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의 아름다움저자 : 유창근 ㅣ 출판사 : 연인MB ㅣ2022.10.28 ㅣ 359p ㅣ ISBN-13 : 9788962535457
이 책 「상상의 아름다움」은 문학평론으로 등단한 지 36년,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시와 문학비평론을 가르치면서 정년을 마치고, 정년 이후에도 신춘문예 심사를 비롯해 박종화문학상·전영택문학상·서울시문학상·김영일아동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 심사, 여러 문예지의 신인상 심사, 백일장 심사, 작품집 평, 문학 특강 등으로 분주하게 보내고 있는 저자의 그동안 발표했던 문학평론들을 묶은 유창근 문학평론가의 제6문학평론집으로 주로 차세대 문학작품을 논한 글로 1부에는 이미 작고한 분들이지만 우리나라 차세대 문학을 개척한 김영일·한정동·마해송 선생을 조명하였고, 2부에는 종합문예교양지 『연인』에 연재했던 평론으로 원로문인들의 추천을 받은 유망(有望) 시인 10명(이유정 시인 외 9인)의 대표작 10편씩 모두 100편을 받아 조명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차세대 문학 우수작품집 두 권에 대한 평을 수록한 문학평론 신간입니다.
----------------------------------------------------------------
아래글 출처 :
온도가 있는 시 ( 유창근 제6문학평론집 《상상의 아름다움》 2022. 연인MB )
2018년 계간《연인》봄, 37호 - 기획특집, 숨은 작가 집중 조명 (박예분 편)
온도가 있는 시
-박예분 동시, 나는 이렇게 읽었다
글 유창근
봄호 특집으로 보내 온 박예분의 시 10편을 읽었다. 박예분 시인은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에서 아동학, 우석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하였다. 2003년 아동문예문학상으로 등단하여,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현재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이다. 동시집으로 『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 『엄마의 지갑에는』 『안녕, 햄스터』 가 있으며, 동화책 『이야기 할머니』 『두루미를 품은 청자』 『삼족오를 타고 고구려로』외 여러 권이 있다. 역사 논픽션 『뿔난 바다』와 그림책 『피아골 아기고래』 『이순신의 작전이 궁금해』 외 여러 권이 있고, 글쓰기 교재로 『글 잘 쓰는 반딧불이』 시리즈를 출간한 바 있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지원금과 2014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수상했으며, 201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로 선정되었다. 현재 전북동시읽는모임 회장, 한국동시문학회, 한국작가회의, 전북작가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다.
보내 온 여러 가지 자료를 보면서, 박예분 시인에게 아동문학은 곧 그의 분신이며, 생활의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시에서 어렵지 않게 어린이만의 특유의 싱그러움과 훈훈함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시인 스스로 어린이들의 생활 속에 들어가 많은 시간을 어린이들과 피부로 접촉하면서 어린이들의 내면세계를 연구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글쓰기에 열중해 온 결과라고 본다. 아울러 어린이를 위한 시는 박 시인의 시처럼 작품 속에서 어린이의 음성이 들리고, 어린이의 눈빛이 느껴지고, 어린이의 순수한 향기가 나야 한다는 확신이 선다. 그래야 동시의 1차적 독자인 어린이는 물론 동심을 가진 어른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와 손을 내밀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무 오리예요.
다른 친구들처럼
물속을 헤엄치지 못하고
꽥꽥 소리 내지도 못하지만
하늘 닿는
긴 장대 끝에 앉아
바람을 만나면
뱃사람들 이야기 들려주며
너무 세게 불지 말라 부탁하고
비를 만나면
농사짓는 사람들 이야기 들려주며
너무 많이 내리지 말라 부탁하고
별을 만나면
아이들 가슴에 반짝반짝
따뜻한 별 하나씩
품게 해달라 꼭꼭 부탁해요
- 「솟대」 전문
「솟대」는 상징성이 강한 작품이다. 마을 공동체 신앙의 하나로 음력 정월 대모름에 동제를 올릴 때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농을 기원하는 것으로 마을 입구에 세우는 상징물이 바로 솟대다. 그리고 솟대 위의 새는 대개 나무로 깎아 만든 오리이지만, 일부 지방에서는 까마귀.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까치 등을 쓰기도 한다. 이 작품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솟대」 는 어떤 화자가 어떤 청자에게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즉 솟대가 ‘나’라는 화자를 설정하여 말하도록 하는 1인칭 화자의 언술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1인칭 화자의 언술방법이란 ‘나’가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이자 ‘나’가 이야기의 중심인물인 경우를 말한다. 즉 작품 속의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로, 인물의 초점과 서술의 초점이 일치한다. 이때 ‘나’는 시인이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이지만, 독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듯한 ‘나’의 시점에 ‘나’의 존재를 실재하는 인물처럼 생각하고, ‘나’ 란 사람이 실제 경험했던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독자에게 쉽게 친근감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솟대」에서도 시인 자신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아닌 허구화된 나의 목소리로 읽어야 한다. 화자의 솟대 ‘나’가 시의 문면에 등장하여 청자인 바람에게 어부들을 위해 세게 불지 말라고 부탁하고, 비를 만나 농부들을 위해 너무 많이 내리지 말라고 부탁하고, 별을 만나 아이들 가슴마다 따뜻한 꿈 하나씩 품게 해 달라고 부탁함으로써 친근감을 갖도록 한다. 이 시의 1연에서 ‘나는 나무 오리예요’ 라고 전제한 다음, 2연과 3연에서 솟대의 이미지를 구체화한 방법도 깔끔하다. 아울러 4.5.6연에서 보여 주고 있는 바람과 뱃사람, 비와 농사짓는 사람, 별과 아이들의 연결은 각각의 속성을 잘 살려낸 성공적인 이미지 결합이다.
이곳이
벼가 누렇게 익었던 곳이라고
찾아보면
잘 여문 낟알들이 있을 거라고
먹이 찾는 겨울새들을 위해
찬바람을 맞으며
논 한가운데
기꺼이 알림판으로 서 있습니다.
- 「겨울 허수아비」 전문
「겨울 허수아비」는 기.승.전.결의 4분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메시지가 뚜렷한 시다. 문학형식에서 4분법은 가장 원만하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식의 소산이기도 하다. 시 전체가 순수한 우리말로 쓰인 것도 주목할 일이다. 일차적인 독자가 어린이일 경우 난해한 시어나 사상은 시에서 제일 먼저 배제되어야 할 기본 요소들이다. 그렇다고 어울리지도 않는 유아어를 남발하거나 쉬운 말만 골라 쓴다고 해서 좋은 시가 빚어지는 것은 아니다. 박예분 시인은 이러한 동시의 특성을 살려 어린이의 심리나 정서에 맞추어 시어와 사상을 자연스럽게 시에 접맥하고 있다.
허수아비는 곡식의 낟알을 쪼아 먹는 새나 곤충들을 쫓기 위해 논밭 한복판에 만들어 세워 놓는 사람 모양의 인형이다. 이것이 비유적으로 쓰일 때는 주어진 자리에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존재를 가리킨다. 더구나 철이 지난 겨울 허수아비는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는, 그야말로 무의미하고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이다. 겨울은 춥고 어두운 분위기이기 때문에 고난과 역경을 상징할 뿐 아니라, 한 해의 ‘끝남’이며 ‘죽음’을 뚯하기 때문에 겨울과 죽음은 동일시되기도 한다. 따라서 겨울 허수아비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는 죽음의 허수아비다. 그러나 앞의 시에서 허수아비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 이상의 중요한 존재다. 시인은 겨울 허수아비에게 눈 한가운데 서 있는 ‘알림판’으로 새로운 임무를 부여한다.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직권이다. 겨울 허수아비는 날아온 겨울새들에게 ‘이곳이/ 벼가 누렇게 익었던 곳이라고’ 알려주고, 2연에서 새들에게 ‘칮아보면/ 잘 여문 낟알들이 있을 거라고’ 알려준다. 먹이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는 겨울 허수아비야말로 겨울 새들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다. 이처럼 무의미한 존재를 의미있는 존재로 만들어가는 것이 동심의 세계이기도 하다.
아기 매미 잘 자라라고
나무는 날마다 젖을 주었지요
나무 젖을 먹고 자란 매미
날개 돋아 멀리 여행 떠날 때
나뭇가지에 제 허물 벗어 놓고
엄마 나무라 표시해 두었지요.
- 「매미 허물」 전문
「매미 허물」 은 매미의 껍질이라는 표상적 이미지를 통하여 인간이 동경하는 이상세계의 일면을 형상화한 것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시다. 엄마 나무와 아기 매미라는 전혀 이질적인 사물을 모자관계로 묶어서 의인화한 점이 색다르다. 1연에서 나무의 수액을 먹고 자란 아기 매미를 ‘아기 매미 잘 자라라고/ 나무는 날마다 젖을 주었지요’라고 표현하고, 2연에서 아기 매미가 자라 우화하면서 멀리 여행을 하고, 떠나기 전에 젖을 준 엄마 나무를 잊지 않기 위해 허물을 벗어 나뭇가지에 표시를 해 놓는다는 상상이 티 없이 맑고 순수하다. 실제 매미의 일생을 살펴보면 1주일 정도의 삶을 살기 위한 주비 기간이 참으로 길고 길다. 짝짓기를 한 암컷이 나무 틈에 산란관을 박고 알을 낳으면 그 알은 나무 틈에서 겨울을 난 뒤 여름에 깨어 나오며 애벌레는 땅속의 나무뿌리에 붙어 6년 정도 보내는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 굼벵이로 몸집을 키워 때가 되면 땅 밖으로 기어 나와 나무나 풀에 올라 우화를 거쳐 매미가 된다. 그리고 1주일 정도 나무의 진을 빨아 먹으며 살다가 교미를 한 뒤 알을 낳고 나면 껍질이 되어 죽는다고 한다. 박 시인이 이런 길고 긴 매미의 일생으리 3연 6행 속에 함축시킨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식구들 모두
거실에 둘러앉았다
맨발로 둘러앉아
다리 쭉 뻗고
꼼지락꼬밎락 이야기 나눈다
굳은살 박힌
아빠 발가락을
엄마 발가락이 살살 만져 주고
조그만 내 발가락
오빠 발가락을 톡톡 건드린다
꼼지락 톡톡 우리 가족
오늘도 맨발로 이야기 나눈다.
- 「꼼지락 톡톡」 전문
「꼼지락 톡톡」 은 시인의 눈에 비치는 현상을 평범한 일상적 언어로 스케치한 작품이다. 가족들이 거실에 둘러앉아 발가락으로 피부를 접촉하면서 나누고 있는 가족애를 형상화하였다. 특히 발가락을 의인화하여 가족들이 맨발로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만져 주고, 톡톡 건드림으로써 마치 발가락이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하고 행동하도록 시도한 점이 흥미롭다. 이는 때 묻지 않은 동심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동시를 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 전체가 마치 동영상을 보듯 리얼한 까닭은, 둘러 앉고, 쭉 뻗고, 만져 주고, 건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역동적인 시어들이 연속적으로 시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작품의 첫 연과 마지막 연에서 ‘맨발’이라는 시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맨발은 인간적인 기쁨과 슬픔, 고통을 이해하는 격이 없는 사이를 지칭할 때 쓰이는 것으로 ‘친근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아울러 ‘맨발’이 1연의 ‘식구들’, 마지막 연의 ‘우리 가족’과 짝을 이루면서 가족 간의 사랑을 극대화시킨 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이 시의 주체가 발가락이라는 사실을 부각시켜 ‘오손도손 이야기 나눈다’가 아니라, ‘꼼지락꼼지락 이야기 나눈다’고 표현한 것은 훌륭한 비유다.
18개월 동안 함께 살았어
잘 가라고, 인사도 못해 더 눈물이 나
모과나무 아래 곱게 묻어 주고
돌아서는데 누나도 나도 엉엉
눈물 콧물 훔쳤어
햄스터가 아픈 것도 모르고
밤새 혼자 끙끙 앓게 한 것이
학원 다니기 바쁘다고
방학 때 많이 놀아 주지 못한 것이
너무너무 미안해서.
- 「안녕, 햄스터」 전문
「안녕, 햄스터」 는 일종이 모노로그 시로 볼 수 있다. 반려동물인 햄스터의 죽음을 놓고 화자 혼자서 말하고 있는 형식을 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1연에서는 죽은 햄스터를 모과나무 아래 묻고 북받치는 감정 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그리고 18개월 동안 함께 지냈던 햄스터의 죽음을 통해 ‘죽음’은 예고 엊ㅂㅅ이 일어나기에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잘 가라고 인사도 못해’라는 가장 평범한 언어로 전해 주고 있다. 2연은 1연의 결과에 대한 원인을 밝힌 부분으로 일종의 후회이며 반성하는 글이다. 잘못한 일에 대해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것이 ‘후회’다. 햄스터가 밤새도록 아파서 혼자 끙끙 앓는 것도 모르고, 학원 다니기에 바빠 방학 때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이 결국은 햄스터를 죽게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은 것 자체는 분명히 후회다. 후회는 대부분 보통 과거의 어떤 선택 때문에 일어나며 ‘그때 만약 이렇게 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따라서 「안녕, 햄스터」는 후회의 본질을 어린이의 수준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시간적 순서에 따라 연을 배열한다면 일반적으로 2연을 앞에 놓고 1연을 뒤로 보내야 한다. 2연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1연은 현재 전개되고 있는 상황들을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은 전체적인 시의 구성을 과거 ⭢ 현재의 배열이 아니라, 현재 ⭢과거로 역순 배열함으로써 시간적 흐름을 일탈시키고 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상황을 시로 형상화할 경우, 흥미를 도출시키는데 효과적 방법 가운데 하나다.
내가 젠투펭귄이랑 악수했다 말해도
친구들은 믿지 않았어
혹등고래랑 바다를 누볐다 말해도
절대로 믿지 않았어
물개랑 입 맞추며 놀았다 말해도
도무지 믿지 않았어
그런데 딱 한 사람
그 친구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
그 친구가 우주에서 왔다고 했을 때
나도 그대로 믿어 줬거든.
- 「딱 한 사람」 전문
「딱 한 사람」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신뢰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형상화하고 있다. 1.2.3연에서 화자는 친구들로부터 불신당했던 사례들을 ‘믿지 않았다 ⭢절대로 믿지 않았다⭢ 도무지 믿지 않았다’라는 형식으로 부정의 강도를 높여 가고 있다. 이른바 ‘절대로’와 ‘도무지’라는 부사를 ‘않았다’는 부정어와 결합하여 불신에 대한 감정을 최고조에 이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다음, 4연에서 뒤의 내용이 앞의 내용과 대립될 때 쓰는 연결부사 ‘그런데’를 사용하여 부정적인 상황들을 긍정적인 것으로 반전시키면서 ‘딱 한 사람’이라는 주제어를 부각시킨 점이 이채롭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감이라는 진리를 가르쳐 주는 교훈적인 시다. 다만 이 시를 읽으면서 젠투펭귄과 악수하는 행위, 혹등고래와 바다를 누비는 일, 물개와 입맞춤을 하는 행위가 각 동물의 특성과 어떤 유사성을 갖고 있는지 분명하게 이미지화했더라면 시가 더욱 빛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두둑한 엄마 지갑
만날 돈 없다는 건 다 거짓말 같아
엄마는 두꺼운 지갑을 열어 보며
혼자서 방긋 웃기도 하지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나는 몹시 궁금해서 살짝 열어 봤지
에계계
달랑 천 원짜리 두 장뿐이었어
대신 그 속에 어릴 적 내 사진이
활짝 웃고 있지 뭐야
거기에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랑 누나 사진까지 들어 잇지 뭐야.
- 「엄마의 지감에는」 전문
「엄마의 지갑에는」 어린이의 심리를 잘 포착한 시다. 모든 인간은 천성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 시는 화자인 어린이가 엄마의 두툼한 지갑에 돈이 얼마나 들어있을까 몹시 궁금해하는 전반부와 어느 날 마침내 지갑을 열어보고 알게 된 사실들을 꾸밈없이 묘사한 후 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평소 궁금하게 생각했던 문제들을 어린이 심리에 맞게 해결해 가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시인은 호기심이 아무리 강해도 그걸 실천할 용기가 없으면 호기심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과, 사랑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임을 엄마의 지갑 속에 들어있는 천 원짜리 두 장과 가족들의 사진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다. 엄마의 지갑은 물질적인 것을 상징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가족들의 사진은 정신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엄마의 지갑에는」 은 물질보다 사랑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하는 알레고리 시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알레고리는 인물, 행위, 배경 등이 일차적 의미와 이차적 의미를 모두 가지도록 고안된 이야기다. 예를 들어 『이솝 우화』와 같은 동물 우화는 일차적으로는 동물 세계를 보여주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인간 세계에 대한 풍자와 교훈을 담고 있는 것과 같다. 아울러 박예분 시인이 전반부와 후반부를 분명하게 구분 짓는 역할로 이 시의 가장 중간되는 위치에 감탄사 ‘에계계’를 한 행으로 처리하여 상황을 반전시키고 있는 점도 주목해 볼 일이다.
수학 시험을 잘 봤구나,
그런데 이렇게 쉬운 문제를 틀리면 어떡해?
달리기를 잘했구나,
그런데 조금만 더 힘을 내서 달리지 그랬어
글을 아주 잘 썼구나,
그런데 또박또박 글씨를 좀 잘 쓰지 그랬니
우리 아빠 칭찬은 참 좋다
그런데…….
- 「그런데 칭찬」 전문
「그런데 칭찬」은 ‘그런데’라는 부사와 ‘칭찬’이라는 명사를 합성하여 재미있고 독창적인 제목을 빚어낸 것이다. 시의 본질이 창조성에 있듯이 제목도 창조적이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제목부터 상상력이 구사된 제목이며 이미지화된 제목이라는 의미다. 시의 제목은 넥타이와 같고 여인의 스카프와 같다고 했다. 넥타이와 스카프는 외모를 돋보이게 할 뿐 아니라 그의 인격과 교양과 매력을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라는 부사는 화제를 앞에 내용과 관련시키면서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때 쓰는 접속부사다. 시의 구조를 보면 1연부터 4연까지 모두가 동일하다. 각 연이 2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연의 첫 행에서 칭찬하는 말을 해놓고 둘째 행의 첫 부분은 모두 ‘그런데’라는 부사로 시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수학 시험을 잘 봤구나/ 그런데 이렇게 쉬운 문제를 틀리면 어떡해?’와 같은 서술방식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경우에 따라 단조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시의 내용을 깊이 잇게 읽어 가다 보면 이와 같은 구조가 시인이 의도하고자 하는 주제를 담기에 적합한 기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시인이 인간의 심리적 양면성을 각 연의 행 배열을 통해 시각화하려는 의도적 전략도 미루어 볼 수 있는데, 이는 단조로운 구조라기보다 오히려 아이러니하고 복합적인 구조로 읽어야 한다.
인간의 양면성이란 심리학적으로 양가감정에서 기인하다고 보는데, 이 개념은 서로 상반되는 가치를 지닌 감정들이 마음 안에서 갈등하고 있는 형태지만, 이러한 양면적인 모습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전문적인 용어를 빌린다면, 「그런데 칭찬」은 겉으로 나타나는 의미와 속뜻이 다른 아이러니 가운데 낭만적 아이러니에 속하는 작품으로 심리적인 부분을 동심의 시각에서 잘 형상화했다고 볼 수 있다. 시의 화자가 어떤 상황에서 칭찬을 하며 낭만적인 분위기로 나가다가 ‘그런데’라는 부사를 시점으로 돌연 다른 어조로 설명을 바꿔 상황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흙덩이, 복덩이, 햇덩이
달덩이, 돌덩이, 메주덩이
눈덩이, 얼음덩이, 불덩이
똥덩이, 소금덩이, 황금덩이
모두 작은 덩이로 이루어졌지만
하는 일은 다 다르다
나는 총소리 울리는
저 바다 건너
배고픈 아이들 배를 불리는
빵 한 덩이 되고 싶다.
- 「덩이」 전문
「덩이」는 리듬이 잘 상아 있는 시다. 특히 1연은 3음절 내지 4음절의 명사형 시어 12개가 아무런 수식이나 서술 없이 3개씩 4행으로 나뉘어 무질서하게 열거되고 있어서 딱딱하고 건조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형태상으로 음절수가 비슷한 시어끼리 묶어 행을 배열하고, ‘흙’을 비롯한 12개의 명사 뒤에 ‘덩이’를 붙여 3.4조의 전통적 리듬을 살려 냄으로써 전체적 이미지를 흥겹고 역동적으로 변화시킨 점이 돋보인다. 사실 1연에서 12개의 덩이들은 ‘작게 뭉쳐서 이루어진 것’으로 각자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 이외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 다만 이러한 형식의 반복은 리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읽으면 된다.
그러나 3연은 단순히 시어의 나영리 아니라, 시인의 깊은 사상과 의미가 들어있다는 점에서 앞부분과 다른 시각으로 읽어야 한다. 우선 1.2연의 화자가 객관적이 ㄴ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반면, 3연에서는 화자가 ‘나’라는 주관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1.2연의 화자가 정적이고 미온적인 반면, 3연의 화자는 동적이고 적극적이다. 화자가 ‘나는 총소리 울리는 / 저 바다 건너/ 배고픈 아이들 배를 불리는 / 빵 한 덩이 되고 싶다’고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1연에 열거한 다른 12개의 덩이와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박예분 시인이 이 시의 3연에서 주제가 되는 ‘사랑’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유적으로 묘사한 점이 돋보인다.
드디어 오늘
반장을 뽑는다
김기린 한 표
박인봉 한 표
하얀 칠판에
바를 정(正)자 획이 그어질 때마다
내 마음은 시소를 탄다
친구들이
김기린, 하고 내 이름 부르면
하늘 높이 붕 뜨고
박인봉, 하고 친구 이름 부르면
쾅, 엉덩방아 찧는다.
- 「시소 놀이」 전문
「시소 놀이」는 상황에 따른 인간의 심리적 변화를 시소놀이에 비유한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는 반장선거에 입후보한 두 사람 중의 하나다. 칠판에 득표수를 표시해 나갈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변화를 시소놀이에 비유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이 이채롭다. 특히 ‘하얀 칠판에 / 바를 정자 획이 그어질 때마다 / 내 마음은 시소를 탄다’고 한 바유가 탁월하다. 이어서 ‘김기린, 하고 내 이름을 부르면 / 하늘 높이 붕 뜨고 / 박인봉, 하고 친구 이름 부르면 / 꽝, 엉덩방아 찧는다’고 비유한 것 또한 어린이의 내면 심리를 날카롭게 파헤친 부분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시는 존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창조적 작업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언어의 감각화나 형상화가 요구되며, 이러한 시적 창조를 위하여 시는 비유적 이미지를 선택한다는 걸 박예분 시인은 「시소 놀이」에서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
박예분 시인은 어린이를 위한 시가 무엇인지 알고 쓰는 시인이다. 그는 어린이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아 평범한 우리말로 알기 쉽게 시를 쓰고 있어서 겉으로 보기에 쉽고 가벼운 시로 보일 수 있지만 읽을수록 맛이 나고 그곳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동시는 동심적 심상에 비쳐진 감각체험의 재현이다. 특히 성인들이 동시를 쓸 때, 동심 세계의 형상화가 이루어지려면 어린이의 실제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가 항상 그들을 관찰하면서 상상적 체험을 얻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박 시인의 시에서 규칙적인 행과 연의 배열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곧 동시에서 리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 주는 부분이다.
「겨울 허수아비」, 「매미 허물」, 「딱 한 사람」, 「엄마의 지갑에는」, 「그런데 칭찬」에서는 각 연을 모두 2행으로 배열하고, 「안녕, 햄스터」는 각 연을 5행으로 배열하는 등 규칙적인 행의 배열은 곧 시의 리듬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기타 「솟대」, 「꼼지락 톡톡」, 「덩이」, 「시소 놀이」도 외형상 불규칙적으로 보이지만 내재율로 인해서 다른 시 못지 않게 리듬이 살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들의 시와 다르게 어린이를 위한 시일수록 음악성이 있어야 한다. 자신 있는 리듬감, 자연스러운 운율을 느낄 때 어린이는 친밀함과 재미를 갖고 시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린이의 지각을 일깨워 주는 시, 햇살처럼 어둠을 환히 밝혀주는 동시를 많이 써서 이 세상 모든 어린이들에게 큰 꿈을 안겨 주기를 바라며, 박예분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
유창근(문학평론가)
● 충남 부여에서 父兪晩濬과 母任甲彬의 장남으로 태어남
● 문학박사(학위등록번호: 88박670문교부, 학위논문: 素月詩의 페미니즘Feminism 硏究, 1988)
● 장로, 서서울 CBMC 회장 역임
● 시인·문학평론가(시 1980, 문학평론 1986 『월간문학』 당선)
● 문예창작학과 교수, 학과장, 예체능계열부장(학부장), 학보사 주간, 도서관장, 대학평의원회 의장 역임·現 종신명예교수
● (사)한국어문능력개발원 이사장, 현대문예비평학회 부회장, 한국국어교육학회 이사, 전국대학문예창작학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이사·감사 역임, 은평문인협회 부회장 역임·現 자문위원장,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역임·現 지도위원
● 신춘문예, 문예지 신인상, 각종 문학상, 세종글짓기 등 작품심사위원·심사위원장 역임
● 現 『창조문학』 주간, 『연인』·『스토리문학』 편집고문, 『아동문학세상』 편집위원장
● 제1회 조국문학상(1991) 외 문학평론 부문 문학상 7회 수상
● 황조근정훈장(제22779호, 대통령) 서훈敍勳, 국무총리상, 장관상 수상
● 저서 「비평클리닉」, 「문학을 보는 눈」, 「문학비평연구」, 「한국현대시의 위상」, 「素月評傳」, 「김소월의 시세계」, 「文學과 人生」, 「문학의 흐름」, 「차세대 문학의 이해」(문화관광부우수학술도서), 「동시창작12강」, 시집 「둘이서」, 한 줄 시집 「싶다」, 제5문학평론집 「逸脫의 美學」, 제6문학평론집 「상상의 아름다움」 외 문학 관련 40여 권
● E-mail: rootpia2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