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 정희성,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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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찾아온 이후 옷장에서 긴 팔을 꺼내 입어야했습니다. 갑작스런 계절의 변화에 ‘이렇게 갑자기?’ 하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하지만 지난 여름 헉헉거리며 폭염을 견뎌야만 했던 어려움을 생각하면 서늘한 날씨가 반갑기만 합니다. 여름이 길었던 반면 가을은 짧게 머물다 곧 겨울이 올 것이란 예보를 들었습니다. 다가올 겨울은 유례없는 강추위를 몰고 올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날이 점차 싸늘해지면 가난한 이들이 걱정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폭염도, 혹한도 견디기 힘든 재앙이지요.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지난 화요일 샤샤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물어왔습니다. 문자를 받고 샤샤의 집으로 달려가 보일러 작동을 시켜보니 처음엔 돌아가다가 이내 꺼지고 다시 돌아가다가 다시 꺼져 작동을 멈추더군요. 해당 보일러 대리점 수리기사를 불러 확인해보니 그을음 재가 보일러 안에 꽉 차있더군요. 수리기사님은 보일러 안에 꽉 찬 것은 수리가 어렵다며 새로 교체를 해야 한다며 연락처를 주고선 가버렸습니다. 새로 교체하는데 드는 비용을 물으니 80만원 돈이 든다 하였습니다. 한 번에 목돈이 나가게 되어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일 하러 나가있는 샤샤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퇴근 후 자신이 보일러 안쪽에 쌓여 있는 그을음을 청소해보겠다고 하더군요. 청소한다고 해결이 될까 싶었지만 우선 그렇게 해보자고 하고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어찌 될지 몰라 집 주인 할머니와 이 문제에 대해 상의하였습니다. 보일러를 새것으로 교체 해야되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을 드린 후 어떻게 할지 의논하다가, 할머니는 목돈을 들여 새것으로 교체할 경제적인 여력이 없다며 대신 80만원에 해당하는 월세를 받지 않을테니 어떻게든 보일러를 새것으로 교체해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서로에게 부담이 될 상황이지만 그렇게 말씀해주신 할머니가 고마웠습니다. 다음날 오후에 샤샤로부터 사진 한 장과 함께 문자가 왔습니다. “나 지금 집에 돌아왔어. 보일러를 청소했어요. 새것처럼 작동해요” 사진엔 청소된 보일러 안쪽의 상황이 찍혀있었습니다. 청소한다고 될까 싶었는데 새것처럼 작동한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는 80만원에 대한 부담이 확 사라지면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금요일에 다시 샤샤를 찾아갔습니다. 화요일에 찾아갔을 때 우연히 변기가 고장이 나 있는 걸 본 터라 마침 해당 부품이 있어 교체를 해주기 위함이었지요. 때마침 안동제일교회 백종석 목사님께서 구세군에서 준 구호물품을 전해 주고 가셔서 그것도 한 상자 들고 갔습니다. 야간 근무로 집에서 쉬고 있던 샤샤와 함께 변기를 수리하고, 선물을 전해주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샤샤는 11월 중 가족들을 보기 위해 러시아로 돌아갔다가 다시 한국에 들어온다는군요. 샤샤의 아내가 면역체계 이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습니다. 그런 아내와 어머니를 위해 주름방지 크림을 사가고 싶다고 추천을 해달라고 하길래 이래저래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경제적인 차이가 행복과 불행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러시아에서 이곳에 넘어와 궂은 일마다 않고 몸이 부셔져라 돈을 벌어 러시아에 있는 식구들에게 전하는 샤샤를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디 이곳에서 희망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더불어 숲을 이루어 풍성한 생명을 서로 나누는 푸르른 숲과 같은 그런 세상을 꿈꿔봅니다. <2024.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