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 고구려유적 高句丽遗迹
출처: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고구려유적 장군분 중국 랴오닝(辽宁寧)성, 지린(吉林)성의 고구려족 성지, 무덤 등 유적.고구려족은 일찍이 동북의 혼강, 푸얼강, 압록강 일대에 살았습니다.기원전 108년, 한 무제는 현토군을 설치하고 고구려를 현으로 삼았습니다.
주몽은 1세기 전 랴오닝 성 환런 현 일대에 고구려서기 3년에 유리명왕이 국내성(지린성 지안현)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위진 시대에 고구려는 중원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427년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청나라 말기에 지안의 좋은 태왕비는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1940년대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일본인들은 지안 지역의 성터와 무덤을 조사하고 발굴했습니다.1949년 이후 지린성 박물관, 랴오닝성 박물관 등이 각지의 유적을 조사하고 발굴했습니다.
▲ 환도산성 남쪽 성벽 유적 성터에는 평원성과 산성으로 구분되는데, 초기에는 다산성이 많았고, 그 다음에는 평원성이 있었고, 옆 산에는 지안현 평원의 국내성과 환도산성이 있었습니다.산성 중에서 오녀산성은 연대가 비교적 이른데 아마도 초기 도읍지인 오흘승골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적지는 환런현에서 북동쪽으로 7km 떨어진 우뤼산(五女山)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아래는 혼강(浑江)에 접해 있습니다산성은 서쪽으로 절벽에 의지하여 남·북·동의산세가 오목한 곳에 판상돌로 성벽을 쌓았고, 남북으로 길이 1,000m, 동서폭 300m, 남쪽으로 성문이 있고, 성 안에는 축대 터와 샘이 있습니다.
평원성은 국내성으로 대표됩니다. 평면은 직사각형이고 성벽은 돌로 쌓았고 옹성, 각루, 그리고 쌓는 대를 갖추고 있습니다.서쪽에는 도랑과 강이 있고, 다른 세 면에는 참호가 있습니다.성 안팎에 모두 건축 기지가 있습니다.
방어를 위해 국내성에서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환도산성을 쌓고, 국내성으로 향하는 남쪽에 왕조산성과 망파령의 요새를 쌓고, 북도에 관마장산성을 쌓아서 도성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4세기 이후 고구려의 힘은 나날이 커져서 형세가 험한 수륙양로에 산성을 대량으로 쌓았습니다.
▲ 랴오닝 환런 미창구 장군묘 반경도 복원 고구려 현존하는 성터로는 금현 대화상산성, 개현 고려성산성(건안성), 요양연주성산성(백암성), 무순고을산성(뉴타운), 서풍성의 자산산성, 봉성의 봉황산성(오골성), 유하나통산성, 길림시의 용담산성이 있는데, 모두 산세에 따라 돌을 겹쳐 담장을 이루거나 각루, 덧대, 여장을 두거나 외성을 쌓기도 하고 성 안에 연못과 샘과 건물을 쌓기도 합니다.
5세기에 고구려가 요동군 치양평(辽陽)을 차지하면서 요동성으로 개칭했습니다.고구려는 도성, 평야성, 산성으로 이루어진 성곽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무덤에는 돌무덤과 흙무덤의 두 가지 유형이 있으며 주로 푸얼강, 훈강, 압록강 일대에 분포하며 환런지안이 가장 집중되어 있습니다.
적석묘는 3~5세기에 유행했으며 환인묘군은 비교적 이른 시기로 모두 적석묘입니다.지안 묘군의 시대는 비교적 늦었는데, 처음에는 적석묘, 그 다음에는 봉토묘였습니다.적석묘는 자갈, 자갈, 돌조각을 봉인으로 하며, 대체적인 발달 순서와 형태는 적석묘→방단적석묘→방단계단적석묘→방단계단석실묘→봉석동실묘입니다.대개 골짜기나 하천의 흐름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다.
▲ 호태왕비, 비문 탁본.봉토묘와 적석묘가 나란히 나타나 6세기에 성행했습니다.대체적인 발전 순서와 형태는 유단봉토석실묘 → 계단봉토석실묘 → 봉토동실묘 → 봉토석실묘입니다.왕실과 귀족의 봉토묘는 넓고 널찍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능선이 높고 아름다운 벽화가 많이 있습니다. 지안의 벽화묘 중 적석묘 1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봉토묘로 4세기 중반부터 7세기 초까지 3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전기는 4세기 중반부터 5세기 전반까지이며, 벽화는 주로 무덤 주인의 생활화를 위주로 하며, 각도묘와 같은 백악토 석벽에 그려져 있습니다.
②중기적으로는 5세기 전반부터 6세기 전반까지 무덤주인의 생활화 외에도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4신, 그리고 불교의 내용을 반영한 연화, 불상, 비천, 보살, 예를 들면 삼실묘(三室墓), 장천1호분(長川1號墓)이 등장합니다.
③후기는 6세기 중엽부터 7세기 초까지이며 벽화는 주로 4신 위주로 석벽에 직접 그려집니다.벽화를 보면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습니다.
적석묘에서는 전국 서한시대의 동전과 정, 부, 증, 𨱓두 등의 동기가 출토되었으며, 뱀새, 臿, 보습, 낫, 도끼 등의 철기는 모두 한나라와 위나라의 중원지역과 동일한 형태였습니다.
출토된 금세공기는 정교하고 화려한 무늬를 가지고 있으며, 금은세공기는 소박하고 섬세하며, 황유토기는 우아하고 우아합니다. 지안 무덤군에는 장수왕이 414년 아버지 광개토경평안호태왕을 위해 세운 묘비로 유명한 호태왕비가 서 있습니다.
분류:고고 표제어
본문 라벨: 고구려 유적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