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순간,
시민은 정치의 주인이 아니라 방관자로 밀려난다.
통일교 로비
의혹과 쿠팡 사태를 나란히 놓고 보면,
겉으로는 개별 조직의 일탈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국
민주주의가 반복적으로 노출해온 구조적 결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라 할수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목적 달성을 위해 과정의 파렴치함을 서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들은 권력을
‘설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했다.
즉 정치가 공론과 경쟁의 장이 아니라,
인맥과 접근을 통해 사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영역으로 왜곡한
것이다.
통일교의 경우
신앙 공동체가 조직력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정책·사업과
맞물린 이해관계를 관철하려 했다.
신앙이란 외피만 둘렀을 뿐 권력을 거래하고 시민사회 주체를
넘어 정치 행위자로 변질되었다.
쿠팡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의 심각성은 외면한 채 책임을 회피하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외국인 대표를 전면에 내세우는 상징적
조치에만 매달렸다.
정작 실질적 책임이 있는 대표는 모습을 감춘 채,
대관을 통해 사태를 덮어보려는 시도는 문제 해결을 향한 책임
있는 대응이 아니다.
이는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기보다 권력을 관리해 위기를
넘기려는 저급한 태도만을 보여줬다.
플랫폼 기업이 이미 노동·유통·소비
전반에 막대한 공적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정치권마저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이 사안은 더 이상
시장에 맡길 문제가 아니라,
민주적 통제가 작동해야 할 공적 영역의 문제다.
정당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각 정당은 위험 신호를 몰랐을 리 없다.
통일교의 조직력도,
쿠팡의 영향력도 정치권 내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유된
정보였다.
그럼에도 정당은 이를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 가능한
자산으로 취급해왔다.
문제가 터진 뒤에야
‘개인
일탈’이나
‘당과
무관한 일’이라
선을 긋는 태도는 사후 책임 회피일 뿐이다.
국회의 책임은
더 직접적이다.
국회는 감시자다.
국정감사와 청문회,
입법이라는 강력한 수단을 쥐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들은 대부분 국감장의 공방이나 일회성 폭로로
소비됐을 뿐,
로비 투명화나 대관 등록제 같은 제도적 보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견제의 대상이 미래의 직장이 되거나,
견제 대상이 현재의 인맥과 이해관계로 얽히는 순간,
국회의 칼날은 스스로 무뎌진다.
언론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은 사건을 알렸지만,
구조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인물 중심의 의혹 보도는 넘쳐났지만 자금의 흐름과 관계의
반복성,
제도의 공백은 충분히 해부되지 않았다.
광고주와 플랫폼에 대한 의존,
종교·정치
이슈가 지닌 민감성은 결국 자기검열로 이어졌고,
그 결과 시민에게 전달된 것은 분석이 아닌 허탈한 껍데기와
소모적인 분노뿐이었다.
결국 이
사태는 누구 한 쪽의 책임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정당은 사전에 걸러내지 않았고,
국회는 제도로 막지 않았으며,
언론은 끝까지 파고들지 않았다.
각자의 역할과 책임은 분명했지만,
그 누구도 마지막 단계까지 가지 않았다.
그 결과 권력형 로비는 가면만 바꿔 쓴 채,
늘 비슷한 얼굴로 되살아난다.
이번 통일교
로비 의혹과 쿠팡 사태는 우리 민주주의에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진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제도로 신뢰하고 있는가,
아니면 관계로 운영하고 있는가.
권력을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순간,
시민은 정치의 주인이 아니라 방관자로 밀려난다.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마련되지 않는 한,
다음 사건은 예외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첫댓글 머물다, 갑니다.
잘보고 갑니다.
잘 감상합니다.
즐감합니다.
시사만평 감사합니다,