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1. 31 일요일. 맑음
07:00. 선영이랑 Wife의 배웅을 받으며 쨍하게 맑은 한 겨울에 집을 나서다.
보험사원 들이나 듬직한 오리 가방 속에 챙긴 내용들을 다시 한번 뇌어 본다.
수험표, Computer用 Sign Pen, 계산기, 예상 문제지, 보온병, 계산기 뚜껑애 붙여 놓은 열 대여섯 가지의
분량인 컨닝 Paper가 마음에 걸리지만 처연하기로 하다.
교대역은 역시 만원. 7:30분이 지나서 신세대 Bus 두대가 도착. 수원공고에는 온통 운동장이 주차장이다.
Kim 대리가 Coffe를 끓이고, 수질의 여선생도 나와 있었다.
4층 38호실. 수질 1급과 합석. 09:30 부터 시험이 시작되다. 노동부에서 나온 감독관 1명, 보조 1명.
11:00 까지 80 문제를 풀다. 11:30, OEM Card에 답을 옮기고 퇴실.
혼자서 수원 남문 Bus 정류장 까지 걷다.
허망한 느낌. 이 시간을 위하여그토록 아웅 다웅 했는가?
결과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합격 / 불합격을 떠나서 온통 마음이 뒤죽박죽이다.
홀가분 하지도 않고, 왠지 묵직한 덩어리 하나를 삼킨 것 같은 느낌.
2차를 위해 위해 도전 할 것인가, 이쯤에서 포기 할 것인가.
1,900.- 짜리 시외 Bus는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그간 숫하게 치러온 시험 이지만, 역시 이번에도 끈끈한 후회가 심금을 울린다.
"평소에 좀 더 열심히 예습 복습을 할껄 . . . . .
1999. 3. 11. 목요일. 맑음.
벌써 봄인가? 화사한 볕이 난무하는 상쾌한 아침. 끝내 수료식의 전야를 맞다.
12주의 짧지 않은 세월이 흘러 비로서 그 마지막 날이 도래한 것이다.
실업자 구제책으로 정부에서 시행한 직업교육. 28명 중에 그래도 20명이 일차 시험에 합격.
2차 및 작업형 시험을 남긴 채, 결국 3월 12일. 코오롱 연수원에서 수료식을 맞은 것이다.
06:00 기상. 연수원의 강아지를 데리고 뒷산에 오르고,
07:20 조식.
08:00 까지 세면 후 45분 까지 휴식.
09:00 1교시 시작. 3시간 수업 후
12:00 ~ 13:00 점심식사.
13:00 ~ 18:00 까지 오후 수업
18:00 저녁식사.
22:00 까지는 자율학습 및 각자 체력단련 시간.
22:00 취침.
정부에서 일체를 무료로 실업자를 위한 구제책으로 실시한 Program.
그대신 판에 박힌 군대식 단체생활. 그래고 나는 융통성 있게 아침 등산도 하고 조깅도 하며 탁구장에서
공도 치고 운동장에서 축구도 하며, 팀을 짜서 내 특기인 족구도 많이 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수료 직전에 아침 등산 코스를 발견해, 그 좋은 산행이 짧았다는 것이랄까?
코오롱 산악회가 개발한 법화산 385m의 정상은 평범한 능선 코스지만 상쾌한 공기, 탁트인 전망으로 하여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한 코스였다.
40여 분으로 시간도 적당하여 땀도 나고 숨도 가빠, 아침 운동 코스로는 아주 따봉이었다.
코오롱 연수원 대기과정 연수를 막음 하면서 28명으로 시작된 연수원의 대기과정은 수질의 56명,
산업안전 과정의 58명, 의류 디자인 35명과 함께 98년 12월 14일에 코오롱 연수원 대강당에서 그 막을 열었다.
담당에 김재신 대리. 이경진, 구영기, 최상진, 한인호氏등 4명의 강사가 우리를 맞다.
28명의 능력 및 경력이 일체 무시된 채 강의는 계속되었고, 따라 가는 자와 따라 가려는 자가 구별 되면서,
나는 힘겹게 쫓아가는 Club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솔직한 그때의 내 심정은 서너가지의 학과 중에서 마음에 든다거나 관심있는 과목은 없었다.
정부에서 전액 무료로 실시한다는 계획에 일정 기간, 시간이나 벌자고 뛰어든 모험이었다.
그 무모함은 드디어 첫 시간부터 터저 나오기 시작했다.
제일 심각한 문제는 화학적인 분야의 이해였고 두번 째는 대수적인 계산 문제였다.
38,000.- 짜리 공학용 계산기를 일괄구입하여 두드려 보았으나 이항 및 분수, 미적분 그리고 함수의 개념이
전혀 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계속해서 Err만 나오는 거였다.
짝궁이었던 인하공대 출신의 최 총무는 나보고 한심하다고 했다.
대수 계산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단위 조작을 하고 70% 이상을 점유하는 계산 式을 풀어 나가려 하느냐
했다. 그래도 나는 포기 하지 않고 1차 시험에 응했다.
새벽 2시, 3시 까지 문제를 풀어보고 이론을 암기하고 법규를 외웠다.
그러나 운명(?)은 나를 비켜가고 그리고 나는 Down 되었다.
나는 알고 있다. 오직 고령자 라는 이유 만으로 녀석들이 나를 반 대표로 반장에 선출했겠지만,
그래도 나는 소신껏 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 자리를 지키려 했다.
다른 과정에 뒤지지 않게, 우리 과정의 살림을 꾸리기 위하여 많은 생각을 했다.
1) 반비를 걷어
a. 닥아 올 연말 / 연시 / Christmas Party 개최.
b. 김재신 대리를 위한 선물 마련
c. 따분한 수업을 해소하기 위해 음료 준비 (일회용 Coffe / 녹차)
d. 타 과정과의 운동 시합 추진
2) 구정 Party 및 김대리 선물 (남성용 화장품 Set)
3) 수료식에 즈음하여 Party 준비
4) 全 반원의 연락망 작성
5) 간단하나마 기념 촬영 및 앨범 제작.
모나지 않고 티 내지 않으며 모두를 위한 기회가 되도록 나름대로 노력하다.
용인의 맨 끝자락. 경찰대학을 지나서 한성 C/C 옆 정화, 산호 APT가 훤히 내려다 뵈는 얕으막한
산 골짜기에 위치한 코오롱 연수원. 그래도 한해 겨울을 생활관과 강의실을 오가며 춥지 않게 지낸 곳.
그래서 이따금은 그리워 질 것 같은 1999년의 봄.
실직의 황당한 마음을 잠시나마 추수린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