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수돗물과 지정주차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미국 뉴욕시의 시민들은 평생 수돗물 값을 내지않는다. 일부 대기업과 대저택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정은 하수도 정화요금은 납부해도 상수도 요금은 내지않는다. 록펠러재단이 수도물값을 대납해주기 때문이다.
역시,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존 록펠러는 정부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게 되자 59세가 되던 1890년에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평생 번돈으로 자선사업에 몰두하게 된다. 그는 98세에 세상을 떠날때까지 40년 동안 12개의 종합대학과 12개의 단과대학, 4천900여 개의 교회를 지어 사회에 바쳤다. 나아가 뉴욕의 수도시설 건설에 거의 전액을 지원했다.
1890년,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 세운 시카고대학은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중심 종합대학교로 평가받고 있으며 개교 이래 9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명문교가 됐다. 뉴욕의 UN본부 자리도 록펠러가 기증한 땅이며 뉴욕의 문화복합단지인 링컨센터와 뉴욕현대미술관 건립에도 거액을 기부했다.
그가 미 전역에 5천 개에 가까운 교회를 지어 헌납한 것은 성장기 부모의 교육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뜰의 잔디를 깎고 그 댓가로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으면서 '반드시 10분의 1은 저축을 하고, 또 10분의 1은 헌금하라'는 훈육을 받았으며 그 다짐을 지켰다고 한다. 그 덕에 오늘날의 뉴욕시민들은 비길데 없이 깨끗하고 맛 좋기로 이름난 수돗물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 지은 죄는 벌받아야 합니다
록펠러가 뉴요시민들에게 고마운 사람이기는 하지만, 뉴요커들이 정작 존경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뉴욕에는 두개의 공항이 있는데 그 하나는 존 F 케네디 공항이고 다른 하나는 라과디아 공항이다. 전자는 케네디 대통령의 이름을 딴 공항이고, 후자는 케네디 대통령 못지않게 존경을 받으며 기념되고 있는 인물, 피오렐로 라과디아 재판관의 이름을 딴 공항이다. 피오렐로 라과디아는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역임하면서 맨해튼을 오늘날의 맨해튼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 라과디아 공항 주차장에는 특이한 주차 위치 표시가 있다. 제일 편한 자리에 'Judges(법관)' 표지가 있고 그 옆에 'Handicapped(장애인)'와 'Senators(상원의원)'라는 주차 표시가 나란히 있다. 법관이 존경받는사법국가 미국이라지만 왜 라과디아 공항에서만 장애인이나 상원의원보다 법관의 주차위치가 더 좋은 곳으로 지정되었을까. 그것은 한 법률가의 따뜻한 마음씨를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가 바로 라과디아다.
1935년 어느 추운 겨울 날, 뉴욕 빈민가의 법정을 맡고있던 라과디아 판사 앞에 누더기를 걸친 노파가 끌려왔다. 빵 한 덩어리를 훔진 혐의였다. 노파는 울면서 선처를 호소했다. 사위는 도망가고 딸은 아파서 누워있어 어린 손녀들이 굶주리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비정한 빵가게 주인은 고소취하를 권하는 판사의 청을 물리치고 '법대로 처리해 달라'고 법정이 떠나갈듯이 소리쳤다.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된 재판장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렇게 선고했다.
"할머니, 법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어요. 벌은 받아야 합니다. 벌금 10달러를 내시거나 아니면 열흘 간 감옥에 계십시오."
선고를 마친 판사는 모자를 벗더니 자기 주머니에서 10달러를 꺼내 모자에 넣고서 이렇게 최종판결을 내렸다.
"여러분, 여기 벌금 10달러가 있습니다. 피고는 벌금을 완납했으므로 석방합니다. 나는 오늘 굶주린 손녀들에게 빵 한 조각을 먹이기 위해 도둑질을 해야 하는 이 비정한 도시에 살고있는 죄를 물어 이 법정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모자를 법정 경찰에 넘겼다. 이렇게 모인 돈은 57달러 50센트였다. 판사는 그 중에서 벌금 10달러를 뺀 47달러 50센트를 할머니의 손에 쥐어주었다. 라과디아 공항은 이 훈훈한 즉결법정을 잊지않기 위해 공항 주차장의 가장 좋은 위치에 법관들을 위한 자리를 따로 지정한 것이다.
한국의 슈바이처
우리나라에도 이만큼, 아니 이보다 더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 많다. 그 가운데 의료인 장기려 박사를 간단히 소개코저 한다. 평생을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살다 간 분이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 설립, 오늘의 '국민건강보험'의 토대를 만든 분이다.
그가 부산의 복음병원 원장을 맡아 운영할 때의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형편이 가난한 환자의 치료비를 대납하느라 봉급 봉투가 빈봉투가 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북한에 두고 온 부인과 가족을 생각해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박사는 병원의 가까운 곳에 셋집을 얻어 기거했다. 급한 환자가 생겼을 때 곧바로 달려오기 위해서였단다.
입원환자가 입원비 때문에 퇴원을 못하는 환자에게는 귓속말로 "밤이 늦으면 내가 후문을 열어놓을 터이니 도망가라" 했다는 너무도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운 장 박사의 의료인으로서의 철학과 처신이 새삼 되새겨지는 봄의 끝자락이다.
첫댓글 아 놀랍고 놀랍네요. 한결같이 위대한 인물이시네요. 저는 이 분들 이야기 처음 들었습니다. 그만큼 부족한 여자지요.
감동적인 드라마 보다 더 훌륭한 분들입니다.
한국에도 슈바이처가 계셨다니 장기려 박사님" 자랑스럽습니다. 귓속말로 뒷문 열어 놓았다고'.
경제가 있다고 베푸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서 진심으로 일어나는 생각과 행동 실천 감동 입니다.
미국의 맨해튼 판사 불쌍한 할머니 마음을 고스란히 대접해 드렸네요
그리고 록펠러 하수도 값은 내어도 상수도 값을 지불 하지 않게 했고 학교 교회 건립 인제 양성 아 ! 꿈에도 만날 수 없는 분들이네요.
서정 선생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병원가는 것이 그 어느때보다 어수선한 요즘인데 서정 선생님 좋은 글 올리셨습니다.
이런 미담은 두 번 세 번 올리셔도 진부하지 않습니다. 장기려 박사님 같은 분이 계셨기에
우리나라가 이만치라도 발전하지 않았을까요.
5월이 가정의 달이라고 이런 저런 행사가 많은데 행사를 하기전에
가족이 모이면 이런 얘기부터 하면 어떨까요. 낮은 자세로 정말 잘 읽었습니다.
우리삶의 귀감이 되시는분들을 다시 상기시켜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서로가 헐뜯고 의심하고 경계하면서 살아가는 이시대에...
참으로 헌신적인 인간애를 배풀며 살아가셨던
선각자들의 삶의 흔적을 되새겨 주신 최기자님의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횡화자, 원홍섭, 강병숙 그리고 방경희 님. 졸고의 의도를 금방 눈치채시고 동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동료기자여서 더욱 고맙습니다.
이런 글을 전해주시는 서정 선생님 포함, 모두가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뒷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