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독(敦篤)하게 배우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처음은 있으나 끝이 있는 것은 드물다.(靡不有初 鮮克有終)”하였다. 이른바 돈독(敦篤)이라고 하는 것은 끝을 매우 도탑고 신실하게 하라는 것이다.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선비는 넓고 굳건하지 않을 수 없다. 임무는 무겁고 길은 멀다.”하였다.<논어>. 인(仁)을 자기의 임무(任務)로 삼으니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그칠 것이니 멀지 아니한가.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인(仁)이라는 것은 인심(人心)의 온전한 덕(德)인데, 반드시 몸으로 본받아 힘써 실행하고자 하니, 무겁다고 말할 수 있다. 한 가닥의 호흡이 아직 남아 있는 한 이 뜻을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기를 용납하지 않으니 멀다고 말할 수 있다.”하였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상사(象辭)>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은 씩씩하다. 군자(君子)가 이것을 본받아 스스로 노력하여 쉬지 않는다.”하였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항상 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늘의 이치가 항상 행하여 쉬지 않고 두루 흐를 것이다.”하였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군자의 학문은 반드시 날로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니, 날로 새로워진다는 것은 날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날로 새로워지지 않는 자는 반드시 날로 퇴보(退步)하니, 전진(前進)하지 않고서 후퇴하지 않는 자는 없다.”하였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식사를 마치는 사이(終食之間)라는 것은 한 번 식사하는 사이이고, 조차(造次)란 것은 급하고 구차(苟且)한 때이며, 전패(顚沛)란 것은 엎어지고 자빠지며 떠돌아다니는 경우이다. 대체로 군자가 인(仁)에서 떠나지 않음이 이와 같아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인(仁)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하였다. 또 말하기를, “인(仁)의 도(道)는 지극히 커서 전력을 다하여 쉬지 않고 본받는 자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다.”하였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알면 반드시 좋아하고, 좋아하면 반드시 찾으며, 찾으면 반드시 얻는다. 옛사람의 배움이란 평생을 두고 하는 일이었다. 과연 쓰러지거나 엎어지거나 급하고 구차한 경우에서 반드시 이 인(仁)에 있게 된다면 어찌 도리(道理)를 얻지 못하는 일이 있겠는가.”하였다.
섭씨(葉氏)가 말하기를, “속히 이루어지기(速成)를 바라지 말고, 중도에서 그만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 부지런히 힘써서 죽은 뒤에라야 그치는 것이 옳다.”하였다. 맹자가 말씀하시기를, “오곡(五穀)은 씨앗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영글지 않으면 가라지나 피(荑稗)만도 못하다. 인(仁)도 역시 이것을 익혀야 할 따름이다.”하였다. 섭씨(葉氏)가 말하기를, “온종일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은 낮에 하는 일이요, 야기(夜氣)를 기르는 것은 밤에 얻어지는 것이다. 공기(氣)가 드나드는 것을 숨을 쉰다고 하는데, 한 번 숨 쉬는 동안에도 반드시 함양하는 바가 있다. 눈 한 번 깜박이는 것을 일순(一瞬)이라고 하는데, 눈 한 번 깜빡이는 동안에도 반드시 보존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군자는 언제 어디서나 배운다는 것을 말한다.”하였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싹(苗)이 텄으나 꽃 피지(秀) 않는 것이 있고, 꽃은 피었지만 영글지(實) 않는 것이 있다.”하였다<논어>. 주자가 말하기를, “곡식이 처음 나는 것을 싹(苗)이라 하고, 꽃이 피는 것을 수(秀)라 하며, 영그는 것을 실(實)이라고 한다. 대개 배워서 성취하는 데 이르지 못함이 이와 같은 점이 있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스스로 힘쓰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하였다. 남헌 장씨[南軒張氏 장식(張栻)]가 말하기를, “싹을 기르는 데는 김매고 북돋우는 때를 놓치지 않고, 그 생리(生理)를 거스르지 아니하여, 비와 이슬에 불어나고 밤낮으로 자라나서, 처음과 끝이 한결같아야 성숙한 데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버려둔 채 김매지 않거나 빨리 자라라고 뽑아 올리거나, 하루는 햇볕을 쪼여 주었다가 열흘을 얼게 하는 정도가 되면, 싹이 나더라도 꽃 피지 못하고, 꽃이 피더라도 열매 맺지 못한다. 배우는 일이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소질(素質)은 있으나 배우지 아니함은, 싹이 나왔어도 꽃이 피지 않는 것과 같고, 배우고서도 자기 몸에 지니지 못함은 꽃이 피기는 했어도 열매 맺지 못하는 것과 같다.”하였다.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니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으며, 썩은 흙담은 흙손질[杇]할 수 없으니, 재여를 꾸짖어(誅) 무엇하겠느냐.”하였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낮잠(晝寢)은 낮에 잠자는 것이다. 오(杇)는 흙손질(鏝)하는 것이다. 그의 지기(志氣)가 혼미하고 나태하여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주(誅)는 책(責)과 같으니 꾸짖는 것이다. 꾸짖을 것도 없다고 말한 것은 심하게 꾸짖은 것이다.”하였다. 호씨(胡氏)가 말하기를, “재여(宰予)가 지(志)로써 기(氣)를 거느리지 못하고 안이(安易)하고 나태하니, 이것은 안일한 기운이 세고 경계하는 의지가 나태한 것이다. 옛 성현(聖賢)들은 해이하고 게을러지지나 않을까, 거칠고 안이해지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쉬지 않고 부지런히 힘써서 스스로 굳세게 하였으니 이것이 공자가 재여를 심하게 꾸짖은 까닭이다.”하였다.
“군자의 학문은 성실하고 독실(篤實)해야 할 따름입니다. 임무는 무겁고 도(道)는 멀어서 전진하지 아니하면 후퇴합니다. 만약 성실하고 독실하지 않으면 어찌 성취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어려움을 먼저 겪고 나중에 얻는다.”하였습니다. 공부가 지극하면 효과가 반드시 오는 것이니, 어찌 미리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사람들은 먼저 얻기부터 하려는데 병폐가 있습니다. 미리 기일을 정해 놓았는데 그때에 공효(功效)가 나지 않기 때문에, 행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이내 싫어하고 권태로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우는 자의 공통된 병폐입니다. 먼 곳에 가는 자가 한 걸음에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는 없으니,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점차로 가야 됩니다. 높은 곳에 오르는 자가 단번에 뛰어오를 수는 없으니,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점차로 올라가야 합니다. 진실로 그 길을 잃지 않고, 부지런히 차례대로 질서 있게, 날마다 공정(功程)을 정하여 전진하고 후퇴함이 없으면, 멀다고 못 갈 곳이 없고, 높다고 못 오를 곳이 없습니다. 사람의 심정(心情)이 제각기 즐기는 바가 있으나, 배우는 것을 낙(樂)으로 여기지 못하는 것은 반드시 가리는(蔽)것이 있기 때문이니, 그 가리는 바를 알아서 힘써 제거하여야 합니다. 성색(聲色)에 가린 자는 노래와 여색(女色)을 멀리하는 데 힘써야 하고, 재화(財貨)와 이익(利益)에 가린 자는 재물을 천하게 여기고 덕(德)을 소중히 여기는 데 힘써야 하며, 치우치거나 사사로운 것에 가린 자는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남의 의견을 따르는 데 힘써야 합니다. 모든 가린 바에 있어 오로지 가리는 근본을 끊어 공부를 실천하는 일에 힘쓰고, 어렵고 쉬움을 따지지 말고 용감하게 힘껏 나아가며, 괴로움을 참으면서 단연코 물러서지 않으면, 공부가 진행되는 상태가 처음에는 매우 험난하고 막히지만, 뒤에는 점차로 조리(條理)가 시원하게 밝혀지며, 처음에는 매우 혼란하지만 뒤에는 점차로 정리될 것이며, 처음에는 매우 어렵고 까다롭지만 뒤에는 점차로 통달하여 편리할 것이며, 처음에는 매우 담박하지만 뒤에는 점차로 맛이 있어서, 반드시 정(情)의 발로(發露)로 배우는 것을 낙(樂)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하의 모든 것이 이 배우는 일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이니, 어느 겨를에 외물을 사모(思慕)하여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고 늦추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안자(顔子)가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었던(欲罷不能) 까닭입니다.”(율곡 이이 선생).
<율곡 이이 선생, ‘성학집요’ 제12장 돈독(敦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