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김애자
늦은 봄에 양구에 있는 박수근 미술관과 DMZ 투어에 참가했다. 코로나로 4년 만에 재개된 충주문인협회에서 떠나는 문학기행이다. 일행을 태운 관광버스가 양구로 올라가는 동안 차의 속력에 따라 앞으로 밀려오고 뒤로 밀려나는 초여름 산하는 신록으로 싱그러웠다. 산자락마다 찔레와 산딸나무와 백당나무 흰 꽃이 눈부셨고, 작은 도시와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농촌 들녘은 더없이 평화스러웠다. 6.25 전쟁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1129일 동안 강원도 일대 산들이 폭탄 세례로 민둥산이 되었고, 그 산에서 수많은 적과 아군이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들이 흘린 피로 얼룩졌던 산하는 언제 전쟁을 치른 적이 있었냐는 듯 숲은 무성했고 기름졌다.
오늘 우리가 찾아갈 DMZ는 38선을 경계로 비무장지대다. 대한민국 지도 중심에 남과 북이란 마지노선이 생기게 된 것은 1945년 2월 4일이다.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 미국의 루스벨트 3개 국가 원수들이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2차 대전을 매듭짓기 위해 우리나라 지도를 놓고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마지노선을 그었다. 남한은 민주주의 독립국가로, 북한은 사회주의국가로 정했다. 북한 정권은 김일성에게 맡겨졌고, 자주독립국가인 남한에선 최초로 정부가 수립되었다. 1948년 5월 10일에 대한민국 국민 손으로 선거를 치렀다. 선거 결과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국가원수가 되었다. 헌법이 제정되고 민주주의 발판이 마련되는 시기였다. 그러나 북한에선 일찍이 러시아에서 파시즘 이념에 물들었던 김일성이 정권을 잡자 곧바로 적화통일을 꿈꾸었다. 스탈린 정부에서 무기를 지원받았고 병력을 대대적으로 훈련해 전쟁 준비를 완료하고 ‘폭풍’이란 암호로 봇물 터지듯 탱크를 앞세워 남한으로 밀어닥쳤다.
내가 일곱 살 때 겪었던 전쟁은 동족상잔 비극이었고, 더 나가선 36개국에서 참전한 유엔군 병사들까지 목숨을 잃는 참극이었다. 더는 병사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와 중공군 사령관 펑더화이와 ‘정전협정조인’을 체결한 것은 1953년 7월 27일이었다. 1129일 만에 총소리가 멎었고 38선에는 철조망이 쳐졌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국방부전사편찬회’에서 밝힌 사망자 수는 “유엔군 병사 16만, 한국군 62만, 북한군 93만, 중공군 100만, 민간인 250만 명”이 희생되었음을 기록했다. 그리고 73년이 흘러가는 동안 대지는 새로운 생명을 품어 저토록 숲을 아름답게 가꾸어 놓았고, 대한민국은 산업국가로 발전하였으며. 경제 국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우리가 탄 버스가 비무장지대로 들어선 것은 오후 두 시경이었다. 대기소에서 담당 사병이 버스로 올라와 인원을 확인하는 동안 김우종 교수 작품집 『DMZ 나비들의 반란』 이 문득 떠올랐다.
김우종 교수는 나비를 아이콘으로 삼은 나비의 아티스트다. 2022년 6월에 그림과 해설을 담아 펴낸 이 화집은 당신이 90 생애를 문학과 화가란 두 개 키워드를 가지고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수난과 영광을 기록한 산물이다. 위안부를 그리고 도라지꽃과 민들레를 목련과 흰옷 입은 여인, 후쿠오카 감방과 사각모를 쓴 시인 윤동주와 생체실험용으로 사용하던 주삿바늘과 날카로운 펜 촉, 산과 산이 겹을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 산맥들까지 통일과 자유와 평화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화가 소원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그리고 화집에 들어 있는 그림 대부분이 김우종 문학상 수상자들에게 부상으로 내려준 작품들이다.
필자도 2018년 봄에 ‘김우종 문학상(본상)을 받을 때 상금과 부상으로 그림 한 점을 받았다. 화제는 윤동주 시 「새로운 길」이다. 멀리 삼각형 형태 산들이 겹을 이루고 가까운 산 밑으론 농가 여덟 채와 조금 떨어진 곳엔 교회 건물이 보인다. 마을은 연보랏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멀리 산과 골짜기는 프러시안 블루로, 그리고 마을을 향해 난 곡선의 길은 은빛으로 환하다.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 아가씨는 빨간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었다. 그 아가씨 걸어가고 있는 길가엔 민들레가 피어 있고, 생강나무 가지엔 까치 한 쌍이 앉아 있으며, 짝없는 까치는 날개를 펴 마을 쪽으로 날아간다. 그림만 봐도 윤동주 시 한 편이 온전한 형태로 들어앉아 있는 그림을 액자까지 넣어 교수께선 직접 안겨주셨다.
김 교수께서 이렇게 작가들에게 부상으로 그림을 내려주는 행위를 ‘나비의 효과’로 여기신다. 나비의 날갯짓 수십 점이 모이면 커다란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과거 경험을 통해 입증된 바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는 윤동주 시인 추모 행사를 오랫동안 주관해 왔다. 후쿠오카교도소 뒤뜰에 모여 윤동주 시인 추모제를 올리는 일도 에드워드 로턴 로렌스가 노린 ‘나비의 효과’였다. 행사비 1억을 기꺼이 내어준 대학신문사 사장은 간 큰 나비였고, 출연료 없이 진혼무를 춘 서울대 이애주 교수, 장사익과 50여 명 풍물놀이패, 아침 이슬을 불러준 양희은 가수,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일본 학자와 재일동포 문인들도 평화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나비들이다.
아니 그 이전에도 나비들 효과는 작동하고 있었다. 6.25 전쟁터에서 중공군 포로였던 당신을 남한으로 탈출시킨 야전병원 간호병도 나비였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 ‘문인간첩단’ 조작사건으로 보안사 대공분실로 끌려가 협박과 고문으로 비참한 지경에 빠졌을 때, “선생님은 간첩도 부르주아도 아니라고 목숨을 걸고 변호한 젊은이도 나비였고, ‘민청학련사건’으로 지목받아 모진 고문 끝에 처형된 여덟 명 청춘들은 천국으로 날아간 나비들이었다. 그토록 삼엄한 상황에 처한 김우종 교수를 살려야 한다며 일본 작가 오무라 마스오 교수를 비롯하여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구명운동을 벌인 언론의 날갯짓은 ‘토네이도’로 작용해 구치소란 지옥에서 김 교수를 구해주었다.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교수직에서 해직당하고 난 뒤, 먹고 살기 위해 그린 그림과 에세이와 논문 등이 언론매체를 타면서 김우종이란 이름이 전국으로 알려졌다. KBS에선 2년 반 동안 <시민법정>에 변호사역을 맡겨 유명세를 탔으며, 2000년 벽두에는 KBS 1TV에서 <펜으로 지켜온 양심, 평론가 김우종>이란 타이틀로 한 시간 동안 반영했다. 현존하는 작가 1만 명 중에서 구상 선생과 두 분이 초대되었다고 회고하셨다. MBC문화방송 라디오 프로에서도 1년 동안 매일 <김우종 에세이>가 낭송되어 버스 기사와 택시 기사,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 것도 작가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22년에는 학자와 문학인으로 명성을 떨치던 이어령. 김지하, 김동길 세 분이 유명을 달리하셨다. 이분들 모두 김우종 교수보다 연세가 아래인데 먼저 명부에 들었다. 교수께서 세 분이 가시는 길에 끼어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읍하지 않을 수 없다.
『창작산맥』 통권 44호를 손으로 어루만진다. 11년 동안 김 교수가 매호 마다 그림을 그리면서 열정을 쏟아 만든 책이다. 출간을 도와준 신아출판사 대표와 뜻을 같이해준 허선주 주간과 사이채 편집국장도 고마운 나비들이다.
이번 호 그림은 <항아리 속 시와 어머니>다. 그림 제목처럼 광양이 고향인 정병욱 교수 어머니가 아들 부탁을 받고. 얼굴도 본 적 없고, 이름도 모르는 청년 윤동주 원고 뭉치를 마루 밑에 감추어 두었던 사연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백자 항아리 안에 들어 있는 원고지 위로 검은 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고, 빨간 보자기 주변으로는 수십 마리 나비들이 무리 지어 날고 있다. 하지만 머리에 흰 수건을 쓴 어머니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항아리를 내려다보며 서 계신다. 어머니 등 너머론 장엄하게 뻗어 나간 산맥들은 흰 눈으로 뒤덮여있다. 통일이 아직도 요원하다는 의미일 터이다. 나는 교수님과 우리가 모두 바라는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하루속히 돌아오기를 간절한 마음을 담아 성호를 긋는다. 津
* 참고자료; 『DMZ 나비들의 반란』 202, 219, 253, 279쪽
『세계사사전』 747쪽 얄타협정. 『한국전쟁 1129일』 22쪽
김애자 수필가
1991년 월간수필문학 천료.
저서: 『숨은 촉』 『수렛골에서 띄우는 편지』
『점은 생명이다』 』 『봄, 기다리다』 외 다수
* <창작산맥 2023. 가을호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