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울고 있는 당신에게
[창세기 21:8-21]
사자성어 중에 “진퇴양난”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아시나요?
앞으로 갈 수도, 뒤로 후퇴할 수도 없다는 말이죠.
오늘날로 하면 “빼도 박도 못한다”를 줄인
“빼박”과 같은 의미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일로 인해
진퇴양난의 상황을 겪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한 여인이
바로 그런 상황에 놓였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그저 울고 있던 사람,
그녀의 이름은 하갈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일로 그녀가
이런 상황에 놓인걸까요?
그리고 어떻게 이 일은 마무리되었을까요?
말씀을 보며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가나안 땅을 오기 전부터 부부였습니다.
아브라함이 75세 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저라면 너무 당황했을 것입니다.
집이 가난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새출발을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 하나님이 새로운 길로 열어 주시나 보다.'
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미 정착해서 잘살고 있었습니다.
재산도 어느 정도 있었고,
부리는 종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중소기업 사장은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말씀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것 아닙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지금처럼 비행기나
KTX, SRT가 있는 게 아니었죠.
걸어서 가야 했습니다.
중간에 힘들면 낙타를 타고
산과 들을 가로질러야 했습니다.
거기에 뜨거운 모래 바람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삶도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가뭄이 들어서 이집트까지 다녀와야 했습니다.
얼마 뒤엔 아들같이 생각하던
조카 롯과 생이별을 해야 했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라면 하나님께 끊임없이 물었을 것 같아요.
“하나님, 여기까지 온 게 맞습니까?
제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요?
그런데 왜 이렇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버텼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란 생각이 듭니다.
믿음은 버티기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 자리에서 버티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그걸 아주 잘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아브라함에게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물질적으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버티기 싸움에서 승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가지
약속의 땅에 머물러 계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큰 부자가 된 아브라함에게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이가 없었습니다.
85세가 될 때까지 아들을 갖지 못했다.
약속의 땅으로 떠나 온 지 10년이 되었는데도
아들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85세면 할아버지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갖는 건
절망적인 상황이었죠.
모든 게 끝나버린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 사라는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내어줍니다.
그를 통해 씨를 이어가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해서 낳은 아이가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이스마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신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아브라함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사이에서 태어나는
자식이 진짜 언약의 계승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흘러
아브라함 100세가 되었을 때
사라에게서 아들이 태어납니다.
바로 이삭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웃음‘입니다.
이삭은 이름 그대로 사라와 아브라함에게
큰 기쁨과 웃음을 주었습니다.
4. (문제 심화)
그렇게 시간이 흐릅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이 되었습니다.
고대 중동 지방에서는 3살정도가 되면
젖을 떼었습니다.
당시엔 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젖을 때는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만큼 아이가 건강하게 자랐다는 의미였죠.
그래서 아브라함은 잔치를 벌였습니다.
우리로 치면 돌잔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사라는
한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합니다.
자신의 아들 이삭을 중학생 남자아이가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 십대 소년은 이삭의 배 다른 형인
이스마엘이었습니다.
그는 사라의 여종이었던
하갈에게서 낳은 '서자'였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진
모든 사랑을 독차지 했었는데,
이젠 찬밥 신세가 되어 버렸죠.
그러니 마음에 상처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서
이삭을 괴롭혔던 거죠.
그런데 이걸 사라가 본 겁니다.
사실 사라은 이미 마음의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하갈이 임신했을 때
자기를 업신여겼기 때문입다.
하갈은 본인이 안방마님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자 사라는 하갈을 학대했고,
하갈은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 광야로 도망칩니다.
이곳에서 하갈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
이스마엘을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다시 돌아온 집에서 하갈은 이스마엘을 낳았고
시간은 흘렀습니다.
바로 오늘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혔고,
그걸 사라가 보았죠.
그러자 사라는 눈이 뒤집혔습니다.
아침드라마에 등장하는 시어머니 같이
화를 내었을 것입니다.
“어머! 어떻게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애를
네 놈이 이렇게 해!”
라며 말입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했던 말을 보면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0절입니다.
창세기 21: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이삭은 아브라함의 가업을 이어갈
공식적인 독자입니다.
그렇기에 눈엣가시와 같은
이스마엘은 빨리 떠나야 합니다.
두 개의 태양이 함께 뜰 수 없기 때문이죠.
결국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스마엘도 자신이 낳은 아들이기에
부성애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대 중동에서
주인에게 자식을 낳아준 여종을
함부로 내쫓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근심하고 있는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근심하지 말라고 하시며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갈에게 주셨던 약속과
동일한 약속을 주십니다.
창세기 21: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여기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가정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혼자 근심하며 고민하는 어려움을
주님도 같이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오늘이 그런 날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갈은 이스마엘과 함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들고 광야로 떠났습니다.
보통 한 가죽부대에 담기는 물은 15리터쯤 됩니다.
정처 없이 떠나는 길,
누구 하나 반겨주지 않는 떠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브엘세바란 곳에서 헤매고 다녔습니다.
브엘세바는 아열대성 기후와
사막기후가 교차하는 곳입니다.
연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하죠.
굉장히 건조한 땅입니다.
그런데 얼마 못가
가죽 부대에 있는 물이 똑 하고 떨어집니다.
아이는 점점 목말라하는데
줄 수 있는 물이 없었습니다.
하갈은 엄마입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자기가 아프고 배고픈 것보다,
자식이 아프고 배고플 때 더 괴로워합니다.
하갈도 그랬습니다.
아들이 죽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소망까지
모두 죽는 것을 의미하죠.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목말라 하는 아들은 점점 힘이 빠져갑니다.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절망적인 현실이었습니다.
아들은 덤불 그늘 아래 두고 자신은
뙤약볕 아래 200-300미터 쯤 떨어진 곳에서
털썩 주저 앉았죠.
그리곤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작은 흐느낌이 어느새 통곡으로 바뀝니다.
그녀는 무력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엉엉 소리내며 펑펑 울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마엘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신다‘입니다.
이스마엘은 있는데 이스마엘이 없다는 상황이죠.
여러분도 이런 때가 있으셨습니까?
혹시 지금이 그런 때인가요?
우리의 삶에 자녀들의 문제로
가슴 아파보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겁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
그런 자녀로 살아왔죠.
돌이켜 보면 부모의 사랑은
참 귀하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있는 그녀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소리를 들었다고 하시며
아이를 통해 큰 민족이 일어날 것을
약속하십니다.
약속 후에 하나님은
놀라운 반전을 일으키신다.
창세기 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그제서야 하갈의 눈이 열렸고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샘물을 봅니다.
그러나 샘물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눈이 어두우면 샘물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눈을 열어 주옵소서.
기도할 때 우리의 눈이 열리고
문제를 해결할 물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소리를 주목하십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있습니다.
창세기 21: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는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큰 축복이 뭘까요?
좋은 대학? 대기업 취업? 건강?
진짜 큰 은혜,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것은 없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이 땅에서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천국으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도 이런 은혜를 사모하길 바랍니다.
찬양 사역자이신
김명선 전도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
너무 기뻤다고 해요.
두 아이를 낳고도 사역을 하는데
승승장구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
청천벽력과도 말이 듣습니다.
암 진단이었습니다.
그것도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였죠.
매일 악화 되는 남편을 보며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계속 불렀던 찬양이 있습니다.
<내 삶은 주의 것>
"내 삶은 주의 것
내 삶은 주의 것
온전한 신뢰를 주께 드리네
보이지 않아도 믿음으로 걷네
주 영광 바라보며 주만 따르네"
내 삶이 주의 것이라는 가사가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혹시 지금 하갈과 같은 문제로
괴로워하는 분 계십니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눈물로 하나님께 나아가셨나요?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변하지 않는 현실,
죽어가는 자녀를 보며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반드시 돌보십니다.
우리의 가정 문제를, 자녀 문제를
해결해 주길 원하세요.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