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유학,중국어학연수,중국유학원,조기유학] 청더(承德)/피서산장(避暑山莊) 소개:
청나라 황제들의 여름 휴양지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의 무대이기도 함
청의 황제는 선양(당시의 봉천)에 제사를 지내러 가는 것이었지만, 황제의 행차는 청더에 머물렀다.
청더는 계쩔과 날씨가 좋고, 자연이 수려하며, 풍경이 아름답다. 또 온천이 있었기 때문에 강희제는 1703년 2개의 별공을 짓기로 결정한다.
옹정제를 거쳐 1741년 건륭제때 대규모 정비가 이루어져, 준공으로부터 87년이 지난 1790년에 완성하고, 외팔묘를 궁 밖에 직시 시작한다.
이 곳은 청나라 전기의 황제의 여름 집무지로 정치, 군사, 외교 등의 국가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이런 이유로 베이징 이외의 제 2의 정치 중심으로 불렸다.
아래는 청더 피서산장의 풍경, 내외부 사진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었다고 설명한 비석
학교에서 단체로 갔었던 청더(피서산장)
황제들이 여름 휴가로 갔던 곳이라는 설명때문에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가
특별히 더 시원하다는 느낌은 별로~
기행문을 제출해야 했기때문에 청더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황제의 여름휴양지라는 점 외에 다른것을 더 알게 됐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1793년 매카트니 백작이 이끄는 영국 사절단의 방문,
이와 관련한 영국여왕의 일화까지...(삼배구고두)
피서산장때문에 관광객도 많지만, 철도와 석탄및 구리 매장지가 있어
상업중심지이자, 물자 집산지로도 유명한 도시라는 점
또 하나... 황당한 사기사건(?)
관광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간단한 다과와 함께 담소를 나누려고
간단한 군것질거리와 과일을 정성스레 골라 담고는 계산을 하고, 숙소로~~
그런데, 과일봉지에 들어있는 과일이 대부분 썩은것
분명히 좋은걸로 골라담았는데.....
계산할때 바꿔치기하는 사기를 친것
그래서 청더하면 생각나는건 과일 사기사건과 황제의 여름 휴양지 피서산장
삼배구고두(매카트니 백장과 영국여왕의 일화 내용)
영국령이었던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던 1986년,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 여왕으로서는 최초로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
영와응 맞이해 중국 정부는 전국의 일류 요리사를 모두 부를 정도로 만찬에 신경을 썻다
하지만 만찬 당일 여왕을 기다린 것은 기다란 젓가락...
젓가락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여왕은 중국 측이 외교적 결례를 점할 것일 수 있는 이 상황에
서투른 젓가락질을 하면서 말했다.
"200년 전 매카드니 백작이 삼배구고두만 했었어도 내가 젓가락질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1793년 영국 왕은 인도의 총독 출신인 매카드니 백작을 특사로 파견 중국과의 무역을 도모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베이징에 도착한 그에게 들린 소식은
황제가 청더의 여름 별국에 머문다는 것!
헛걸음을 할 수 없었던 매카트니는 청더로 향하고 목적지에 도착한 매카트니는 영국왕의 사신이 왔음을 알린다.
황제를 알현하는 날, 매카트니는 칼까지 찬 채 한껏 멋을 부린다.
당연히 칼을 빼앗기고 머리를 땅에 머리를 세번 박으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삼배구고두)
그러나 매카트니는 삼배구고두를 거절하고 이에 중국 황제는 무역제의 거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