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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세계는 어떤 면에서는 생물과도 같습니다..살아 움직이고 모든 관련된 것들이 서로 서로 역동하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 따로, 삶 따로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따지고 보면 그러한 것은 말 자체가 안 되는 것이며, 사실상 그 누구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중심과 모든 것들, 순간순간을 시공을 초월하시고 모든 한계와 제한들을 뛰어 넘어 다 아시는 분인 것이고,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다름 아닌 진실한 믿음, 곧 본질적으로는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과 함께 강력하시면서도 세밀하게 직결되어 일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실상 우리 모든 인생들이,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을 행하고, 살면서 그러한 죄악들을 아무도 몰래 숨길 수야 있으며, 더 나아가 온갖 세속과 자기 소견과 불신앙들을 반복하는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 속에서도 ‘주여 주여’할 수도 있고, 교회에도 잘 나갈 수도 있으며, 예배도 자기 나름 잘 드릴 수도 있고, 목청 높여 열심히 찬미도 할 수 있으며, 직분이나 헌신들에 있어서도 참 대단할 수 있고, 심지어는 바리새인들이 금식에 철저했듯이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철야기도나 새벽기도 등과 같은 특별 작정까지도 할 수야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잃거나 변질된 그런 신앙 아닌 신앙을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고, 그러한 자들이 드리는 것은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이라 할지라도 받지 않으시는 것이며, 그러한 것에 대해서는 아래 본문 뿐 아니라 특히 말라기서 전체적으로도, 구약과 신약 성경 전반적으로도 아주 잘 기록되어 있고 발견할 수 있으며 유추할 수 있는 것이듯이 오히려 가증스럽게 여기시고, 심지어는 바로 그 자체로 하나님께 있어 진노의 제목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반면 늘 말씀을 가까이하고 사모하면서 읽고 들으며 실천하기 위해 갈망하고 증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들은, 사실 그럴수록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더욱 발견하기에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처럼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욱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더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은 그 어떤 간구보다도 앞서 즉시로 회개하고 돌이키며,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으로 주야로 더욱 치열하게 몸부림치면서 나아가게 되는 것인데, 게다가 그 한가운데 계신 예수님까지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분인 것인데..
진정 그러한 자들을 누구보다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장 먼저 아시는 것이고, 말씀에 약속된 대로 하늘의 힘과 응답과 복들 등을 생생히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실 뿐 아니라 말씀 그대로 앞서 가시어 예비하시고 책임져 주시며 응답하시고 싸워 주시는 것이며, 실상 직접적, 실제적, 경험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기뻐하시고 생생히 역사하시어 세상이 주지 못할 하늘의 힘으로 채우시며 충만케 하시고, 더욱 큰 믿음, 견고한 말씀의 신앙으로 이끄시며, 그와 함께 가면 갈수록 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더 충만케 되면서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사건들, 말씀 중의 말씀인 복음의 능력들로 차고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자들이 올려 드리는 경배들마다 하나님께서 열납하시기에 합당한 예배가 안 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들의 기도들마다 그 이상으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단지 옷자락 붙잡는 정도의 모양과 상황의 기도라도 들으시고, 심지어는 그가 기도하기도 전에 다 들으시며 준비하시고 모든 것을 더하시곤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러한 자들의 찬양들마다 기뻐 받으실 뿐 아니라 그러한 찬양과 함께 사람이 못할 하늘의 힘과 능력과 사건들도 생생하게 나타내시고 체험케 하시며, 무엇보다 그의 가정이나 골방의 자리들이, 그 자녀들이나 동역자들이, 그의 광주리나 떡 반죽 그릇들까지, 더 나아가 교회나 일터, 학교나 온 지경에서, 진정 그가 어디를 가고 누굴 만나며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서 친밀히 동행하시고 그 강한 오른손으로 이끄시며, 신실하게 갚으시고 채우시며, 온전히 열납하시고 대신 싸워 주시며, 상상도 못할 은혜와 능력들로 예비하시고 형통케 하시면서 산 예배의 현장, 산 제물과 같은 신앙이 되게 하실 뿐 아니라 진정 그 자신부터 해서 그의 온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들이 가득함과 함께 이 땅 가운데 임해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들을 생생하고 강렬하게 보고 느끼며 경험케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믿음을 다른 말로 깨어 있는 신앙, 살아 있는 믿음이라 부르고, 바로 그러한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백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며..
그와 함께 온갖 하늘의 힘과 은혜와 응답들 같은 하나님 나라의 일들로 넘치도록 하실 뿐 아니라 그의 산성이 되어 주시고, 무엇이든 도맡아 주시며, 혹 시련들이 있더라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것이고, 진정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정말로 더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고 실질적으로 생생히 누릴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신앙에 있어서 진정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정도의 차원일 수가 없으며, 또한 하면 더 좋다, 이왕이면 더 좋다는 정도만일 수도 없는 것인데 사실 그러한 말씀의 몸부림들 자체가 신앙이고 영성이며, 생명이고 능력이며, 하나님의 역사이고 하나님 나라의 사건이며, 무엇보다 온 세상 천지만물이 말씀으로 창조된 것이기에 무에서 유로의 능력이자 창조력이며 생명의 본질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특히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전지전능의 영이신 성령님의 별칭이 말씀의 영이신 것이며, 근원적으로 모든 힘과 능력들, 복과 열매들의 중심이시자 근본이시며 실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진정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말씀의 신앙은 근본적,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진정 하나님으로 인한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사건들, 실상 기도 응답 한 번에 이르기까지 생각 이상, 상상 이상으로 직결되어 있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 내가 그러한 말씀을 가까이 하고 있지 못하며, 말씀보다 죄, 세속, 소견, 강팍, 탐욕, 미움, 염려 등에 더욱 가깝다면 이미 병든 신앙이거나, 또는 죽은듯한 신앙 상태임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는 것이고, 적어도 미지근하거나 잠자는 신앙이거나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한 것이며, 심지어는 어쩌면 이미 진노 가운데 있거나 진노가 임박해 있음을 내포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인데..
그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는 실상 하나님께서는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그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매를 대는 아비의 심정으로 더 이상 악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설 수 있게 되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은혜와 응답과 복들보다는 사람 막대기나 인생 채찍들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러한 변질되고 맛을 잃어 가는 신앙들에 있어 방법이 없거나 돌이키고 역전됨이 심히 어려운 것일 수만은 없으며 게다가 아주 먼 것일 수도 없는 것인데, 사실상 어떤 면에서는 아무리 큰 죄악들을 범했고 심지어 집나간 탕자보다도 더 멀리 와 있다고 해도, 참으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이거나 억만 죄인이라 해도 불가능일 수 없고 복잡할 수도 없음은 구주 예수님 십자가 목숨값의 구원이 우리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강력한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이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로 강력한 것으로..
그렇기에 실제로 그 어떤 상황들일지라도 다른 무엇보다 그 있는 자리에서 단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면, 다시 말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직접적, 실제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으면 되는 것입니다..
곧 그 가운데 차고 넘치는, 나를 포함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우리 인생들이 상상도 다 못하며 심지어는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죄와 문제들, 사망과 심판들, 그리고 그에 있어서의 모든 대속과 나음들, 역전과 생명들이 되실 수 있는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 십자가 목숨값만한 구원과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말씀 그대로 믿고 기억하며 의지하고 자복하며 돌이키고 간구하면서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때 마르지 않는 구원의 우물을 맛보듯 언제든, 또는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듯이 값없이 누리며 그 한 가운데로 실제로 빠져 들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와 함께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반전들 등과 같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신령한 힘과 은혜들, 하늘의 권능과 효력들이 생각 이상으로 강력하고 실질적으로 있게 됨을 발견하게 되고 또한 경험케 되는 것인데..
뿐만 아니라 동시에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더욱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말씀을 주야로 더 읽고 들으며 묵상하는 일부터 가장 긴급에 두고, 때로는 손해보고 어렵더라도 하나라도, 한 번이라도 더 말씀을 가까이하고 갈망하며 더욱 말씀대로 실천하고 증거하기 위해 몸부림침과 함께 갈수록 더 은혜되고 역전되며, 더욱 뜨겁고 치열한 산 신앙으로 강건해 질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해 지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들로 더욱 강렬해 지게 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로 인해 갈수록 더, 한번이라도 더 사랑을 행하고 공의를 실행해 나가기 위해 사력을 다하게 되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 강한 군사와 같은 신앙까지도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 그러한 자들마다 그 모양과 정도와 강도들은 다를 수 있겠지만 어쨌든 오늘 이 땅 가운데에서도, 바로 나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복들이 얼마나 가깝고 빠르며 놀라운지를 생생하게 경험케 되는 것이며, 성경에서나 역사적으로 볼 때 수많은 상황들에서 확인되며 증거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 분명하고 또 분명하나..
설령 그렇지 않고 만에 하나라도 요셉처럼, 욥처럼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더디고 응답이 안 보이며, 오히려 시련이 생기고 여전히 어려움들이 지속되고 있다면 그 이유는 한 가지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바로 그때는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시며 절대 실수하시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한 더욱 놀라운 역사와 영광들이 예비되어 있는 것이고, 진정 더욱 큰 뜻과 계획들을 위한 연단과 그릇이 준비되는 시간들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사실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당장에는 피하고 감당할 수 있게 될 수 있는 정도의 하늘의 힘과 지혜들은 별도로 허락하시는 것이고, 더 나아가 여러 모양으로 그러한 시기나 상황들에 합당한 만큼의 능력이나 도움의 손길들, 견고한 믿음이나 은사들, 필요하면 상상도 못할 방법들이나 이적들까지 주시다가 언젠가, 결코 머지않아 모든 게 합력하여 선이 됨을 보여 주시고, 정말 제대로 된 믿음이 맞는 것이라면 결국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뜨겁게 고백하고 찬미하며 간증하지 않을 수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5:21~24)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0월 30일(수)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