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패배와 함께 독일 제국군대는 무너졌다. 자체 정규군 35만명을 포함해 몇백만명의 예비군·동맹군을 가동하던 독일은 10만명의 병력만 보유할 수 있게 됐다. 독일이 전쟁을 다시 일으키지 못하도록 연합국이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엄격히 규제한 결과였다.
1920년 독일군 총참모장이 된 한스 폰 제크트 장군은 참모본부에 400여명의 인원을 배치하고 군개혁 방안을 집중 연구했다. 최악의 불리한 여건을 딛고 군사력을 어떻게 재건하느냐가 그의 과제였다. 연구 결과 그는 전군을 간부화한다는 대안에 이르렀다. 그는 사병에게는 하사관을 할 수 있도록, 하사관은 장교를, 장교는 좀더 상급 부대를 지휘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유사시에 사병은 짧은 시간에 양성하거나 동원할 수 있다고 본 결과였다. 한스 폰 제크트는 숫자가 아니라 장병의 질적 능력에서 전투력이 나온다고 봤다.
참모본부는 1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투를 면밀히 분석하는 등 연구를 계속했다. 그 결과 유럽대륙에서 펼쳐질 미래 전쟁은 전차를 운용하는 기동전이 중심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공군력과 공중전 전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2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이 성공적으로 전격전을 펼칠 수 있었던 바탕이 이런 과정을 거쳐 마련됐다.
한스 폰 제크트는 주어진 여건에서 창의력을 발휘한 군사개혁 사례로 종종 膾炙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