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달 / 송복련
섬 하나가 해를 삼키고 있었다. 노을 속을 달리던 막배는 우리 세 사람을 부두에 내려놓고 떠났다. 어둠이 비렁길을 타고 포구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이렇게 빨리 어두워지다니. 숙소를 알아보느라 전화를 거는 중에 하나뿐이던 식당마저 문이 잠기고 사내가 트럭에 오르자 부릉 소리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트럭이 사라진 곳에는 시커먼 어둠이 짐승처럼 엎드린 채 두 눈에 불을 켜고 깜빡거릴 뿐이다.
웬일일까. 몇 군데 전화를 건 민박집에서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우리들은 어느 때부턴가 숙소만은 미리 예약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결정하는 것이 실패가 적었고 선물처럼 뜻밖에 만남을 즐기기 위함이다. 해풍에 시달려 낡아가는 집에서 배낭을 풀고 밥상과 마주할 때 비로소 섬을 느낀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생선과 조개,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거둔 푸성귀들로 차린, 어머니의 손맛 같은 상이면 좋다. 빨랫줄에는 간제미와 우럭, 붕장어들이 꾸덕꾸덕 말라가고 섬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도 건네면서 하루 이틀쯤 묵어야 섬 여행은 충만해진다. 때로는 파도 소리를 이명처럼 들으며 섬의 적막 속에 잠기기도 하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불쑥불쑥 얼굴을 내미는 풍경에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는 일은 우리들이 즐기는 오래된 여행 방법이다. 막배가 처음인 그날 우리들은 텅 빈 주차장에 우두커니 남아 있었다. 섬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욕심을 부린 탓이다.
어둠에 갇힌 우리는 숙소를 구하지 못해 마음이 급해졌다. 민박집 전화 목소리에 매달렸다.
자칭 머슴이라고 말하는 사내는 차가 없어 데리러 올 수 없다고 한다. 마지못한 듯 호출 택시를 일러주는데 속내가 무엇일까. 혹시 늦게 도착한 여행객을 주인 모르게 따로 챙기려는 심사인가. 무얼 믿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찾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가야 하는지. 깊은 어둠 어디쯤에 마을이 있기나 할까?
윤곽도 잡히지 않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우리는 서로를 울타리처럼 여기며 기다렸다. 여자 운전기사다. 반가웠다. 면 소재지와 숙소와의 거리며 다음 날 버스 시간에 맞추려면 몇 코스의 비렁길을 걸을 수 있는지 궁금한 것들을 봇물처럼 쏟아내었다.
불을 밝힌 자동차가 어둠의 터널 속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다.
보름달이 병풍 위의 달처럼 둥두렷하다. 감청색 치마폭에 번진 핏방울 같은 붉은 달이다.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이 숲으로 사라졌다 나타나는 달과 숨바꼭질하는 사이, 차는 두포항가에 도착했다. 다음날에야 알게 되었다. 그날 내 가슴을 온전히 채웠던 달은 200년 만에 볼 수 있는 달로 월식을 하는 중이었다. 내 생에 다시 볼 수 없는 귀한 순간이었다. 지구의 그림자에 들어간 달이 반사된 태양빛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달의 아랫부분이 어두워지는 걸 본 나로서는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달 하나를 품게 되었다.
머슴이라던 사내가 시커멓게 서 있었다.
“이런 밤중에 다니지 말아요.”
여자 셋이서 밤중에 막무가내로 찾아들었으니 철딱서니 없는 여행자에게 보내는 따끔한 충고가 미덥다.
허술한 간판에 비해 방안은 청결하다. 밥걱정하는 우리들이 딱했나 보다. 자신이 먹던 대로 차린다더니 뜻밖이다. 이 시간에 밥해주는 식당들이 없는 걸 아는 그는 갈무리한 것들로 상을 차렸다.
담 너머 이웃이 건넨 황숭어리젓에 버무린 포기김치와 파김치, 입맛 없을 때 먹으라던 고추 마늘장아찌들을 밑반찬으로 깔고 배춧속을 쌈으로 씻어 두었다. 그날 잡은 조기 새끼로 굽고 조리고 뿔소라와 문어는 얄팍얄팍 썰어 놓았다.
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성찬을 받고 가슴이 뭉클했다. 요리는 누가 하는지 물었더니 혼자서 다 한단다, 아내와 따로 산 지 십여 년이라고 덧붙였다. 일 년에 두어 번 만난다니 갑자기 사내가 불쌍해졌고 얼핏 문단속을 떠올린 듯도 하다.
우리들의 말씨로 미루어 짐작한 그는 이야기가 고팠던 지 대구에서 보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장꿩이라는 우스꽝스런 별명처럼 객지를 떠돌며 직장 생활을 했던 곳이 마침 같이 온 친구들이 사는 곳이 아닌가. 이십여 년의 경력들이 쏟아져 나오자 신상명세서를 보듯 그의 신분이 드러났고 얼기설기 얽힌 인연의 고리들이 서로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 곳을 떠났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까지 풀어놓았다. 한참이나 외로운 이 남자는 신앙생활을 하며 경로당 일과 마을 일을 거들며 산다. 젊은 날에 기증하고 남은 반쪽 신장을 다스리면서.
아득한 인연의 끈이 이곳으로 우리를 불러들인 것인가. 후식으로 뒷산 감나무 밭에서 따온 단감과 홍시를 수북수북 담아 내놓으며 다음날의 빠듯한 시간을 위해 지도를 내놓고 일정을 짜주었다. 무거운 배낭은 우리가 산행을 마치는 지점까지 오토바이로 실어주기로 했다. 사람을 알아가는 것 또한 여행의 맛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새로운 인연과 정을 나누는 훈훈한 분위기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고양이 가족 5대가 사는 그 민박집과 만남은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두런두런 이야기 끝에 언뜻 스쳐 간 필름 한 장은 무슨 뜻일까. 깊은 눈길을 보내며 바라보는 그 남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는 운전석 옆자리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다.
오래 기다려 준 사랑을 차마 밀어내지 못하고 두 손을 꼬옥 잡았다. 떨리는 사랑의 순간에 눈을 떴다. 옆자리에 누웠던 친구가 화장실 불을 켰기 때문이다.
꿈이었다. 가만히 얼굴을 떠올려 본다. 주말 드라마에서 보던 얼굴인가. 오지 않는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그가 안쓰러웠던가? 아니면 딸의 아이를 돌보는 아내와 생이별하고 사는 부부 사이가 안타까웠을까?
고향의 선산 아래에서 남은 생을 보내는 남자는 생의 마지막 자서전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졌던 이름들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하늘로 가기 전 마을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섬을 돌본다. 뒷산 감나무 밭 둥시감처럼 주렁주렁 사랑이 열리는 걸 보았다. 뜻밖에 그의 사랑을 받아먹고 충만해진 이번 여행은 그날 저녁 보았던 붉은 달처럼 특별한 경험이었다.
또 다른 섬 여행을 꿈꾼다. ‘어린아이처럼 그 앞에서 감슴 설렌다면 그것이 행복이다.’라는 괴테의 말을 떠올리며 또 다른 섬을 고르느라 설렌다.
[송복련] 수필가. <수필과비평> <인간과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강남문인협회 부회장
* 한국수필문학상
* 수필집 《완성된 여자》
* 시집 《꽃과 노인》
섬 여행을 다녀와 또 다른 섬을 고르며 설렌다는 작가의 마지막 문장에 함께 설렙니다.
민박 예약 없이 떠나는 일, 현지에서 뜻밖의 선물처럼 맞닥뜨리는 모험은 감행할 용기가 필요하겠네요.
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싱싱한 해산물과 텃밭 푸성귀로 차린 밥상, 군침이 고입니다.
더하여 평생 다시는 못 만날 '200년 만의 월식'은 압권이네요.
둥두렷한 붉은 보름달을 가슴에 담았으니 잊지 못할 큰 선물을 받으셨네요.
감초처럼 꿈 얘기도 좋았어요. 음식과 함께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여행, 섬 여행, 최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