 정도의 참가자들이 대거 운집해 풍차 소리처럼 숨소리들이 아주 힘차다. 선자령 정상으로 가는 사잇길에서 울트라바우길 5구간으로 넘어가는 그 찬란하고 근사한 길에 지난 사천둑방길, 안반데기 운유길, 아리바우길 2구간 때처럼 또 나를 위한 고마운 걸음들이 펼쳐졌다. 나를 위해 특별히 울트라바우길 5구간을 테라님이 주선하고 아띠님이 길잡이하니, 아홉명의 바우님들이 동행을 해준다. 지난 2월 선자령 풍차길은 혼자의 도전으로 눈밭에 빠져 뒹굴며 힘들기도 했지만, 끝없는 눈길 산산 켜켜로 하얀 풍차가 도는 백두대간 선자령 정상석에선 감회에 젖어 눈물이 흘렀었다. 이번에는 참으로 따스한 동행 더할 수 없는 환희의 선물을 받는다.
함께 걷는 길에는 바우길 이사장님도 보이는가 하면, 챙겨주어야 하는 청소년들도 박수를 받아 보기에 참 흐뭇하다. 이런 사랑스러운 북적거림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어서 바우길에 더 호감이 간다. 쭉쭉 하늘로 치솟아 뻗은 키 큰 나무들 숲을 심호흡으로 지나간다. 폐부 깊숙이 맑은 공기가 들어온다. 새순이 마구마구 솟아나 햇살에 반짝이는 길에 사람들 모두가 싱그럽다. 양떼목장길 옆으로 KT송신탑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이미 내겐 익숙하다. 울트라바우길을 걷는 사람들은 여기서부터 앞으로 성큼성큼 먼저 빠져가기로 한다. 선자령 못 미쳐 계곡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 우리는 동그랗게 자리를 깔고 앉는다. 야생화들이 지천에 깔려 있는 들꽃 천국의 길 한켠에서 준비해간 점심들을 나누어 먹는다. 노랑제비꽃, 보랏빛 얼레지 그 귀한 꽃들이 바우님들에게는 그저 평범한가보다. 나 혼자서만 신기하고 대단해서 탄성을 지른다. 처음으로 그 많은 야생꽃들을 담고 담아 왔다.
선자령 정상 직전 너른 초원에 1구간을 오르는 팀들이 다 모여 앉아 시끌법석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 팀에 합류한 쌍둥언니도 나를 보며 반가워한다. 이기호 국장님이 쌍둥언니에게 노래를 청할 때에 마침 내가 도착을 하니, 우리 쌍둥이꽃 트윈 플라워즈 듀엣의 노래로 박수를 유도한다. 신나는 기분 살려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여.......’ 목로주점 노래의 화음이 대지 초원에 울려퍼진다.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시간이 촉박한 우리는 앵콜을 받지 못하고 선자령 사잇길로 빠져 곤신봉으로 향한다. 전날 밤 비온 뒤의 개인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다. 흘러가는 흰구름에 마음을 온통 빼앗긴 채 하얀 풍차들의 윙윙 핑핑 합창하는 고동소리를 듣는다.
쉬임없이 풍차는 혼자서도 돌고, 둘이서 셋이서 여럿이서 어우러지며 알프스산의 이국적인 풍경을 잘도 묘사해 놓는다. 우리도 질세라 혼자서 걷는 이, 둘이서 셋이서 여럿이서 조화를 이루어간다. 홀로 선 소나무 옆에 선 모습, 손잡고 초원을 걸어가는 낭만적인 포즈, 나무와 들판과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그림들, 빨간 부리끝으로 연신 돌면서 나는 풍차새들이 풍요롭다. 내가 서고 네가 서고, 구불구불 넘어가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풍차가 돌고 하늘이 돌고 네가 돌고 내가 돌고, 끝없이 펼쳐진 곤신봉 가는 길은 아주 이채롭다. 무한한 땅 거대한 대자연에 조그맣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큰 행복에 겨운 웃음들을 날린다. 구릉위에 우뚝 서서 내가 걸어올라온 길을 내려다보고, 다시 또 버티고 서 있는 구릉 위 가야할 길을 말없이 바라본다.
해발 1,131m의 곤신봉은 1,157m의 선자령보다 약간 낮지만, 정상석에서 산하를 내려다보며 외치는 소리는 거대하고 웅장하다. 실은 곤신봉을 나 때문에 처음 와본다며 좋아하는 사람들도 나에겐 기쁨이다. 화살 쏘는 포즈에, 저 멀리를 가리키는 포즈, 학처럼 다리 들고 서는 포즈, 촬영하는 포즈 등 다양한 포즈로 곤신봉을 기념한다. 정상에 서서 정상체험을 해본 사람만이 느끼는 희열과 환희, 그리고 정상을 통해 배우고 얻는 겸손함과 새로운 도전 의욕은 삶을 더욱 풍성하고 윤기나게 한다. 대공산성을 향해 하산하는 길은 쫘아악 초원이 펼쳐진 영화 속의 한 장면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송이 아니 나올 수 없다. 앉아도 보고 뒹굴어도 보면서 영화들을 찍어댄다. 지금 이 순간 더 이상의 슬픔이나 아픔들은 존재하지 않는 이곳이 바로 천국 아닌가! 살아서 이런 찬란한 풍광에 접할 수 있는 건 축복이다.
대공산성지엔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을 옮겨 놓은 듯 붉은 진달래꽃이 흐드러졌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어명정으로 가는 길 임도길 표지판이 보인다. 소나무 아름드리 근사한 어명정 길이 이렇게도 연결이 되고 있구나! 연연두빛 나무 잎새들이 역광에 현란한 빛을 발하는 나무 숲을 헤치며 내려온다. 드디어 하산 완료, 보현사 화장실 날머리로 나온다. 울트라바우길의 첫 맛은 상상 그 이상이다. 나머지 울트라바우길에 대한 기대감은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하곤님을 비롯한 픽업 차량에 지치고 힘든 피곤기가 일시에 사라진다. 바우길 위에선 이토록 아름답고 고마운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함께 걸어요. Please!’ 도움을 청했을 때 그 따스한 손길들로 나는 6박 7일 바우길 여정을 무사히 행복하게 마칠 수 있었다. 이 바우님들이 서울에 오면 내가 서울둘레길 길잡이로나마 보답할 수 있을런지.......
첫댓글 글도 사진도 늘 멋지십니다!
어머나.
긴 글도 많은 사진도
늘 그렇게 모두 다
보고 계셨군요.
고맙구
부끄럽구......
솔직 담백한 글 속에서 편안함과 생동감을 함께 봅니다.
더불어 사진 속 바우님들의 밝은 모습에서 걸어야 하는 이유를 읽습니다.
아름다운 이 바우길을 지키고 가꾸는 것 또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다시 생각해 본 하루에...
바우길 첫 인연이 소중해서
이렇게 내려가지 못해도
마음으로 계속 이어가고
오래도록 추억하고 있지요.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진센님이
참 많이 보고싶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